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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2. 소련

가. 개혁·개방 정책의 추진배경

소련에서 본격적인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한 시기는 일반적으로 고르 바초프가 집권한 1986년 이후 ‘페레스트로이카’가 추진된 기간이라고 18) 여기에 베트남과 동유럽국가들 및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쿠바를 포

함시킬 수도 있겠으나, 자료의 제한과 작업량의 방대함으로 본 연구에 서는 제외하였다.

할 수 있다. 물론 고르바초프 이전의 집권자였던 흐루시초프와 브레 즈네프의 시기에도 경제개혁이 추진되었으나 강도와 범위 면에서 고 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처럼 소련에서의 경 제개혁이 긴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은 경제침체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종종 적극적인 경제개혁의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위기를 맞게 된 1980년대 후반에 ‘페레스트로이카’

가 시도된 것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둔화되기 시작한 경제성

장이 1980년대에 더욱 심화되어 획기적인 경제개혁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표 2-1> 소련경제의 연평균 성장률 추이

(단위: %) 기 간 1955~65 1966~70 1970~75 1976~80 1981~83 1984~87

총국내소득 5.4 5.2 3.7 2.7 2.3 1.6

공 업 7.5 6.3 5.9 3.4 1.5 2.1 농 업 3.5 3.5 -2.3 0.3 4.2 0.8

서 비 스 4.0 4.2 3.4 2.8 2.1

소 비 4.7 5.3 3.6 2.6 1.7 2.4 투 자 9.1 6.0 5.4 4.3 4.2 3.0 출처: Gregory and Stuart, Soviet Economic Structure and Performance, (New

York: Harper Collins publishers, Inc., 1990).

1980년대 중반 이후, 소련의 경제상황은 경제성장률 저하와 더불

어 소비재 부족현상의 심화, 격심한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폭의 확대 및 외채 증가 현상이 나타나는 등 혼란에 빠지게 된다. 민생과 관련 된 소비재부문은 이미 브레즈네프의 집권말기인 1980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경제성장률의 둔화로 압박을 받기 시작하여 고르바

초프가 집권한 이후에는 생필품의 품귀현상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특히 기초식료품의 경우 1983년에는 수요의 90% 정도가 충족될 정 도로 생필품의 공급이 심각하게 부족하지는 않았으나, 1988년에는 여러 지역에서 고기, 버터 및 우유제품이 부족하여 배급제가 도입되 었으며 오랜 기간동안 치약 및 비누세제를 구하기 힘들었고 면도칼, 비누, 전구 등 부족한 생필품의 수가 천여 종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생필품 부족 현상을 겪게 되었다.19)

이 같은 생필품의 부족현상이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으로 촉발된 임금상승과 그에 따른 가계소득의 증가로 인하여 극심한 물가상승과 재정적자의 증가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미국측의 자료에 따르면, 고르 바초프가 집권한 이후 1988년까지 집단농장에서 생산되는 육류, 과 일, 채소 등의 가격이 약 20% 정도 상승하였으며, 정부의 재정적자 의 규모도 국민소득과의 비율로 계산할 때 1981~84년 2%를 약간 상회하던 것이 1985년에는 4%를 육박한 데 이어 1986~88년 매년 2% 정도씩 추가 증가하는 급상승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 다.20)

외채 급증 현상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련의 대서방권 국가에 대한 순외채 규모를 추정한 결과에 의하면21) 1975년 87억 달러에서 1980년 105억 달러, 1985년 157억 달러, 1986년 211억

19) 이창재, “대소경제협력에 관한 기본전략 모색,”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편,

「소련·중국 및 동구의 변화와 대응」 (서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90), pp. 19~20.

20) CIA and Defence Intelligence Agency, The Soviet Economy in 1988:

Gorvachev Changes Course, Paper presented to the National Security Economic Subcommittee of the Joint Economic Committee, Congress of the United State, April 14, 1989.

21) 여기에서 순외채 금액은 총 외채에서 서방은행의 보유자산의 가치를 제외한 금액이다.

달러, 1987년 264억 달러, 1988년 273억 달러를 기록하여 1980년 대 후반에 들어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증가현상은 1984년부터 계속되어 온 국제석유가격의 하락에서 주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소련은 외채를 줄이기 위하여 수입억제 및 수출증대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계속되는 외화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금을 해외에서 차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1980~

84년 150억 달러를 밑돌았던 상업차관의 도입액이 1985년 259억

달러, 1987년 301억 달러, 1988년 308억 달러에 달하였다. 그 결 과 정부의 상환원금 및 이자상환부담이 더불어 급증함에 따라서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던 정부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소련의 경제적 어려움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심화된 것은 사실이 나 이는 1960년대부터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70년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제성장률 감소추세는 생산성 저하가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970년부터 1987년까지의 기 간 중에서 생산성이 실질적으로 증가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전 기간을 평균하여 계산할 경우 자본과 노동 단위당 산출물은 매년 1%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표 2-2> 소련의 생산요소 생산성의 평균 증가율 추이

(단위: %) 1961~65 1966~70 1971~75 1976~80 1981~65 1986 1987

요소생산성 0.3 0.8 -1.2 -1.3 -1.1 1.4 -1.9

노동생산성 3.2 3.0 1.3 1.0 1.1 3.5 0.1

자본생산성 -3.7 -2.2 -4.6 -4.4 -4.1 -1.4 -4.6

요소생산성 -1.0 0.1 -0.1 -2.1 -2.3 -0.8 -1.4

노동생산성 3.5 3.1 3.9 1.3 1.2 2.3 1.7

자본생산성 -4.4 -2.3 -3.1 -4.7 -4.9 -3.1 -3.7 출처: Directorate of Intelligence, Handbook of Economic Statistics (Washington D.C,:

Central Intelligence Agency, 1988). Gregory and Stuart(1990)에서 재인용.

소련경제에서 생산요소의 생산성 추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경제 전체보다는 공업부문에서 생산성 저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노동보다는 자본의 생산성 저하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특히 자본의 생산성 경우에는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생산성이 하락하 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련의 생산성의 저하 원인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게 제기되어 왔으나 아직까지 일치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대표적인 학자로 와이츠만(M. Weitzman)을 꼽 을 수 있는데, 그는 자본의 생산성 저하 현상은 소련이 자본투자를 확대해 나가면서 자본과 노동을 적절하게 대체해 나갈 생산기술을 발 전시키지 못한 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22) 반면에 1976년 이후의 경제성장률 하락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 쉬뢰더(G.

22) M. Weitzman, “Soviet Postwar Growth and Capital-Labor Substitution,”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60, No. 4, Sep.

1970, pp. 676~92.

Schroeder)는 생산성 하락 요인으로 세 가지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기업의 책임자들에 대한 압박을 줄여줌으로써 그들이 생산요소 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정부당국이 1976년 이후 성장률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였기 때문이고, 둘째, 소련경제가 1976년부터 철강과 석탄과 같은 주요 원자재의 심각한 부족 사태에 직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운송과 에너지분야에서 병목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었으며, 셋째, 브레즈네프 정권 말기에 노동자의 도덕성과 규율 이 해이되는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하였던 것이다.

경제성장률과 생산성의 저하 원인에 대해서 소련 지도부가 어떤 평 가를 내렸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로 인해서 파생된 문제의 심각성 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였을 것 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서 소련은 여러 번에 걸친 경제개혁을 추진 하게 되었다. 신경제정책, 흐루시초프의 행정·경제개혁, 코시킨의 리 베르만식 경제개혁, 브레즈네프의 개혁으로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 나 이 개혁들이 갖은 공통된 특징은 자본주의 시장과 사회주의 계획 을 조화시켜 보다 발전된 형태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추진된 점이다. 다시 말해 경제정책에서 경제를 정치와 분 리시키지 않았으며, 경제는 정치의 한 도구로서 인식되었던 것이다.

결국 고르바초프의 등장 이전까지는 생산수단의 국유화·사회화, 시장 의 소멸 또는 제한, 계획경제 유지, 중공업·군수산업 우선정책, 자급 자족을 지향하는 폐쇄경제 등이 공산당의 우선 목표로 유지되었으며 경제주체의 자율권은 극도로 제한되었던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약간의 변화를 보이기는 했으나 이는 대부분 현상타개를 위한 임시방 편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틀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제한적인 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고 또다시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서는 경제위기를 해 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방과의 격차가 더욱 심화될 것이며, 그에 따라 체제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소련의 지도부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가 1980년대 초반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지도부의 인식을 반영하여 보다 적극적인 개혁정책 을 시도한 인물은 브레즈네프를 이은 안드로포프였으며 이를 넘겨받 아 개혁정책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 인물이 고르바초프인 것이다.

소련이 고르바초프시기에 이르러 페레스트로이카라는 획기적인 개 혁정책을 추진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국내의 정치·경제·사 회적인 요소들에 더하여 대외적인 요소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대 외적인 요소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기술의 발전 성과와 추세에 비추어 소련과의 경제·기술에서의 격차가 점점 확 대될 지 모른다는 우려감과 1970년대 말 이후 계속되어온 국제정치 상의 지위 하락 등을 꼽을 수 있다.23)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통적으 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체제경쟁을 의식하면서 보여준 특징이 경제 발전에서 앞서야 한다는 강박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이 데올로기적인 필연성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성과 함께 안보 및 대외정책의 추진 과정과 그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경제는 계속해서 침체되어 가는 데 반하여 서방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과 더불어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 개로 인하여 증폭되어 가는 지도부의 경제·기술적 격차를 줄여야 한다 는 절박감은 이러한 현상이 장기적으로 군사력 저하 문제로 연결될

23) 이숭희, “소련의 개혁정치와 대외정책,” 김달중 외, 「소련의 개혁정치」

(서울: 법문사, 1991), pp. 8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