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이론적 검토
협력은 “행위자들이 정책조정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행위를 상대
방의 실제 혹은 예측된 선호도에 맞출 때 발생한다.”21 여기서 정책 조정이란 상호의존적 관계에 놓여있는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가 상 대방에게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줄이도록 자신의 정책을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국제관계에서 협력은 상호의존적 관계에 서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각국의 노력이 상대방의 이익추구 노력을 저해하지 않고 오히려 촉진하는 방 향으로 각국이 조화롭게 그들의 정책을 조율할 때 발생한다.”22
21Charles Lindblom, The Intelligence of Democracy (New York: Free Press, 1965), p. 227.
22영어원문은, “Cooperation occurs in international relations when states adjust their policies in a coordinated way, such that each state’s efforts to pursue its interests facilitate rather than hinder the efforts of other states to pursue their own interests,” Steve Weber, Cooperation and Discord in U.S.-Soviet Arms Control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p. 6.
이러한 협력의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내 포되어 있다.23 첫째, 행위자들의 이성적인 행위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만 모든 행위자가 같은 목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즉 서로 간에 상이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협력이 가능하다. 둘 째, 협력을 통해 행위자들은 일정한 이득이나 보상을 받게 되지만 이득은 그 규모나 성질에 있어서 모든 행위자에게 동일할 필요는 없다. 또한 협력의 동기는 단순히 상대방을 도와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향상시키겠다는 기대에 근거하여 상대방과 정책을 조율하는 데 있다. 종합하면, 협력은 모든 행위자가 자신의 이익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상대방과 정책을 조 율하고 조정하는 목표지향적인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24
협력이론이 서구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동북아에 깔려 있는 동 양적 정서, 문화와 다른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사실 중국의 철학 에 등장하는 ‘和’사상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협
력’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和’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25
소위 ‘화’의 의미는 어울림, 조화, 화합을 의미한다. ‘화’는
일종의 철학사상으로서 그 전제는 먼저 세계적으로 다른 사 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사물 간의 차이와 구별, 이견
23Helen Milner, “International theories of cooperation among nations: strengths and weakness,” World Politics, April 1992, pp. 467-468.
24이러한 측면에서, 협력은 상대방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줄이거나 상대 방이 추구하는 것을 방해할 때 발생하는 “경쟁”(competition) 또는 “갈 등”(conflict)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한편 군비통제 차원에서 협력은 군 비경쟁을 지양하기 위한 정책조정을, 경쟁은 군비증강이나 동맹형성을 의미한다. Charles Glaser, “Realists as optimists: cooperation as self-help,” International Security, Winter 1994/95, p. 51.
25루신, “‘화’ 사상으로 국민상호간의 이해를 촉진한다,” 평화와 번영의 동 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책연구 (서울: 통일연구원, 2004),
pp. 17-18.
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후에 다름 사물과의 적 당한 조절과 배치 및 적절한 안배를 통해서 모순과 이견이 조화를 얻도록 하는 것이며, 마침내 전체적인 조화로운 발 전과 화합을 이루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협력이론은 신현실주의나 신자유주의과 같은 거대이론 혹은 일반이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양립 혹은 절충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범위이론 혹은 세부이론으로 규 정할 수 있다.26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둘러싼 환경적 특성이 무정부상태임을 강조하고 국제관계에서 주요 행위자는 개별 단위인 국가이며, 국가는 합리적인 행위자라는 명제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두 이론은 자율성과 영토성에 근거한 국가 주권의 개념에 대하여 특별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며 국가는 협력 을 할 때 상대이익과 절대이익의 계산, 그리고 물질적 힘의 배분을 기준으로 자율적으로 협력 여부를 결정한다고 본다.27 그러나 두 거 대 이론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28 첫째, 무정부상태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신현실주의는 현실주의 국제 정치이론의 전통에 따라서 무정부상태를 국가안보와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무정부상태에서도 다양한 합의 와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보면서 약속이행의 불확실성 문제를 중시한다. 둘째, 상대이익과 절대이익의 문제이다. 신현실주의자들 은 일차적으로 국가안보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국력의 상대적 차이 와 상대이익을 중시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는 대결과 경쟁 의 동기가 약한 절대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셋째, 협력 의 가능성과 의의이다. 신현실주의자들은 상대이익을 추구하는 국
26신욱희,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와의 의견교환, 2005년 4월 11일.
27이근, “국가관계에 있어서 관성의 구성주의적 이해,” 국제정치논총 , 제41집 3호(2001), p. 51.
28D. Baldwin, “Neoliberalism, neorealism and world politics,” in D.
Baldwin, ed., Neorealism and Neoliberalism: The Contemporary Debat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3), pp. 4-11.
가의 본성상 절대이익이 발생한다 하여도 협력이 이뤄지기 어렵다 고 보는 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국가간의 상 호감시와 약속위반에 대한 제재의 실시 그리고 국제제도의 형성을 통해서 협력이 촉진될 수 있다고 본다. 넷째, 국가목표의 우선순위 문제이다. 신현실주의자들은 안보문제를,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문 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행위자의 의도와 능력에 관한 문제이다. 신현실주의자들은 상대방의 미래 의도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물질적인 힘의 차이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상대방의 의도와 선호도를 어떻게 인식하 느냐에 따라 국가안보 문제와 상대적 이익에 대한 민감성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국제제도와 레짐에 대한 관점의 차이 이다. 신현실주의자들은 국제레짐과 제도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밖에 보지 않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레짐과 제도 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 평화문화 창출의 기본방향
협력이론의 관점에서 국가간에 평화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적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파악된다: ①협력이 가능한 관계 인식, ②협력의 장애요인 제거 및 촉진요인 조성, ③협력이 가능한 국가적 성향의 개발, ④미래의 그늘 확장, ⑤레짐과 제도의 창출, ⑥지적공동체의 활성화
(1) 협력이 가능한 관계 인식
각국이 협력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고, 이런 상태를 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협력이 가능하다. 즉 각국 이 “공동이익의 딜레마”(dilemma of common interest)에 처해 있다 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양자관계를 예로 할 때, 공동이익의 딜레마
는 한 국가 혹은 두 국가 모두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독자적으로 선택하여 초래되는 나쁜 결과보다 상호협력을 통해 차선 책이지만 모두에게 더 좋은 결과, 즉 “최적의 결과”(pareto-optimal outcome)를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즉 각국이 근시안적인 이기주의에 기초하여 독자적인 이익극대 전략을 선택할 경우 상호 협력을 통해 정책을 조율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이 다. 공동이익의 딜레마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죄수의 딜레 마”(Prisoner’s Dilemma: PD) 게임이다.
평화와 안보분야에서 발생하는 공동이익의 딜레마를 소위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라고 한다. 안보딜레마는 한 나라의 국 가방어 노력이 상대국가의 군비증강을 유발함으로써 오히려 자국의 안보를 약화시키게 된다는 논리이다. 안보딜레마는 무정부상태에서 는 배반과 제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고, 상대의 의도가 공격적인 지 방어적인지 구분할 수 없으며, 미래의 국제관계가 우호적일지 적대적으로 변화할 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즉 상대방의 의도와 미래에 대한 정보의 불확실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동북아의 경우에도 역내 국가들의 전반적인 관계를 공동이익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무정부상태라는 큰 틀 속에서 볼 때, 안보영역에서의 안보딜레마는 당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역내 국가들의 일방적인 행동이 종종 모 두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는 현상은 동북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 는 일이다. 예를 들어, 미・ 중, 일・ 중 관계의 악화, 남북한의 군비경 쟁과 무력충돌, 한・ 일 간의 외교적 소모전, 경제와 교역상의 마찰,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국민감정을 해치는 사건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따라서 동북아 평화문화 형성의 첫 번째 기본방향은 동북아가 공 동이익의 딜레마에 놓여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공동이익의 딜레 마의 현실적 특성(협력하면 공동의 이익을 달성할 수 있으나 그렇
지 못하면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을 이해하면서,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구 체적으로, 신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안보딜레마의 해법으로 상대방 에 대한 보다 완전한 정보를 획득하고, 공격용 군사력과 방어용 군 사력의 구별 가능성을 제고하며, 국제정치의 세력분배 구조에 변화 를 추구하는 것 등을 제시한다.29 반면에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상호협력과 제도의 형성을 통해서 공동의 이익을 달성할 수 있으 며, 정보교류의 증대와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배반의 가능성도 차단 할 수 있다고 본다.
(2) 협력의 장애요인 제거 및 촉진요인 조성
동북아 역내 국가들간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두 번째 정책적 기본방향은 협력을 방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함과 동시에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요인을 조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죠지(Alexander George)는 미・ 소가 안보협력 분야에서 공동 이익의 존재를 인식하 고 협력을 통해 이를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요인들을 제시하 고 있는데,30 이를 동북아에 응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정부상태의 국제관계에 내재되어 있는 안보딜레마이다.
즉 상대방의 침략에 대비하여 자국의 안보를 증대하기 위해 취한 행위자의 조치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조치로 인식 되어 무력을 증강하도록 유도하고 이는 다시 위협을 느낀 행위자의 군비증강으로 귀결되는 안보위협과 긴장고조의 악순환을 말한다.
협력의 장애요인을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안보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는 동북아 역내 각국이 정책을 수립할 때, 자국의
29이근・ 전재성, “안보론에 있어 구성주의와 현실주의의 만남,” 한국과 국 제정치 , 제17권 제1호(2001), p. 176.
30Alexander George, “Factors influencing security cooperation,” in A. George, P. Farley・ A. Dallin, eds., U.S.-Soviet Security Coopera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pp. 655-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