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반기 동안 WTI 가격은 13년 이래 최고치인 배럴당 42달러까지 뛰어올랐다. 당연히 관심의 초점은 유가 급등의 원인과 이것이 세계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집중되었다. 지난 달 OPEC이 생산쿼터를 늘 리고 실질적인 증산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면서 유가 상 승에 제동이 걸렸고 6월 한 달 동안 실제로 유가가 어 느 정도 안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질유가는 과거 최고가격과 비교하면 아직도 낮은 수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가가 생산과 소득을 위축시키고 인플레 이션을 유발시키는 등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유 수 출국들이 고유가로 엄청난 이득을 거두어들인 것은 분 명한 반면, 원유 수입국들에 끼친 영향은 다소 불확실 하다.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는 올해 고유가가 세계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세 계경제 회복을 완전히 가로막을 정도는 아니라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IEA : 원유의존적 개도국에는 큰 타격 예상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가가 배럴당 25달러에서 35달러로 10달러 오르고 다른 조건들은 동일하다고 했 을 때, 다음 해 전 세계 GDP를 최소 0.5% 끌어내리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석유 수입국들의 경우 그 효과가 같지 않다. OECD의 GDP 증가율은 첫해와 다음 해에 0.4%, 유럽지역 국가는 0.5%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 단위 생산 에 대해 선진국보다 두 배 많은 석유를 소비하는 개발
도상국들은 특히 타격이 심하다. IEA 통계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 아시아 개도국들의 GDP 감소율은 0.8%, 저개발국은 1.6%에 달한다. 사 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 무려 3%까지 GDP가 떨어질 수 있다. IEA의 분석을 기준으로 할 때, 현 고 유가 추세가 계속 유지되지 않고 OPEC의 목표범위인 22-28달러대에서 안정된다면, 전세계 경제 회복에 미 치는 타격은 그다지 크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개발도 상국들에게는 상당한 우려가 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선진국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와 비 교할 때 석유 의존율이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유가 는 여전히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 재무장관, 경제학자들의 발 언은 고유가가 경제성장을 다소 위축시키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약할 것이라는 IEA의 분석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어쨌든 재무장관들이 고유가 문제를 심각하 게 바라보고 있음은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고유가의 영향과 적절한 대응책 마련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은 결 국 OPEC을 향한 증산 요구로 이어졌고, 미국을 비롯 한 각국 통화정책도 이에 극도로 민감한 모습을 보였 다. 5월23일 G7 재무장관 회담 이후 존 스노우 미 재 무장관은“원유 가격은 세계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 는 수준에서 유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산유국들은 시장에 적정한 물량을 공급해야 한다면서, 유가 안정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달성하려는 우리의 노 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앨런 그린스펀 미
동향초점
고유가가 세계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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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유가 급등의 영향을 구 체적으로 평가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6월8일 런던 에서 개최된 은행컨퍼런스에서 그린스펀은“현대 시장 경제에서 유가에 대한 영향을 추론하기란 쉽지 않다”
고 털어놓았다. 그는 연방은행의 거시경제모델을 통해 유가가 미국 및 다른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록 경기후퇴가 유가급등에 선행되는 경향이 최근에 반복되기는 했지만, 연방은행 모델에서 지난 30년간 유가 변동 추이만으로는 경기후퇴를 설명 해주지 않는다면서 이는 유가가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 향이 미미하거나 비선형적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고 그린스펀 의장은 말했다. 한편 도널드 콘 미국 연방 준비은행 총재는 전미이코노미스트클럽 연설에서, 미 국내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1.4%에서 2004년 1분기 연 3%로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이는 상품, 에너지, 수입 물가 상승이 어우러진 결과며, 심각하게 우려할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 대신, 완전고용 회복과 물가안 정을 보조하는 차원에서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 재무장관들도 6월1일 룩셈부르크 회담에서 고 유가가 EU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논의했다. 프랑 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재무장관은 고유가가 올해 유럽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편이며 내년에는 약간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 유럽위원회(EC)의 입장이라 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 관계자들 역시 고유가 파장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EU 경제 통화위원회의 호아킨 알무니아 위원장은 유가가 배럴 당 40달러 주변을 유지할 경우 올해 EU 경제성장 전 망치(1.7%)가 0.2% 포인트 낮아지는 한편, 물가상승률 은 0.2% 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독일 의 한스 아이헬 재무장관은 고유가가 경제에 미치는 영
향에 대해 어느 정도 우려할 필요가 있다며 고삐를 당 겼다. 유럽 재무장관들은 2000년 유가가 급상승하자 프랑스가 석유세를 일방적으로 인하했던 상황이 재현 되지 않도록 고유가 대책마련에 있어 상호간 의견조율 을 약속했다. 유럽의 통화정책은 미국보다는 약간 더 긴축적이기는 해도 여전히 완화기조에 있으며, 최근 유 가가 안정세를 띠면서 유럽 전반의 즉각적인 정책 대응 필요성도 아직은 적은 수준이다.
아시아 경제는 올 들어 강력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메릴린치는 구매력 산정치를 기준으로 할 때, 일 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성장률이 1분 기 8.4%를 기록했으며, 2분기에는 이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반기 성장률은 다소 후퇴 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의 성장률 둔화 및 미국 의 금리인상 가능성과 더불어 고유가가 핵심 요인으로 지적됐다.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 역시 수입원유에 크 게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문가들 은 여전히 고유가가 아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 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UBS의 조나손 앤더슨씨는 유 가가 배럴당 40달러를 유지할 경우 단기적으로 0.5- 0.6% 포인트의 GDP성장률 감소 효과를 낼 것으로 분 석했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 상당수 국가들이 경상수 지 및 국제수지에서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 에, 수입액이 큰 폭 증가한다 해도 추가적인 통화절하 를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부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수요가 유가에 미치는 영향이 유가 자체가 아시아경제에 미치는 영향보다 더 크며, 아시아지역의 성장세가 둔화되기는 해도 멈추지는 않 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HSBC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 전망치를 올해 7.6%, 내년 6.1%로 전 망하고 있다.
추가적인 유가급등은 경기후퇴로 이어질 것
원유가격의 추가 상승을 이끌만한 주된 리스크는 이 라크 및 사우디아라비아와 관련이 있다. 이라크의 폭력 사태와 최근 사우디에서 외국계 기업 목표물에 대한 잇 단 테러 공격 때문에 현재 유가에는 배럴당 8-10달러 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러나 유가를 현재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1991년 걸프 전 당시 유가는 배럴당 60달러에 육박한 셈이며, 1970 년대 말에는 80달러까지 치솟은 셈이다. 따라서 현 유 가는 과거에 비해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우디 외 지역의 여유생산능력이 매우 제한적임을 감안할 때, 사우디 원유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면 이러한 수 준까지 유가가 치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 시 나리오에 따르면, 유가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커진다. 그린스펀의 지적대로 우리는 유가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 만, 과거 경험을 통해 유가가 급등할 경우 경기침체도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연구위원 이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