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몽골 서부 알타이 탐사 기록 - Daum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4

Membagikan "몽골 서부 알타이 탐사 기록 - Daum"

Copied!
68
0
0

Teks penuh

(1)

몽골 서부 알타이 탐사 기록

년 월 일 일 박 일

(2007 6 8 ~25 , 17 18 )

그림

< 1> ①②=울란바타르 숙박, ③④=울랑곰 숙박, ⑥⑬=얼기 숙박, ⑦⑧=발굴장 숙박, 󰊉󰊘󰒑󰊙=홉드 숙박

(2)

월 일 토 서울 울란바타르 1. 6 8 ( ) -

서울(12:35) -OM302- 울란바타르(15:35)

시 분 비행기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시 분 출발이었고 도착도 시 분이었다

12 35 , 12 15 3 20 .

내가 이번에 대한항공을 타지 않고 몽골항공을 탄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요. 금이 더 싸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항공이 울란바타르를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 반이고 떠나는 것이, 0시 반이기 때문에 이틀 밤을 설치면 전체 일정을 소화해 내 는데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미아트항공은 생각했던 것보다 친절하고 나오는 밥도 훌륭했다. 3시간 날아가는 동안 기 내 잡지 Sky Vision 123 (2007호 년 5월호 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서 기록해 둔다) .

제목 :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했다는 것은 사실인가( ) ? Was Columbus really the first? text by Kh. Sergelen

이탈리아 플라노 카르피니(Plano Carpini) 가 몽골에 온 것은 1246년이고 마르코 폴로가 도, 착한 것은 1270년이다 그러나 몽골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기록들은 사실 처음 이라고 할 수 없. 다.

여행이란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몽골도 영토를 넓히기 위해 다른 다라. , 들을 병합하기 위해 세계의 불가사의를 찾기 위해 말 이라는 한 가지 수단으로 대양의 끝까지, 달렸다 징기스칸이 지배하던. 13세기 그들이 밟은 땅은 일본에서 중부 유럽까지, 10,000 , 서부 시베리아 바르구진에서 동아시아 자바섬까지 9,000에 이르며 이러한 땅에 대한 기록을 스스로, 의 역사에 남겼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구상의 대 발견, 을 해, 1492년 아메리카에 첫발을 들여놓았고, 1497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스코 다 가마가 처 음으로 인도 연안에 다다랐으며, 1519년부터 1522년까지 페리다난드 마젤란이 처음으로 지구를 일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기록보다. 250년쯤 먼저 몽골인들이 지구의 절반을 가로 질러 그 지역의 지리적 특성 각 도시와 국가의 문화 통하는 루트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였다는, , , 것은 참 흥미 있는 일이다 또한 그들은 당시 가장 빠른 정보네트워크인 역참제도를 고안해 냈다. 는 것이다.

사례

< 1>

몽골비사 1223년 플라노 카르피니보다 24 ,년 마프코 폴로보다 13년 먼저 칭기스칸의,

영웅 제베(Jebe)와 수베에테이(Sube'etei)가 키에프시와 크리미아 반도 그리고 아조브, (Azov)해에 다다랐다 그들은 아드리아해에서 말을 쉬게 하고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 .

사례

< 2>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 함은 1238년 노브고로드에 갔다 이것은 유명한 러시아의 학자 튜케네. (Tyumenets) 1616년 러시아 여행가로는 처음 몽골을 찾은 것보다 378년이나 빠른 것이다.

사례

< 3>

징기스칸의 장남 조치(Jochi) 1207년 서부시베리아의 예니세이강에 다다랐다 러시아의 여행. K. 이바노프가 바이칼호에 다다른 것보다 436년이나 이른 것이다.

(3)

사례

< 4>

징기스칸은 1221년 육지로 인도에 갔다 그리고. 276년 뒤 바스코 다 가마가 바다를 통해 인 도의 연안에 다다랐다.

사례

< 5>

몽골은 1274년 일본을 쳐들어갔다. 266년 뒤 포르투갈의 여행가 페르다난드 핀토가 같은 목, 적으로 일본에 다다랐다 그밖에 기록을 보면 몽골인들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를 통. , , 해 무역과 여행길을 열었고 유명한 역참제도를 설치하였다, .

몽골인들은 이런 광대한 거리를 정복하기 위해 건넜을 뿐 아니라 지구 절반의 영토를 역사상, 처음으로 여행하고 말발굽 자국을 남겼다.

사실 콜럼버스가 처음 유럽을 발견하였다는 것처럼 우스꽝스런 이야기는 없다 발견이란. 알려지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콜럼버스 발견은 순전히 유럽인을 기. 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카에는 이미 유럽에 못하지 않는 문화가 발전하고 있었다. . 궁전 글자가 있는 신전 태양 신전 같은 대형 유적이 발견된 멕시코의 빨렝께유적은, , 7세기 의 찬란한 마야문화를 대표한다. 과테말라의 띠깔유적은 기원전 수세기부터 시작하여 년에는 뻬뗀 일대의 마야도시를 거느리는 대 신전으로 번영하였다 온두라스의 꼬

300~800 .

빤유적도 기원전 1000년부터 시작하여 8세기 꼬빤왕조라는 강력한 도시문명을 형성하였다. 이런 찬란한 문화를 어떻게 새롭게 헤게모니를 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처음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문화를 가졌던 아메리카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도를 가리키는 인디안 이 아니라 아메리카인이 처음으로 그 곳에 나타난 콜럼버스 배를 발견하였다 고 해야 옳) .”

은 것이다.

몽골이 징기스칸의 정복사를 통해서 세계 최초의 일이라고 자랑하는 것도 자랑스러운 것 은 아니다 결국은 몽골이 잔인하게 세계를 짓밟은 만큼 현재 작은 몽골이라는 인과응보를. 받았다고 보는 나로서는 몽골의 자부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런 것들. 이 세계 최초‘ ’, ‘세계 최고 를 부르짖는 강대국 위주의 역사서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 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작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비행거리가 유럽은 너무 멀고 중국은 너무 짧다고 생각했는데 몽골의, , 3시간은 아주 정 당하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미아트항공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조금 빨리 울. 란바타르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해서 좀 기다리니 현지 유학생 양혜숙 선생이 차를 구해가지고 와 시내로 들어갔다.

먼저 입구에 있는 바얀골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바로 건너편에 있는 skytel에 가서 전화번호 를 받았다 인구. 270만의 몽골에 손전화가 가장 먼저 진출한 것은 유럽계 모빌콤이고 이어, 서 한국의 스카이텔이 그리고 작년에 중국계가 진출하여 각축을 벌리고 있다 한국의 시스, . 템을 빼놓고는 모두 하드웨어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한국에서 쓰던 기계는 한국 시 스템밖에 할 수가 없다 다행히 번호를 부여받는데. 15,000터그럭이었는데 어제부터, 3,000 터그럭으로 내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 15분쯤 기다리자 운전수가 자기 이름으로 간단 히 번호를 만들어왔다.

(4)

새 손전화 번호 : 9115-8958

그리고 5,000터그럭짜리 카드를 써서 그 번호만 입력하면 된다 예비로. 5,000터그럭 카 드를 하나 더 샀는데 통화할 수 있는 도시에 자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 장으로 거의, 일 이상 쓸 수 있었다 국제전화도 터그럭짜리 한 장 사니 여러 번 걸 수 있어 아

10 . 5,000

주 편리했다 모두 양선생이 이곳에서 수년간 유학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이다. . 한국에서 로밍해서 가져온 전화도 시험해보기로 했다 몽골에서 전화를 거는 것은. 4,900 원이지만 받는 것은 800원이라 싼 편이고 가끔 오는 문자 메시지는 무료다.

이어서 몽골과학원 고고연구소에 가서 체벤도르쥐 소장을 비롯해서 관계자들과 발굴계약 서에 사인하였다 우리가 러시아하고 함께 일하고 자기들과 직접 계약을 하지 않은 것을 서. 운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음부터는 직접 하자는 말을 강조한다. .

몽골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소장

*

체벤도르쥐(D. Tseveendorj) 교수 박사 976-11-45-2899

* Mongolian Akademy of Sciences, Institute of Archaeology 사무총장(Deputy director)

군친수렌(B. Gunchinsuren) 박사 976-11-45-2894(0)

올 여름만 8군데서 외국과 합작으로 발굴하기 때문에 소장은 우리와 못 가고 훈데브(G.

바야르후 가 참가한다고 한다 훈

Lkhundev, 9987-9878) (N. Bayarkhou, 9994-2804) . 데브는 바얀홍고르 출신으로 작년에도 독일 팀과 알타이에서 발굴한 베테란이고 바야르후, 는 작년에 입사한 젊은이로 바로 알타이 삭사이 출신의 오리양하이족이다 뜻밖에 고고연구. 소 박물관에 볼 것이 많았다 특히 흉노 유물은 국립박물관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책도. . 상당히 많이 구입했다.

그림

< 2> 몽골과학원 <그림 3> 발굴계약서 체결

저녁에 체벤도르쥐 부부와 함께 호텔 3층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11시가 넘어 나보다 하 루 늦게 출발한 정원철이 도착하였다. 12시 훨씬 넘어서까지 양선생과 몽골에 있는 석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성이 부리야트까지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

(5)

월 일 일 울란바타르 2. 6 9 ( )

아침 일찍 일어나 기록하고 인터넷을 연결하고 메일 체크와 뉴스를 보았다. 7월 대표단이 묵을 바얀골호텔은 하루 6달러씩 내면 인터넷이 되고, KBS 월드와 아리랑 TV도 나온다. 아침 식사하는 식당은 규모도 크고 음식도 아주 훌륭했다.

오전 내내 한국과 몽골 두 나라 역사고고학자들이 함께 할 세미나 일정을 짰다 이번 여. 행은 첫째 러시아 몽골 한국이 공동으로 발굴하는 알타이 돌궐 무덤 현장에 가는 것이고, , , 동시에 7월에 올 27명의 대규모 탐사단에 대한 준비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 늘 오전 갑자기 시간이 나서 9월에 한국과 몽골이 공동으로 국제학술대회를 여는 기획을 하게 되었다. 12시쯤 여행사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이곳 준비사항을 체크하겠다고 했더니 바 로 온다고 해서 함께 밥 먹으면서 얘기하려 했는데 2시까지도 오지 않아 할 수 없이 혼자 가까운 곳에 있는 서울식당에 갔다. 2002년도에 와 봤던 식당인데 큰 식당에 손님들은 별, 로 없다 냉면하나 먹고 돌아오는데 더위가 견딜 수가 없다 시계 온도계는. . 32도를 가리키 는데 뉴스에서는 최고 35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바람도 걷는데 불편을 느낄 정도로 세게. 분다 그러나 에어컨이 없는 호텔 방에서도 거의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여서 다행이다. .

오후에 약속대로 양선생과 만나 세미나 관계 상의하려고 아무리 전화해도 계속 통화중이 다 알고 보니 내가 내 번호에다 계속 걸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 2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새로 받은 번호가 국번 끝자리 하나만 다르고 같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시 반쯤 걸어서 국영백화점에 가 카메라 메모리카드 한 장 사고 경복궁이라는 한국 식

4 ,

당에 가서 저녁 밥 먹고 돌아왔다.

시가 넘어서야 관광회사 전화가 와서 그 때야 식당을 둘러보았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

7 .

현장에 다녀오느라 전화가 안 되고 정신없이 바빠서 늦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약속. 한 시간에 오지 못하면 전화라도 해 주어야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강 층 명 방 개 층 명 조용하고 외딴 곳 대사관 가까운 곳

1. - 2 10 3 . 1 30 , , .

몽골 바비큐 알타이

2. -

설악산 층 칸막이가 많다 말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

3, - 2 . .

칭기스 넓고 좋다 주인도 좋고

4. - .

그래서 이렇게 결정하였다.

첫날

점심 - 몽골 바비큐 저녁 - 한강

마지막날 - 점심 : 칭기스 식당 저녁 : 북한 식당

그리고 둘째 날은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하기로 했다 돌궐비석까지. 73km라고 하

(6)

는데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다 오전에 간단사를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라마들이 오전에만. . 경을 읽기 때문에 오후에는 썰렁하다고 한다 그 때 시간을 봐서 결정하기로 했다. .

그림

< 4> 바얀골 호텔 <그림 5> 호텔 앞 칭기스칸 상

시가 넘어서야 양선생하고 전화가 되어 시 반에 만나 식당에서 마감시간인 시까지

8 8 11

이야기 하고 나니 원철이를 마중나간 지니가 돌아왔다. 12시가 넘어서까지 계속 이야기 했 는데 마지막에 부리야트와 몽골에 있는 산성과 성에 대해 논의하느라 자정을 넘겼다 내일. 아침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 .

월 일 월 울란바타르 울란곰 3. 6 10 ( ) -

시 반쯤 일어나 샤워하고 기록 시 양선생 모닝콜

5 . 6 .

시부터 아침밥 먹으면서 양선생과 몽골에 있는 여러 유적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7 .

시 분 투어플러스 여행사 몽골 매니저인 지니 씨가 와서 함께 공항으로 갔다 시

8 30 . 10 40

분 비행기라 아직 체크인이 시작되지 않아 30분쯤 기다렸다 비행기 탈 때 보안 검사는 어. 느 비행장보다 철저하였다 몽골은 거리가 멀어 항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여름. . 이 되지 않아서인지 외국인은 일본 촬영팀 무룬 행( ), 미국 젊은이 2 (명 울랑곰 과 우리 정도) 이다.

이곳에서는 체크인 할 때 체크인 끝나고 나갈 때 모두 보딩페스 뿐 아니라 비행기표도, 검사한다. 10시 10분쯤 버스 타고 가 비행기에 가니 6번 c, d 좌석이다 바로 날개 옆이라. 바깥 경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큰 해프닝이 하나 일어났다 전화를 끄지 않고 있었는데 지니한테서 전화. 가 왔다 우리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우랑곰 가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비행기. . 는 이미 문을 닫고 시동을 걸고 스투어디스가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얼른 큰소리로, . 울랑곰 가는 비행기냐고 했더니 그때야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시동을 끄고 문을 열고 부, , 산하게 옆 비행기로 옮겨 탔다. Mulun 가는 비행기는 10시 20분에 떠나고 울랑곰 가는 우 리 비행기는 10시 40분에 떠나기 때문에 간발의 차이로 체크를 했는데 우리는 유유히 무룬 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 단 한번 가는 비행기고 무룬에서는 울랑곰 가는. , 비행기가 없으니 정망 일정 엉망진창이 될 뻔하였다.

(7)

eznis airways SAAB 340B

사브 340B 1992년 스웨덴에서 제작되어 미국 american Eagle에서 국내선으로 이용되다 일 몽골 징기스칸 국제공항에서 이지니스항공으로 인도되었다

2006 6 7 .

새로 생긴 국내선이지만 기내 잡지까지 겨울 봄 있다 엷지만 잘 만들었고 유익한 광고( ) . 도 있다 발굴할 때 필요한 장비를 빌리는 광고를 메모해 둔다. .

위성전화 : www.ntc.mn (Newtel Company) [email protected]. 976-11-31 4455 발전기 : Kipor(Green power system) 0.8~90 Kw

www.monhorus.mn, [email protected]/ 976-11-30 0082

그림

< 6> 이지니스 국내선 항공 탑승 <그림 7> 옵스 호수 항공촬영 성공

날씨가 흐려 구름이 많았는데 울랑곰에 가까워지자 지상의 경치가 훤히 보이는 맑은 날, 씨다 마침 뒷좌석은 모두 비어 있어 자리를 옮겼다. . 33인용 비행기는 한 줄에 3명씩 11줄 인데 장거리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25인만 태우기 때문에 뒷좌석은 항상 비워 있다 울랑곰. 이 가까워오자 양쪽에 큰 호수가 나타났다 바로 옵스와 뚜루겐이다 옵스호는 몽골에서 가. . 장 큰 호수이고 바다보다 6배나 짠 호수이다 마치 항공촬영 하듯이 열심히 찍었고 좋은 사. 진을 얻을 수 있었다 울랑곰 착륙할 때도 도시와 호수 가를 한 바퀴 빙 돌아서 내려주는. 서비스를 해 주어 마치 전세기를 탄 것 같았다.

울란바타르를 떠난 지 3시간 만에 울랑곰 공항에 도착하니 카즈벡이 통역을 맡은 젊은이 와 함께 나와 있다 영상. 27도에 바람이 불어주어 울란바타르와는 달리 아주 상쾌한 날씨 다 다만 햇빛은 아주 강하기 때문에 꼭 모자를 써야 한다 색안경을 가지고 올 껄 하는 생. . 각을 했다.

통역 : 사빗 누르가입(Sabit Nurgaib)

세 울란바타르 인문대학 졸업하고 학교에서 영어와 러시아 선생을 하는 똑똑한 청년

23 , .

(8)

그림

< 8> 하늘에서 내려다 조는 울랑곰 - 왼쪽 붉은 산이 솟아있다.

짐을 찾아 강가에 쳐놓은 식당에 오니 이미 낮밥이 준비되어 있다 원철이와 나 달랑. , 2 명 여행객을 위해 사장 자신이 보조 운전수라고 하는데 오늘은 대부분 자신이 운전한다( ), 운전수 통역 요리사 모두, , , 4명이 와 있었다 천막으로 만든 간이식당 안에는 장작을 때서. 요리하는 간단한 쇠로 만든 부엌이 있고 굴뚝까지 설치되어 있고 식탁에는 빵 초콜릿 꿀, , , 같은 먹을거리가 잔뜩 준비되어 있다 요리사는 작년에 알타이투어 겔에서 만났던 미남 청. 년이다 고기가 약간 질긴 감은 있지만 마카로니가 참 맛있다. .

오늘은 우선 가까운 사원만 보고 박물관에 가서 이 지역 문화재 현황을 파악하고 다음 일 정을 짜기로 하였다.

사원은 높은 담으로 둘려 쌓여 있는데 탑 2개와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도 겔 모양으로 만. 들었는데 작지만 현재 있는 20명의 라마가 쓰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라마들은 주로 오전에. 만 경전을 읽기 때문에 우리가 갈 때는 한두 명만 있었다 한 때는. 200명이 스님이 있던 큰 절인데 1937년 사회주의가 시작되면서 폐쇄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것이다.

그림

< 9> 탑과 사원 바깥 <그림 10> 법당 안

박물관은 굳게 닫혀 있었다 분명히 근무시간인데 문을 두드리자 들여보내주지를 않는다. . 우리 여행사 사장이 차로 관장 집에 가서 관장을 모셔 와서야 관람이 시작되었다 관장이. 직접 설명을 해 주었다.

시렌뎁

J. Shiredeb( ) /9600-1666, 2-3879

(9)

함께 나타난 학예관은 울란바타르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는데 한국어를 할 줄 안다. 5년 만에 처음 해보는 한국어지만 기억을 되살려 열심히 보조를 한다.

벡즈잡 본인이 한글로 써준 이름

O. Bebzjav( , ) : 9945-5098

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 개 전시실로 나뉘어 있

1948 5,000 , 3

다 자연사 고고 민속인데 한쪽에 혁명에 관한 것도 많다 몽골 서쪽에는 원래 한 개 지역. , , , . 이었는데, 1921년 얼기 홉드 옵스로 나뉘었다고 한다 옵스 아이막은 호수가, , . 45개나 있을 정도로 호수의 아이막이다.

그림

< 11> 옵스 아이막 박물관 바깥 모습 <그림 12> 전시된 돌사람

전시실은 2층에 있는데 자연사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 있는, 380종의 새를 다 전시하지는 않았지만 각종 동식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어지는 민속관에 귀퉁이에 조그마한 고고 관계. 전시실이 있는데 별 유물이 없다 석기 청동기 거푸집 돌궐 돌사람 빠지리크 청동기 같은. , , , 것들이 있는데 사진 한 번 찍는데 5,000터그럭이라고 한다 만터그럭 주고. 2장만 찍었다. 비디오는 분에 그 가운데 한 장은 이 지역 유적 분포도인데 이 사진 한 ( 10 11000~12000).

장만으로도 만원 가치가 있다 나오는 길에 입구에 서 있는 룬문자 비와 몽골 문자 비는 돈. 주지 않고 그냥 찍었다 이 박물관에서는 이 유물이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전시. , 실 밖에 있다고 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이 지역. Davst에서 태어난 몽골 대통 령(1944 )년 유물과 사진 전시실이 고고실보다 두 배 이상 더 크다.

위구르 비석 돌로도이 비석, (monument of doloodoi)

옵스아이막 박물관에 위구르어로 된 돌로도이 비석이 있다 도르쥐수렌. 이 처음 발견하여 이곳으로 옮겼다 이 비석은 높이가

(D.Dorjsuren) . 2m

데 한 변이, 20m인 네모난 꾸르간 께렉수르 위에서 발견되었다 네모난 무. 덤 네 귀퉁이에는 1m 정도의 작은 돌들이 서 있었다 내용은. 57 단어, 9 인데 내용은 강한 젊은 왕인 보가즈 테긴, (Bogaz Tegin)이 군대를 모아 여 러 지역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이 위구르 글씨는 소그드 글자에서 온 것 같.

. 8세기 소그드 글자와 다른 것은 D, T P, V 이다. (몽골의 유적 60 ) 그림 13 위구르 비

(10)

사무실에서 이 지역 유적에 대한 관장의 설명을 들었다 주로 어떻게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통역이 열심히 듣는다 그러나 역시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가장 빠르다 이, . . 야기 도중 사진을 보여주는데 아주 좋은 바위그림이 있다 내일은 그곳을 가지로 결정하고. 관장이 직접 안내해 주기로 했다 가이드 비용은. 3만터그럭 한국말 하는 벡즈잡이 울랑곰. 주변의 유적은 자기가 무료로 안내해 주기로 했다 관장도 함께 나섰다 그리고 저녁. . 7시 넘어까지 주변 답사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간 돌궐 돌사람은 울랑곰 북쪽에 붙어있는 산드만(Shandman)마을 동쪽에 있는 데 그 동쪽에는 챠간 커셔어(Tsagaan Khosuo)라는 마을이다 많이 묻혀 간신히 오른 손으. 로 들고 있는 컵 위쪽만 보일 정도인데 아주 크고 몽골인처럼 우람한 인상이다 오보처럼. 돌을 많이 모아놓고 목에 파란 천도 걸어놓아 이 마을 수호신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런 꼴은 위구르 시대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바얀 얼기 삭사이. , , 지역에서 발견된 것과 아주 유사하다.)

다시 울랑곰 북쪽 아스팔트길로 나와 조금 가니 도로비를 받는다 그곳에서 조금 지나 왼. 쪽으로 하르히라산 하르히라는 왕의 이름이라고 한다 쪽으로 한참을 들어간다 커다란 께( ) . 렉수르가 나타났다 지름이 무려. 140m나 되는 께렉수르는 가운데 돌무지와 둘레 선 사이에 무려 21개의 선이 그어진 아주 특이한 것이다 지금까지 본 께렉수르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다.

께렉수르 바로 옆에 사슴돌이 셋 있는데 가장 큰 돌은 목걸이만 있고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곳에는 남북으로 정남은 아니다 께렉수르가. ( ) 5개 정도 이어져 있는데 대형 께렉 수르가 주를 이룬다 께렉수르는 키르기즈의 누르 호수 에서 왔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들을. ( ) . 때는 키르기즈의 겔처럼 생겨서 태어난 이름이라고 했다.

그림

< 14> 위구르 돌사람 <그림 15> 대형 께렉수르와 3개의 사슴돌

울랑곰은 하르히라 산에서 녹은 물이 흘러 옵스호를 흘러들어가는 강가에 세운 도시고, 이 유적들도 바로 그런 비옥한 지역에 세워진 것을 보면 이곳은 청동기부터 아주 많은 사람 들이 살았던 모양이다 주변에는 지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겔과 가축들이 강과 더불어.

(11)

살고 있다 대형 께렉수르에 가니 염소 한 마리가 바로 새끼를 낳고 우리가 가니 그냥 놔두. 고 돌아가 버린다 같이 간 사람들이 큰소리로 주인에게 알린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바로. . 태어난 새끼 혼자 남아있다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새 생명은 아직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했. 다 고대 청동기의 유적은 새 생명의 탄생지로 쓰이고 있다 이어지는 자그마한 께렉수르에. . 가니 이곳에는 왜가리 알이 하나 돌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곳에도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울랑곰 동쪽에 바위그림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울강 서쪽에 특이한 붉은 바위산이 있는. 데 이곳에서도 청동기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울랑곰 동쪽을 빠져 나가는 데도 도로비를 받는다 바위그림이 있는 산은 울랑곰 동남쪽. 에 있는 테림하드(terimkhad)라는 산인데 이름처럼 바위가 수직으로 되어 있어 그런 바위, 에 그림을 그렸다 깨면 바로 다듬은 돌처럼 생겨 대부분 그림들이 건축자재로 실어가 버렸. 다고 한다 몇 가지 확인했으나 좋은 그림은 모두 없어지고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

캠프장에 도착하니 7시 30 ,분 하르히라 강가 잔디밭에 친 텐트에서 홍차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즐기는 오랜만의 여유다 우리 둘이 여행하는데 현지 박물관 두 명까지 합해. 6명 의 몽골인들이 동원된 것이다 주변 유적과 지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술. . 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마실 맥주는 현지인들에게 선물하고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였, 다.

문제가 생겼다 배터리 충전문제이다 내가 한국에서 자동차 시가젝에다 꽂는 기구를 사. . 왔는데 우리 차에 시가젝이 없는 것이다 작년 꾸바레프 차는 신형이라 시가젝이 있었는데. 이 차는 구형이라 없는 것이다 여행에서는 사진. , gps, 비디오 같은 기록이 가장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필요한 배터리 충전을 해야 하는데 첫날부터 이 시스템이 삐거덕거리 기 시작하여 불안하다 다행히 예비 배터리가 있어 우선 쓰고 내일은 사장 친구가 근무하는. 경찰서에서 충전하기로 했다 다시 이곳에서 하루 더 묵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

월 일 화 울랑곰 엄노고비 4. 6 11 ( ) -

저녁에 추워서 두 번이나 일어나 소변을 보았다 이 때 체크해 보니 실내온도. 11 (3 ),도 시 바깥온도 6 (4 )도 시 낮 온도와는 20도 차이가 난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서 갑자 10도 이 하의 추위는 체감 온도가 아주 낮아지기 때문이다.

잔잔한 시냇물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당나귀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원래 아침. 7 시에 떠나기로 했는데, 7시가 넘어서 아침밥을 먹었다 텐트를 철수하고 오늘 안내할 박물. , 관 시렌뎁 씨 모셔오고 결국, 8시 35분에야 출발하였다 붉은 산 남쪽 끝에 있는 도로요금. 받는 곳을 지나 본격적으로 남쪽 길을 달린다 우리가 늦은 줄 알았는데 어제 만났던 미국. , 등산가들도 같은 시간에 출발한다 비포장인 데가 여기 저기 수리를 하고 있어 홉드 가는. , 간선도로라고 하지만 길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다.

주변 경치는 얼기에서 알타이 다니던 코스하고는 많이 다르다 우선 도로 주변 곳곳에 정. 말 많은 겔과 가축들이 보인다. 9시 15 ,분 하르히라산과 뚜르겐산 사이의 하르히라강을 거 슬러 올라가는 하이킹 코스의 시작점인 타리알란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잠깐 촬영하느라 섰 다(09:15). 안내책자에 이 근처에서 위그르시대 돌사람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려 했으나 시렌뎁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테리알란에서. 64㎞가 떨어져 있고 강을, 12번이나 건너야 하

(12)

기 때문이다 마침. 200마리쯤 되는 염소와 양을 몰고 가는 모녀가 지나간다 처음에는 모녀. 가 함께 말을 타고 가더니 나중에는 딸은 걸어서 간다 물론 엄청나게 큰 개가 함께 한다. . 이 개들이 몰이꾼 몇 명 역할을 한다고 한다 모녀 카우보이지만 우리 팀 남자들과 아무 거. 리낌 없이 대화를 나눈다 이곳에서 어린아이 어른 남녀 관계없이 모두 일하고 있는 것이. , , 다.

얼마쯤 가니 초원 한 복판에 고장 난 차가 한 대 서 있고 우리가 지나가니 남자 한 사람, 이 뛰어 온다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차를 세우고 사정을 듣고 우리 사정도 이야기 하. 고 지나간다 한참 가다가 갑자기 운전대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갑자기 차를 옆으로 세우. , 는데 차 안에 탔던 사람들이 황급히 뛰어 내린다 나는 안쪽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 대처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엔진 폭발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엔진이 아니고 계기판에서 전. 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20분 만에 운전수가 말끔히 고쳐서 출발한다 우리 차가. 고장 나 고치고 있을 때도 마침 지나가던 오토바이고 와서 안부를 묻는다 이것이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없는 이곳 초원의 풍습이다 카즈벡은 그 사람들과 둘러 앉아 함께 담배를 피. 우며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처럼 대화를 나눈다 조금 전 급박한 상황은 이미 잊어버린 것이. 다.

그림

< 16> 캠프장 주변

그림

< 17> 캠프에서 바라보는 하르히라 산

오늘 우리가 가는 엄노고비까지는 120㎞로 3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4시간이나 걸려 12시 분에 도착하였다 옴노는 앞이라는 뜻이고 고비는 사막을 말하니 앞사막 이란 뜻이다 도

35 . ‘ ’ .

중에 소금호수를 찍느라 10분 정도 쉬고는 계속 달렸으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엄노고비에서도 홉드쪽으로 30분 이상 더 가서 13시 10분 오늘 우리가 목표로 하는 샤 르 볼라긴 온츠(Shar bulagyn onts)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요리사를 내려놓고 우리는 계속. 간다 얼마를 가니 고개에 오랜만에 이정표가 있다 먕그르솜. . 80km, 호브드 126㎞라고 되 어 있다 이곳이 바로 홉드아이막과의 경계선인 것이다 울람공 호브드는. . - 220km라고 한다.

시 분에 도착한 곳은 지도에는 선돌강 에 도착하였다

13 30 Sonduultyn gol( Sonduul gol, ) . 손돌강은 2746m의 바얀 어부트산(Bayan Ovoot uul)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 하르오스 호수(Har Us nuur)로 흘러들어가는 강인데 지금은 완전히 말라버려 물 한 방울로 흐르지 않는다 산 위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있는데 왜 물이 없는지 모르겠다 박물관 직원이. . 2년 동안 봄에 비가 2번밖에 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곳 강가에는 역시 역사문화의 흔적이 뚜렷하다 옛날에는 큰 강이었기 때문에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돌사람이 하나 께렉수르가. , 3 ,개 꾸르간이 2 ,개 골짜기에 제법 많은 문화재가 남아있다. 돌궐 돌사람 화강암, , 145×30×20(두께)

시간은 이미 2시가 다 되어 간다 우리를 안내한 박물관 직원은 도착하자마자 근처 겔 안.

(13)

으로 들어가 버린다 우리가 열심히 조사하는 동안 운전한 사장 카즈벡도 젊은 여자와 대화. 를 나눈다 조사를 마치고 합세하여 물어보니 건너편 겔에서 친척 집에 왔다고 한다 남편. . 은 일 나가고 3살짜리 딸과 함께 마실을 나온 것이다. 25살의 이 아주머니는 28살 남편과

년 전에 결혼했는데 아주 젊은 부부 치고는 재산이 적지 않다

4 , .

양 100마리 염소, 170마리 낙타, 4~6마리 말, 50마리 소, 30마리 상당한 재산가이다, . 이곳에서는 결혼하면 부모님 형제간들이 몇 십 마리에서, , 100마리씩 주기 때문에 바로 살 림 밑천이 되고 어려서부터 배워온 유목민의 기질은 어렵지 않게 자립한다고 한다.

그림

< 18> 몽골 겔의 여인들과 아이들 <그림 19> 돌궐 돌사람

사진 보내줄 곳

< >

Mongolia, UBS aimag, Omnogobi soum, bag no 4.

이름 Zagalaa Oyunchimeg

우리도 근처 겔로 들어갔다(14:00~14:15 겔 방문). 들어서자마자 안주인은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내놓는다.

아롤 우유 흔들어 요구르트 만들어 끓여 말린 것 보루쵸크 매일 먹는

1. aaruul( , , , ) 2. bortsog( -

음식으로 밀가루 튀겨 만든 것) 3. orum(어름 우유를 끓여서 식히면 위에 남은 층, )

외간 남자들이지만 주저 없이 열심히 대접한다 나는 두 가족을 위해 사진을 찍어 보내주. 기로 했다.

시간은 이미 2시가 넘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대단한 고대문화와 만난다 바로. . 개의 사슴돌 하나는 나중에 주변의 돌을 세운 것이지만 개의 사슴돌은 정말 작품이다

3 . 2 .

네모난 께렉수르 앞에 선 사슴돌 가운데 왼쪽 것은 높이가 무려 2m 80이나 된다 맨 위와. 중간에 사슴 그리고 맨 아래 선들로 나뉜 사슴돌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슴돌 가운데 가, 장 높고 정교했다 사람 키만 한 광개토태왕비 꼴의 사슴돌도 같은 수준의 걸작이다 앞뒤. . 옆까지 모두 조각한 사슴돌은 청동기 것으로 4000년 전, 5000년 전의 선인들을 생각하며 숨이 멈추는 감동을 느꼈다.

(14)

그림

< 20> 3개의 사슴돌

돌아오는 길에도 4~5개의 께렉수르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 주변 깨렉수르 꾸르간 사슴돌 등 조사 14:20~15:30 , ,

낮밥 15:40~16:00

납밥 먹은 곳 주변 바위그림과 깨렉수르 제사터 등 조사

16:10~17:55 ,

말이 오후 작업이지 이미 4시가 지났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바위그림 있는 곳으로. 달렸다 빨리 갈 수도 없었다 중간에 수많은 제사터들이 길을 막기 때문이다 이곳 바위그. . . 림은 그다지 많지 않고 다양하지 않지만 2~3개의 걸작이 있었다.

옵스 아이막(Ubs aimag) 엄노고비(Umnogobii (soum) 바위그림 몽골의 유적< >

큰 꼬리와 긴 뿔을 가진 큰뿔양(argali sheep)과 사슴이 많고 낙타도 볼 수 있다 한편 활을. 쏘아 사냥을 하는 사람 그림도 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실물 그대로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칼로 야생동물과 사냥꾼을 그렸고 말을 탄 사람도 그렸다 철기시대 이전의. , . 그림도 많다.

(15)

그림

< 22> 엄노고비 바위그림

주변의 제사터와 께렉수르를 간단히 조사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곳은 옛날 호수. 였는데 지금은 물이 완전히 말라버려 전봇대가 세워질 정도이다 옛날 호숫가이기 때문에. 많은 유적이 생견난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시렌뎁 씨의 노래를 녹음했다 시렌뎁 씨는 한마디로 유쾌한 길동무였다 유. . 적지 안내 뿐 아니라 오가는 동안 내내 노래를 불러 모두를 즐겁게 했다 그는. 23살에 극장 에서 근무했다 아마 가수나 연기자 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 10년 뒤 박물관에서 일 하여 20년이 지난 금년이 53살이다 그는 노래나 고고학 모두가 프로가 되어 있다 그의 노. . 래는 아직도 녹슬지 않았다 특히 옵스호수 울랑곰 하르히라 같은 향토색 짙은 노래를 해. , , 주어 반가웠다.

출발 엄노고비 경유 울란골 야영지 도착 갈 때는 시간 걸린

17:55 , 18:15 , 21:15 . 4

거리를 돌아올 때까지는 시간 만에 달린 것이다 해지는 것을 찍으려 했으나 멀리

120km 3 .

저녁노을이 지는 낭만적 경치가 아니고 마지막까지 강렬하게 빛을 발해 구름이 가려주지 않 는 한 찍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제 잤던 곳에 다시 텐트를 쳤다 아침에 이곳에 자기로 했으니 텐트를 놔두고. 간단한 먹을거리만 가지고 떠나자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텐트는 요리사가 지키면 되는데.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답은 간단하다. .

우리는 유목민이다

“We are nomads( ).”

그리고 하루 종일 요리사와 그 많은 짐을 싣고 다녔다 그들은 텐트 치고 뜯는 데 이골. 이 나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의 사고에는 먹을 것과 잘 것이 항상 함께, . 이동한다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어 이에 따른 높은 비용 같은 것을 생각지도 않는다 합리, . 적인 시간과 비용만 생각하는 내 생각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일이다 밤. . 10시가 넘어 우 리는 시내로 나갔다 얼마 뒤 우리는 이곳 법원에 도착하였다 이어서 이 지역 판사 가운데. . 제일 높은 사람이 왔다 여행사 사장 카즈벡은 원래 판사로 일했고. 20년 전 5년 동안 이곳 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모두 잘 알았다 원래 판사장 집에서 충전하기로 했는데 내일 아침. 시에 다시 비디오와 노트북 배터리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법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5 .

우리는 법정으로 들어갔다 판사가 앉고 앞에 기록을 하는 사람이 앉는 곳이 있는데 바로. ,

(16)

그 책상 밑에 있는 전기 콘세트에 가지고 간 전기제품 3개의 코드를 꽂았다 이곳에는 아직. 러시아 전기 시스템을 쓰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간 플러그를 꽂고 다시 3다리 플러그를 꽂 아 성공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저녁밥 먹고 시쯤 잤다 22:40~23:00 12 .

월 일 수 울랑곰 다우스트 돌사람 사길 돌사람 우레그 호수

5. 6 12 ( ) : - ․ -

어제 피곤했든지 아주 잘 잤다 일어나보니. 4시가 조금 넘었다 밖은 이미 환해져 있고. 30 분쯤 나와 보니 동녘 하늘 구름들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서쪽 하르히라산 위부터 해가 비. 치기 시작하여 점점 내려오더니 5시에는 우리 텐트까지 햇빛이 들어온다 구름이 많아 약간. 걱정이 되나 이곳에는 비가 잘 오지 않는 곳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

시가 다 되어 카즈벡을 깨워 법원으로 갔다 일직을 깨워 내 노트북과 비디오 배터리를

5 .

빼고 다시 원철이 노트북과 비디오 스페어 배터리를 끼워 놓았다 물론 무죄 선고도 내리지. 만 사형선고도 내리는 이곳 몽골의 시골 법원의 법정에 새벽 5시에 들어가 배터리 충전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캠프에 돌아와 카즈벡은 다시 자려고 해서 오늘은 꼭 8시에 떠나자고 했더니 자지 않고 출발 준비를 한다. 8시 출발이면 한국 시간으로는 10시다 그렇기 때문에. 7월 행사 때는 좀 일찍 출발하는 것이 한국 사람에게는 좋다는 설명을 했다.

야영지 출발 우선 법원에서 충전한 노트북과 비디오 배터리를 찾고 요리사는 먹

07:45 , ,

을거리를 사고 자동차 기름 넣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느라고, , 08:25에야 울란곰을 떠났다. 그 사이에 나는 울랑곰의 군청 법원 시내를 스케치 하였는데 정부 청사를 빼놓고는 모두, , , 네모난 건물이라 도시가 너무 단순한 감이 든다 모든 시민들이 겔을 싣고 초원으로 가서. 가축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출근 시간이지만 거리는 아주 한산하다.

그림

< 24> 법원에서 충전한 배터리 <그림 25> 울랑곰 아이막 청사

북쪽으로 난 길을 나서며 어김없이 도로비를 지불한다 도로는 가끔 파인 곳이 있으나 아. 스팔트가 깔려 있어 자동차가 제법 속도를 낸다 아침 일찍 이동하는 가축 떼들이 있어 장. 관이다 맨 앞에 살림살이를 실은 낙타. 7~8마리가 가는데 이곳에는 어른 한 사람과 아이들 이 타고 있다 이어서 말 소 같은 큰 가축과 대세를 이루는 수 천 마리의 양과 염소들이. , 뒤따르는데 우리가 촬영한 가족은, 100㎞ 떨어진 초원으로 간다고 한다 하루. 25㎞를 가기

(17)

때문에 적어도 나흘 정도는 걸린다고 하는데 가는 길이라 달라진 것이 없다 청소년 이상, . 은 모두 가축을 모는데 동원되는데 개들이 큰 역할을 한다 요즈음은 말을 타는 대신 오토, . 바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트럭으로 이삿짐을 나르는 집안들도 있어 유목민의 풍속도, 달라지고 있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가축들은 초원의 꼴을 뜯고 새끼를 낳고 태어난 새끼는. , , 성장해 간다 내몽골에서 만난 한 유목민이. 1,000마리를 몰고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연말 에는 200마리가 더 늘어 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처럼 수천마리 가축과 함께 온 가족은 물론 겔과 살림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을 보면 칭기스칸의 세계 제패가 생각난다 그들은 보급부대를 따로 두지도 않고 군자금을 걱정하. , 지도 않았다 군대들이 다른 나라와 부족을 점령하는 동안 바로 이런 가축무리와 겔이 함께. 이동하면서 양을 기르고 잡아먹고 하였기 때문에 보급품이 자동으로 보충되어 끊임없이 정 복이 가능했다고 한다.

얼기로 가는 길과 러시아 국경이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면서 도로 사정은 좋아진다 이. 곳은 새로 포장을 해서 사정이 더욱 좋아졌다 시속. 20~30㎞로 달리는 초원길과 달리 차가 시속 80㎞로 달릴 수 있는 것은 구불구불한 초원길과 달리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일직선 도 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오른쪽 초원길로 들어선다 다브스트

10:40 .

로 가는 갈림길인 것이다 여기서도. 26㎞를 가야 다브스트이다 곳곳에 꾸르간과 께렉수르. 들이 보인다 약간 지루한 초원길을 달리는 동안 나는 깊은 잠이 들었다 깨었을 때는 이미. . 바다처럼 넓은 옵스호수를 배경으로 한 다브스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직선 길을 내려가고 있다 그 곳에서 한 노부부를 태우고 마을에 다다르니. 11시 30분이다 울랑곰에서 떠난 지. 시간쯤 되었다 다브스트 란 몽골말로 소금 이란 뜻으로 몽골 최대의 호수인 옵스가 담수

3 . ‘ ’ ‘ ’

가 아니고 소금기가 있고 바로 그 북쪽에 생긴 마을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마. 을은 뜨거운 햇빛 아래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부부가 안내한 마을 솜 회관에 가. ( ) 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는 동안 마을 스케치를 하며 마을 수퍼마켙에도 들어가 보았다, . 아주 널찍한 곳에 많은 물건을 진열했는데 살만한 물건은 없었다 러시아에서처럼 아이스, . 케익이라도 하나 사먹으려 했는데 원철이가 손을 흔든다 안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 .

분 동안 사정을 알아본 카즈벡과 사빗은 잘 아는 사람이 시에 근무한다며 돌사람 있

20 1

는 곳을 대강 들었다며 찾아보자고 한다 마을을 떠나. 20분쯤 헤매었으나 낮은 민둥산과 들 판 어디를 가도 돌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 멀리 호수 쪽 언덕 위에 말 그늘에서 쉬고. 있는 목동이 그림처럼 나타난다 이 곳 사정은 목동들이 손금처럼 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게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다.

다행히 차는 길과 상관없이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는 것이 초원의 장점이다 목동은 뜻밖. 에 14살 먹은 소년이다 초등하교. 5학년인 이 소년이 800마리의 염소를 지키고 있었던 것 이다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 둘이 있는데 동생은 막내를 보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보기 때. , 문에 염소 치는 일은 아버지와 자신의 일 하루걸러 일을 맡는데 오늘은 자기가 당번이라고, 한다 수줍어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 어린 아이 같지만 이미 아버지와 함께 집안의 크고 작. 은 일을 나누어 맡는 의젓한 맏아들인 것이다 겨울에는 방학이 없고. , 6, 7, 8월 3개월이 여름방학이다 이곳 방학은 여름이 더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눈 녹은 뒤 펼쳐지는 초원에서. 서늘해지는 9월까지 가축을 최대한 늘리고 살찌우는 최대 성수기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 이다 아니 학교에서 배우는 어떤 내용보다 일생 꼭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현장실습시간. , 이고 집안 경제 전체를 좌우하는 중요한 노동력인 셈이다, .

(18)

얼굴이 갸름하고 약간 붉은 미소년은 말을 한 번 타보라고 했더니 갑자기 전혀 다른 모습 을 보인다 그야말로 질풍처럼 내달리는 소년은 말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마음대로 종행무. 진 달린다 준비해간 볼펜 보통 한 타스 정도 준비해 간다 한 자루 주고 카즈벡에게 용돈. ( ) , 을 좀 주고 싶은데 얼마가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1,000원 정도 주라고 한다.

말탄 어린이 : 바츠히인 바얀바타르(Batsukhiin Bayanbaatar) mongolia. Ubs aymag. Davst soum.

그림

< 27> 14살 먹은 목동의 말달리기

이 소년 목동은 돌사람이 있는 곳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목동에게 길안내를 해달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통역인 사빗이 “노는 것 같지만 이 소년은 800마리 염소에서 한 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 고 한다 아예 부탁을 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에티켓이었던” . 것이다 목동이 가르쳐 준대로. 15분쯤 찾다가 낮은 산언덕 꼭대기에 있는 돌사람을 찾았다. 다브스트(Davst)에서 정 동쪽으로 4.5km쯤 떨어진 곳이다 우리가 조사하는 동안 차는 낮. 밥 준비 하러 강가로 갔다 박물관에서 사진을 볼 때도 특이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돌궐 시. 대 돌사람은 아니다 아주 정교하게 양각한 얼굴은 마치 관세음보살 같고 손가락. , 5개를 모 두 표현에 두 손으로 무엇인가 잡고 있는 모습을 조각했는데 컵이 아니고 달걀만한 구멍을 파 놓았다 젖가슴을 연상하도록 조각한 것과 두 다리를 음각해서 표현한 것도 돌궐 것과는. 다르다 전반적으로 보아 여인상을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돌궐이나 위구르보다는 훨씬 뒤 시대의 유물로 보인다 마을에서도 이 돌사람을 무슨 영물. 처럼 취급하려고 하는지 나무로 간단한 보존각을 만들어 아주 조잡한 돌사람 현대 것으로( 보인다 과 함께 모셔놓고 오보를 만들려고 나무들을 가져다 놓았다) , .

(19)

그림

< 29> 마을에서 모시는 특이한 돌사람

시 조금 넘어 조사가 끝났다 그런데 분까지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는다 사빗은 우리

1 . 30 .

가 떠나면 그 때 차가 출발해서 온다고 했다고 하며 기다리자고 했다 그러나 계속 기다리. 고만 있을 수는 없다. 45분 동안 걸어가는 동안 차는 끝내 오지 않았다 바로 아래 내려다. 보이는 강 같은데 걸어가 보니 45분이나 걸린다 사막길을. 45분이나 걸어서 갔는데 왜 우, 리를 데리러 오지 않았는지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묵묵부답이다 무엇을 했는지, . 2시가 넘 었는데 아직도 밥이 준비되지 않았다 차가 문제가 되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멀쩡하다 이. , . 사건으로 인해서 2시간 정도 늦어진 것이 오늘 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주변에 바위. 그림이 6군데 사슴돌 돌사람이 더 있다고 하는데 하나도 더 찾아보지 못하고 떠난다, , , .

결국 3시 25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바람이 몹시 불기 시작한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길. . 가에 꾸르간과 께렉수르가 계속된다 그냥 가기는 너무 억울하다 사길이라는 마을에 돌사. . 람이 2개 있다는 박물관 지도의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들려보자고 하였더니 사빗이 운전대를 보조에게 넘기고 자고 있던 카즈벡을 깨운다 갑자기 광풍이 불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으나 우리의 답사는 계속되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돌사람. . 2개가 마을로 옮겨져 마을 어귀에 함께 서 있는 것이다. 2개 모두 사실적으로 잘 조각된 돌사람이다 오늘 답사. 는 겨우 본전을 찾은 것 같다.

(20)

시가 다 되어 큰길에 오니 예쁜 무지개가 옵스호수에 걸려 있어 오보를 근경으로 하여 6

촬영하였다. 6시 30분 울랑곰과 얼기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3거리에서 출발하여 높은 산맥 을 넘어간다. 이 산맥은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는 챠간 수보트산(Tsagaan Shuvuut uul, 에서 시작하여 하르히라산 으로 이어지는데 계곡이 있고 비교적 낮은 고개

3496m) (4037m) ,

를 넘어가는 것이다.

차는 정말 힘겹게 급경사를 오른다 멀리 옵스호수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구름이. 끼어 그 파노라마를 볼 수가 없으나 무지개가 계속 남아 있어 장관을 이룬다 고개 마루.

에 이른 것은 시 분 중간에 차가 서서 고치기도 했지만 거의 해발

1,974m 7 20 , 1,000m, 13

를 올라온 것이다 참으로 오르기 힘든 고개다 고개 위는 올라오기 힘든 만큼 아름다운. .

모습으로 맞이하였다 집 한 채 만큼 큰 오보에서 내려다 본 고원 함지땅은 옅은 초록색으. 로 잘 그려진 그림 같았다 멀리 눈 덮인 고산을 배경으로 나지막한 산으로 둘려 쌓여 있는. 고원에는 많은 겔과 가축들이 낙원을 이루고 있었다 자동차 바퀴를 바꾸는. 30분 동안 우리 는 정말 선경을 마음껏 누리고 멋진 사진도 많이 찍었다 이곳에는 알타이사이얀 프로젝트. 에 따라 잘 단장하고 있어 더욱 보기가 좋았다.

이 고개가 초원 색깔과는 달리 붉은 고개라는 이름을 가진 울란 다바(Ulan Davaa, 올라 오는 길에 붉은 봉우리는 있다 이고 함지땅 건너 다시 오르는 고개는 울란 조힌 허털) , (Ulan 고개이다 그 사이에는 초록색 캠퍼스에 까만 물감으로 그어놓은 것처럼 일 Zuuhyn hotol) .

직선으로 이어지는 찻길이 몇 개 겹쳐져 있다 중간에 다행히 차가 다시 고장이 나서 수만. 마리 가축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관을 비디오에 담을 수가 있었다.

무지개와 함께 달리고 달려 드디어, 9시쯤 눈 아래 담수호인 우래그호수(Uureg nuur)가 나타난다 마침 호수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 었다 여기서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남쪽 바이람 고개로 넘어가는 쪽으로. 10㎞쯤 가 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캠핑한다 이곳이 바로 꾸르간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유적지. 이기도 하다 유적은 내일 아침보기로 하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에 부지런히 야영 준비를.

(21)

한다.

그림

< 32> 대형 오보가 있는 고개 <그림 33> 노을진 우레그호수

저녁밥은 카레라이스 같은 덮밥인데 밥이 죽처럼 되었지만 맛이 괜찮다 다음 탐사팀이, . 왔을 때 저녁에는 매일 밥 알파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쌀이지만 그래도+ . 쌀이기 때문이다. 8일간 한 번도 쌀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참가자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밤 12시쯤 바로 잤다.

월 일 목 호룬 톨고이 우레그호수 얼기 얼기 두만호텔 박

6. 6 13 ( ) : ( ) - ( 1 )

시 분 종달새 소리 와 함께 잠을 깬다 오늘 캠핑하는 곳은 후렌 톨고이

4 40 (?) . (Khuren

라는 곳인데 후렌은 짙은 갈색을 말하고 톨고이는 언덕 을 뜻한다 이곳에 어떤 사

tolgoi) , , ‘ ’ .

람들이 살았을까 의문이 든다 일어나자마자 텐트 앞문을 열고 우레그 호수를 내려다보니. 큰 호수도 천천히 새아침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13도이다 해발 고도가. 1000m쯤 높아졌지만 온도는 오히려 울랑곰의 첫날보다 춥지 않다 겨울 셔츠를 꺼내 입었다는 이유. 도 있지만 얼굴을 내놓고 잘 수 있는 것을 보니 이미 적응이 된 모양이다.

시까지 기록을 마치고 호숫가의 아침풍경을 촬영하였다 호수를 바라보는 좋은 위치를

7 .

잡은 우리 캠프장 주변의 청동기 무덤들 여기저기 잠에서 깨어나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 있는 유목민들의 겔 주인이 일어나기도 전에 초원으로 나서 풀을 뜯고 있는 말떼 작은 물, , 줄기지만 계곡으로 흐르는 맑은 물 새소리 바람 소리 모든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 , 들이다 엊저녁 도착했을 때 짙은 검붉은 색깔을 보여주던 호수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맑고. 부드러운 파란색을 보여준다 멀리 눈 덮인 산과 주변의 초원지대가 어울려 진짜 선경을 이. 룬다 금년에. 5년째 알타이를 탐사하고 있지만 오늘 아침처럼 편안하고 찬란한 아침은 처음 이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차를 타고 비포장을 달리고 쉬지 않고 작업을 하면서도 이런 경, 치를 만나면 단번에 풀려버린다.

시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은 주로 빵과 발라 먹는 것 꿀 초콜릿 젬 과 홍차 커피도 있

8 . ( , , ) (

다 를 먹는 간단한 서양식인데 한 가지씩 간단한 추가 메뉴가 나온다 오늘은 에그 스크램) , . 블 비슷한 것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한 초원에 위에 식탁을 차려놓고 천천히 달아오르는. , 호수를 바라보며 아침밥을 먹는 그림을 상상해 보라 참으로 세상에 이런 갑부가 어디 있는, 가?

(22)

그림

< 35> 호수 유적 가축 겔과 함께하는, , ,

오늘은 개울가에서 세수하며 머리를 감는 여유까지 부렸다. 8시 30분 밥을 먹고, 20분 만에 모든 출발 준비 완료 나무로 불을 때서 먹는 부엌은 뜨거워 바로 차에 실을 수가 없. 기 때문에 물을 부어 식히고 불씨도 말끔히 없앤다, .

시 분부터 시 분까지 시간 호룬 톨고이에 널려 있는 유적을 조사하였다 나는

8 55 12 50 4 .

사빗의 도움을 받아 촬영을 하고 원철이는 유적 조사를 하였는데, , gps로 정확한 위치를 찍 고 중요한 것은 재고 간단한 메모를 하는 것이다, , .

먼저 찾아 간 곳은 3개의 돌사람이 있는 돌궐 제사터이다 이곳이 카즈벡이 자신 있게 우. 리에게 소개하는 유적이다. Lonly Planed에 발발이 많이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 곳인데 발, 발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없다 저자는 꾸르간 돌무지 무덤. ( ), 제사터와 그 앞에 길게 이어지 는 돌말뚝 발발( ), 께렉수르 같은 많은 유적에 대한 구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간단히 발 발이 많이 있다고만 한 것이다. “고독한 돌사람” 이것이 내가 붙인 초원의 돌사람 별명이 다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넓은 초원에. 1,500년 동안이나 버티고 있는 돌사람에게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운데 하나는 완전한 것이지만 양 옆에 서있는 두 개는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컵을 든 오른 손과 허리띠를 잡은 손 칼들이 아주 잘 남아있어 돌. , 궐 무사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9시 정도면 돌사람을 찍기 좋은 시간이다 돌사람들은. 모두 정확하게 동쪽 해 뜨는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오후에는 역광이 되어버리기 때문 이다.

여행사 사장에게는 돌사람만 유적이지만 우리에게는 바로 옆에 있는 대형 께렉수르를 조, 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께렉수르 위에서 보니 주위에 유적들이 수없이 널려 있다 조. . 금 더 올라가니 대부분 깨져 없어졌지만 돌사람이 남아있고 이어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대형 께렉수르가 있다 가운데 돌무지에 둥근 테를 가진 께렉수르는 돌무지와 테를 잇는 선. 이 7개이다 보통. 4개짜리를 보았을 때는 동서남북 방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는데, 10일 본 지름 140m 짜리는 21개나 되고 오늘 본 것은, 7개가 되니 다시 아리송해진다, .

(23)

원래 돌사람 찍고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오전에는 이곳을 조사하고 낮밥 먹고 떠나기, 로 하였다 낮밥은. 12시에 첫 번 본 돌사람 앞에서 하기로 하였다 원철이는 바로 조사에. 들어가고 나와 사빗는 카즈벡에게 부탁해서 산 중턱까지 차로 올라가서 조금 걸어가니 전체 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먼저 전체 파노라마를 찍고 중요한 유적을 공중촬. 영 하듯이 하려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뭉게구름이지만 새파란 초원에 구름이 그림. . 자를 만들기 때문에 사진 색깔이 영 좋지 않다 우리는 끈질기게 호수와 주변 그리고 초원. , 이 자기 색깔을 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산 위라 바람이 세다 건너편 계곡에. . 1,000마 리 정도의 가축을 여자 목동 혼자서 지키고 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촬영하느라 지루하, 지는 않았다 거의. 2시간 동안에 걸쳐 파노라마와 대형 께렉수르 사진을 찍었다 초원은 거. 리를 가늠하기 어렵다 얼마 커 보이지 않은 평원 같은데. 400미리 카메라 망원렌즈는 도움 이 안 되고, 24배짜리 비디오 줌으로 간신히 사진을 찍는데 너무 멀어 생각보다 좋은 사진 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호수 주변의 환경과 유적의 분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호. , 수를 조감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사진. 300장 이상 비디오, 45분 분량을 찍었다.

이어서 유적 촬영을 하고 원철이와 합류하여 유적을 조사하였다 우레그호수는 둥그렇게, . 둘러쌓은 높은 산에서 흘러들어간 물이 만든 호수다 몽골에서 가장 크다는 옵스호수가 바. 다보다 6배나 짠 호수라면 이곳은 수영도 하고 고기도 많이 사는 아주 살아있고 정상적인, 호수로 유명하다 호룬 톨고이는 남쪽을 막고 있는 산에서 내려온 두 개의 골짜기 사이에. 이루어진 초원이다 그리고 이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 유적을 이룩한 문화를 만. 들어낸 것이다 물이 흐르는 계곡 가에는 호수까지 많은 꾸르간 께렉수르 들이 끊없이 이. ( ?) 어지고 그 사이 산 밑쪽에는 대형 께렉수르들이 분포되어 있다 이런 청동기 유적 사이로, . 후대의 돌궐 유적들이 틈틈이 남아있으나 역시 주을 이루는 것은 청동기 유적이다.

시 분이 되니 차가 우리를 데리러 왔지만 아직도 서쪽 계곡 가에는 꾸르간이 계속 12 10

이어진다 우리는 차를 이용해. 50분까지 나머지는 분포만 파악하기로 하였다. 4시간으로는 전체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운 유적이다.

낮밥은 셀러드와 떡국이나 만둣국 비슷한 국인데 우리 입맛에 맞아 7월 탐사단 아침 국 으로 정했다 아침 캠프장보다 훨씬 높은 께렉수르 옆에 차려진 밥상은 가히 하늘나라 경치. 다.

시 분 떠났다 바로 약간 눈이 덮인 의 바이람산 을 넘는 바이람

2 5 . 2,961m (Bayram uul)

고개(Bayram davaa)가 있는데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돌아서 간다고 하다 우리는 다시 내. 려와 호수쪽으로 내려갔다 도중에 캠프 했던 곳 꾸르간 위치 측정하고 개울 건너 위치를. , 측정하였다 그 사이에 바로 건너편 겔에서. 5~명의 아이들이 뛰어온다 그들이 내민 것은.

(24)

손수 만든 쥐와 레오파르드인데 하나에 1달러라고 한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 같은. 데 이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가 지나치지 않고 이런 것이 있으니 마음이 있으. 면 사지 않겠느냐는 아주 깨끗하고 수준 높은 비즈니스다. 2,000 터그럭을 주고 한 개씩 샀 다 비디오와 사진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니 아주 좋아한다. .

바로 그 때 그 겔에서 지프차 한 대가 나와 카즈벡과 얘기를 나누더니 바이람고개로 넘어 가겠다고 한다 차 한 대가 넘어가다 고장이 나거나 조난을 당하면 위험하지만 현지 사정. , 에 밝은 지프차가 함께 가기로 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절약한. 다니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바로 나지막한 산 밑에 있는 한 무더기 유적을 조사할 틈. 이 없다는 것이다 유적 위치만 파악하도록.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더니 지프차도 기꺼이 기다려 준다 그러나. 20분이 넘게 걸렸다 정말 특이한 제사 유적들이 꽉 차 있기 때문이. 다 돌을 세워 네모난 틀. 3개를 이어놓고 각 틀마다 돌을 하나씩 세웠는데 아주 특이하다, , . 네모난 제사터에는 귀퉁이마다 돌을 세운 것도 있고 해석이 안 되는 여러 가지 유적들을, 뛰듯이 조사했으나 거의 25분이 걸렸다. 5분이 25분이 되었지만 몽골인 두 팀은 이미 친구 가 되어 이야기 하느라 재촉도 하지 않는다.

출발 지프차에 탄 젊은 운전자는 혼자 멀리 달아나는데 뒤를 따라 붙느라 세의

14:05 , , 52

카즈벡은 운전대를 계속 좌우로 급히 내저으며 가속기를 밟는다 산꼭대기. 2,536m까지 올 라가는 데는 45분이나 걸렸다 아직도 곳곳에 눈이 남아 있다 산꼭대기에는 우리에게 또. . 다른 기쁨을 주는 유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특징정인 오보 성황당 같은 돌무. ( 지 몽골말로는 어워 다 이 꼭대기에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세운 대형 께렉수르가 있었는, ) . 데 바로 그 께렉수르의 가운데 돌무지 부분을 파내 쌓아올리고 그 위에 나무와 천으로 여, , 러 가지 시설을 한 것이다 께렉수르의 가치를 모르고 오보를 만들어 버린 아쉬움이 있지. 만 아마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께렉수르를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하기야 이 께렉수르는 시, . 대에 따라 두 가지 임무를 모두 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사람들에게는 께렉수르보다. 오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보를 만들려면 많은 돌을 옮겨야 하는데 이미 돌무지가 있으. 니 높이기 위해 돌무지를 파내는 작업만 하면 되니 얼마나 큰 다행인가!

그림

< 38> 께렉수르로 만든 오보(2536m) <그림 39> 오보 위의 희생물

오보와 께렉수르 이 절묘한 조화를 보면서 께렉수르의 설립목적도 오보처럼 안전을 비는, 제사터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께렉수르의 목적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 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바 공화국의 한 학자는 우주와 교신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했는데. ,

(25)

사람이 살지 않는 산꼭대기에 있는 께렉수르를 보면서 전혀 터무니없는 논리는 아니구나 하 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사진 찍고 조사하느라고 바쁜데 몽골인 실은 카자크인들 들은 술을. ( ) 한 병 꺼내 오보를 시계방향으로 돌며 뿌리고 나누어 마신다 술을 받은 사람은 모두 손가, . 락으로 술을 묻혀 하늘 쪽으로 몇 번 뿌리고 마신다 우리나라의 야외에서 음식 먹기 전 하. 는 고시레 와 비슷하다‘ ’ .

내려오는 길은 정말 힘들고 위험하다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질퍽거리는 진탕을 만. 들고 진탕은 모두 큰 돌덩이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몇 년 전 큰 차로 우코크에 올, . 랐던 생각이 난다.

고개를 다 내려오자 물줄기가 제법 큰 계곡을 이루었는데 여기도 역시 물줄기를 따라 계, 곡 언덕 위에 각종 유적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차는 물론 사람도 만나기 힘든 깊은 산골. 에 수 천 년 전의 유적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돌사람이다 가 보자

“ . !”

내 눈에 들오는 것은 분명히 돌사람 아니면 사슴돌로 보이는 유적이었다 예상대로 큰 께. 렉수르 앞에 서 있는 사슴돌이다 대형 께렉수르 주변에는 강변 돌로 둥그렇게 만든 시설들. 이 수없이 많은데 그 용도를 알 수 없다.

사슴돌은 두 개 다 명품이다 사슴돌은 모두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데. , 2m가 넘는 키 큰 사슴돌은 상대적으로 너비가 좁아 두 면을 이용해 나르는 사슴을 조각했다 밑 부분이 좀. 분명하지 않다 작은 사슴돌은 해 사슴 말. , , 3그림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고 활집으로, 보이는 그림도 아주 선명하다 기울어져 있고 역광이 되는 곳이 있어 촬영하는데 어려움이. , 있었지만 명품을 만난 흥분된 시간이었다 시간이 많이 걸려 빨리 가야겠는데 강가에는 다. 른 명품들이 있다 돌무지 가에 테가 없고 네 귀퉁이에 작은 꾸르간 같은 돌무지를 만든. , 시설 널돌들을 세워 네모나게 만든 시설 따위가 있으나 자세하게 조사하지 못하고 간단하, 게 조사를 마치고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 내내 꾸르간과 께렉수르가 이어진다. .

그림

< 41> 께렉수르 앞에 서있는 사슴돌들

우리가 하늘 아래 첫 마을 허트고르(Hotgor, 낮은 지대라는 뜻 에 다다른 것은) 4시 10분 이다 이곳은 석탄 광산이 있는 곳인데 광산을 보니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땅을 파면 석탄이 나온다 세계. 10대 자원국 몽골의 저력을 보는 순간이다 문제는 시설비. 나 수송비가 많이 들어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영세한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어떻. 게 보면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어 자원이 보존 되는 지도 모른다 카즈벡이 이곳 마을회관, .

Referensi

Dokumen terka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