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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고분군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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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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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 시 실

복천동 고분군의 토기

-항아리 -그릇받침 -잔과 접시 -특이한 모양 토기 -외래계 토기

복천동 고분군의 철기

-제철과 철기의 제작 -농공구

-무기-갑옷 -투구-말갖춤새

-의기성유물

복천동 고분군의 장신구

2

복 천

동 고

분 군

문 화

(2)

복천동 고분군의 토기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항아리와 그릇받침, 굽다리접시, 잔 등 많은 양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제작방법과 소성상태에 따라 크게 회백색 와질토기와 회청색 도질 토기, 적갈색 연질토기의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회청색 도질토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복천동 고분군 남쪽 경사면에 있는 독립된 구릉 주변에서 조사된 2~3세기대 목관·목곽묘에서는 주머니항아리, 소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두 귀 항아리 등의 와질토기가 출토된다. 4세기대 이후의 무덤 에서는 대부분 도질토기가 출토되는데, 도질토기는 1,00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산소와의 접촉이 차단되는 환원염으로 구워진 것으로, 흡수성이 거의 없는 단단하고 실용적인 토기이다.

복천동 고분군 출토 토기는 외절구연굽다리접시, 화로모양그릇받침, 격자타날문항아리, 넓은 입 작은 항아리 등 5세기 전반까지 기종과 형태 면에서 김해지역과 거의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5세기 중엽 이후 신라가 점차 강성해져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복천동고분군 에서도 다리달린항아리, 상하엇갈린 투창굽다리접시 등 신라토기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5세기 후엽부터는 대부분 신라토기 형식 으로 교체된다.

01

117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16

(3)

100

항아리 壺 Jar

부산 복천동 86호 높이 63cm 항아리는 아래 위가 좁고 배가 부른 그릇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이다. 토기가 처음 만들

어진 신석기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오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그릇 종류 가운데 하나 이며, 대표적인 저장용기로서 곡식과 물 등 다양한 식품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뚜껑이 있거나 손잡이, 굽다리가 달리는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그릇의 형태를 만들 때 점토 내의 공기를 빼내고 기벽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두드리는 나무판의 무늬에 따라 표면에 격자문, 평행문, 승석문 등이 생긴 것도 있다.

항아리

099

항아리 壺 Jar

부산 복천동 84호 높이 2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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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20 101

두 꼭지 항아리 兩耳附壺 Jar with knob handles 부산 복천동 84호 높이 3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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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뿔모양 손잡이항아리·두 꼭지 항아리·주머니모양 항아리 壺 Jar

부산 복천동 154호 높이 23.8cm

103

다리달린 두 꼭지 항아리 臺附兩乳附壺 Jar with knob handles

부산 복천동 147호 높이 18.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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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넓은 입 작은 항아리 廣口小壺 Small jar

부산 복천동 53호 높이 11.5㎝

105

굽다리항아리 臺附壺 Mounted jar 부산 복천동 137호 높이 34.3cm

106

뚜껑 있는 굽다리항아리 有蓋臺附直口壺 Mounted jar with lid 부산 복천동 36호 1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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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24

그릇받침은 바닥이 둥근 항아리를 받치기 위한 그릇의 한 종류이다. 신라·가야에서는 항아리의 바닥이 둥근 형태를 띠고 있어 굽다리를 달거나 그릇받침이 있어야만 고정되므로 그릇받침 종류가 많이 만들어졌다. 생긴 모양에 따라 화로형·원통형·발형 등으로 종류가 나누어지며, 작은 항아리를 받치기 위한 소형 그릇받침도 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도 다양한 그릇받침들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대체로 화로형 그릇받침은 4세기 전반, 원통형 그릇받침은 4세기 중엽, 발형 그릇받침은 5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원통형 그릇받침은 조형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수장급 묘로 추정 되는 분묘에 하나씩만 부장되며, 피장자의 머리 쪽에 놓여 봉토제사에 사용되는 등 장례 의례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릇받침 108

화로모양 그릇받침 爐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43호 높이 32.8cm

107

화로모양 그릇받침 爐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38호 높이 26.2cm

109

소형 그릇받침 小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54호 높이 11.1cm

(7)

112

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99호 높이 28.5cm

110

그릇받침 鉢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31호 높이 39.4cm

111

그릇받침 鉢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131호 높이 32.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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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28

돼지 [豚] Pig

말 [馬] Horse

개 [犬]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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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형토우가 있는 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32호 높이 47cm*

113

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4호 높이 39.5cm

114

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46호 높이 32.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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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93호 높이 5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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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14호 높이 47cm 거북이[龜]Tur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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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11호 높이 48.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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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32

잔은 술이나 물 등 음료를 담는 작은 그릇으로, 뚜껑이 있거나 손잡이·다리가 달리는 등 형태가 다양하다. 접시는 주로 반찬이나 과일을 담는 얕은 그릇인데, 가야와 신라에서는 주로 다리가 달린 굽다리접시를 사용하였다. 복천동·지산동 고분군에서는 뚜껑굽다리접시 안에서 도미·달걀·고동 등이 발견되어 굽다리접시에 음식을 담아 죽은 자에게 공헌하는 의례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4세기대에 아가리 끝이 꺾여 바깥으로 벌어지는 형태의 굽다리 접시가 대세를 이루다가, 5세기대에는 뚜껑이 있거나 다양한 투창, 높은 대각을 가지는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굽다리접시가 등장한다. 5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상하 엇갈린 투창을 가진 대각이 직선적으로 변화하는 등 신라화된 기형으로 통일되어 간다.

잔과 접시

119

손잡이잔 把手付杯 Bowl with handle 부산 복천동 101호 높이 17㎝

120

다리 달린 손잡이사발 臺附把手附盌 Mounted bowl with lid and handle 부산 복천동 53호

높이 25.5cm

121

굽다리접시 高杯 Mounted dish 부산 복천동 106호 높이 16cm

(11)

123

굽다리접시 高杯 Mounted dish 부산 복천동 53호 높이 15.2cm

122

굽다리접시·뚜껑접시 高杯·蓋杯 Dish

부산 내성 높이 18cm

124

특이한 모양 항아리받침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53호 높이 12cm 특이한 모양 토기는 죽은 사람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장송의례나 신앙행위와

관련된 유물로, 주로 삼국시대의 신라·가야지역에서 많이 만들어진 특수한 토기이다.

사물의 형상을 표현한 상형토기와 일반용기를 변형시킨 기형용기(器型用器)의 2가지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상형토기의 경우 오리, 말, 거북 등의 동물을 본뜬 것과 수레, 집, 배, 신발 등의 기물을 본뜬 것이 있다. 특히, 동물형토기는 동물 숭배신앙과 결부되어 제작되었는데 , 당시 사람들은 새가 죽은 자의 영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날라다 준다고 생각하여 오리 모양토기를 많이 만들었다. 복천동고분군에서는 신발, 신선로, 등잔, 주전자, 복숭아, 말머리 등을 본떠 만든 특이한 모양 토기가 출토된다.

특이한 모양 토기

(12)

137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36 125

귀때토기 注口形土器 Ewer-shaped pottery 부산 복천동 1호 높이 24.5㎝*

126

작은 독 小甕 Bowl 부산 복천동 57호 높이 6㎝

127

신선로모양 토기 神仙爐形土器 부산 복천동 2호

높이 6㎝

128

복숭아모양 토기 桃形杯 Peach-shaped pottery 부산 복천동 134호 높이 7cm

(13)

129

등잔모양 토기 燈形土器 Lamp-shaped pottery 부산 복천동 53호 높이 12.2cm

130

신발모양 토기 革靴形土器 Sandle-shaped pottery 부산 복천동 53호 높이 1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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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Bokcheon Museum

140 131

오리모양 토기 鴨形土器 Duck-shaped pottery 부산 복천동 86호 높이 21.6cm*

132

말머리모양 뿔잔 馬頭飾角杯 Horsehead-shaped cups 부산 복천동 1호 높이 14cm*

(15)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타 지역에서 생산된 토기류가 다수 출토되고 있어 이 시기의 활발한 대외교류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복천동의 외래계 토기는 크게 함안계, 창녕계, 일본계의 3가지 종류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65호에서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청자잔 1점이 출토되어 중국과의 교류도 직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함안계 아라가야 토기의 경우 굽다리에 불꽃모양 구멍이 있거나 굽다리 형태가 원통형인 굽다리접시, 창녕계 비화가야 토기의 경우 작은 굽다리 모양 꼭지가 달린 뚜껑이 있는 굽다리접시가 가장 널리 알려진 형식이다.

일본계 유물들은 대부분 하지끼(土師器)라고 불리는 적갈색 연질토기로, 당시 일본의 중심지였던 오사까(大阪)와 나라(奈良)지역 생산품으로 추정 된다.

외래계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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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53호 높이 53.8cm

134

그릇받침 小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54호 높이 30cm

135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有蓋高杯 Mounted dish with lid 부산 복천동 57호 높이 1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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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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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다리접시 高杯 Mounted dish 창녕 교동 3호분 높이 12.5cm

137

다리 달린 뚜껑사발 有蓋臺附鉢 Mounted bowl with lid 부산 복천동 5호 높이 23.6cm

138

그릇받침 筒形器臺 Pottery stand 부산 복천동 112호 높이 46.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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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손잡이 달린 독 把手附甕 Jar with handle 부산 복천동 57호 높이 21.2cm

140

굽다리접시 高杯 Mounted dish 부산 복천동 57호 높이 9.4cm

141

청자잔 靑瓷盞 Celadon Cup 부산 복천동 65호 높이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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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고분군의 철기 복천동 고분군은 대량의 철기유물이 발견된 유적으로 갑옷, 투구, 말갑옷, 말투구 등의 무구와 화살촉, 칼 등 무기류가 확인되었으며, 특히 영남지방에서만 확인되는 판갑옷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또 철기의 재료가 되는 덩이쇠, 제련과 관련된 각종 단야도구 등을 부장한 것으로 보아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복천동 고분군은 동시대 신라에서 금제 장식품이 많이 부장 되는 것과 비교되며, 출토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복천동고분군을 조성한 사람들은 철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전사집단이라고 생각된다.

02

149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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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철기가 처음 전래된 것은 기원전 4~3세기경이었으며, 철기사용이 본격화 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1세기 무렵부터이다. 영토의 확보를 위한 소국 간의 전쟁이 치열하고, 국제적 물자교류가 활발했던 고대사회에서 제철과 철기의 제작은 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지위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각종 철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료가 되는 철광석을 채취하는 채광작업 및 철광석을 녹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제련과정을 거친 다음, 쇳물을 틀에 부어 만드는 주조(鑄造)나 가열한 선철을 반복해서 두드리고 담금질하여 만드는 단조(鍛造)과정을 거쳐 판상철부나 덩이쇠·주조철부와 같은 중간소재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중간소재 형태로 거래가 이루어 지게 되며, 이것을 가지고 각 지역 대장간에서는 창이나 도끼와 같은 일반적인 무기·농공구를 만들게 되는데, 재갈과 같은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마구나 갑옷 등은 전문 제작집단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철과 철기의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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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숫돌 鐵鉗·砥石 Tongs·Grind stones 부산 복천동 73호, 53호 길이 47.6cm

143

덩이쇠 鐵鋌 Iron plates

부산 복천동 11호·22호 길이 43cm

가야에서 철 생산이 일반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은 철기 제작시 중간단계의 제품인 넓은 철판 형태의 덩이쇠(鐵鋌)인데, 이러한 덩이쇠는 4~6세기 부산과 김해지방의 대형고분에서 많이 출토된다.

덩이쇠를 무덤에 묻을 때는 10개씩 묶어 널의 바닥에 깔았는데, 철이 그 당시의 가장 주요한 재원 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처럼 다량의 덩이쇠를 무덤에 넣는 것은 죽은 자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천동고분군에서는 이러한 덩이쇠가 4세기 중엽부터 출토되기 시작하여 5세기 대에 가장 유행하다가 6세기 초가 되면 사라지게 된다.

|덩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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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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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이나 수확에 필요한 철제 농기구나 공구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농기구로는 따비, 보습, 쇠스랑, 낫, 괭이 등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낫은 거의 모든 무덤에서 나온다. 공구에 는 도끼, 끌, 집게, 망치, 손칼 등이 있다. 이러한 공구를 이용하여 목제 농기구들이 만들어 져 개간 등에 이용되면서 농업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

농공구

144

보습 犁先 Shovel tip 부산 복천동 108호 길이 13cm

145

쇠스랑 鐵搭 Iron Rake 부산 복천동 108호 길이 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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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낫 鐵鎌 Iron Sickle 부산 복천동 86호 길이 22.5cm

147

집게ㆍ손칼 鐵鑷·鐵刀子 Tongs and knives 부산 복천동 38호 길이 1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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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전쟁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도구를 통틀어 일컫는 것인데, 전쟁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고대에는 권력의 상징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복천동고분군에서는 큰칼과 검·창·화살촉 등의 무기류가 출토된 바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삼루·삼엽·소환두대도 등 손잡이 장식이 두드러진 고리자루칼(環頭大刀)이다. 대체로 손잡이 끝이 세 개의 작은 고리가 연결된 형태인 삼루환두대도는 신라 왕릉급 무덤에서, 둥근 고리 내에 세 갈래의 잎 모양 장식이 있는 삼엽환두대도와 고리만 있는 소환두대도는 가야지역 대형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창과 화살은 전술의 변화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데, 즉 전투에 말을 이용하게 되면서 창의 자루가 길어 지고, 화살촉도 비행거리를 늘이기 위해 점점 폭이 좁고 목이 길어지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무기

148

고리자루칼 三累環頭大刀 Swords with ring pommel 부산 복천동 11호 길이 112.5cm

149

칼 劍Daggers 부산 복천동·학소대 길이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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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56 150

쇠창ㆍ물미 鐵矛·鐏 Spearheads·ferrule 부산 학소대·복천동 22호

151

화살촉 鐵鏃 Iron arrowheads 부산 복천동 38호 길이 14.8cm

152

화살촉 鐵鏃 Iron arrowheads 부산 복천동 46호 길이 10.6cm

153

화살촉 鐵鏃 Iron arrowheads 부산 복천동 21호 길이 16cm

154

화살촉鐵鏃 Iron arrowheads 부산 복천동 112호 길이 17.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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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화살통 盛矢具 Quiver fittings 부산 복천동 111호

157

화살통재현품 盛矢具再現品 Quiver fittings, Replica 부산 복천동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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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통 盛矢具 Quiver fittings 부산 복천동 22호 길이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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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60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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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갑 縱長板釘結板甲 Plate-armor 부산 복천동 57호 높이 73cm

갑옷은 가슴과 등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방어용 무기로, 중대형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판갑과 소형 철판들을 이어 만든 비늘갑옷(찰갑)으로 나누어 지는데, 대체로 판갑은 보병용, 찰갑은 기병용으로 추정되고 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대형분을 중심으로 4세기의 이른 시기부터 철제 갑옷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정치지배층의 강한 군사적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4세기에서 5세기 전반에 걸쳐 출토되는 종장 판갑에는 철판을 새 모양으로 장식하거나 동물털로 어깨부위를 장식하여, 실제 착장 당시의 모습은 보다 위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59

판갑縱長板釘結板甲 Plate-armor 부산 복천동 86호 높이 68cm 왼쪽

(25)

160

갑옷과 투구 甲胄 Complete set of armor 부산 복천동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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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갑 縱長板釘結板甲 Plate-armor 부산 복천동 164호 높이 63cm*

뒷쪽

왼쪽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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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64 162

판갑 縱長板釘結板甲 Plate-armor 부산 복천동 10호 높이 66.8cm

뒷쪽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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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허리가리개 腰甲 Waist-armor 부산 복천동 21호 높이 105cm 일정한 크기의 소찰을 횡으로 연결한 다음 다시 종으로

엮어서 상하 유동성을 가지도록 한 갑옷이다. 몸통부분 외에도 여러 가지 부속구를 구비하는데 찰갑과 세트를 이루는 것은 목가리개, 팔가리개, 팔뚝가리개, 상갑, 대퇴갑 등이 있다.

신라·가야지역의 5세기 대 찰갑은 소찰의 크기가 2.5cm×5~9cm 정도로 작아 소찰수가 많아지고, 상하 유동성이 확보되어 보관할 때는 아랫단이 윗단의 바깥으로 차곡차곡 접어 진다. 복천동 11호 출토 찰갑을 근거로 구조를 살펴보면, 허리를 중심으로 위에 해당하는 동갑찰이 6단, 허리부분인 요갑찰이 1단, 그 아래 상갑찰이 4단이다. 그 외에 상박갑, 대퇴갑 등이 있어 부위에 따라 다른 형태의 소찰을 사용했다. 허리부분에 만곡한 요찰을 사용하고 상하단의 연결에서 아랫단을 밖으로 덧대는 것이 중국과 다른 우리나라 찰갑의 특징이다.

또 전사의 목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구인 목가리개는 역사다리 꼴 모양의 철판을 가죽, 혹은 못을 이용하여 부채꼴 모양으로 연결한 다음 목에 착장하였다.

164

목가리개 頸甲 Neck-armor 부산 복천동 11호 높이 17.2cm

163

팔뚝가리개 肱甲 Forearm-armor 부산 복천동 11호 높이 37cm

|비늘갑옷|

(28)

169

Bokcheon Museum 복발

현수공 복륜공

연결구멍

뒷목가리개

볼가리개 볼가리개

투구 세부명칭

166

투구 縱長板伏鉢胄 Helmet

부산 복천동 21호 높이 28.9cm

복천박물관

168

투구는 갑옷과 함께 가장 보편적으로 제작된 방어구인데, 복천동고분군에서는 삼국 시대의 대표적 투구 형태인 종장판투구만이 출토되었다. 북방계 갑주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이 종장판투구는 대체로 사다리꼴모양의 긴 철판 14~45매 가량을 가죽으로 엮어 만드는데, 꼭대기에는 반구형 복발을 얹고 아래쪽에는 볼과 목뒤를 보호하는 볼가리개, 뒷목 가리개를 연결한다. 4세기에는 철판의 수가 비교적 적고 삼각판 모양의 볼가리개를 부착 하는데, 5세기대가 되면 철판 폭이 좁고 수량이 많아지며 여러 매의 비늘로 된 볼가리개를 부착하게 된다.

투구

168

투구 縱長板伏鉢胄 Helmet

부산 복천동 93호 높이 19cm

167

투구 縱長板伏鉢胄 Helmet

부산 복천동 11호 높이 33.3cm*

169

투구 縱長板伏鉢胄 Helmet

부산 복천동 44호 높이 18cm

(29)

말갖춤새는 말을 안정적으로 타고 제어하며 장식하고 보호하기 위해 말에 부착한 각종 제품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삼국시대에 유행하였던 기승문화(騎乘文化)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재갈과 같이 말을 직접 부리기 위한 제어용구와, 발걸이·안장·

고들개 등 말을 편하게 타기 위한 장치로서의 안정구, 띠끝꾸미개·말띠드리개·말방울·

기꽂이 등 말장식용구, 말갑옷·말머리가리개 등 말보호용구 등이 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4세기대부터 대형무덤을 중심으로 말갖춤새의 모든 종류가 출토되고 있어 일찍부터 뛰어난 기마문화를 누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4세기대에는 실용적인 철제품이 주로 출토되었으나, 5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신라의 영향으로 장식적인 금동제품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말갖춤새

챙부

볼가리개 안공

측판 비량판

미간판

170

말머리가리개 馬胄 Horse frontal 부산 복천동 10호 높이 47.8cm*

171

재갈 轡 Horse-bit 부산 복천동 23호 높이 24.5cm

172

재갈 轡Horse-bit 부산 복천동 111호 길이 18cm

173

재갈 轡 Horse-bit 부산 복천동 10호 길이 18cm 말머리 가리개 세부명칭

(30)

173

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172 174

말안장 鞍驕 Saddle fittings 부산 복천동 10호 길이 29.5cm

176

말띠드리개 杏葉 Harness-pendants 부산 복천동 36,15호 길이 8.3cm*

175

발걸이 鐙子 Stirrup 부산 복천동 21호 길이 26.8cm

|삼국시대의 마구|

재갈 [] Horse-bit

발걸이 [登子]

Stirrups

말띠꾸미개 [雲珠]

Horse fittings for strap 말방울 [馬鈴]

Horse bells

말안장 [鞍驕]

Saddle fittings

기꽂이 [巳行狀鐵器]

Horseback flagpole

검릉형말띠드리개 [杏葉]

Harness-pend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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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고분군의 대형분에서는 미늘쇠와 굽은 손칼, 가지방울, 통형동기 등 형태와 기능면 에서 일반유물과는 성격이 다른 의기성유물(儀器性遺物)들이 출토되고 있다. 대체로 실용성 보다는 주술적, 상징적 성격과 기능을 가짐으로써 신분을 상징하거나 매장의례에 사용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늘쇠는 덩이쇠의 양쪽에 가시를 만들고 아래쪽에는 철판을 휘어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한 것이고, 굽은 손칼은 끝부분을 밖으로 휘게 만든 특이한 형태의 손칼이다. 자루가 달린 원형고리 바깥으로 은행알모양 방울이 7개 달린 형태의 가지방울과, 금속제 봉(棒)이나 벽옥제 관옥이 들어있는 대나무 마디 모양의 통형동기는 모두 흔들면 소리를 내었던 방울 종류이다. 이러한 의기성유물은 대체로 나무자루의 끝에 끼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기성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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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방울 七頭鈴 Pole top with seven bells 부산 복천동 22호 길이 11.3cm

가지방울 사용예 ▶

통형동기 사용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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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형동기筒形銅器 Bronze pole fittings 부산 복천동 38,60호 길이 15.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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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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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손칼 曲刀子 Curved knives 부산 복천동 38호 주곽 길이 28.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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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쇠 有刺利器 Edged tool with barbs 부산 복천동 38호 주곽 길이 30.8cm

미늘쇠는 철판의 양측에 C자형의 미늘을 만들고 자루를 끼울 수 있는 공부를 만든 것으로 2세기부터 나타나 6세기 초까지 주로 분묘에서 출토한다. 초기에 사용된 철판은 판상철부로 두텁고 미늘이 여러 겹 말리는 것이 특징이며 점차 철모, 철검, 도자, 철정 등에도 양측을 오려 감거나 철봉을 고사리모양으로 감고 구멍을 뚫어 끼우기도 한다.

미늘쇠의 정확한 용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판상철부나 철정과 같은 철소재에 장식성을 꾀하고, 매장의례시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용한 상징적인 기물로 생각된다.

|미늘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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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고분군의 장신구 가야의 장신구에는 관과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이 있는데, 금제품 보다는 금동제나 은제, 유리제가 많으며, 수정이나 마노, 호박, 비취와 같은 보석류도 원료로 이용되었다. 대략 4세기대까지는 유리, 옥으로 만든 구슬류가 중심이고, 5세기 후반대를 기점으로 금, 은, 금동 등 귀금속계통의 장신구가 만들어지게 된다.

관은 지배층의 상징적인 기물인데,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모두 3점의 금동관이 출토되었다. 1호에서는 출자형 관식(出字形 冠飾) 2점이, 11호에서는 수지형 관식(樹支形 冠飾) 1점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11호 금동관은 한강 이남지역 출토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복천동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장신구는 유리옥으로 만든 목걸이며, 금, 또는 금동으로 만든 귀걸이는 대부분 달개 없이 작은 고리만 있는 간단한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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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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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 金銅冠 Gilt-bronze Crown 부산 복천동 11호 높이 2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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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耳飾 Golden Earrings 부산 복천동 1호 길이 5.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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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 金銅冠 Gilt-bronze Crown 부산 복천동 1호 높이 1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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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제식옥 琉璃製飾玉 Beads

부산 복천동 46호 길이 2.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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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옥 曲玉 Curved beads 부산 복천동 54호 길이 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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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曲玉附琉璃頸飾 Necklace

부산 복천동 15호 길이 90.2cm 복천동고분군에서 가장 많이 나온 장신구는 유리옥으로 만든 목걸이다.

유리옥은 중국의 영향으로 삼한시대부터 만들어져 삼한시대인들이 장신구의 재료로 널리 이용하다가,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그 제작기법이 더욱 발달 하여 다양한 모양의 구슬이 만들어졌다. 유리를 제작할 때에 철·동·납

·망간 등을 적절히 배합하면 여러 가지 색깔을 낼 수 있는데, 가장 널리 사용된 색채는 청색 또는 남색이다.

그 외에 무색투명한 수정도 다면옥, 곡옥 등의 형태로 많이 출토되었다.

적갈색·황색을 띠는 호박은 주로 대롱옥의 형태로 제작되었고, 붉은색의 마노는 대롱옥이나 12각형의 형태로 가공하여 목걸이, 팔찌, 귀걸이로 이용 되었다.

|목걸이의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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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cheon Museum 복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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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 頸飾 Necklaces 부산 복천동 38호, 51호

188

목걸이 頸飾 Necklaces

부산 복천동 15,53,80,131호

Referen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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