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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교화소 실태

Dalam dokumen 북한 교화소 (Halaman 30-38)

개천교화소는 평안남도 보안국 소속의 교화소 중 하나로, 평안남도 개천시 약수동에 소재하고 있다. 위성사진 <그림Ⅳ-1>에서 보면 북위 39.7083/동경 125.9233에 개천교화소로 추정되는 시설이 위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Ⅳ-1> 위성사진으로 본 개천교화소

빨간 지붕이 보안원 청사이며, 면회실은 정문 옆 접수실에 위치하 고 있다.31) 교화소 인근에는 관리원인 군관 가족들이 사는 살림집이 있다. 개천교화소의 수용 인원에 대해서는 증언이 엇갈린다. 개천교화 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는 증언자 대부분은 3천명 내지 4천 명 정도의 시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형자들의 제한된 생활반경을 고려할 때 교 화소의 전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개천교화소는 일제강 점기에 지어진 매우 낙후된 건물을 사용하고 있으며32), 미상의 시기 에 관리소(정치범 수용소) 시설이 교화소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33)

개천교화소는 남자동과 여자동으로 구분되며, 여자동은 다시 무기노 동교화형을 받은 여성 수형자들이 있는 무기동과 유기노동교화형을 받은 여성 수형자들이 생활하는 유기동으로 구분된다. 유기동 수형자 와 무기동 수형자는 교류 및 접촉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무기노 동교화형을 선고받은 여성 수형자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개천교화소는 중범죄자 수감시설인 것으로 파악된다.34)

개천교화소 여성 수형자의 경우 농산반(농장반), 축산반, 남새반, 과수반, 밭갈이반, 뜨개반 등에 속해 노동을 한다. 뜨개반의 경우 무 기노동교화형을 받은 수형자들과 비법월경 및 인신매매 등 도주의 위 험이 있는 수형자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들은 관리원들 건물 가까이 에 있는 건물 2층에서 수감생활을 하는데, 별도의 작업 공간 없이 감 방 내에서 뜨개질 작업을 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개천교화소 남성 수 형자의 경우 벽돌반, 포화반(신발, 허리띠, 권총집, 군화, 단화 등을 만드는 반)에서 노동을 하거나,35) 교화소 인근의 탄광에서 석탄을 캐

31) 2011년 6월~2014년 3월 수감, NKHR2014000175 2014-10-21.

32) 2014년 7월~2015년 7월 수감, NKHR2015000173 2015-12-01.

33) 도경옥 외, 󰡔북한인권백서 2015󰡕(통일연구원, 2015), p.76.

34) 도경옥 외, 󰡔북한인권백서 2015󰡕(통일연구원, 2015), p.76.

는 작업을 한다.36)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을 취합해 볼 때, 개천교화소는 신발 및 피 복 노동, 뜨개반 노동 등 공산품 생산에 특화된 교화소로 보인다. 중 언자 중 대다수가 비법국경출입죄로 수감된 여성으로, 뜨개반 노동을 했으며, 해외로 수출되는 모자, 재킷, 식탁보 등을 주로 생산했다고 한다.

2. 인권침해 실태

가. 비인도적 구금환경

개천교화소의 비인도적이고 열악한 구금환경은 인간 존엄성을 위한 최소한의 처우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천교화소 수형자들은 콘크리트 바닥에 냉·난방은 전혀 되지 않 는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을 한다.37) 감방 안에 물탱크와 변기가 있으 며, 기본적으로 식수가 부족해 수형자 중 1인이 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38) 수형자들은 5일에 한 번 꼴로 순서를 정해 샤워하며, 비누 및 보금품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므로, 집에서 면회를 오지 않는 경우 생활이 불가능하다.39) 개천교화소에 수감되었던 증언자 모 두가 수형 기간 중 방역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취약한 방역과 비위생적인 시설, 과밀 수용으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2011년 6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수

35) 2009년~2011년 수감, NKHR2013000115 2013-06-11.

36) 2011년~2012년 아버지 수감, NKHR2013000195 2013-10-29.

37) 2009년~2011년 수감, NKHR2013000115 2013-06-11.

38) 2010년 수감, NKHR2013000121 2013-06-25.

39) 2009년~2012년 수감, NKHR2014000124 2014-08-26.

감생활을 한 증언자는 파라티푸스로 인해 하루 십여 명 정도가 사망 한 적이 있다고 했다.40)

수형자들은 제한된 배식으로 영양상태가 매우 열악하다. 2009년부 터 2012년까지 수감생활을 한 증언자는 통강냉이와 콩(20%)을 섞은 주먹밥 한 개가 한 끼였다고 증언했다.41)

“강냉이 옥수수 타갠 거.. 콩, 두부콩 같은 거 몇 알씩 섞어서 통조림 같은, 깡통맥주 1/3 정도 절반 자른 정도로 나왔다. 종 이컵보다 더 작았다. 3cm 정도. 거기에 소금국을 줬다.”

(2009년~2011년 수감, NKHR 2013000115 2013-06-11)

수형자들은 주로 가족 등이 제공하는 면식으로 연명한다. 보통 가 족이 면회를 오면 식량을 한꺼번에 가져오는데, 이를 보관하는 창고가 따로 있다고 한다.42) 면회를 오는 가족이 없는 경우 영양실조로 사망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보통 하루에 3~4명 정도 사망자가 발생하 며, 사망의 원인은 주로 허약(영양실조)이라고 한다.43)

“1달에 한번 씩 [면회를] 갔다. 갈 때마다 속도전 가루를 넣어 준다. 50kg 푼푼이 넣어 준다. 거기에 여러 가지 생필품들도 챙겨야 한다. 영양가 있는 것들을 버무려서 넣어줬다. [...]

50kg을 넣어줬는데 거기에서 30%는 교화소에 바쳐야 한다.

10kg에 3kg은 바쳐야 한다. 바치는 것은 버무리지 않은 맨 가 루만 바쳤다. 면회가 못 오는 경우가 많은데 밖에 가족들이 거 들떠보지 않거나 이혼을 한 경우이다. 그런 사람들은 영양 상 태가 죽기 직전이다. 그래서 교화소에서 30% 떼어서 그런 사

40) 2011년 6월~2014년 3월 수감, NKHR2014000175 2014-10-21.

41) 2009년~2012년 수감, NKHR2013000124 2013-06-25.

42) 2010년~2013년 수감, NKHR2013000156 2013-08-20.

43) 2011년 6월~2014년 3월 수감, NKHR2014000175 2014-10-21.

람들을 먹인다. 면회를 해서 그런 것을 넣을 때는 30%를 바쳐 야만 가능하다.”

(2012년 9월~2012년 11월 배우자 수감, NKHR2015000151 2015-11-17)

개천교화소에는 ‘허약반’과 '병반‘이라고 불리는 위생실(병원)이 있 다. 그러나 실제 이곳에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형자 들은 무리하게 진행되는 노동을 하는 중 부상을 입는다 하더라도, 이 에 필요한 적절한 치료와 약품 제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 나고 있다.

“내가 사고 다음날 병원에 들어가 봐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골 이 다 터진 상태로 붕대도 없이 그냥 방치했다고 했다. 피가 계속 흐르는데 피가 흘러야 한다고 피가 더 흘러야 좋은 거라 고 하면서 그냥 터진 채로 있다는 거다. 의식도 있었다고 했 다. 빨리 수술 좀 해주지 왜 안하냐고 물었더니 선생들이 없다 는 것이다. 언제 오냐고 했더니 평양 갔던 선생들도 오는 게 늦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8일 날 저녁에 죽었다고 한다.”

(2012년 9월~2012년 11월 배우자 수감(중 사망), NKHR2015000151 2015-11-17)

나. 과도한 노동량

개천교화소 수형자들은 기상 후 노동을 시작해 별도의 식사 시간 없이 배급된 양을 먹고 다시 앉아 저녁시간까지 노동을 한다.44) 정해 진 노동시간이 없으며, 수형자들은 하루 부과되는 과제의 양을 수행해 야 한다.45)

44) 2010년 수감, NKHR2013000191 2013-10-17.

45) 2010년 8월 수감, NKHR2014000012 2014-03-04.

“모자 같은 것은 하루에 4~5개, 식탁보는 그램수로 하는데 25g 이상. 자케트는 하루에 두 팔을 한다든지 이틀에 자케트 한 개를 한다든지 하루에 분량이 나온다. 그것을 못하게 되면 밤새도록 때린다. 잘못하면 다시 떠서 다시 해야 한다. 노동이 라는 것이 기차게 고되다.”

(2009년~2012년 수감, NKHR2013000124 2013-06-25)

주어진 작업량에 미달하거나 작업 결과 불량 시 1/2 또는 1/4로의 배급 감축의 급식 처벌이나 구타, 심할 경우 독방처벌 등이 이루어진 다.46)

“못 하면 처음에는 과제를 못 했다고 조금 욕을 먹는다. 그 다 음에 두 번째로 못 하면 급식 처벌이 들어간다. 이만한 밥에서 절반을, 절반밖에 못 먹는다. 그 다음에 그게 조금 더 과도하 면 비판서를 쓰고 독감방에 들어간다. 독감방에 들어가서 3일 내지 일주일씩 있는다.” [...] “머리카락을 가지고 눈썹을 만들 게 됐는데 어떻게 된 건지 다 불량이 됐다. 평양에 올라갔다가 다 내려왔다. 그래서 선생이 화가 나니까 의자 다리 같은 걸로 때렸다.”

(2009년~2011년 수감, NKHR2013000115 2013-06-11)

개천교화소의 경우 퇴소 시 급수에 따라 일정 정도의 노임이 지급 된다고 한다. 1급 노임은 한 달에 50원, 수감된 지 1년 이상이 되는 2급 노임은 한 달 70원 정도이다.47) 그러나 관련 내용을 증언한 사 람을 포함해 형기를 마치고 퇴소한 경우에도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노임에 관한 명확한 규정 없이 자의적으 로 지급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46) 2010년 수감, NKHR2013000121 2013-06-25.

47) 2010년~2013년 수감, NKHR2013000156 2013-08-20.

다. 폭행·처벌·처형

일반적으로 교화소 내에는 임산부가 있을 수 없다고 한다.48) 대부 분 예심 과정에서 사건의 엄중성에 따라, 병원에서 강제로 낙태를 시 키기 때문이다. 간혹 임신 사실을 숨기고 교화소로 들어 온 경우에는 형집행 정지가 이루어지는데, 해산하기 한 달 전에 집으로 보내지며, 출산 후 10달 뒤 다시 교화소로 돌아와야 한다. 한편, 대부분 교화소 내에서의 성폭행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교화소 내에서 선생 (관리자)이 수형자를 성폭행 하는 경우 처벌을 받거나, 강제 제대하게 된다고 한다.49)

그러나 교화소 내에서의 선생(관리자)에 의한 폭행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동 과정에서 과제량 미달이나 불량 등의 이유로 인 해 구타를 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 사례에 관한 증언도 있다.

“할머니가 한분 있었는데 57살이었다. 허약자였는데 뜨개를 잘 못 떠서 선생한테 좀 엄하게 맞았다. 그리고 며칠을 일어나지 못했다. 식성이 되게 좋았는데 밥까지 못 먹을 정도로... 병원 보고 ‘병방’이라고 하는데, 병방에 입원했다. 병방이라는 게 솔 직히 돼지우리보다도 더 못한 곳이니까... 그 병방에서 한 보름 인가 입원해 있었다. 그런데 죽었다고 했다. 내가 그 날 밤에 내 계획을 하느라(뜨개질을 하느라) 잠을 못 잤다. 우리는 불이 밝지 못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까 이만한 전지를 가지고, 알 전지를 머리에다가 두르고 밤새 뜨개를 뜨는데 이상한 소리 가... 우리 바로 옆이 병방이었다. 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으로 죽을 때라고 했다.”

(2009년~2011년 수감, NKHR2013000115 2013-06-11)

48) 2010년 수감, NKHR2013000191 2013-10-17.

49) 2009년~2012년 수감, NKHR2013000124 2013-06-25.

Dalam dokumen 북한 교화소 (Halaman 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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