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인도, 북한이 핵무장 선택을 하게 된 것은 각각 다른 상 황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인도와 분리독립 이후부터 파키스탄 은 줄곧 카슈미르 분쟁으로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파 키스탄은 국가규모로 보나 국가자원 측면에서 보나 인도에 비해 심각 한 열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은 끊임 없이 인도에 대하여 군사적으로 대항해 왔고, 힘의 열세를 보완하기 위하여 강대국의 힘 을 최대한 활용하기도 하였다. 즉, 미국과 동맹관계를 구축하면서 군 사적, 경제적 지원을 모색해 왔고, 적대국인 인도와 전면전을 경험한 바 있는 중국의 힘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중국과 관련하여 파키스탄 은 적대국의 적은 우방국이 될 수 있다는 힘의 역학을 이용하는 기회 를 놓치지 않았다. 중국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획득하 는데 성공하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의 동맹도 중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지원도 파키스탄을 인도로부터 군사적으로 보호하는 데 충분 한 것이 못되었다. 미국과의 동맹은 일찍부터 한계를 드러내었다. 파
키스탄-미국동맹은 단지 공산세력의 남아시아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에 국한되었다. 미국은 인도-파키스탄 분쟁을 결코 공산 세력의 확장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파키스탄 분쟁 발발 시 파키스탄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키스탄은 인도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독자적인 군사준비 를 구축하지 않으면 국가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된 것 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군사적 개입으로 동파키스탄지역을 잃게되는 아픔을 경험한 바 있기도 하다. 파키스탄의 핵무장은 이러 한 군사․안보적 동기가 우선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 다. 인도와 같은 대국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나 독립 이후
줄곧 분쟁지역으로 꼽혀온 카슈미르지역 장악을 위해서도 파키스탄은 인도의 군사력을 무력화 또는 중화시킬 수 있는 군사적 대안을 필요 로 해 왔다. 핵무장 선택은 파키스탄의 이러한 필요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된 것으로 판단된다.
인도의 핵무장 선택도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군사안보의 필요성에 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도는 파키스탄의 군사적 위협 뿐만 아니
라 1964년 핵실험으로 이미 핵국가로 등장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왔다. 독립 이후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의 한차례 대규모 전쟁을 겪었다. 중국의 핵무장이 주변국인 인도의 핵무장으로 연결된 것은 핵무장의 지역 도미노 이론으로 충분 히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도의 핵무장 선택은 지역패권을 지향 하는 우세지위 확보 차원에서 결과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핵무장 으로 첨단 현대 과학기술 수준을 자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대국 을 지향하는 국가들의 필수적인 도구로도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인도는 비동맹국가의 지도국을 자처하면서 이의 지위에 걸맞는 군사 력. 경제력을 갖출 필요성에 직면해 왔다. 인도의 핵 과학기술 발전은 인도의 이러한 정치. 외교적 필요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주요한 선택으로 간주된다.
북한 역시 심각한 안보적 불안을 갖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북한은 분단국의 현실에서 남한, 또는 한․미 연합 군사력을 극복할 수 있는 안보적 대안을 찾아야 했다.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사회주의 주변 강대국인 구 소련 및 중국과 군사동맹관계를 구축하여 한․미연합 군사력의 위협에 대처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군사 동맹의 안보적 담보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즉, 북한은 구 소련의 사회주의 위성국 건설에 대한 반감 또는 불안 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북한
은 사회주의 동맹국들로부터 군사적 원조를 받으면서도 이들 국가들 의 간섭을 배제할 수 있는 ‘주체주의’ 노선을 구축하게 되었다. 북한의 주체주의는 자주적 군사력 건설에 매달리도록 했다. 북한은 무기개발 에 있어서도 자주화 노력을 강화하였다. 북한의 무기체계 대부분이 역설계 모방에 치우쳐 온 것은 북한의 무기개발 자주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인도 군사력 건설의 국내화와 닮 은 점이 많다. 이것은 인도의 비동맹노선이 북한의 ‘주체주의’ 노선과 의 유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소국이면서도 인도와 같이 강대국 노선을 지향하였다. ‘김일성 주의’를 선전하는 책자가 세 계 곳곳에 뿌려졌다는 사실은 북한의 제3세계 지도국 부상에 대한 열 망을 말해준다. 북한외교가 방문외교 보다는 초청외교에 역점을 두면 서 평양이 제3세계 중심 수도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핵무장 선택은 곧 북한의 안보적 필요성에 더
하여 ‘작은 사화주의 강국’으로의 부상을 위해서도 일찍부터 추진되어
온 것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김정일 시대에 와서도 여전히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결코 허장성세 만이 아닐 것이
다. 그들이 주장해오고 있는 ‘군사적 강국’ 건설 완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군사적 수단의 확보를 과시하는 주장일 수가 있다. 그 군사적 수단이 바로 북한의 핵무장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실험을 통한 핵국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 않다. 인도나 파키스탄은 NPT나 IAEA 가입을 거부하면서 결국 핵국가 지위에 진입하였다. 이와는 달리 북한은
IAEA와 NPT에 정식으로 가입(최근 북한 NPT탈퇴 선언)하고 핵사
찰을 받기도 하였으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증 폭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강한 동기를 지니고 있는 국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인도나 파
키스탄의 핵무장 사실에서 핵무장을 위한 강한 동기가 존재하는 국가 에서는 반드시 핵무장이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핵무장 노선을 밟 게될 경우 국제적 제재에 직면하게 되어 심각한 국내적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요소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무장 국 가로 등장하였다. 이는 핵무장을 요구하는 동기가 우선이지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요인들이 결코 우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의 핵무장 동기는 핵무장을 추구하 고 있는 여타 어느 국가 보다 강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 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실험을 통해서 핵국가 로서의 등장을 시위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 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실험을 할 수 있는 마땅한 입지조건을 갖 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또한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당장 핵무장 사실을 알림으로써 적대적으로 대치해온 군사적 위협을 차단 해야 할 절박한 상황도 아니다. 북한은 미국의 직접적인 핵군사 공격 가능성은 현실성이 적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김일성은 “만일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미 제국주의 자들이 핵무기를 쓰지 못합니다.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적아가 서로 맞붙어 돌아가겠는데 어떻게 핵무기를 쓰겠습니까. 적들이 핵무 기를 쓰면 자기편도 죽습니다.”135)라고 피력함으로써 미군의 핵사용 무용론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한미연합군의 직접적인 핵사 용 군사공격에 대비한 억지수단 확보를 위해서 인도, 파키스탄과 같 이 핵무장 시위를 서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의 핵무장이 공개될 경우 북한에게는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것이 많다. 특히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135) 「김일성 저작집 31」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6), p. 68.
동시에 북한은 더 큰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가 있다. 중국이나 러시 아와의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모호성 정책(NCND)을 고수하는 것이 유리한 측면이 많다.
특히 북한이 이러한 핵모호성(NCND) 정책을 필요로 하는 또 다 른 이유가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인식하고 있는 적은 주변국들이 다. 파키스탄은 인도를, 인도는 파키스탄과 중국을 각각 접하고 있다.
이러한 근접된 안보전략환경으로 인하여 인도, 파키스탄이 각각 조잡
하나마 1․2개의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호 「공포의 균
형」이 가능하다. 즉, 미사일과 같은 정밀한 운반수단이 없이도 파키스 탄과 인도의 1․2개 핵폭탄은 상대국의 핵심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앞의 연구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북한의 군사전략환경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하다. 물론 적대국인 남한은 지근 의 거리에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안보적 위협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다.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 한 효율적인 무기체계를 필요로 한다. 미국 본토 또는 주일미군 지역 을 강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시위할 수 있는 정밀 중․장 거리 운반수단, 즉 미사일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 러한 정밀 운반수단이 뒷받침 될 때까지 핵무장 사실을 모호하게 유 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1998년 3단계 로켓시험 발사로 북한은 상당한 정도의 정밀 운반수단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안보상 황이 악화될 경우 핵무장 사실을 선언할 가능성이 훨씬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지난 10월 3~5일 방북한 켈리 미국특사에게 핵무 기 개발 사실을 시인한 것을 두고 단순히 북한의 ‘공갈’성 위협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