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정권의 붕괴 과정은 계획경제체제의 구 조적 모순에서부터 비롯된 심각한 경제난과 이로 인한 생필품 부족 상 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동유럽 체제전환의 국제정치적 환경으로 작용한 고르바쵸프의 개혁도 방치할 수 없는 소 련 경제의 구조적 위기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북한 역시 1990년대 이후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주요 원인이 사회주의 계획경 제의 모순이라는 점에서 동유럽 국가들과 공통점이 있다. 동유럽 국가 들은 체제 말기에 이르러 심각한 생필품 부족 사태를 겪었으나 기아난 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소련 사회주의체제의 해체 시점에서도 빵을 비 롯한 식량은 부족하지만 대체로 정상적으로 공급될 수 있었다는 점에 서 북한과 차이를 보인다. 동유럽의 경우 심각한 경제난에 대한 불만 의 제기와 사회주의 당국의 대처 과정에서 다양한 조치들이 행해졌다 는 특징을 지닌다.
북한의 경우 경제위기가 보다 심각한 형태로 장기간 지속되고 있으 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 개혁 조치들이 마련되고 있지 않다. 북 한은 1990년대 중반 대규모의 아사사태를 경험했으며, 이후에도 구조 적인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7·1조치와 6·28방침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경제회생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의 해소 방식과 개혁 방향의 선정을 둘러싼 노선투쟁도 관측되지 않는다 는 점에서 북한은 동유럽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경우 개혁·개방 과정에서 치열한 이념투 쟁과 갈등을 겪었다. 중국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실패로 천문 학적 인구가 아사했으며, 이는 등소평의 실용주의적 개혁·개방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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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적 동의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소련의 경우 고르바쵸프의 뻬레스 뜨로이카 개혁정책은 성공적 경제개혁을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병행될 필요성을 인지한 결과였다. 고르바쵸프 개혁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개 혁파와 보수파 간 격렬한 이념투쟁 및 갈등이 노정되었으며, 보수파에 의한 반 고르바쵸프 쿠데타가 발생했다. 뻬레스뜨로이카 추진 과정의 갈등은 결국 고르바쵸프와 보수파 모두의 실각과 아울러 소련체제의 해체로 귀결되었다. 이후 러시아는 옐친체제에 의한 급진적 방식의 시 장화 과정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의 경우는 심화된 구조적 경제위기에 도 불구하고 개혁·개방과 관련된 이념투쟁이나 지도부 내의 이견 등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농업분야의 분조제 축소, 기업의 자율성 제고, 그리고 배급제와 시장 가격제 혼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6·28방침은 북한체 제의 특성에 비추어 효과가 의문시된다. 6·28방침은 중국이 1978년부터 시도한 농가생산책임제, 이중가격제, 기업개혁, 그리고 경제특구(Special
Economic Zone: SEZ) 정책과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
과 중국은 상당한 구조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2년의 북한과 1978년 의 중국은 개혁·개방의 출발조건(Initial Condition)이 다르다. 1978년 중 국은 인구의 대부분이 농민인 사회주의 저발전 농업국가였다. 따라서 농 업개혁은 경제개혁의 핵심적 과제였으며, 그 파급효과도 컸다. 농업생산 력의 확대와 농촌과잉인구의 도시로의 이동은 저임노동에 기반한 중국 수출산업의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북한은 도시인구가 60%에 달한다는 점에서 농업국가라기 보다는 사회주의 공업국가에 해당한다. 북한경제문제의 본질은 공업위 기라고 할 수 있으며, 농업 위기의 상당부분은 공업부문으로부터 비롯 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농업위기는 협동농장체제의 비효율성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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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러 비료와 농약, 연료 및 전기 등 공업분야로 부터의 지원이 충분하 지 않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북한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 는 공업부문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효과적인 시장화 정책과 구조조정 이 수반되어야 한다. 공업부문의 회복 없는 농업개혁은 한계가 있다.
관심의 대상인 분조제의 축소도 초기 중국의 조치보다 미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가계단위(Household)로 농업생산단위를 축소함으 로써 농가의 책임생산과 생산물에 대한 개인적 소유관계를 명확히 했 으며, 이는 중국농업생산력의 급속한 향상의 원인이었다. 공동작업에 의존하는 사회주의 농업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생산주체가 독립적인 단위인 개인 또는 가구로 명확하게 구별되어야 하나, 6·28방 침은 이 부분이 분명하지 않다.27
북한의 대외 경제관계 개선 노력도 한계가 있다. 북한의 식량위기는 농업정책의 실패와 아울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대외 경제관계의 축소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정치성 원조가 중 단되고 시장 거래 관계가 정착되면서 북한은 필요물자의 유입에 심각한 한계에 직면했다. 따라서 대외 경제관계 개선은 북한으로서 매우 시급한 현안에 해당한다. 중국은 경제특구와 관련된 신뢰성 있는 조치를 통해 화교자본의 직접투자를 비롯해 국제 자본의 유치에 성공했으며, 이는 중 국 경제성장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북한의 개방 시도는 지극히 제한된 지역에 국한되어 있으며, 신뢰성 없는 조치로 인해 국제 자본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핵문제로 인한 국제적 고 립과 제재는 북한 개방에 근본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경제에 대 한 의존의 심화는 북한의 고육책이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 의
27_조한범, “집권 1년, 김정은 정치의 한계와 개혁·개방 제약요인,” (통일연구원 Online Series CO 12-44, 2012.12.28), p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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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도의 심화는 북한이 중국 경제발전전략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여, 북한의 경제적 자율성 약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28 북한은 최근 곳곳에 경제특구를 지정함으로써 외자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9 그러나 체제 내적 개혁과 시장화가 수반되지 않는 개방이 국제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경제난의 심화는 북한의 사회통제를 위한 자원의 확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은 핵심 지지계층에 대한 특혜와 차별적 배급을 통 해 체제의 결속력을 유지하는 정책을 활용해왔다. 그러나 핵심 지지계 층에 대한 특혜도 국제제재의 지속 및 남북관계 경색으로 외부자원의 유입이 극히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지방 당 간부와 군부대 배급도 제한되고 있으며, 이는 핵심 지지층에 대한 차별적 특혜조치까지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 다.30 남북관계의 경색과 대북제재의 지속은 북한경제위기 해소의 어 려움과 아울러 김정은 체제의 지지기반 및 충성세력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핵심지지층에 대한 특혜 축소와 장기적인 경제난의 지속은 사회 통 제력의 유지를 위한 자원 확보를 어렵게 한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탈 북자의 지속적 증가와 생계형 월경의 일반화는 북한의 사회통제 시스
28_조한범, “집권 1년, 김정은 정치의 한계와 개혁·개방 제약요인,” (통일연구원
Online Series CO 12-44, 2012.12.28), p. 4.
29_연합뉴스, 2013년 11월 13일.
30_2012년 4월의 경우 북한의 도 인민위원회 간부들에 대한 식량공급이 완전 중단
되었으며, 도당 및 도 보안부 간부들도 본인을 제외한 가족에 대해서는 배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보위부를 제외한 모든 지방기관들의 식량 공급이 중단된 상태이며, 일반 군부대도 비상식량공급체제인 1일 공급제를 실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RFA), 2012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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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의 한계를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국경수비대 및 간부들의 부패와 뇌물의 만연 등으로 북한의 통제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 로 보인다. 사회 통제력의 약화는 밑으로부터의 저항을 억제하는데 문 제를 야기한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공안간부들의 피살설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31 주민감시와 통제의 일선에 있는 공안 간부들에 대한 공격은 북한에서 중대 정치범죄로 다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행위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주민들의 박탈감과 분노가 점차 현재화하고 있으며, 구체적 인 행위로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32북한의 구조적 경제위기 심화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개혁·개방정책의 부재는 다양한 차원에서 북한체제의 내구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 변화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