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말하기 평가 채점 변인 연구를 위한 이론적 토대 · 30
2) 말하기 평가 채점 과정의 구성
채점 과정은 측정하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과 상호작용 요소 및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채점 대상에 대한 지각 및 인식, 그리고 점수 결정을 위한 판정 및 최종 점수 결정의 절차로 이루어진다. 말하 기 평가는 채점자의 청각 기관을 통한 음성 지각을 바탕으로 한다는 물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쓰기 평가 연구에서도 채점 과정에 대한 인식의 기본적인 틀이 판정 대상 자료에 대한 채점자의 지각과 세부 정보에 대한 판별과 최종 점수 결정의 구조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Lumley, 2000; 박종임,
2014). 그런데 학습자의 과제 수행 결과를 보면서 채점을 할 수 있는 쓰기 평
가와 달리 말하기 평가는 채점자가 청취한 발화를 기억하면서 채점을 해야 한 다는 차이가 있다.8) 즉 학습자의 과제 수행 내용을 채점 과정 전반에 걸쳐 필
8) 준직접식 평가의 경우에는 녹음 자료를 들으면서 채점을 하기 때문에 반복적인 청취가 가능하지만, 실제적인 말하기 상황의 일반적인 특성상 반복 청취의 기회가 없다는 점과 가시적인 문자 언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음성 언어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재청취를
요할 때마다 직접적으로 확인을 할 수 있는 것과 기억 체계에서 해당 내용을 인출하여 떠올리는 차이로 인하여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차이가 있으며, 청취 정보 인출 과정에서 해당 정보에 대한 인상을 함께 고려할 수 있기 때문에 말 하기 평가의 채점 과정에서는 이러한 모호한 정보나 인상적인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판정과 점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말하기 평가 채 점 과정의 독특성은 청각 기관을 통해 입력된 청취 정보에 대한 인지적 처리 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사람의 머릿속에서 입력된 정보(자극)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반응)에 관한 연 구는 인지심리학에서의 정보처리이론(information processing theory)에서 접근이 이루어져 왔다. 정보처리이론에서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마음이라는 정보처리 체계가 관여하며, 정보처리체계를 구성하는 정보처리구조와 정보처리과정의 작 용 가운데 반응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이정모, 2001: 208). 이러한 인지적 처리 과정과 관련하여 브로드벤트(Broadbent, 1958: 299)는 특정 자극은 남기고 그 밖의 것들은 폐기하는 선택적 주의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자극 → 감각
기관 → 단기
기억 → 선택적
여과기 → 용량 제한
채널 → 출력 조절
기관 → 효과
기 → 반응
↓ ↑
과거 사건의 조건 확률 기억
[그림 Ⅱ-1] 브로드벤트(1958: 299)의 선택적 주의 처리 과정
[그림 Ⅱ-1]에서 감각 기관으로 입력된 자극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감각을 저장하는 단기 기억을 거쳐서 자극의 유형에 따라 선택되어 가용량이 제한적 인 중앙처리기를 통해 기억으로서 저장하거나 출력 조절 기관을 거쳐 반응으 로 나타난다(이정모, 2001: 184). 브로드벤트의 인지적 정보의 처리에 대한 관 점은 자극으로부터 반응이 나타난다고 보는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간과하고 있 는 인지적 처리 과정을 주목하여 제시하였다는 의의가 있으나, 정보에 대한 선
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택적 여과가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는 가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고, 주 목하지 않은 자극도 약한 강도일지라도 기존의 인지 체계와 결부되어 저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앳킨슨과 시프린(Atkinson & Shiffrin, 1968: 17)은 인지적인 정보 처리의 과 정과 관련하여 기억 체계 구조(the structrure of memory system)를 제시하였는 데, 이는 정보를 저장하는 감각기억(sensory register)과 단기기억(short-term
store), 장기기억(long-term store)으로 이루어져있다. 감각기억은 외부로부터 들
어온 정보(자극)가 감각 기관을 통해 수용하면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식별 이 이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감각기억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본격 적인 기억 체계에서의 처리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결정점(decision-point,
Brownell, 2007)이라고도 한다. 작업기억이라고도 부르는 단기기억은 기억 체계
로 수용한 자극을 0∼30초 동안 저장하고, 정보에 대한 통합과 변형이 이루어 진다. 장기기억은 수분에서 평생 동안 유지되는 기억으로서,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나 학습한 것과 관련이 있다([그림 Ⅱ-2] 참조).
자극 → 감각
기억 → 단기
기억 →
← 장기 기억 기억소실
[그림 Ⅱ-2] 앳킨슨과 시프린(1968)의 기억 체계 구조
이러한 인지 과정에 대한 정보처리적 관점은 인간을 인지능동적인 정보 처 리자로 보며, 주어진 자극에 대한 지각과 사고의 과정이 복잡한 자연체계라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이정모, 2001: 214).
인지적인 정보 처리로 이루어지는 말하기 평가의 채점 과정에서 채점자는 청취를 통하여 수험자 발화를 지각하고, 지각한 청취 정보는 기억 체계와 연계 하기 위하여 단기기억을 통해 통합 및 변형하며, 장기기억에 내재된 채점자의 채점 관련 전문성을 반영하여 채점을 수행한다. 채점자는 채점 과정 가운데 평
가를 구성하는 외적인 맥락 요소와 채점자의 내적 요소의 영향을 받으며, 이러 한 요소들은 채점자의 인지적인 정보 처리의 수준 및 양상을 결정한다. 특히 언어 평가에서 수험자나 과제 이외에 채점자의 발화 수준 판정 및 점수 결정 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채점 척도(rating scale)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있 다. 채점자는 채점 척도를 구성하는 평가 준거 및 기준을 학습자 발화를 연계 시킴으로서 최종적인 점수 결정에 이를 수 있다. 인지적 정보 처리 과정으로서 의 말하기 평가 채점 과정은 학습자 수행 정보에 대한 청취 및 판정, 점수 결 정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1) 수행 정보 청취 및 판정
말하기 평가에서 채점은 수험자가 과제 수행을 통해 구성한 응답을 채점자 가 청취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청취는 의도적으로 듣고자 하는 소리를 찾아 서 인식하는 수동적 청취와 자연스럽게 노출된 상황에서 들리는 소리를 인식 하는 자동적인 청취로 나눌 수 있다. 채점자는 채점 과정에서 청취를 통해 수 험자의 발화를 평가를 위한 정보 단위로 분류하거나 연합하는 등의 인지적 처 리를 하는데, 이 때 선택된 정보는 이해와 해석, 평가의 중첩적인 처리를 거친
다(Brownell, 2007: 21). 채점자의 머릿속에 입력된 정보는 선험적인 기억 체계
와 연계하기 위한 변형과 통합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에 대한 결과로서 잠 정적인 판정을 내리게 된다. 말하기 평가 채점 과정에서 응답 청취의 단계는 학습자의 발화에 대한 지각 및 인식, 그리고 인식한 발화에 대한 해석과 평가, 그리고 이후의 발화 정보 처리를 위한 발화 기억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① 발화 지각 및 인식
말하기 평가의 채점 과정에서 채점자는 수험자의 응답을 들으면서 그 소리 가 무엇이며,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앞서 살펴보았던 정 보처리이론에서 감각 기관을 통해 수용한 자극은 모든 발화 가운데 선별된 것 이며, 담화로 구성한 발화에서는 어떠한 단위로 끊어 이를 인식하는지의 차이 가 인식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Anderson, 2010). 이러한 발화 지각과 인식에
는 수험자가 어떻게 말을 하였는지도 영향을 주지만, 채점자가 수험자의 발화 에 나타난 특징을 어떤 범주로 처리하는지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채점자가 수험자의 응답에 나타난 특징을 무엇으로 지각하고 어떻 게 인식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청각 정보 처리에 관한 뇌의 작동을 살펴볼 수 있다.
인간 뇌의 작동은 수천 억 개의 뉴런을 통해 전기적 작용 과정에서 신경전 달 물질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신경 전달 물질의 교환에서 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수용체들과 경로들, 회로, 네트워크, 효과기들이 다양한 신경 활동을 나타낸다(Baars & Gage, 2007: 60-61).
상향식주의
하향적의도적 주의집중
집행부중앙
감각 완 충장 치
의 식적 사건
감 각 입력
음성
작업 기억9)
행 동
계획 반응 기타 출력
소리들 언어
리허설
시공간스케치 패드 학습과
회상 지각적
기억 자전적
기억 언어와
의미 시각
지식 서술적 지식
습관과 운동 저장된 기억, 지식과 기술 기술
[그림 Ⅱ-3] 청각 처리 과정의 기능적 구조 체계(Baars & Gage, 2007: 180)
9) Baars & Gage(2007)에는 ‘working storage’로 되어 있는 용어이며, 번역서에는 ‘작동 저 장’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인지심리학적 접근을 따라 해당 용어를 ‘작업기 억’으로 수정하였다.
[그림 Ⅱ-3]은 청각적인 자극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뇌에서 일어나는 처리 과 정을 보여준다. 소리는 물리적인 실체로서 진동에 의해 발생한 음파가 청각 기 관으로 전달된 것을 말한다. 어떤 환경 속에서 청각 기관에 도달한 소리는 의 도적 혹은 자연적으로 듣거나 들리면서 청취자의 하향식 또는 상향식 주의 집 중 과정을 통하여 감각완충장치(sensory buffer)에 도달하여 일시적으로 저장되 었다가 선택적 주의 집중 과정을 거치면서 이전의 기억 및 경험, 다른 감각과 의 상호작용 속에서 부호화 및 저장, 파지(retention)하는 처리가 이루어진다 (Baars & Gage, 2007: 180).
말하기 평가 과정에서 채점자들은 시험장에서 의식적인 사건으로서 학습자 또는 수험자의 발화를 들으며 평가 실천 과정을 진행한다.10) 그리고 청취 과정 에서 선택적으로 주목한 발화의 요소들에 대한 작동 기억을 거치게 되는데, 이 때 발화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보들은 삭제되거나 또는 장기적으로 보관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인 처리와 관련하여 이전에 형성된 장 기 기억의 인출이 일어날 수 있다. 청취로부터 발생하는 반응은 작동기억에서 일어난 일과 관련하여 나타날 수 있으며, 학습자의 발화, 수행 특징, 수행 특징 에 대한 느낌, 수행과 관련하여 인출한 장·단기 기억 정보, 기타 채점자의 정 서적 표현 등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청취자는 청취 과정에서는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데, 소리 집중을 유 발하는 특성으로는 반복, 변화, 새로움, 강도가 있다(Brownell, 2007: 103). 반복 적으로 들리거나, 먼저 들었던 것과 다른 변화가 나타나거나, 뜻밖의 행동이 나타나거나, 그 강도가 강할 경우에 집중이 이루어지는데, 말하기 평가 과정에 적용해 보면 집중을 통하여 학습자 발화를 꼼꼼히 잘 듣게 한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평가와 무관하거나 관련성이 적은 요소에 집중을 할 경 우에는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집중한 것의 가치를 잘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브라우넬(2007)의 청취에 관한 접근에서 특이한 점은 인지적인 청취에서 기억을 설명하면서 즉각 기억(immediate memory)11)이 청취
10) 청취 과정에서 학습자의 얼굴을 마주하거나 평가 문항이나 채점 기준표 등의 시험 구 성물을 보는 시각적인 입력도 주어질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말하기 평가의 채점자로서 의 본질이 청취자(listener)에 더 가깝다고 보고, 청취 과정으로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한 다.
11) 브라우넬(2007)의 즉각 기억은 인지신경과학에서의 감각 여과 장치(sensory buffers)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