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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레닌주의의 본질과 북한의 맑스-레닌주의

맑스-레닌주의와 사회주의는 동의어에 가깝다. 맑스-레닌주의가 어

떻게 사회주의 그 자체를 의미하는지는 사회주의권에서 해석된 맑스- 레닌주의의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사회주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폐기하고 주체사상으로 대체하였

다. 맑스-레닌주의 없는 사회주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맑스-레닌주의

와 사회주의와의 원초적 동질성을 감안한다면 맑스-레닌주의 없는 사 회주의의 본질에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사회주의의 이론적 토대는 무엇이며, 사회주의와 주체사상과의 관계는 어떠하며,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과의 관계는 어떠한지가 중요한 이론적 관

심이다.

1. 맑스-레닌주의의 본질: 사회주의

잘 알려진 대로 맑스가 혁명가가 된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 적 연구의 결과가 아니다. 그가 혁명을 믿고 주장하게 된 것은 1843 년-1844년 당시의 독일과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 맑스 개인의 경험 때문이었고, 사회주의 혁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맑스주의의 형성에 있어서 사회주의적 사상이 선행했다는 것은 맑 스의 저작이 발표된 순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맑스의 사회주의적 실천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공산당 선언」을 1848년에 발표하 고 나서 이후에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과 비판을 행한

「자본론」을 집필하였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즉, 맑스주의는 사회 주의 사상이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몇몇 천재적 두뇌에 의하여 우연

히 발견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두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 와 부르조아지의 투쟁의 필연적 결과라고 엥겔스는 주장하였다.5) 다 시 말해서 맑스는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졌고, 이러한 이념적 지향 하에서 자본주의를 분석함으로써 사회주의혁명에 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맑스의 사상과 학설의 체계인 맑스주의는 19세기의 3가지 주요 학 문 조류였던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및 프랑스의 사회 주의 사상을 그 원천 또는 구성 부분으로 하고 있다.6) 즉, 마르크스 주의 체계는 헤겔 및 포이에르바흐 등 19세기 고전철학에서 각각 변 증법과 유물론을, 또 영국의 고전경제학 중에서도 특히 리카르도의 경제학으로부터 노동가치설을, 그리고 프랑스의 R. 오웬, F. 프리에, 생시몽 등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사회주의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 통일시킴으로써 형성되었다.

맑스-레닌주의 사상은 칼 맑스(1818-1883)에 의하여 창시되고 그

의 동료인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에 의하여 구체화되고 발 전되었으며 레닌에 의하여 재해석되었고 현실 정치에 적용되었다. 레 닌에 의하여 러시아혁명이 주도되었고, 소련이라는 현실 사회주의체 제가 생성된 이후 중국 등의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되었기 때문 에 맑스주의는 더욱 중요해졌다. 또한 이론적으로도 맑스와 엥겔스 이후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알맞게 맑스주의를 발전시키고 실제에 적 용한 사람이 레닌이다.

레닌은 자기의 저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엥겔스 서거 이후 시기에 과학 특히 자연과학이 달성한 성과들을 개괄하고 맑스주의를 재해석하였다. 이 저서에서 레닌은 맑스주의 철학의 근본문제들, 자연 5) F. 엥겔스, 한철 옮김, 「반뒤링론」 (서울: 이성과 현실, 1989), p. 52.

6) V. I. 레닌, “맑스주의의 세가지 원천과 세가지 구성부분,” 「칼 맑스」

(서울: 도서출판 새날, 1990), p. 72.

과 사회의 유물론적 법칙,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이론들을 발전 시켰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시기는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시기로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착취계 급들이 혁명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계속 반항하면서 낡은 사회를 회복 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사회주 의와 공산주의 건설의 가장 중요한 여건으로 되지 않을 수 없으며 따 라서 맑스주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의 하나를 차지한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맑스의 사상을 발전시켜 프롤레 타리아 독재의 국가 형태로서의 소비에트 정권을 발전시켰으며 노동 계급과 농민과의 동맹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최고 원칙이라고 지적 하였다. 동시에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민주주의의 최고 형태이며 소수 착취자의 이익을 표현하는 부르조아 민주주의와는 반대로 다수

(피착취자)의 이익을 표현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형태라고 주장

했다.

맑스-엥겔스가 발전시킨 맑스주의의 이론적 체계는 당시 유럽의 세

가지 학문 조류를 반영하여 발전되었기 때문에 맑스주의의 학문체계 도 철학(변증법적 유물론 및 역사적 유물론), 정치경제학, 사회주의의 세부문으로 나누어서 이해할 수 있다. 엥겔스가 1878년에 집필한 맑 스주의의 입문서 「반뒤링론」7)에서 맑스주의를 철학, 정치경제학, 사 회주의의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해설하였으며, 레닌도 맑스주의를8) 같 은 방식으로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해설하였으며, 이후 사회주의권에 서 발간된 맑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 교재들도 모두 같은 방식의 체 제를 갖추고 있다. 이들 세부문은 따로 분리되어서 각 영역별로 독자 성을 가질 수도 있지만 세부문이 종합되면, “자본주의 사회가 변화 발

7) F. 엥겔스, 한철 옮김, 「반뒤링론」(서울: 이성과현실, 1989).

8) V. I. 레닌, 「칼 맑스」.

전되어 계급갈등을 통하여 사회주의 사회로 전변되는 것이 불가피하 다”는 명제를 형성한다. 맑스-레닌주의의 세부분을 차례대로 살펴보 자.

가.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 및 역사적 유물론

철학부문은 이전의 관념론을 비판하여 유물론의 이론을 정립하고, 형이상학을 비판하여 변증법의 방법을 개발한 부문이다. 자연과학에 서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분야에 적용하여 발전시킨 것이 역사적 유물론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전 철학에서 신비주의와 숙명론을 주장하는 관 념론과 형이상학을 반대하기 위하여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과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적으로 개작하고 그의 합리적 알맹이를 섭취하여 새로 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시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유물변증법의 제원리를 사회현상에 적용하여 역사적 유물론을 도출함으로써 사회발전이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가를 해명하 고자 하였다. 그들은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독일의 철학과 사상은 모두 관념론으로서, 사회현상을 인과관계로 설명하지 못하고 지배계 급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9) 역사적 유물론이야말로 경제적 토대와 이를 반영한 상부구조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심개념으로 설정하여 사회구조와 사회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 과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유물론과 변증법을 사회역사에 적용한 역사적 유물론은 인간 사회 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생산의 개념에서 출발하였다. 그들은 사람들

9) K. Marx and Frederick Engels, The German Ideology, ed. by C. J.

Arthur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 1970).

이 정치에 종사하고 과학이나 예술에 종사하기 전에 우선 먹고 입어 야 하며 따라서 물질적 재부의 생산이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로 된다 는 사실에서 이론적 착상을 하였다. 생산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생산 력과 생산관계를 도출하고, 생산관계의 개념에서 계급투쟁의 개념을 도출해 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계급투쟁의 개념에 의거하여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보았으며 계급투쟁이 역사발전의 동인이 라고 보았다.10)

그들은 사회의 발전이 우연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 에 따라 한 사회 제도로부터 보다 높은 다른 사회제도로 넘어간다고 주장하였으며, 역사를 창조하는 결정적인 힘은 왕이나 장군이나 정치 가가 아니라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닌은 역사적 유물론을 「과학적 사유의 최대의 전과」라고 불렀다. 역사적 유물론의 창시를 통하여 “역사나 정치에 대 한 견해에서 종래 지배해오던 혼돈과 자의는 종식되고, 어떻게 한 사 회생활 제도로부터 생산력의 장성의 결과로서 보다 더 높은 다른 구 성체가 발전하는가를 보여주는 놀랄만치 완벽하고도 정연한 과학적 이론으로 교체되었다”고 주장하였다.11)

그들은 이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사물이란 하나도 없고 아무리 견 고해 보이는 사물이라 할지라도 실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도 반드시 망할 날이 온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사물이 운 동하고 발전하는 것은 외부의 힘 때문이 아니라 내부 모순과 대립물 의 투쟁 때문이며 따라서 사회의 경우에도 계급들의 투쟁에 의해서만 10) 아이히호른 외 지음, Marxistisch-lenistische Philosophie, 이상훈 외

옮김, 「역사적 유물론」 (서울: 동녘, 1990), p. 205; 빅토르 아파나셰프, 김성환 옮김, 「역사적 유물론」 (서울: 백두, 1988), p. 75.

11) V. I. 레닌, “맑스주의 세가지 원천과 세가지 구성부분”, 「칼 맑스」, p.

12.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자연의 법칙에서 발견한 유물론을 사회에 적용하여, 역사적 연관 속에서 본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불 가피성,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있어서의 그것의 필연성, 따라서 그 멸 망의 불가피성까지도 설명하고자 하였다.

나. 정치경제학

정치경제학 부문은 역사적 유물론의 이론과 방법론에 입각하여 자 본주의의 정치경제를 분석한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영국의 고전정 치경제학에서 연구된 노동가치설에서 이룩된 긍정적인 성과를 참작하 여 잉여가치학설을 내놓았다. 그들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노임이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라는 것, 잉여가치는 노 동자의 노동에 의하여 그의 노동력이 가치 이상으로 창조되어 자본가 들에게 무상으로 점유되는 가치 부분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처음으 로 자본주의사회의 착취의 개념을 제시했으며 노동자와 자본가가 화 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잉여가치설은 종래 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그 자체보다도 주로 그 해독적인 결과에 대한 감정적 비판에 돌려졌기 때문에 아직 해명 되지 않은 채로 있는 이 생산방식의 내적 성격을 ‘폭로’하였던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부르조아 사회의 한편 에서는 거대한 재부가 축적되고 사치와 낭비와 방탕이 증대되는 반면 에 사회의 다른 편에서는 빈궁과 실업과 기아가 증대되어 노자간의 투쟁이 격화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기본 모순을 천명하였는바 그것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점유 의 자본주의적 형태간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레닌은 잉여가치설을 맑스의 경제학이론의 초석이라고 불렀다.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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