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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南京條約으로 시작되는 不平等條約體制가 중국 사회경제에 미 친 영향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조약체 제가 외국인에게 부여한 특권이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불리했다는 것 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특권을 이용 하고자 외국인과 결탁하는 중국인의 등장은 중국 정부를 더욱 곤란하 게 했던 것이다. 이들 중국인은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고 외국인의 명의를 빌려 외국상인으로 행세하는 경우도 빈번하였는데, 특히 심각 하게 제기되었던 것은 외국 국적을 취득하여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특 권을 누리고자 하는 改籍華人의 문제였다.

외국인에게 부여된 특권을 누리는 개적화인의 경제활동은 釐金 등 內地通過稅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지방정부와 정상적으로 내지통과세 를 납부하는 순수한 지역상인의 利權構造에 타격을 주게 되었던 것이 다. 따라서 개적화인과 지방관 그리고 지역상인과의 마찰은 嗎甘保 사 건에서 볼 수 있듯이 언제나 외교적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소지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여론에서는 개적화인이 중국의 법률질 서를 무너뜨리고 나아가 중국의 주권까지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 로 부각시켰다.

이에 청조는 중국인이면서도 중국의 법률로 통제할 수 없는 개적화 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개적화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중국의 의관복식을 하고 중국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으로 간주해서 중 국의 법률로 관할한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개적화인의 문제는 종종 외교문제로 비화되는 등 간단하지 많은 않았다. 개적화인을 둘러싼 문

淸末 改籍華人과 淸朝 政府의 對應 (鄭址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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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빈번할수록 해당국 영사관 역시 일일이 대응하는데 적지 않은 곤 란을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조는 개적화인의 문제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한편, 중국인의 개적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고려하였다. 예를 들면, 1905년(光 緖31년) 駐日公使 楊樞는 “外洋 各埠 華商이 근래 洋籍으로 변경하는 일이 점차로 증가하여 그 원인을 조사해 보니 축적한 재산을 本籍의 紳民으로부터 강탈당하거나 혹은 화물을 운반하는데 각지의 關所에서 곤경에 처하는 일이 많아 外人의 보호를 받고자 洋籍에 들어간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에 商部는 각지의 지방관에게 명령을 내려 “이들 商 民을 절실히 보호”하고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상민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지극히 깊고 간절해서 華商이 각각 본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한 다면 어찌 조국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78)라고 언급하고 있다. 개적화 인을 단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들을 보호함으로써 개 적화인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청조는 개적화인의 귀속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大淸國籍條 例’를 제정 반포하게 되었다. ‘대청국적조례’는 중국 최초의 국적법으로 서 의미가 크지만, 특히 개적화인 문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적조례의 시행세칙 전부가 개적화인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국적법에 의 해 정식으로 出籍 수속을 밟은 경우에는 국적 이탈을 승인하게 되었지 만, 반대로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경우에는 중국 국적을 이탈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함으로써 개적화인의 귀속문제를 법적으로 명시하였다 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大淸國籍條例’는 비록 청조의 멸망과 함께 유 명무실해 졌지만, 청조가 최초로 국민의 경계를 확정하려는 의지를 법 적으로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 다.

78) 商部咨南洋示禁華人改入洋籍文 (北洋公牘類纂續編卷14, 臺北: 文海出版 社, 1987影印), p.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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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文摘要)

淸末改籍華人與淸朝政府的對應

鄭 址 鎬

本文主要論述清末“華人”圍繞改籍而產生的問題, 以及通過研究清政府 對此問題的對策, 展望清朝嚮往的國民國家之路上的真實一面. 儘管從清末 簽訂南京條約之後開始形成的不平等條約體制, 對中國社會經濟所產生的 影響還有待進一步論證,但不可否認的是,從中國的立場來看,這種賦予外國 人特殊權利的體制是極其有害於中國的. 其中, 尤其以爲了利用外人特權, 而勾結外人之本國人的出現是最為突出. 他們通過金錢攻勢,假借外人名義, 並從而行外商之事,而且此類現象頻頻不絕. 其中, 尤其以通過獲取外國國 籍, 而行外人特權之改籍華人的問題最甚.

享受外人特權之改籍華人的經濟活動, 對以釐金等內地通過稅為主要財 源的地方政府, 以及正常繳納內地通過稅的普通地方商人來說, 是一種非常 大的經濟打擊. 因此, 改籍華人跟地方官員與地方商人之間的摩擦, 如嗎甘 保事件所示, 時時刻刻交織在外交紛爭當中. 以至於當時輿論把它刻畫成改 籍華人推翻中國法律秩序, 並由此威脅中國主權的重大問題.

因此, 清朝爲了解決同為中國人, 但又不受法律制約的改籍華人問題, 推 行了無論國籍如何, 只要在中國居住, 同時又著華人服飾的話, 就認定為中 國人的政策, 那麼遵守中國之法也理所必然. 但是, 清朝未具備從根本上解 決改籍華人問題的詳細法規,所以在具體解決問題之時, 也無從保證其原則 的一貫性. 對此, 直接面對改籍華人問題的通商口岸官員, 以及在外使館等 指出, 如果中央政府不儘快推出解決此問題的相關方案, 它將會威脅到國家 主權, 所以請務必儘快制定并推行大清之國籍法. 改藉者或侵害中國主權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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