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說詮眞은 黃伯祿 신부가 쓴 反迷信著作이다. 集說詮眞 제1-4 책과 集說詮眞提要는 1879년에, 集說詮眞續編은 1880년에 간행 되었다. 集說詮眞은 초판이 나온 지 약 45년 후인 1924년에 이르러
益世報 ‘宗敎叢談’에 약 3년 동안 연재되면서 세상에 더욱 널리 알 려지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 청말 중국 천주교의 미신에 대한 인식, 미신의 생성과 정착 과정, 존재 이유와 방지 대책 등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集說詮眞의 저술 동기와 목적은 무엇인가. 集說詮眞의 서 문과 발문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우주 만물의 창조자요 주재자는 오직 上主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고 자 하는 사람은 上主의 존재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처음
64) 朱海濱, 「民間信仰-中國最重要的宗教傳統」 (江漢論壇 2009-3), p.70.
에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上主를 경외하고 공경했다. 그러나 나중에 유교ㆍ불교ㆍ도교에 의해 異說이 분분하게 제기되면서 사람들 이 진리를 분별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저자인 黃伯祿 신부는 진 리를 가리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이설들을 모아 조목조목 그 진위를 밝힘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허망한 길을 버리고 참 진리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려고 했다.
둘째, 集說詮眞은 미신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그 내용은 대략 5가 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미신 행위는 천주교의 교리에 위배된다. 둘 째, 미신은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면을 포함하고 있다. 셋째, 미신의 내용 중에는 역사적 사실에 상충되거나 혹은 이전부터 前人에 의해 비 판을 받아온 사례가 있다. 넷째, 미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경제적 이 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위를 자행했다. 다섯째, 미신은 비과학적인 면이 있다. 黃伯祿 신부는 이러한 점들을 비판하면서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했다.
셋째, 미신은 어떻게 생성되는가. 黃伯祿 신부는 張仙에 대하여 서 술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활을 문 에 걸어 놓는 습관이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그러한 그림을 보고 祈子 神을 연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輾轉附會하다가 실제로 姓名을 갖게 되 었다. 이 설은 그간의 사정을 가장 잘 통찰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미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설명해 준다. 먼저 어떤 신을 연상하 도록 하는 소재가 있고, 호사가들이 그 내용을 부풀려서 날조하고, 이 리저리 전해지고 더욱 견강부회되는 과정에서 신이 이름을 갖게 되며,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음으로써 기정사실로 정착된다는 것이다.
넷째, 미신이 존재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인 이유이다. 미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斂財肥己’ 즉 사람들의 재물 을 갈취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미신을 조장하고 퍼뜨렸기 때 문이다. 전국시기 魏나라 鄴令이었던 西門豹가 이른바 ‘河伯娶婦’의 미 신을 타파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당시 鄴縣의 三老, 廷掾 등은 백 성들로부터 매년 수백 만 전을 거두어 그 중 이삼십 만 전만 쓰고 나
머지는 祝巫들과 함께 나누어 가졌다. 淸나라 湯斌이 올린 「湯文正公 斌奏毀淫祠疏」를 보면 蘇州 지방에도 淫祠의 풍속이 있었다. 그 이유 는 妖邪한 巫覡이 怪誕한 說로 愚民을 속이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착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중국 四川省 都江堰市에 있는 都江堰, 즉 두장댐은 현재 세계 자연 유산이다. 이 댐은 秦 昭王 때 李冰 父子가 처음 만들었다. 蜀人들이 李冰 父子의 공로를 칭송하여 해마다 제사에 사용하는 羊이 4만 마리 가 넘었다. 그리고 양을 사서 제사를 지내는데 새끼 딸린 양도 감히 집에 남겨둘 수 없었다. 게다가 永康軍은 羊稅에 의지하여 군의 재정 을 충당했다고 한다. 이것은 이른바 미신이 지방 관청의 세수를 증대 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말이다.
다섯째, 미신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미신에서 벗어나 올바른 신앙관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엄금하는 조서를 내리 고 지방관으로 하여금 각별히 감시하게 하여 淫祠를 부흥하려는 자가 있으면 엄격히 治罪해야 한다. 승려와 도사를 良民으로 환속시키고 佛 寺와 道觀을 民家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미신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대체 생계 수단을 마련하고 그들의 전업을 유도하는 것이다.
[부록] 集說詮眞 내용 요지
集說詮眞 第1-4冊과 集說詮眞續編에 실려 있는 총 85조목의 요지를 변론문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각 조목의 서술 분량은 목차 옆의 괄 호 안에 張65) 단위로 표시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각 문단의 끝에는 [ ] 안에 변론 요지의 키워드를 표기했다.
65) 예를 들어 「太極」 조목을 보면 괄호 안에 11張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목 판 인쇄로 말하면 목판에 새긴 글자판 1張을 말한다. 책을 만들 때는 이것을 반으로 접어서 제본을 한다. 따라서 1張은 페이지로 환산하면 두 쪽(2페이지) 이 된다.
集說詮眞 第1冊 (1) 太極 (11張)
음양으로 분화되기 전의 태극은 混一한 氣이며, 氣는 본래 ‘頑質’66)이다. 頑 質은 스스로 움직이거나 멈출 수 없다. 태극이 움직이거나 멈추는 것은 따로 그렇게 만드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조물주이다. 태극이 조물주 에 의해 움직이고 멈추는 것이라면 태극은 조물주가 아니다. 태극이 음양의 氣라면 그것은 또한 천지의 元質이다. 사물의 원질은 그 사물의 창조자가 아 니다. 태극이 만물의 원질이라면 태극은 조물주가 아니다.67)[교리에 저촉] 孔 子가 말한 태극은 儒家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조물주로서의 태극이 아니다. 經 文을 살펴보면 조물주를 지칭할 때는 ‘天’ 혹은 ‘上帝’라고 했다.68)[曲解]
(2) 孔子 (17張)
공자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특별하다고 해도 그 역시 生死가 있는 사람 으로 上主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의 뛰어난 자질은 모두 上主가 부여한 것 이다. 공자도 그 근원[所自]을 잊지 않고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셨다.”고 했 다. 공자를 공경하는 자는 먼저 공자를 지은 上主를 공경해야 한다.69)[교리에 저촉] 日知錄을 보면 옛날 사람들은 매사에 반드시 창시자를 제사했다. 농 부는 先農을, 양잠인은 先蠶을, 학자는 先師를 제사했다. 공자는 堯舜을 祖述 하고 文王과 武王을 본받음으로써 고대 帝王의 道를 선양한 공이 있다. 그러 므로 그를 先師로 존경하면 가장 합당할 것이다.70)[교리에 저촉] 공자의 가르 침은 克己復禮, 三綱五倫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 만으로는 아직 사람의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은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지은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上主이 다. 따라서 우리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이 있듯이, 우리는 上主에 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信, 望, 愛, 敬, 遵이다. 공자는 비
66) 頑質: 우둔한 자질을 말한다. 이것은 사람이 영혼이 있어서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 것과 달리 물질은 覺魂만 있어서 인식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67) 集說詮眞 第1冊, ff.5b-6a.
68) 集說詮眞 第1冊, f.10a.
69) 集說詮眞 第1冊, ff.25a-25b.
70) 集說詮眞 第1冊, ff.26b-27a.
록 敬畏昭事, 살신성인의 교훈이 있으나, 이 다섯 가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세 상에서 공자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다행히 다시 上主 聖道의 경전을 온 마음 으로 체득하여, 사람이 도대체 어디서 와서 결국 어디로 가는지 그 근본을 바 로 알게 되기 바란다.71)[교리에 저촉]
(3) 老君 (14張)
노자는 道氣의 化身이라고 한다. 그러나 道는 理이고, 理는 사람에게 의지 하여 행해지는 것이며, 自立體가 아니다. 또 氣는 올라가면 뜨고, 내려오면 엉 기는 有體無靈의 사물이다. 이러한 道氣는 化身할 수 없다.72)[교리에 저촉]
노자의 어머니 玉女는 80세의 처녀로 태양의 彈丸을 삼키고 잉태하여 해의 정 기인 색 구슬을 먹고 분만했다고 한다. 立說의 不經함이 이보다 심한 것은 없 다.73)[불합리] 노자는 하늘을 날아 어디든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徐 甲을 종으로 삼아 靑牛를 타고 관문을 지날 이유가 없다. 허망한 설은 스스로 矛盾되어 공격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진다.74)[모순] 송나라의 范祖禹는 말한 다. 당 현종이 노자를 숭상하고 신선을 좋아하자 大臣들은 아첨하고 小臣들은 기만했다. 또 황제가 미혹되어 상을 주어 권하니 소인들이 모두 간사함을 다 투었다.75) 宋 眞宗이 唐 玄宗을 본받아 노자를 제사하려 하자 孫奭이 간했다.
“당 현종의 실패한 행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신하들이 모두 알고 있으나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속히 깨닫기 바란다.”76)[前人의 비판] 路史를 보면 노자는 周代 사람으로 李氏의 아들이며 守藏史의 벼슬을 지냈다. 神이 아니다.
史記를 보면 노자는 정직하고 사심이 없는 사람으로 隱君子라고 할 수 있 다. 따라서 그를 道氣가 化身한 帝師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77)[역사적 사실 과 상충]
(4) 釋迦佛 (14張)
석가모니가 태어나자 두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그를 목욕시켰다. 죽어서 염을 한 후에 두 발을 관 밖으로 내어 제자들에게 보였고, 관이 저절로 불타
71) 集說詮眞 第1冊, ff.26b-28b.
72) 集說詮眞 第1冊, ff.33b-34a.
73) 集說詮眞 第1冊, f.34a.
74) 集說詮眞 第1冊, f.34b.
75) 集說詮眞 第1冊, f.37b.
76) 集說詮眞 第1冊, f.38a.
77) 集說詮眞 第1冊, ff.41b-42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