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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인권개선을 위하여 각 국이 행사하는 외교적 노력이 어 떻게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목 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인권외교의 사례들을 분석하였다

.

특히, 유럽연합과 미국의 제3세계 및 북한에 대한 인권외 교를 중심으로 그들이 외교정책의 하나로 인권외교를 펼칠 때, 과연 어떠한 배경에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떠한 수단과 방식으로 접근 하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변수들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였다.

가. 헬싱키 프로세스

1972

년 11월에 협의를 시작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Conference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67는 유럽에서 사회주의

67_소련 및 동구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된 이후 1995년 1월 1일부터 “유럽안보협력 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로 명칭을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사이에 힘의 균형을 유지했던 조직이었다. 물 론 이 조직에 참여한 양 진영의 정치적 목적에는 차이가 있었다. 우선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해서 구소련은 유럽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 하고, 동구권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며, 독일의 분단체제를 고착화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서구 국가들을 대표해서 미국 은 동구권의 자유화를 유도하여 사회주의권의 내적인 와해를 가져오 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양 진영은 약 3년여 간의 기나긴 정치적 협상을 통해 드디어

1975년 8월 1일에 헬싱키 선언을 이끌어냈고 그동안 진행시킨 논의

들을 종합적으로 체계화시켰다. 선언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68 우선 제1부는 안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총 10개의 원칙을 명 시하였다. 제2부는 경제협력을 다룬 것이며, 제3부는 인도주의적 분 야로 인권, 인적교류, 정보교환, 문화와 교육 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에서 소련은 제1부와 제2부의 안보 및 경제협력과 과학기술의 협력에 협상력을 집중하였다. 인권조항이 삽 입되는 것을 반대하긴 하였지만 대신 내정불간섭과 경제 및 기술협력 이라는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69 반면,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제1부 의 제7원칙인 인권존중과 기본자유의 존중(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

변경하였다.

68_실제로는 선언의 구성이 제4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4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보다는 향후 조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재검토 회의와 중간전문가모임 등이 계속해서 개최될 수 있었다.

69_소련의 입장에서 인권의제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최종 협정문에 사인했던 요인에 대하여 김수암(2009, 49-50)은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김수암, “헬싱키 최종의정서의 의의와 특징: 인권의제를 중심으로,” 󰡔평화연 구󰡕, 제17권 1호 (한국경찰학회보, 2009), pp. 49-50.

포함

)과 제3부의 인적교류 및 정보교류와 협력 부분에서 동구권의 동

의를 얻어내는 데 만족하였고 결국은 양 진영 사이의 정치적 타협에 이르게 되었다.70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서구 국가들이 추구했던 정치적 목적 을 달성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

71즉, 헬싱키 선언 또는 협정에 근거하여 서구 국가들은 동구권 사회주의국가의 개방과 인권개선을 촉구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들 사회주의국가의 국민들은 외부세계와 의 접촉기회를 확대하였고 이것은 시민사회의 형성과 인권개선을 가 져와 드디어 1980년대 후반에 들어 체제변화의 전기를 맞이하였다.72 유럽안보협력회의는 다자주의 원칙의 체제를 갖춘 기구로서 보다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기 구는 1972년부터 시작하여 사회주의국가의 개방과 체제이행을 가져 왔으며 1990년 이후에는 이들 국가들이 민주화와 자본주의체제를 안 정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 기구의 영속성 의 근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유럽안보협력회의 에서는 경제‧안보협력을 인권문제와 연계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상호 이익이 교차함으로 인해 함부로 협정 내용을 위반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즉, 동구 사회주의

70_이장희, “Helsinki 人權規定이 分斷國家에 주는 意味,” 󰡔통일문제연구󰡕, 제1권 3호 (평화문제연구소, 1989), p. 64; 이금순‧김수암, 󰡔개혁·개방과정에서 인권의제:

이론과 실제󰡕 (서울: 통일연구원, 2006), p. 67.

71_헬게슨(Helgesen 1990)은 인도주의적 원칙을 담고 있는 헬싱키 선언 및 이의 지 속적인 실천으로 인하여 결국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민주화로의 이행이 가능했다 고 주장한다. Jan Helgesen, “Between Helsinkis-and Beyond? Human Rights in the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in Allan Rosas and Jan Helgesen (eds.), Human Rights in a Changing East-West Perspective (London: Printer Publisher, 1990).

72_이금순‧김수암, 󰡔개혁·개방과정에서 인권의제: 이론과 실제󰡕, p. 76.

국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안보와 경제협력에서 얻는 이득을 지키 기 위하여 인권문제를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외부 세계와의 교류와 접촉의 기회를 확대하고 인권문제에 대한 서구 국가 들의 관여와 비판을 수용하여 국내적으로 국민들의 인권개선에 노력 하였다. 결국 내부적으로 국민들의 인권의식이 고취되고 시민사회의 성장을 바탕으로 아래로부터의 인권개선 요구가 증가73하면서 사회 주의국가들의 정당성 위기가 초래되고 결국 체제변화를 맞이하게 되 었다.

또한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는 인권에 대한 양 진영의 현격한 차이 를 인정한 가운데 보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과정을 통하여 사회주 의국가내의 인권개선에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협정문에는 인권개선 을 위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일반적 인 수준에서 그리고 외부와의 점진적인 접촉의 기회를 확대하는 방 안만을 제시했을 뿐인데, 실제로 점진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 진 인적교류의 결과는 인권개선에 대한 양 진영의 합의를 유도할 수 있었다. 더욱이 헬싱키 의정서에서 강조한 인권의 중요성으로 인해 유럽안보협력회의의 모든 회원국들이 인권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 하고 각 국의 인권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그 당시 많은 동구 사회주의국가에서 자행된 인권유린의 문제에 대 한 비판이 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이들 국가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74

73_이금순‧김수암(2006, 77-81)에 따르면 헬싱키 협약으로 인해 동구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시민사회 스스로가 인권개선의 필요성을 담은 협정 내용을 근거로 자국 내의 인권문제를 국제화하면서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율성을 찾아가고 있 었다. 이금순‧김수암, 󰡔개혁‧개방과정에서 인권의제: 이론과 실제󰡕, p. 77-81.

74_박채복, “유럽연합의 대북한 인권정책,” 󰡔한·독사회과학논총󰡕, 제16권 1호 (한독

오랫동안 지속적인 관계를 가져온 양 진영에서 상호 간의 신뢰구 조가 정착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멀리하고 공동으로 협력하려는 자세를 견지할 수 있었던 것도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나. 유럽의 대미얀마 인권외교75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게 높은 인권의식과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가입희망국들에게도 인권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함으로써 내적 으로 매우 향상된 인권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 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제3세계 국가와 북한과 같은 전제주의적 사회주의국가들의 인권개선을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 두 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경제적 통합의 목적을 가지고 출발 하였지만 논의과정에서 정치적 통합의 필요성을 공감하였고 결국

1992년의 마스트리트 조약을 체결하면서 정치적으로도 통합의 길을

걷게 되었다

.

이들은 정치적 통합을 이루면서 작성한 공동외교안보정 책의 주요 내용에 세계 각국의 인권보호와 인간의 기본적 자유 신장 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포함하였다

.

그 결과 유럽연합의 대외 외교 정책의 중심에는 항상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고 있 다. 특히, 제3세계 국가와의 외교관계에 있어서 유럽연합은 일관되게 이들 지역에서 개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도록 노력하여

사회과학회, 2006), p. 145.

75_이 부분은 오영달(2005)의 논문을 많이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오영달, “유럽연합 의 對 미얀마 인권외교정책과 북한인권에 관한 그 함의,” 󰡔평화연구󰡕, 제13권 2호 (한국경찰학회보, 2005).

왔다. 유럽연합의 대미얀마 인권외교는 이러한 정치적‧역사적 맥락 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은 아시아와의 경제적 협력관계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 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 만 1990년대 말에 미얀마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가입하고 자연스 럽게 양 진영의 경제교류 기구에 참여하게 되자 유럽연합은 미얀마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문제삼아76 미얀마의 참여를 반대하였다. 특히, 수 지여사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면서 유럽연합의 대미얀마에 대한 원조 금지 및 인적교류의 단절, 무역특혜의 철회와 같은 강경제재 조치가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유럽연합의 대미얀마 강경제재 조치는 계속 되고 있으며 자체적인 제재조치와는 별도로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결 의안 제출과 채택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정권에 의한 인권탄압의 상황은 크 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유럽연합의 국제인권 증진이라 는 목적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가 없는 실 정이다. 이것은 국제관계 속에서 한 국가의 인권문제를 개선하는 일 은 일부 국가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공조를 형성하고 반인권에 대한 지속적이며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는 방법이 필요하며 미얀마를 국제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각 종 유인책을 사용 하는 것도 필요하다.

76_미얀마는 군부 독재체제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는 야당 정치인을 오랫동안 가택연금시키고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강제노동 및 수용소를 운영하는 등 인권상 황이 열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