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사회문화 분야 인적 교류

Ⅵ 1. 개황과 추이

가. 전반적 추세

(1) 교류추이 개관

중국과 북한의 인적 교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른 속도로 증가하 고 있다. 중국 국가여유국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 은 2009년까지 10만 명 선을 유지해 오다 2010년부터 연간 15~20%

의 속도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3년을 기준으로 보면, 북한 주민의 중국 방문은 취업목적이 전체

의 43.7%인 9만 명으로 전년에 비해 1만 명 넘게 증가했으며, 회의 참 석이나 사업상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은 5만 5,000명(26.6%)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친지 방문은 200명에서 300명(0.15%)으로 늘었으나 관광목적으로 방문한 북한 주민은 3,000명(1.5%)으로 전년 4,500명

(2.5%)에 비해 1,500명이 오히려 줄었다. 취업과 비즈니스 목적의 중

국 방문이 전체의 70.3%를 차지하는 반면 관광이나 친지 방문, 문화예 술 등 사회문화 분야의 인적 교류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다.30

한편, 중국 쪽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 북한을 방문한 중국인 수는 2009년 9만 6,000명, 2010년 13만 1,000명, 2011년 19만 4,000명, 2012년 23만 7,000명 등으로 최근 3년 사이에 2.5배 증가하는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인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대체로 관광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2년 23만 명의 북한 방문 중국인 가운데

30_󰡔노컷뉴스󰡕, 2014년 1월 24일, <http://www.nocutnews.co.kr/news/1173154>

(검색일: 2014.5.23).

약 25%에 이르는 5만 1,000~6만 1,000명이 관광목적으로 북한을 방 문한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12년에 처음으로 중국에서 항공편으로 북한의 금강산과 평양, 개성을 방문하는 패키지가 시작됨으로써 관광 교류가 활기를 띠었고, 중국의 옌볜(7월)과 상하이(7월), 다롄(10월) 지역의 여행사들도 항공편으로 평양과 금강산을 여행하는 신상품을 개발하여 관광목적의 인적 교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관광목적 의 중국인 북한 방문은 급증하는 추세이며 북한도 외화 확보를 위해 중국과의 관광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어 중국인 북한 관광객의 증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중 간 인적 교류 가운데 사회문화 분야의 인적 교류 규모를 파악 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국가여유국이 분류하고 있는 통계는 회의참석 및 사업, 취업, 친인척 방문, 관광 및 레저, 기타로 구분되어 있고 사회 문화 분야를 별도로 분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문화 교류의 양적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문화 분야는 예술, 교육 및 학술, 체육, 보건의료, 관광, 사회단체, 언론출판 등으로 정치 및 경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을 포함한다. 중국인의 북한 관광객 수는 늘고 있지만 북한 주민의 중국 친지 방문이나 관광·레저 목적의 중국 방문은 양적 규모에서 크지 않은 편이다. 북한 주민의 중국 친인 척 방문 비중은 0.15%로 매우 작은 반면, 중국인의 북한 친인척 방문 은 매우 활발하다. 관광 및 레저를 위한 방문도 북한 주민은 1.5% 밖 에 되지 않은 반면 중국인은 25%를 차지한다. 친인척 방문이나 관광 및 레저는 북한 쪽에서 중국을 방문하는 경우는 적지만 중국 쪽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북한-중국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공식 교류는 ‘기타’로 분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25%

를 차지하는 ‘기타’ 항목에 북한의 예술단, 대학, 사회단체, 언론 출판

분야의 중국 방문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문화 분야의 인적 교류는 중국 쪽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형태의 교 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북·중 간 인적 교류는 공식적으로 드러난 수치에 못지않게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비공식 인적 왕래도 있다. 공식 통계는 북‧중 간 인적 교류를 연간 50만 명으로 파악하고 있는 반면, 중국 현지의 평가에 의 하면 단둥지역으로 연간 140만 명(복수 방문 포함), 조선족 자치구 지

역으로 60만 명(복수 방문 포함) 정도로 연간 총 200만 명이 중국과

북한을 왕래하는 것으로 추산한다.31물론 인적 왕래 가운데 90~95%

가 중국 쪽에서 북한으로 가는 것이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사 람들은 많지 않다. 북‧중 변경지역을 방문하는 조건으로 왕래를 하는 경우에는 중앙정부의 공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공식 통계 에는 친인척 방문 비중이 낮게 되어 있지만 비공식 인적 왕래 가운데 는 친척 방문 비율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친인척 방문을 소규모 장사 목적과 병행하여 진행하기 때문에 사회문화 교류와 경제 교류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32 중국 동북지방의 200만 조선족 가운데 조 선족 자치주에 거주하는 86만 조선족의 경우 90% 정도가 북한에 친척 을 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33 이들은 체류 기간 동안 재정을 보 증할 친척의 초청만 있으면 합법적으로 중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이처럼 북‧중 간 사회문화 인적 교류에는 공식 통계에

31_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정부 상무국 및 통상구 사무실 관계자 면담(2007.10.29). 식 통계로 드러난 수치는 중국 중앙정부가 집계한 자료이며 조선족자치구에서는 지 방정부 차원의 통계를 별도로 갖고 있다.

32_중국 옌볜대학의 북한경제 전문가 6인 인터뷰(2007.10.29). 그러나 중국 조선족 자치 주정부 상무국은 공식무역 이외의 친척 방문으로 가져가는 물품의 양은 극소량이라 고 평가했다. 상무국 관계자 인터뷰(2007.10.29).

33_중국 옌볜대학 북한 전문 학자들의 견해 (2007.10.29, 중국 옌지시).

잡히지 않는 교류와 탈법적으로 진행되는 교류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 숫자만으로 인적 교류를 평가하는 것은 실제로 진행되는 북‧중 인적 교류를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북‧중 양국 간 문화 교류는 양국의 정치 및 문화 행사를 기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북한과 중국은 1949년 10월 6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59년 2월 21일 문화협정을 체결하였 다. 1953년 11월에 체결한 ‘조‧중 경제 및 문화협조에 관한 협정체결’, 1958년 9월에 결성한 ‘조·중친선협회’와 ‘중‧조우호협회’, 1959년 2월 체결한 ‘조·중 두 나라 정부 사이의 문화협조에 관한 협정’, 1961년 7월 에 맺은 ‘조·중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등의 기념일에 북‧

중 양국은 문화예술인과 사회단체 지도자, 교육자, 체육인, 출판인 교 류를 정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1959년 2월 21일 양국이 문화협정을 체결한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사이의 문화 교류에 관한 집행계획서”를 매 3년마다 정기적으로 조인 하고 이 계획서에 따라 매년 10여 개의 대표단과 예술단을 파견하고 있다. 특히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은 북‧중 간 예술단체들이 가장 큰 규모로 교류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북한 정권수립일(9·9)과 조국해 방전쟁승리기념일(7·27)에는 예술공연과 전시회, 사진전 등 각종 문화 행사가 진행된다.

탈냉전기 북·중 양국은 혈맹관계를 탈피하여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 지하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양국 정상의 빈번한 상호 방문 등 인적 유대관계의 복원으로 양국 간 상호 협력채널이 고위층에 서부터 복원·가동되고 있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양국 간 사회문화 교류가 냉각상태로 접어들었다가 1998년 9월 김정 일 정권의 공식 출범과 1999년 6월 김영남의 중국 방문으로 다시 회복

되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2001년 1월 중국을 방문한 이후 경제개 발을 목표로 활발한 인적 교류를 추진하였으며, 2004년 4월 김정일 국 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2005년 3월 박봉주 북한 총리의 중국 방문 및

‘투자장려·보호 협정’ 체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2005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순(南巡) 방중(2006년 1월),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중(2006년 3월)이 이어지면서 사회문화 교류가 급증하 였다. 2005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후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북·중관계 가 새로운 시대(新時期), 새로운 형세(新形勢), 새로운 수준(新水平)

의 3신(三新) 국면을 맞고 있다며 전면적인 상호 경제무역 협력안을

제시하였고, 이에 힘입어 2005년 북한 주민의 중국 방문이 12만 5,000명 이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북한과 중국은 서로를 “입술이 없으 면 이가 시린 관계”, 즉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표현해왔다.

양국은 여전히 외형적으로 군사동맹관계를 유지하며 과거 공동항일 (共同抗日)의 경험과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 등을 바탕으로 깊은 역사적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중 간 사회문화 교류의 전환점은 아무래도 2009년 하반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2009년 9월 18일 다이빙궈의 북한 방문과 뒤이은 2009년 10월 5일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으로 양국 간의 인 적 교류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다. 2009년이 양국 간 외교관계 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인데다, 2009년 7월 이후 북한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과 안정을 통해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한반도 문제의 중국식 해 법을 제시하며 적극적 개입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양국 간 인적 교류가 증가하였다. 중국의 무상 경제원조와 기술·교육 분야의 지원, 관광산업 관련 등의 협정이 체결되고 중국 측 비용 부담을 전제로 한 신압록강 대교 건설이 제시되어 양국 간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교류도 이 시기부

Dokumen terka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