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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Ⅰ. 이끌면서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에 북핵 상황은 악화되었다.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차핵실험을 했고, 6자회담을 교착시켰다. 기간 중에 우리 정부

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비핵‧ 개방‧ 3000’ 구상, 새로운 평화구조 창출 노력, 그랜드 바겐 정책을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가 추진한 북핵 해결을 위한 노력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북측이 우리 정부의 북핵 관련 정책을 철저하게 무시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우리 정부가 직전 정부의 대북정 책을 제대로 승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했다고 주장 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핵실험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소요 기간을 고려하면 북한은 이명박 정 부가 출범하기 이전에 2차 핵실험을 준비한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북한 은 참여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기간 중에도 이미 1차 핵실험을 했기 때문 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2차 핵실험의 관련성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직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승계했다면 북한이 핵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나 주장은 북한체 제의 핵보유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한국 정부 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북한체제가 본격적으로 핵보유 의지 를 갖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구소련 및 동구라파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북한식 사회주의체제」

를 지키기 위한 물리적 수단으로 핵보유를 결심했고 실제 이를 준비했다.

이러한 결실이 1차 북핵위기를 만들었다. 1990년대 초에 확립한 핵보유 의지를 북한이 구현하는 데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조건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물리적 제재를 피하는 일이었고, 둘째 조건은 핵무기 개발 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 의를 통해 물리적 제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한국 정부 의 대북포용정책을 활용하여 재정적 조건을 갖추어 나갔다. 아울러 구소

련 해체 이후 실업자가 된 러시아 및 파키스탄 등으로부터 핵개발 기술을 수입했다.

2003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붕괴는 북한체제의 핵정책에 두 가지 변 화를 주었다. 첫째는 이전까지 유지했던 핵보유 의지를 긍정도 부정도 하 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정책을 포기하도록 했다.

북한체제는 후세인 정권이 미국의 군사공격에 몰락한 원인을 ‘군사적 억 지력 결여’로 판단했고, 핵보유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억지력에 도움 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 시기에 북측은 핵보유 의지를 공개적으로 감추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동아태 차관보에 게 북측이 농축우라늄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NCND정책 포기의 초기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2006년 1차 핵실험,

2009년 2차 핵실험은 북한체제가 핵보유 의지를 실제적으로 보유하고 있 음을 국제적으로 시위한 전략 메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2010년 현재 북한체제의 핵 관련 정책과제는 핵보유를 국제적 묵인을 넘어, 실질적으로 인정받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2010년 1월 11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한반도비핵화를 내세우며 전제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제안한 것은 평화협정 문제로 시간을 끌어 핵무기체계를 완성시 키고, 핵무기 보유를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2010년 2월 현재 북한은 핵보유를 인정받고 싶어 하고, 미국 등 국제

사회는 ‘6자회담 재개’를 통해 평화적으로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를 이끌 어 내고 싶어 한다. 한국 정부는 그랜드 바겐 정책을 앞세워, 북핵문제가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6자회담과 남북대화를 병행하여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려고 하고 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과거 평가’보다 ‘미래 제안’, 그리고 ‘국제사회의 역할’보다는 ‘한국 정부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중장기보다는 향후 3년 이내에 북핵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다루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이 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2010년 2월 현재 북한 핵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자 한다. 둘째,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핵 관련 대북정책, 조치와 노력을 평가하고 교훈을 찾고자 한다. 셋째, 정 부가 향후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를 제안하고자 한다.

Ⅱ. 2010 북핵 상황의 현실과 과제

1. 북한 핵보유 및 인정 여부

일반적으로 1차 핵실험이 핵탄두의 보유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2차 핵실험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개량 및 효 율성 증대를 목표로 했다. 북한은 2차 핵실험을 통해 핵 폭파력 증대와 조종 능력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2차 핵실험을 통하여 국제사회에 신속하게 과시하고 싶었던 핵무기 기술은 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하는 기술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보유한 핵탄두 (device)와 투발수단(投發手段, delivery system)을 결합시켜 핵무기체 계를 완성시킨 능력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체제 의지를 갖고 있었다.

2차 핵실험을 한 북한의 핵보유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행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 핵보유를 인정 하고, 확산방지(nonproliferation)에 만족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 다. 사실, 1, 2차 핵실험 이후 일부 미국 조야의 전략가들은 현실적으로 북한 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감추고 있지 않다. 특히 북한 이 1차 핵실험을 한 지 2년여 지난 현 시점에서 군사적 대비 차원의 각종 전략문건에서 북한 핵보유를 인정하는 내용이 나오자 한국 여론은 ‘미국 의 북핵보유 인정’을 크게 걱정하게 된 것이다.

<표 1> 2008~2009 미국 국방/안보 당국의 핵실험 인정 현황

◈ 2009.2.12 블레어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 “핵무기(weapon)가 아닌 핵 장치(device) 실험” 성공

◈ 2009.2 미국 중앙정보국(CIA)국장 내정자 리언 파네타, 인사청문회에서

2006년 북한 핵무기 폭발실험 인정

◈ 2009.1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포린 어페어󰡕誌에 기고, 북한이 이미

수 개의 핵무기를 보유 인정

◈ 2008.11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

◈ 2008.11.25 미국 국방성 합동군사령부 연례보고서 「2008 합동작전 환경평

가 보고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명시

◈ 2008.9 미국 국방장관 자문위원회 보고서, 북한을 핵보유 국가로 기술

미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군사대비 차원에서 북한을 명확하게 핵보유 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실상 군사 차원에서 1967년 이후 핵무기를 개발 한 인도-파키스탄 국가 등과 같이 북한을 대우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핵확산방지조약(NPT)」 및 미국의 대외전략상 북한을 공식적 핵보유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 핵을 인 정할 경우 핵확산방지체제 자체가 위기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핵확산 방지조약에서 「핵보유국」이라 함은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를 개 발한 국가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 2> 핵확산 방지조약 (1968.7.1 발효, 1975.4 한국 효력 발생)

제9조 ③항: 핵무기 보유국이라 함은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 또는 기타 핵폭발장치를 제조하여 폭발시킨 국가를 의미한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군사적 대비차원에서는 북한 핵보유를 고려하고 있 으면서도, 대외정책 차원에서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국방백서 등을 통해 북한 핵무기 보유를 추정하고 있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와 같은 입장에서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 6자회담 재개

2010년 2월 현재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들의 노력이 활발하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왕자루이가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지도자를 직 접 만나 6자회담 재개 관련 의견을 교환했고, 북한의 김계관 부상이 북경 을 방문하여 중국 당국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의견을 교환했다. 유엔사 무총장 특사 자격으로 린 파스코 유엔사무차장이 북한을 방문하여 6자회 담 재개를 위한 의견을 교환했다. 앞서 2009년 12월 9일에는 미국 보스워 스 대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필요한 북한과 미국 양 측 입장을 교환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연쇄 접촉을 통해 다음과 같은 관련국 간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6자회담 재개 시기와 관련하여 북한 입장이 여전 히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다. 둘째, 북한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하여 미 국에 대해서는 ‘평화협정 논의’ 및 ‘북미관계 개선’을 전제조건으로 제시 하고 있다. 셋째, 북한은 중국에 대해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상당한 수 준의 경제원조’를 희망하고 있다. 넷째,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해 유엔안보 리결의안 1874호의 폐기, 제제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다섯째, 미국 등 관 련국들은 북한의 요구에 대해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6자회담 재개’에 노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북핵 보유와 6자회담에 대한 북한 입장은 1월 11일 외무성 담화를 통 해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어야 6자회 담 재개에 참가하고, 평화회담이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핵 폐기를 결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정책목표로 앞 세우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행동순서로 ① 평화협정 논의 조건으로 6자 회담 참가→② 6자회담과 평화협정 동시 진행→③ 북미관계 정상화

Dalam dokumen 이명박 정부 2년 대북정책 성과 및 (Halaman 129-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