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제사 이론

Dalam dokumen 묵자의 계약론적 국가론 (Halaman 129-132)

하느님과 귀신에 대해서 제사를 지내자 – 이는 유가와 묵가 모두 주장한다.

⑴ 유가의 제사 이론

공자 이래 유가는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를 믿지 않는다. 공자는 귀신을 “있는 듯 이 하라”, “공경하되 멀리하라”고 한다. 직접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 ‘불가지론’이다. 귀신 은 알 수 없고, 따라서 상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자는 제사를 지내라고 한다. 묵자는 이 부분을 비난한다. 예컨대 왜 할아버 지 귀신은 부정하면서, 할아버지의 제사는 지내는가? 이는 신랑 신부도 없는데 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이 아닌가?

순자는 이것에 대해서 답을 한다. 제사는 ①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의식, ② 산 자들끼리 의 단결 단합을 도모하는 자리 ③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리이다. 제사의 의식은 추모의 자리이다. 제사 음식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는 것은 단결의 방법이다. 조상과 나의 연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이런 점에서 삶은 의식의 연속이다. 통과 의례이다.

⑵ 묵자의 제사 이론

묵자는 하느님과 귀신을 믿는다. 하늘은 인격신이며, 심판을 하는 주체이다. 군주, 신하, 백성은 하늘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제사를 지내는 것인가? 아니다. 하늘의 뜻인 겸 애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은 상을 내린다.

하느님과 귀신에 대한 제사는 부차적인 것이다. 그것은 유가처럼 추모, 단결의 자리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큰 것은 하느님의 뜻을 되새기는 자리이다. 겸애와 상동에 대한 다짐과 반성을 하는 의식이다. 이점에서 유가의 제사와는 성격이 달라진다.

유가의 제사 의식은 산 자들 중심이다. 묵자의 제사는 하느님, 귀신 등 초월적 존재 중 심이다. 천귀는 겸애 상동 등 보편적 가치를 담지하는 존재이다.

⑶ 영적사(迎敵祠) - “적을 맞이하는, 환영하는 제사”

묵가의 제사 의식을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 「영적사(迎敵祠)」이다. 이는 묵자 맨 마지 막 성 방어 부분에 나온다. 적이 성을 공격하러 오면, 적을 맞이하는 제사인 ‘영적사’를 치룬다.

영적사는 사당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적이 30리 다가오면 한다.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승리를 비는 것이다. 하느님의 가호를 바라는 의식이다. 적과 싸우면 두렵다. 하느님의 도 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 우리는 이길 것이라고 주문을 건다.

또한 단결의 자리이다. 영적사는 지휘관과 제사 담당자들만 참가한다. 반면 유가의 제사 는 관련 당사자, 식구들이 다 모인다. 따라서 영적사의 제사는 관련 당사자의 단결의 의미 는 좀 줄어든다. 제사에 참여하는 자가 적기 때문이다. 성 방어에 바쁘기 때문에, 많은 지 휘관이 모일 수도 없다. 따라서 최고 지휘관들의 단결 정도이다.

성 방어 부분에서 묵자는 적을 ‘손님’(賓)이라 하고, 성을 수비하는 전쟁을 ‘준비함’(備) 이라 한다. 적에 대한 제사를 적을 ‘환영함, 맞이함’(迎) 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적을 존 중함이 보인다.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손님을 맞이함”이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멘탈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 “성 방어는 과학이다.” ‘준비함’(備)이라는 말 자체가 치밀한 과학을 의미한다. 성 은 고립된 좁은 영역이다. 여기에서는 전법 전술 전략이 먹힐 수 없다. 오직 강력한 무기 와 방어 시설만이 답이다. 그래서 묵자 성 방어 부분은 당시의 최신 과학적 이론이 다 담겨 있다. 나아가 과학이라 보는 근원에 하느님과 귀신(天鬼)에 대한 믿음이 있다. 신의 가호는 과학적으로 준비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온다.

둘째, 냉철함, 그리고 겸애의 측면이 있다. 적을 죽일 대상이 아니라, 손님으로 보라.

전쟁의 심리는 분노 증오 적개심에서 시작하여 돌격 앞으로 한다. 적에 대해서 잔인함 을 떨치게 된다. 전국 시대 최악의 사건 가운데 하나가 40만을 생매장한 것이었다. 진나 라는 항복한 조나라 병사 40만을 생매장해서 죽였다. 40만을 끌고갈 수도 없고, 방면할 수도 없자, 가장 저렴한 살인 방법인 생매장을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신앙에 따르면, 40만이 원혼이 되고, 악에 받친 귀신이 된다. 그 귀신의 보복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물 론 귀신은 없다고 여기고 대량 학살을 한다.

전국시대 전쟁은 등 과도한 살인을 한다. 나와 적의 관계는 증오, 분노, 살기 등등, 기 세 등등이다. 군인들의 전쟁, 정치에서 적대 관계는 모두 증오와 분노, 살기로 점철된다.

① 이런 조류에 맞선 사람이 있다. 노자와 묵자이다.

노자는 적을 존중하라고 한다. 적을 경시하는 것은 나의 보물을 잃는 것이다. 반드시 참 패를 한다. 또한 이겨도 개선 행진 대신 제사를 지내며 슬프게 울라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포악함을 떨치지 말고, 힘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차분하고 냉철한 마음 때문이다. 병사는 직접 피 튀기며 싸우기 때문에 흥분한다. 그러나 지휘관은 냉철하게 상황을 읽고 지휘해야 한다. 만약 지휘관이 흥분하면 그 전쟁은 진다. 냉철한 마음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적을 사랑하고, 슬프게 울며, 포악함을 떨치지 않는 것이다. 적에 대한 증오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에 대한 슬픈 사랑(慈悲)으로 전투를 하라. 그러면 차분하고 냉철한 마음이 된다.

② 묵자는 적군도 겸애의 대상을 본다. 적군이 아니라 손님으로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

적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줄여야 한다. 적은 단지 이겨서 박멸할 대상이 아니다. 적은 손 님이다. 손님을 맞아서 차분하게 성을 방어하는 방법을 생각하라. 그러면 과학적 방법을 채택하게 된다.

묵자가 성 방어 부분에서 “준비, 손님, 환영”(備·賓·迎) 등의 용어를 쓰는 것도 같다. 적 이 있으니까, 내가 있다. 적이 없으면, 나도 없다. 묵자의 무리는 군인이다. 적과 싸움이 그들의 존재를 유지시킨다. 국정원은 간첩이 있어야 존재하고, 검사는 범죄인이 있어야 존 립한다. 간첩과 범죄가 없으면 그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적이 사라지면 나도 망한다.

이런 적대적 공생 관계는 진시황에게도 적용된다. 천하 통일한 국가에서 필요 없는 존 재는 진시황과 같은 정복 군주이다. 더 이상 정복할 다른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복 군주가 아니라 통치하는 군주가 필요하다. “말 위에서 국가를 통치할 수는 없다!” 이 는 항우에게 승리한 유방에게 한 말이다. 통일 국가에서 무슨 전쟁이 필요한가?

묵자는 겸손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준비를 철저히 하고, 현실적으로 대처하라고 한다.

적에 대한 분노 증오 기세 등은 준비를 소홀하게 만든다. 분노는 눈을 증오는 귀를 가린

다. 통찰과 혜안이 없어진다. 그래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묵자는 성 방어를 과학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과학적 무기와 시설로 철저하게 준비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적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줄이는 것이다. 적은 손님이다. 손님 을 맞이해서 나의 최선을 다한다. 이기는 방법은 과학 뿐이다.

이는 현대적인 프로 구단의 리그전을 연상시키는 발상이다. 그런 발상이 가장 잘 드러 나는 것이 영적사라는 제사이다. 손님인 적을 맞이하는 제사, 이는 지금부터 손님과 한판 걸게 놀자는 것이다. 과학적 준비만이 답이라는 것이다.

노자 묵자의 생각은 하나의 입장이다. 전쟁은 분노와 증오가 기본이 아니라, 차분한 마 음과 과학적 준비가 핵심이다.

⑷ 영적사 등 성 방어 이론에 들어 있는 묵자의 적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 국내 정치, 나아가 국제 관계에도 적용된다. 상대는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공존하면서, 서로 건설적 으로 경쟁하는 관계이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 나와 상대는 과학적 방법으로 겨 루어 보는 것이다. 7국의 관계도 그러해야 한다. 상대를 멸망시킬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자국의 경제를 개발하고, 무역을 통해서 서로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전국 시대 현실은 정반대로 간다. 상대를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악의과 증오만 난무한다.

그래서 진시황은 6국을 멸망시키고, 수도를 잔인하게 파괴한다. 그렇게 통일한 국가는 10 년만에 전국적인 반론으로 멸망한다. 그러려고 통일을 했는가?

Dalam dokumen 묵자의 계약론적 국가론 (Halaman 129-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