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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생의 머리 모양

B. 조선시대와 기생의 화장, 의상, 머리모양 분석

5. 조선시대 기생의 머리 모양

이 시대 미인의 조건 중 하나인 숱 많고 풍성한 삼단 같은 머리는 <그림 28>에서 보여 지듯 조선시대 여인의 상징이며 부녀자들과 기생들의 대표적인 헤어스타일은 얹은머리와 쪽 머리이다. 얹은머리는 트레머리라고도 하며 삼 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초, 중기를 지나 쪽머리로 전환되는 순조 중엽까지 지 속되어 온 기본머리스타일이다.

a. 얹은머리

가체는 본래 내명부(內命婦)와 외명부(外命婦)가 궁중 연회시나 왕, 왕비, 왕대비 등에게 문안드릴 때 갖추게 되는 머리치레였으나 점차 양반가의 부녀 자는 물론 상민의 부녀자에게까지 확산되었다.<그림 29>

심지어 가체의 사용이 일반에까지 널리 퍼져 혼례 시 신부 장식의 필수항 목이 되면서 이를 장만하지 못한 신부가 혼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는 사태까 지 발생하기도 했다.51)

상류계급은 무너지는 신분계급의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 과시적인 가체 사 용을 통해 신분과시를 하였고, 양인과 천민들은 신분질서의 문란으로 한 단 계 놓은 계층으로 상승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하여 무문별한 사용이 이루어 졌다.52)

이는 머리를 뒤에서 땋아 앞 정수리에 둥글게 고정시킨 머리스타일로 조선 중기까지는 가체를 넣어 크게 얹은머리를 하였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위하 여 기생들은 한쪽으로 치우치게 장식하기까지 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는 출가 한 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인모(人毛)로 가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무겁고 값이 비싸서 영조 대에 많은 논란이 있어 금지령을 내렸으나 오랫동안 전해 내려 온 관습이었으며 가정에서 부녀자들이 은밀히 이루어지는 일로 실효를 거두 지 못하였다.

51) 전완길(1999), 한국화장문화사, 경기: 열화당, p.56.

52) 고쟁, op. cit., p.58.

〈그림 28〉

신윤복 단오풍정 세부 - h t t p ; / / a r t s , s e a r c h,naver.com 2011.9.26

〈그림 29〉

일반 부녀자의 얹은머리 -영화 황진이(2007) DVD

b. 쪽 머리

정조대에 와서도 사치로 인한 폐해가 매우 심각하여 가체신금절목(加髢申 禁節目)을 내렸으나 역시 지켜지지 않고 순조 중엽에 와서야 궁중의 머리 모 양인 쪽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그러나 쪽 머리에도 장식품을 많이 사용하는 등의 사치는 여전하여 비녀나 뒤꽂이에 많은 패물을 사용하였다.

영 정조를 거치면서 순조 대에는 일반부녀자들도 궁중 양식인 쪽머리 상용 이 결정되었으나 상민이나 천민의 아낙들은 자기 본 머리로만 얹은머리를 하 여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쪽머리로 바뀐 이후 비녀와 뒤꽂이, 족두리, 화관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우선 왕비용의 용잠은 민간에게 혼인날만은 사 용을 허락하였다. 그 외에 겨울에는 금은 비녀를 쓰고 봄가을에는 비취, 옥, 산호 등 갖은 패물로 아름답게 가공을 하였다. 뒤꽂이는 쪽의 위아래로 꽂는 것으로 비녀와 같이 갖은 폐물을 쓰기도 하였으나 서민은 은에 칠보를 한 실 용성도 겸한 것을 서너 개 꽂아 아름답고도 정겨운 모습이었다.53)

쪽 머리는 이마의 중심에서 가르마를 타고 귀 뒤로 빗어 한데 묶고 땋아내 려 머리 뒤에 고정한 후 쪽을 찐다. 여기에 비녀를 가지고 고정시키는 형태 의 머리모양이다. 쪽 머리의 쪽의 위치도 초기에는 쪽이 뒤통수에 달려 있던

53) 문화관광부,op. cit., pp.111-112.

것이 점차 내려와 말엽에는 저고리 위에 있게 되었으며 개화기에는 다시 뒤 통수로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54)

비녀는 잠(簪)이라 하고 길쭉한 형태로 비녀머리가 있고 쪽을 고정 시키는 것이 주목적이고 여기에 장식의 기능이 겸해졌다. 영조 때에 가체의 사치를 금하기 위하여 모든 부녀의 머리모양을 쪽으로 일반화시키면서 비녀의 사용 도 일반화되었고 비녀의 모양이 이때부터 다채로워 졌다. 조선시대에는 존귀 비천(尊貴卑賤)의 차별이 심하여 금은, 주옥으로 만들어진 비녀는 상류계급 에서 사용하고 서민층 부녀들은 나무, 각(角),골(骨)등으로 된 비녀만을 사 용하였다.55)

<그림 30>은 영화 연산일기(1987)에서 중전이 쪽 머리를 하고 용장식의 비 녀를 착장한 모습의 자료이며 <그림 31>과 <그림 32>는 영화 황진이(2007)의 장신구를 디자인한 무형문화재 김영희 선생의 작품이다.

<그림 33>은 영화 음란서생(2006)에서 왕의 총애를 받는 정빈의 헤어로 비 녀와 뒤꽂이를 볼 수 있다.

<그림 30> 중전의 비녀 용잠 -영화 연산일기(1988) DVD

<그림 32> 뒤꽂이

-http://blog.daum.net/jwdst/

11721593 2011.10.5

<그림 31> 비녀

-http://blog.daum.net/jwdst/

11721593 2011.10.5

<그림 33> 비녀와 뒤꽂이 -영화 음란서생(2006) DVD

54) 유희경, op. cit., p.407.

55) 이어령(1996), 한국인의 손 한국인의 마음, 도서출판 디자인하우스, p.138.

<그림 34>

연산일기(1988) 포스터 -http://movie.daum.net 2011.10.9

제 목 연산일기(1988)

감 독 임권택

주 연 유인촌, 김진아, 권재희, 마흥식

개봉연도 1998년 상영시간 118분

분 장 홍동은 의 상 이해윤

장 르 사극

시대배경 조선시대 초기

Ⅲ 영화에 등장하는 기생

A. 기생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