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미술교섭사 (미진사, 2013)
趙 敏 住 (中國 浙江大)
Ⅰ
미술을 통해 16세기부터 21세기까 지 아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교류를 짚어보는데 마이클 설리번(Michael Sullivan)의 The meeting of Eestern and Western Art1) 만큼 좋은 나침반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1973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이후 서 구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1989년과 1997년에 내용을 보강하여 재판되었다. 지금까지도 ‘16세기 이 후의 동서미술 교류사 연구’에 꾸준
1) Michael Sullivan, The meeting of Western and Eastern Art: From the Sixteenth century to the present day (London: Thames and Hudson, 1973).
서는 올해 2월 동서미술교섭사(미 진사)라는 이름으로 덕성여대 이송 란 교수, 정무정 교수, 그리고 국립 중앙박물관 이용진 학예사에 의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21세기 중국이 다시 세계무대의 패권을 잡기 시작 한 지금, 이 책은 읽는 이에게 또 다 른 의미를 선사하며, 한국학계의 입 장에서 지난 6세기 동안 아시아와 유럽에서 이루어진 미술 교류에 대 해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는 계기 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중국미술사2)와 중국 의 산수화3)로 이미 잘 알려진 설리 번 교수는 20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중국미술사 연구를 이끌어 온 중요 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1차 세 계대전 중에 1916년 캐나다에서 태 어났고, 1939년 캠브리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1940년 국제적 십자를 따라 중국에 건너가 청도(靑 島)에서 6여 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 는 학자이다. 이후 그는 하버드에서 동양미술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 고 런던대학(University of London) 아프리카아시아학원(SOAS)과 스탠 포드대학(Stanford University)등에
2) 마이클 설리번, 중국미술사(서울: 예 경, 1999).
3) 마이클 설리번,중국의 산수화: 불멸의 상징(서울: 문예출판사, 1992).
서 강의했다. 1985년부터 퇴임할 때 까지 옥스퍼드대학(University of Oxford)에 재임했으며, 90세가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동서미술교섭사는 그의 중국미 술사 연구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 렵 미국에서 출판된 책으로, 20세기 중후반기 중국과 일본 미술사 연구 가 서로 배타적으로 진행되던 서구 학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나왔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동서 미술 교섭의 방대한 자료들을 각 지역의 역사적 사실과 연관시키 고, 중국·일본·유럽 등 서로 다른 공 간에서 펼쳐지는 미술의 교섭 현황 을 같은 타임라인 위에 배치시킨데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도 15세기 이후의 ‘일본과 유럽’ 혹은 ‘중국과 유럽’ 미술의 교류 등에 관한 개별적 연구는 많았지만 동서양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두 아시아 국가의 미술을 한데 놓고 논한 서적은 매우 드물었 다. 다른 공간, 같은 시간에서 펼쳐 지는 동서양의 교류현황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중국으 로 혹은 일본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가 아닌, 서로 다른 색깔의 아시아 국가가 서양 문화에 대처하는 방법 을 수평적 시각으로 풀어나갔다. 또 한 아시아 문화를 수입하고 소화해
나가는 유럽인들의 대응방법도 상당 한 분량을 할애해 보여줌으로써 유 럽이 아시아의 미술을 이해하고 자 기화해 가는 과정을 풍부한 사료들 과 함께 구성해나갔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크게 19세 기를 전후로 구분한다. 특히 19세기 중반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중국의 아편전쟁(1840-1842)의 전과 후로 시대를 분리했다. 1장 “일본과 서양 의 만남, 1550-1900”, 2장 “중국과 유럽 미술, 1600-1800”, 3장 “유럽과 중국 미술, 1600-1900”에서는 16세 기 유럽 대항해 시대의 열기가 본격 적으로 동아시아 국가에 전파된 시 점을 시작으로 19세기까지의 동서미 술 교섭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특히 예수회 선교사와 유럽의 상인들이 일본의 나가사키, 포르투갈의 식민지 였던 마카오, 중국의 광동, 북경 등 지를 중심으로 포교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미술이 두 국가에 유입된 사 실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머 지 4장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부 터 현대까지”, 5장 “중국 미술의 혁 명”, 6장 “유럽과 미국, 1850년부터 현재까지”에서는 아편전쟁과 메이지 유신 이후 유럽의 문물과 제도가 물 밀듯이 밀려들면서 일어난 일본과 중국 미술계의 변화와 파장, 특히 전 통과 반전통주의 문제에 대응하는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양상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저자는 19세기 일본 과 유럽미술의 교섭에 관한 부분에 서 일본의 미술이 유럽에 알려져 고 흐(Vincent van Gogh, 1853 -1890), 휘슬러(James Whistler, 1834 -1903) 등의 인상파 화가에게 미친 영향과 자포니즘(Japonism)의 조류 형성 과 정을 파헤쳤다. 20세기 들어 2차 대 전 이후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으 면서 미술시장의 중심축도 자연히 미국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에 대 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응방법과 그 들의 세계 시장에서의 도약상을 저 자는 현장감 있게 기술했다.
무엇보다 중국과 유럽의 교류사를 2, 3, 5장에서 매우 심도있게 서술했 다. 여기서 20세기 중국미술사의 현 장을 목도하고 이끌어온 노학자의 연륜과 해박한 지식이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제2장 “중국과 유럽 미 술, 1600- 1800”에서 저자는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테오 리치(利瑪竇, 1552-1610)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시 작된 중국과 유럽과의 교류를 중국- 유럽 미술 교류사의 황금기라고 표 현했으며, 기하학, 원근법, 명암법 등 의 유럽 회화 테크닉이 중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 실물 자료와 대조해가 며 기술했다. 특히 서양의 ‘원근법’과
‘음영법’ 수용에 대한 분석에서는 마 태오 리치와 청대 추일계(雛一桂, 1686-1772) 같은 화가가 서로 상반
된 의견을 내놓은 것에 주목한다. 마 테오 리치가 “중국인들은 공예품에 도 그림을 그릴 정도로 이용 범위가 넓지만, 그림을 그리는 기법과 조소 기술은 유럽인들에 비해 떨어진다.
그들은 유화 기법이나 원근법을 이 용할 줄을 몰라 결과적으로 그림에 생동감이 부족하다.(p.51)” 라고 언급 했지만 저자는 그의 생각에 선뜻 동 의하지 못하고, 오히려 추일계가 언 급한 “그들(유럽인들)은 기법 중 몇 가지는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을 배우기에는 좋다. 하지만 그들의 그 림에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필법이라 는 것이 부족하다. 기술은 있지만 그 들은 단순히 장인에 불과하며, 화인 (畵人)으로 분류하기는 어렵 다.(p.77)”는 말에 더 동의하고 있다.
당시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유럽 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원활한 포교 를 위해 상당한 양의 서적과 동판화 를 중국에 가져와 중국인들의 호기 심을 자극했다. 저자는 예수의 생애 를 그린 나달(Nadal)의 그림 복음 서(Evangelicae Historuae Imagine) 와 같은 인쇄물의 도판이 1606년에 출판된 정씨묵원(程氏墨苑)에 실 린 사실을 주목했고, 1572년 네덜란 드 쾰른(Cologne) 출판사에서 발행 한 세계의 도시(Civitates Orbis Terrarum) 안의 삽화가 직간접적 으로 청대 장굉(張宏)과 공현(龔賢)
등의 화풍에 미친 영향 등을 양식사 적 각도에서 비교 분석했다. 반대로 같은 시기 유럽의 인쇄물에서도 중 국에 관한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 했다. 1635년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Athanasius Kirher)의 중국도감 (China Illustrata)을 비롯한 풍부한 사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 다. 이 외에도 조선후기와 일본에도 시대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나 고금 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280권과 같은 중국 도서가 루이 14세 도서관 에 소장되어 있었다는 것은 매우 흥 미로운 사실이며, 당시 동서미술교섭 에 미친 인쇄 문화의 파급력을 가늠 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이렇게 동서양의 시각문화 를 유럽과 중국의 인쇄문화와 연관 시켜 서술하면서 어렵게만 여겨졌던 미술 교섭에 대한 연구를 몇 가지 서적의 유통과정을 추적함으로써 편 리하게 진행할 수 있는 범례를 남겼 다고 할 수 있다.
미술 교섭사 문제에 대해 남아있 는 유물 외에도 이탈리아 선교사 카 스틸리오네(Gíuseppe Castiglione, 郎 世寧, 1688-1766)가 청대 강희제의 명을 받아 설계한 북경의 원명원(圓 明園)이나 영국 브라이튼 왕실 별궁 등과 같은 예를 제시하면서 이 책에 서는 당시 중국과 유럽의 교류를 증
명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전체적 으로 보았을 때 “강희제 시대부터 아편전쟁까지 기간 동안 서구 문명 의 가치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무시 당했다.(p.77)”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 했는데, 이 부분에서는 선뜻 공감하 기 힘들어 보인다. 이는 당시 구미에 서 중국미술사 연구가 송·원대(宋·元 代) 문인화(文人畵)와 그 계보학적 연구에 치우쳐 있었고, 명·청대 연구 가 본격화되지 않은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20세기 후반부 터, 특히 북경올림픽을 기점으로 자 금성, 국가도서관, 국가박물관 등과 같은 기관에서 청대 미술사와 궁정 사를 재조명하는 대형 전시가 전에 없이 빈번하게 열렸으며, 그동안 전 공 학자들에게도 공개를 꺼려왔던 동서미술교섭에 관련된 청대 유물을 거침없이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70-90년대 저자가 이와 같이 내린 결론은 앞으로 다시 쓰일 여지가 있 다고 생각된다.4)
제5장 “중국미술의 혁명”에서는 1800년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4) 설리번 교수의 이러한 생각은 “서양문 명에 대한 청 황실의 소극적 태도가 과 연 왕조의 쇄락과 관련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와도 관련 있으며 현재 중국 출신으로 홍콩에서 활동해온 만청력(万 靑力) 교수 등의 미술학자들은 이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의 성립을 전후로 나누어 설명한 부 분으로 중국내에서 활동했던 화가뿐 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해외 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을 재조명했다 는 데 큰 의의가 있다. 20세기 후반 까지 중국내에서 조무극(趙無極) 등 과 같은 재불(在佛) 추상화가들에 관한 논의는 제외되기 일쑤였다. 그 런 가운데 설리번 교수는 이미 70년 말에 이런 중국화가들을 미술사 중 심에 끌어들이며, 중국 근대 미술사 연구에서 중국학자들이 외면했던 연 구의 공백을 메우는데 일조했다. 설 리번은 이 책을 시발점으로 1996년 과 2001년대 말 중국 근현대 미술에 대한 전문서적
Art and Artists of Twentieth-century China
5),Modern Chinese art: the Khoan and Michael Sullivan collectio
6) 두 권 을 펴냈는데 함께 참고해 볼 만하다.또한 그와 그의 중국인 부인 코한 설리반(Khoan Sullivan) 여사는 서 비홍(徐悲鴻, 1895-1953)과 같은 20 세기 중국화가에게 선물로 받은 그 림들을 옥스퍼드의 애쉬몰리안 박물 관(Ashmolean Museum)에 기증했
5) Michael Sullivan, Art and Artists of Twentieth-century Chin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6).
6) Michael Sullivan, Modern Chinese art: the Khoan and Michael Sullivan collectio (Oxford: Ashmolean Museum, 2001).
고, 그곳에 코안과 설리반 갤러리 (Kohan and Sullivan Gallery)를 건 립해 영국에서 전문적으로 중국 근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세계적으로 중국 근 대 미술에 대한 논의는 전에 없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설리번 외에도 중국 근대미술사 계보와 미술교육제 도에 대한 연구가 미국과 중국에서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줄리아 앤드류 스(Julia Andrews)와 낭소군(郞紹君) 등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이 책에 사용된 자료들을 보면, 마이클 설리번이라는 영국학자가 20 세기 중국 미술을 연구하면서 터득 한 자료 수집의 모든 노하우를 한꺼 번에 전수하려고 작심한 듯 다양하 고 풍부하다. 주제를 뒷받침하는 막 대한 양의 시각, 문헌 자료들은 그 출처가 다양하기 그지없고, 특히 저 자가 1984년부터 일한 직장이자 여 생을 보내고 있는 옥스퍼드 대학의 보들레이언(Bodleian) 도서관 등에서 공들여 발굴한 자료들과 루브르 궁 전 등 유럽 각지에 소장된 진귀한 중국과 일본미술에 관한 풍부한 시 각 자료들은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배가시킨다. 특히 저자가 인용한 사 료들은 비단 미술사에 국한되지 않 고, 예수회 선교사의 편지, 동인도회 사의 서신집,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의 소장품목, 네덜란드 상인들의 수
출입 품목 등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이 책은 기존 미술사 연구를 문헌사, 인 쇄사, 항해사 등의 영역까지 넓히는 계기를 가져왔으며, 미술사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역사적 사건을 증명하는 시각, 문헌 자료로 쉽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시아와 유럽의 미술 교류 현황을 일본과 중국을 위 주로 한정해 서술하였고, 근대 이전 은 차치하고도 이미 조선 후기부터 한국에서 서양의 선교사를 통해 혹 은 일본과 서구 열강의 침입이 빈번 한 상황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벌어 진 유럽미술과의 교류 상황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책의 주제에 매력적 인 소재가 될 수 있는 기산 김준근 등의 수출화와 백남준에 관한 어떠 한 소개도 없다는 점도 안타깝다. 이 는 70-80년대 영어권 국가에서의 한 국미술사 연구가 미진했던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앞으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많은 서양 학자들의 글에서 종종 보이듯이, 동 서양을 지나치게 이분화하고 앞으로 의 중국미술사 연구를 유독 감상적 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마지막 단락에서는 “미술사가 옆으 로 비켜서고 자신의 창조적 상상력
속에서 ··· 미술가가 통역자의 도 움 없이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건네게 된다.(p.269)” 라고 이 책을 마무리를 짓는다. 저자가 제5장 “중국의 근대 미술의 형성과정”에서 이미 설명했 듯이, 중국 미술의 생산 주체는 전문 화가들 이외에도 종백화(宗白華, 1 8 9 7 - 1 9 8 6 ) , 채 원 배 ( 蔡 元 培 , 1868-1940), 강유위(康有爲, 1853- 1927), 곽말약(郭沫若, 1892-1978)등 다양한 배경의 지식인들도 상당 부 분을 차지한다. 미술가나 미술사학자 의 역할을 문인, 철학가, 정치인 등 다양한 계층의 지식인이 분담하고 있는 중국미술사의 특징을 생각할 때, 예술가들의 역량이 막강해지면서 미술이론가들의 역할이 점점 더 줄 어들까 염려하는 저자의 마지막 언 급은 중국미술사에 대한 지나친 애 정에서 나온 노파심이 아닐까 싶다.
이 책 자체가 가진 목적은 책이 출판된 이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이 가진 상상 이상의 파급력 때문이었을 수 도 있겠고 그 이전에 작가의 선견지 명 덕일 수도 있겠지만, 1978년 책이 출간된 이후 실제로 30여 년 동안의 미술 교섭사 연구는 전에 없이 풍성 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한글로 번역 된 동서미술교섭사를 통해 중국미 술연구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영국 인 노학자의 연륜과 지혜를 한국에
서도 십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주제어: 마이클 설리번 關鍵字: 蘇利文
Keywords: Michael Sullivan
(원고접수: 2013년 3월 5일, 심사완료 및 심사결과통보: 4월 13일, 수정원고 접수:
4월 18일, 게재확정: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