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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박사학위논문
‘ 대표의 허구’ 에 관한 연구
- 토마스 홉스, 칼 슈미트, 한스 켈젠에게 있어서의 대리와 현시의 대표 이론 -
2 0 1 6 년 2 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홍 철 기
국문초록
대표의 허구란 대표제 정부와 인민 주권을 매개하는, 근대 민주주의 에 특수한 이데올로기를 지칭한다. 본 연구는 특히 토마스 홉스와 칼 슈 미트, 그리고 한스 켈젠의 정치사상과 대표제 이론에서 이 허구가 수행 하는 역할을 추적한다. 이들 사상가의 공통점은 정치적 대표를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동일성이나 일치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의회제 민주주의 의 이데올로기가 대표제의 위기의 원천이라고 보면서 거부한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모두 이에 대한 비판을 통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표의 허구에 관한 정치이론의 재구성에 기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대표의 허구는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 이론에 공헌한다. 첫째, 대표의 허구는 선거와 대표의 차이를 구별해주면서 대표의 고유한 의미를 제공한다. 선거가 대표자의 선출만 을 설명한다면, 대표는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간극을 전제로 양자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의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둘째, 대표의 허구는 대표제 정부와 인민 주권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 표를 대의로 정의하는 기존의 관점에 따르면 인민 주권은 정치적 대표의 과정으로부터 배제되면서도 제도적 행위자에 의해서만 배타적으로 대표 되고 육화된다. 이와 달리 대표에 대한 허구적 접근은 여전히 정부와 주 권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양자 사이의 매개가 가능하도록 만든다. 마지 막으로 대표의 허구는 민주주의 하에서의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상이 한 역할들을 맡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서 시민들의 역할은 단지 통치자를 임명하는 선출권자로 한정되지 않고, 시민들은 통치자의 활동 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는 공적 판단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주요어 :대표제 정부,대표제 민주주의,대표의 허구,인민 주권,대리, 현시
학 번 :2005-30058
목 차
1서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1.1‘대표의 허구’와 민주적 대표의 이론 ··· 5
1.2위임/신탁 논쟁의 한계 ···15
1.3기존 연구 검토 ···22
1.4연구의 구성 및 요약 ···26
2토마스 홉스:위임과 의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9
2.1『리바이어던』 영어본 제16장에서의 대표 이론 ···43
2.2피트킨의 해석:‘절대적 대표’형식주의 이론 ···55
2.3스키너의 해석:‘순수하게 인공적인 인격’으로서의 국가···62
2.4런시먼의 해석:국가의 ‘허구에 의한 인격’···70
2.5소결:위임과 의인의 분리 ···76
3칼 슈미트:‘ 현시로서의 대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81
3.1대리와 현시 ···85
3.2『현대의회제의 정신사적 상황』:‘대리로서의 대표 비판’···93
3.3『로마가톨릭주의와 정치형태』:인격적 대표 개념의 등장···96
3.4『헌법론』:대표와 동일성의 변증법 ···100
3.5『정치적인 것의 개념』:대표적 공공성의 이론 ···107
3.6『햄릿이냐,헤쿠바냐』:연극과 정치의 관계 ···111
3.7소결 ···119
4한스 켈젠:대표의 허구 비판과 대리의 순수 이론 · · · · · · · · · · · · · · 121
4.1대리의 민주주의 이론 ···123
4.2『민주주의의 본질과 가치』 1판:‘허구 속의 허구’로서의 자유위임···128
4.3『일반국가학』 1판:의회제 이데올로기로서의 대표의 허구···133
4.4『민주주의의 가치와 본질』2판:대표제 절차와 자유···138
4.5『일반국가학』영어판:기속위임의 현대적 재구성···144
4.6민주적 ‘최소주의’이론과 그 한계 ···147
4.7소결 ···151
5대표제 민주주의와 정치적 허구 · · · · · · · · · · · · · · · · · · · · · · · · · · · 155
5.1정치적 대표의 허구적 기원과 본질 ···160
5.2미학이론에서의 현시의 역설 ···168
5.3상연의 민주주의 이론 ···171
5.4허구의 재정의 ···175
5.5소결 ···180
6결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81
참고문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85
Abst r act·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01
1서론
현대 민주주의를 고대 민주주의와 구별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표지는 바로 현 대 민주주의가 채택하고 있는 대표제에 있을 것이다.1)현대 민주주의에서는 통 치자가 주기적으로 참정권을 갖는 피치자 다수에 의해 선출된다.이렇게 선출된 공직자는 참정권자뿐만 아니라 정치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구속력을 갖는 결 정을 내린다.그런데 이때 선출직 공직자는 단지 통치자로만 불리지 않고 대표 자라 불린다.그리고 대표자를 민주적으로 선출한다는 의미에서 현대 민주주의 는 대표제 민주주의라 불린다.대표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자체와 동일시될 정 도로 보편적인 모델로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표제 민주주의의 현실적인 성공의 그림자는 두 가지의 결정적인 차 이를 이론화하지 못한 채로 덮어버렸다.첫 번째 차이는 바로 선거와 민주주의 사이의 차이다.고대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근대 민주주의가 바로 선거에 의해 탄생했을 때,이러한 변동은 주로 양적인 관점에서만 이해되었다.따라서 고대 민주주의와 현대 민주주의,직접 민주주의와 대표제 민주주의 사이의 차이란 단 지 영토나 인구의 규모상의 차이로만 간주되었다.그리고 이때 선거란 고대적 이상을 근대적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일종의 연장 수단,혹은 기술적 해법으 1)영어 representative democracy와 representative government는 각각 ‘대의 민주주 의’,혹은 ‘대의 정부’로 번역된다.여기서 representative혹은 representation의 번역 어인 ‘대의(代議)’는 ‘대신하여 의논하다’는 파생적인 의미만을 지칭한다. 그런데 representation의 개념은 의미론 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근대입헌주의와 의회제에만 상응하는 ‘대의’보다 넓은 영역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대표’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 하다고 한다(송석윤 2007).그러한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representative democracy 와 representativegovernment는 각각 ‘대표제 민주주의’와 ‘대표제 정부’로 번역해야 한다고 본다.‘대의 민주주의’와 ‘대의 정부’가 좁은 의미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 직자들 사이의 토론과 표결에 의한 결정’만을 포괄하는 반면에 ‘대표제 민주주의’와
‘대표제 정부’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직자들이 사회 전체를 대 표하여 결정을 내리는 정치형태’를 의미한다.대표제 민주주의를 대의 민주주의로 축 소시키게 되면 대표의 위기,혹은 ‘실패’가 곧 대표자들 사이의 ‘심의의 실패’와 동일 시된다(서병훈 2011).이 경우에 심의는 선출직 공직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으로 국한 되며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의사소통의 차원을 배제하게 된다.
로만 간주되었다.이러한 관점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선거와는 다른 방식(예 를 들어 추첨)에 의해 조직화되고 제도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2)
대표제 민주주의의 성공에 가려진 두 번째 이론적 차이란 바로 선거와 대표 의 차이다.그동안 대표제 민주주의에서 통치자를 ‘선출한다’는 말은 곧 통치자 가 ‘대표한다’는 말과 동일시되었다.내가 참여한 선거를 통해 나를 대표할 사람 이 당선되면,대표자는 나를 대표하는 것이다.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주 의와 대표제 사이의 차이를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만들었다.결국 시민 전체의 동의라는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민주적 정당성을 얻으면서 선출된 통치자의 대표 행위 사이의 차이는 부각되지 않게 되었다.하지만 대표제와 민주제는 역 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완전히 다른 기원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민주제는 개념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고대 그리스에 그 기원이 있다.반면에 대표제는 개념 적으로는 로마에,제도적으로는 중세에 그 기원이 있다.3)
게다가 이 같은 역사적 기원에 있어서의 이질성은 이론적인 상이성으로 그대 로 이어진다.민주주의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통치형태로서의 민주제란 정의 상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집단적인 자기-통치를 의미한다.반면 대표제란 언제나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혹은 다른 대상을 대표하는 행위가 제도화된 결 과물이다.정치적 개념이자 제도로서 양자는 전혀 다른 이론적 난점,혹은 역설 을 안고 있다.민주주의의 역설,혹은 본원적인 불확정성이란 시민 전체가 통치 2)버나드 마넹(Bernard Manin)은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의 구분이 근대 대표 제 정부의 본성에 비추어볼 때 두 가지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Manin 1997).첫째,그가 보기에 근대 대표제 정부는 순수한 민주제를 규모 면에서 단순히 양적으로 연장한 결과가 아니라 귀족제와 민주제를 결합한 혼합정체로서의 공화정이다.둘째,대표제 정부는 공화정이면서도 주로 추첨의 원리에 따라 공직자를 선출한 고대 공화정과 달리 순수하게 선거의 원리에만 의거하는 근대 공화정이라는 것이다.이때 마넹은 선거가 아닌 추첨 원리에 따른 공화제,혹은 민주제를 근대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3)대표제의 중세적,혹은 봉건적 기원을 지적한 것은 바로 대표제의 가장 강력한 비판 자로 알려져 있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다.그는 『사회계약론』 제3권 제 15장에서 “대표자라는 관념은 근대적인데,그것은 인류를 타락시키고 인간의 이름을 더럽힌 부당하고 부조리한 정부인 봉건 정부로부터 유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는 덧붙이기를 “고대 공화정들,그리고 심지어 [고대의]군주제 국가들에서도 인민은 대 표자가 없었으며 그 말 자체를 알지 못했다”(Rousseau 1964,430).중세 대표제에 관해서는 다음의 연구들을 참조하라(Post 1964;Tierney 1983;Pennington 2004; 이화용 2011).
자이자 피치자라는 이중성으로부터 기인한다.4)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루소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엄밀한 정의는 언제나 이러한 난제에 대한 해결책 으로서 제시되었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이 통치자이자 피치자인 역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 결책은 이른바 공직 순환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에서 민주제의 근거가 자유에 있으며,자유의 원칙 중 하나는 바로 “만인이 순 서대로 통치하고 통치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자유의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자 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살아야 하며,이는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것을 의미 한다.하지만 통치자가 존재하지 않는 정치형태는 존재할 수 없다.따라서 그 대안은 ‘순서대로 통치하고 통치받는’통치형태이며 이는 “평등에 기반한 자유”
를 의미한다는 것이다(1317a40,1317b12-17).그런데 이러한 자유 원리를 구현 한 것은 “민회 출석에서의 순환 같은 것이 아니라 공직의 순환”이었다(Hansen 1999,71).현대 민주제에서 이와 같은 자유 및 평등의 원리를 구현하는데에 가 장 근접한 것은 선출직 공직자의 임기 및 연임 제한이다.
이와 달리 대표제를 규정하는 역설이란 민주주의의 경우와 달리 대표되는 사 람, 혹은 대상의 ‘현존(presence)’과 관련된다(Pitkin 1967: 1968; Runciman 2007).이 점에서 대표 행위란 최소한 원리적인 수준에서는 본질적으로 재현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정치적 맥락에서의 대표 행위 또한 어떤 대상을 지금 여기에 다시 현존하도록 만드는 행위라는 뜻이다.이 점에서는 국회에 출석한 의원이 의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지역구 유권자를 현존하도록 만드는 것과 풍경화가 실제의 광경을 그것이 부재한 미술관에 현존하도록 만드는 것 사이에 는 원리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그런데 재현이란 언제나 의미상의 이중성의 지배를 받는다.재현이란 언제나 ‘재’현이자 재‘현’이다.‘재’현이기 때문에 현존 하고 있는 것을 ‘다시’현존하도록 만드는 행위이다.이 점에서 ‘재’현의 대상은 이미 현존하고 있어야 한다.하지만 동시에 재‘현’이기 때문에 ‘아직’현존하지 않는 어떤 것을 현존하도록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따라서 재‘현’의 대상은 언 제나 부재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민주제에서 시민이 동시에 통치자와 피치자
4)이미 정해진 경계선 안에서 시민들이 통치자이자 동시에 피치자라는 역설과 함께,민 주주의의 또 다른 역설은 스스로의 경계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미 결정의 집단적 주체인 인민의 경계가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역설이다(Keenan2003;Mouffe2005).
라는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모든 대표 행위는 대표되는 대상이 현존하 고 있는 동시에 부재한다는 역설에서 벗어날 수 없다.그리고 마찬가지로 민주 제에서 시민 전체가 순수하게 통치자이거나 피치자일 수 없듯이 대표제에서 대 표되는 대상은 완전히 현존하지도 않지만,그렇다고 완전히 부재하는 존재로 간 주될 수도 없다.대표제와 민주주의의 결합이 민주주의를 고대와 근대 초기의 도시국가 공화정의 규모를 넘어설 수 있도록 확대하고 확장할 수 있었다는 것 은 역사적 사실이며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하지만 이는 대표제 민주주의가 다른 경쟁 체제에 대해서 이점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할 뿐 이며 여전히 대표제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라는 내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거와 대표의 차이는 단지 그 기원에서의 개념적이고 제도적인 차이만을 의 미하지는 않는다.이는 현대 민주주의에서의 중요한 규범적 문제와 관련된다.
민주적 선거는 분명 민주적 대표의 선결조건이다.특히 대표자가 다양한 소수자 집단들의 사회적 요구의 대변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구속력을 갖거나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리는 통치자일 경우에 피치자 전체의 동의를 받는 통치권의 위 임과정을 결코 우회할 수는 없다.하지만 피대표자로부터의 위임이 대표자의 대 표활동을 남김없이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따라서 선거와 대표를 구분하지 않 으면서 선거에 대해서만 말한다면,결국에는 대표만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되는 것이다.이미 반세기 이전에 피트킨(HannaPitkin)이 지적하였듯이 선거와 대표를 이론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면 대표활동은 일종의 “블랙박스”가 되어 버린 다(Pitkin 1967,38).대표자의 선출을 통해서 전망적으로,그리고 차기 선거에 서의 재선 여부를 통해 회고적으로 대표자의 행위를 유권자가 통제할 수 있다 는 책임성(accountability)의 관점에서만 정치적 대표와 대표제 민주주의에 대 해 접근하게 되면,오직 선거만 설명되며 대표는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피트킨의 말처럼 이 경우에 “대표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대표 활동 바 깥에 놓이게 된다.”선거로 설명되는 것은 “그것[대표]이 시작되기 이전에 혹은 그것[대표]이 종료된 이후”일 뿐이다(59). 보다 최근에 어바나티(Nadia Urbinati)의 지적처럼 여전히 “선거는 대표자를 ‘만들’지만 대표[활동]를 ‘만들’
지는 않는다”(Urbinati2011,45).
당연히 반응성(responsiveness)과 책임성은 민주주의에서 선거를 통해 통치 자를 통제할 수 있는 중요한 기제이자 통치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인 규범적 기준이다.하지만 여전히 반응성과 책임성은 대표활동에 대한 외적인 규범적 기준만을 제공한다.왜냐하면 이들 모두는 선거에서의 당선 여부를 기준 으로 대표활동을 판단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선출된 대표자가 자동적으로 좋은 대표자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그렇다보니 이러 한 기준에 따르면 대표활동에 대한 판단은 대표하고 있거나 대표하고 있지 못 한 것으로 판가름 난다.이때 대표활동에 대한 판단 기준은 이분법적인 성격을 띤다.선출 여부를 기준으로 하게 될 때,‘잘 대표하고 있다’거나 ‘잘못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내적인 기준은 여전히 제시되지 않는다.반면에
‘잘 대표하고 있다’와 ‘잘못 대표하고 있다’는 판단은 선출 여부와 달리 명확하 게 확인될 수 없고 오직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확인된다.따라서 이와 같은 판단 은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상에서만 존재한다.간접적이고 연 속적인 판단을 확인하고 민주주의에서 이러한 판단에 유의미한 역할을 부여하 기 위해서는 선거와 대표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재정의 되어야 한다.결국 시민 들이 자신들을 대표할 사람을 직접 선출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들이 대표된다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따라서 선거와 재선을 통한 대표자의 행위에 대한 통 제가 실행되는 계기들 사이의 기간 동안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보다 지속 적이고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고 전제되어야 한다.그리고 정치적 대표(politicalrepresentation),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민주적 대표(democratic representation)란 엄밀하게 말해서 피치자가 동의를 표하는 선거와 대표자의 결 정 사이의 영역에 놓이는 이와 같은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과정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다시 말해서 대표제의 민주적 성격은 통치권의 위임의 민주적 정당 성으로 완전히 확보되는 것이 아니며,대표자의 행위에 대한 피대표자의 지속적 인 판단과정을 수반해야 한다.이러한 재정의를 통해서만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와 무관한 대표활동에 대한 판단(‘잘 대표하는가,혹은 잘못 대표하는가’)이 민 주적 선거에서의 반응성과 책임성의 기준(‘대표되고 있는가,혹은 대표되고 있 지 않은가’)과 연동될 것이다.
1. 1‘ 대표의 허구’ 와 민주적 대표의 이론
위에서의 문제의식과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본 연구는 ‘대표의 허구(fiction of
representation; Repräsentationsfiktion)’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는 대상이자 영역을 탐구하고자 한다.여기서 말하는 대표의 허구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차원을 지칭한다.첫째,대표의 허구는 대표제 민주주의의 절차외적인 차원을 지칭한다.둘째,대표의 허구는 민주주의에서의 국가,인민,국민 등의 말로 지 칭하는 집단적 행위자성,혹은 전체성의 본성과 관련된다.셋째,대표의 허구는 단지 절차외적인 차원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로는 충분히 설명되거나 규명되지 않는,민주주의에서의 통치자와 피치자가 수행하는 다중적이고 가변적 인 역할들의 배분과 관련된다.
첫째,선거 중심적 접근이 민주주의를 절차적인 차원에서 탐구한다면 대표의 허구는 민주주의,특히 대표제 민주주의에서의 절차외적인 차원,그 중에서도 선거와 선거 사이의 기간동안의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치와 믿음,이데올로기,그리고 (합법성에 대하여)정당성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선거 절차가 대표제 민주주의의 합리적인 차원을 지칭한다면 대표 의 허구는 이와 달리 비합리적인 차원을 의미하는 것이다.왜 비합리적인 차원 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가? 민주적 대표성의 ‘실체’란 사실은 타인을 ‘대표하는 행위(acting for)’와 대표되고 있는 타인이 스스로 느끼는 ‘대표되고 있음’이라 는 감정,혹은 믿음 사이의 상관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Piktin 1967).다시 말 해서 선출된 대표자의 자격을 통해 확인되는 대표자 측에서의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과 피대표자 측에서 느끼는 선출된 대표자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는 감정’
의 결합,혹은 상호작용으로서만 ‘대표되고 있는 (혹은 대표하고 있는)상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선거에 의한 대표자의 선출은 합법성만을 충족시킨다.따라 서 이는 정당성의 민주적 차원과 결합되어야 한다.
정치적 대표의 사상사 전체에서 대표의 허구라는 말이 명시적으로 사용된 예 를 찾기는 쉽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사례들로부터 이 허구에 관 해서 최소한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한편으로 대표의 허구는 ‘허구’이기 는 하지만 ‘허위’는 아니다.5)대표의 허구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유되며,정치 적 맥락에서 ‘대표하다’는 말의 학술적이고 이론적인 의미의 범위를 결정하는 특수한 이데올로기이다.대표의 허구에 관한 이러한 정의는 오스트리아 출신 법 학자인 한스 켈젠(Hans Kelsen)의 학문적 공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Kelsen
5)대표의 ‘허구’를 ‘허위’로 보는 사례로는 다음을 참조하라(오향미 2011).
1925:1949:1981:2006).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표의 허구는 ‘허구’이지만,
‘의제(擬制;legalfiction)’는 아닌 것이다.다시 말해서 대표의 허구란 대표제의 역사에서 현실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시민들 자신이 정치 행위자와 제도 모두 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는 판단과 믿음의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Morgan1989;Urbinati2006).
이러한 의미에서의 대표의 허구란 역사적으로 시민혁명기로부터 입헌군주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군주제에 맞서서 의회제가 스스로를 독자적인 대표제 정부 의 모델로 성립시키는 과정에서 대표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등장하였 다.이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의회가 인민을 대표하기 때문에,의회의 결정은 마치 인민 자신의 결정과도 같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그리고 정치사상사에서 이 허구는 대표제의 심각한 위기의 시대로 묘사되는 20세기 독일 바이마르 공 화국 시대에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된다.이를 논쟁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 시 대 주요 헌법학자들이었던 칼 슈미트(CarlSchmitt)와 켈젠이었다.두 사람은 각각 결단주의와 법실증주의,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와 정당 민주주의의 대변자 로서 대립하였지만,대표의 허구의 역사적 형태로서의 의회제 이데올로기에 대 한 불만을 공유하였다.의회가 인민을 대표하기 때문에 의회의 결정이 마치 인 민 자신의 결정과도 같다는 동일성의 이데올로기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동일성 원리(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 로 민주주의의 외형을 통해 의회제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은폐하거나 정당화 할 뿐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두 사람의 해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슈미트는 대 표를 ‘대리(delegation; Vertretung)’와 구분하면서 ‘현시(presentation;
Darstellung)’로서 재정의 하고자 하였다.민주적 동일성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지만,카리스마적인 대표자는 동일성의 대체물로서 인민 전체의 통일성을 현 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반면 켈젠은 ‘현시’의 차원이 국가라는 추상 물을 인격화한다는 점에서 이를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한 대리의 절차만을 통해 민주적 동일성에 근접한 대표제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두 사람 은 각각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가 이러한 대표사상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제도 내지는 통치형태라고 보았다.이런 점에서 봤을 때,슈미트와 켈젠은 각각 군주 제적 대표제와 신분제적 대표제에 기원이 있는 현시와 대리(위임)를 현대 민주 주의 상황에 맞게 재정의하고자 하였다.하지만 슈미트는 대표의 허구적 차원을
권위적인 결정으로 대체하고자 하였고,켈젠은 이 동일한 차원을 민주적 대표의 절차로 대체하려고 하면서 각각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대표의 허구의 두 번째 차원은 바로 이들이 직면한 한계와 관련된다.
대표의 허구의 두 번째 차원이란 국가,인민,국민 등의 말로 지시하는 민주 주의에서의 전체,혹은 집단의 통일성과 행위자성의 본성과 관련된다.근대 국 가의 국민적 공동체란 본질적으로 ‘상상적 공동체’이다(Anderson 2006).또한 대표의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성격이 형성된 서구 중세의 국가에서 전체 공동체 의 통일성은 ‘허구적 인격(persona ficta)’의 방식으로 이해되었다(Kantorowicz 1958).근대 민주주의 또한 이와 같은 정치적 허구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때,이로부터 우리는 정치 공동체 전체의 통일성 및 일관성 그리 고 이를 전제로 하는 정치 단체의 행위자성이 가상적,혹은 허구적인 성격을 갖 는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17세기 영국 정치사상가인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대표 이론은 바 로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전체성,혹은 통일성이 갖는 허구적 성격을 다루는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홉스에게 국가란 두 가지 의미에서 허구적이며 이는 허구의 본래적인 의미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허구란 신화와 마찬가지로 상상적인 것이지만,동시에 신화와 달리 구체적인 저자가 존재한다 는 점에서 명백한 저작물이며 인공물이다.다시 말해서 허구란 저자가 있는 상 상적인 창조물이다.이를 국가에 적용해보자.국가는 구체적인 저자,혹은 제작 자가 존재한다.이는 정치이론에서는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계약을 맺는 개인 들,즉 자연상태에 있는 다중이다.하지만 다중이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누 군가에 의해 다중에게 국가의 상이 제시되어야 한다.홉스는 바로 이러한 제시, 혹은 현시의 행위를 의인화(personation)이라고 불렀다.문제는 다중이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통치권을 한 사람의 대표자에게 양도,혹은 위 임해야 하지만,이러한 위임의 전제는 바로 대표자에 의한 국가의 의인화,그리 고 대표자의 수행에 대한 다중의 판단이라는 점에서 발생한다.의인화는 위임 이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현시하는 행위이다.왜냐 하면 국가는 위임 이후에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여기서 위임과 현 시 사이에는 시간적 역설,혹은 순환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역설에 대한 해법은 크게 봐서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우선 홉 스 자신의 해결책인 절대주의가 있다.순환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최초의 위임
자체를 절대화하고 수임자에게 무제한의 권한을 허용하는 방식이다.하지만 민 주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이는 규범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대안이다.이에 대한 민주적 대안은 자연상태에서의 민주주의의 편을 드는 것이다.‘민주주의 = 다 수결’로 정의하고 다수의 의사에 따른 결정만이 주권적인 권위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하지만 이와 같은 해법으로는 민주주의의 시간적 지속성의 차원을 확보 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민주주의는 파편화된 그때그때의 표결에서의 다 수의 의사로 쪼개지며,이 경우에 민주주의는 매우 불안정하며 그 자체로 미래 의 민주적 결정에 대한 보장을 할 수 없는 매우 위태로운 결정방식으로 전락하 게 된다.
헌법과 입헌주의는 바로 절대주의와 민주주의의 파편화 모두에 대한 해결책 으로서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민주주의가 그때그때의 다수의 의지라면 헌법 은 이러한 결정의 순간들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통일성과 전체성에 대해 시간성 과 지속성,그리고 일관성을 가능하게 한다.헌법은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파괴 할 수 있는 가능성,즉 현재의 다수가 미래의 다수의 결정을 방해하거나 방지하 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헌법은 원리적 으로 영속적인 반면에 여전히 민주주의는 파편적이고 불안정한 성격을 갖게되 는 일종의 시간성의 양극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미래 를 보장할 수 없는 결정방식으로 남기 때문에 ‘전투적 민주주의(militant democracy)’의 경우처럼 민주주의 외적인 수단을 통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의 여지를 여전히 열어놓게 된다.6)그리고 무엇보다도 헌법의 기원과 정당 성의 토대에 대한 의문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가장 유력한 대답으로 간주된 것은 헌법과 민주주의 사 이의 관계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이다.이원론적 접근에 따르면 헌법과 민주주의 의 사이의 관계는 예외적 계기와 정상적 기간으로 구분된다.예외적 계기,혹은 정초,건국,제헌의 계기에 헌법은 민주적 결정의 산물이 된다.이 경우에 민주 적 창조자로서의 인민과 헌법의 관계의 본질은 역설,혹은 모순으로 묘사된다.
왜냐하면 인민이 헌법의 정당한 창조자,혹은 헌법제정권력의 행사 주체가 되어 야 하지만,동시에 헌법제정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통일된 의지를 가진 인민이 헌법에 대해 선재한다는 진술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정당화되기 힘들기 6)‘방어적 민주주의’혹은 ‘전투적 민주주의’는 칼 뢰벤슈타인(KarlLoewenstein)의 개
념이다(Loewenstein1937).
때문이다.따라서 강도 높은 모순으로 가득찬 제헌의 계기란 순간적이고 예외적 인 계기로 한정되어야 하며,일단 헌법이 민주적으로 수립되고 나면 연속적인
‘정상 정치(normalpolitics)’의 기간이 뒤따라야 한다.7)그리고 이러한 정상 정 치의 기간 동안에는 제헌의 계기와 달리 이번에는 민주주의 정치가 헌법의 규 제와 통제를 받게 된다.
이원론적 접근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제헌,혹은 헌법 변동의 계기를 지나치게 예외적인 것으로 신비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 정치의 기간은 마치 제헌 의 계기가 경험하게 되는 역설,혹은 모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처럼 이론화한다는 점에 있다.다시 말해서 정치적 행위란 본질적으로 그 토대 가 불안정하며 불확실하기 때문에 행위 자체의 수행성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즉 행위에 전제되는 정당성이 사실은 사후에 행위의 결과로만 확인된다는 역설 로부터 정상정치를 지나치게 자유로운 것처럼 이론화하는 동시에,반대로 이러 한 모순의 부담을 헌법의 제정과 건국,혹은 헌법적 변동의 예외적인 순간에만 과도하게 집중시킨다는 점이다.물론 헌법이 제정되고 국가가 건설되는 순간에 내려지는 결정이 새로운 질서의 창조라는 최대한의 확신과 그렇게 창조된 신질 서의 지속에 대한 극도의 불확실성 사이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헌의 계기 이후에 이러한 모순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대리와 현시의 용어로 번역하여 말하자면 민주주의 국가의 전체성에 대한 현시가 반드시 예외적인 순 간에 제한되는 것도 아니며,절차에 따른 위임으로서의 대리가 반드시 정상 정 치의 기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이론적으로도 이미 제정된 헌법 과 그에 입각하여 구성된 권력(pouvoirconstitué)하에서도 여전히 집단적 결 정과 이를 대표하는 행위자의 활동은 언제나 현재의 단호함과 미래의 불확실성 사이의 모순적인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거가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노동 분업을 의미할 때,대표는 단지 이러 한 노동 분업의 간극을 은폐하거나 메우고 극복하는 활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7)헌법과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을 대표하는 정치이론가는 브루 스 애커먼(Bruce Ackerman)이다.애커맨은 헌법 제정,혹은 헌법이 중대한 변동을 겪는 예외적 계기를 ‘헌법 정치(constitutional politics)’, 혹은 ‘상위 입법(higher lawmaking)’으로 부르고 이와 구별되는 정상적인 기간을 ‘정상 정치’라 부른다 (Ackerman1991;1998).
오히려 대표제란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간극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는 비 대칭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을 지칭한다고 봐야한다.헌법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이원적 접근법의 대표자인 애커먼(BruceAckerman)은 인민에 대한 기존 의 정의가 “지나치게 신인동형론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를 일종의 의사소통의 과정으로 재정의 하고자 한다.그가 보기에 인민이란 “초인적 존재의 이름이 아 니라 정치 엘리트들과 평범한 시민 사이의 확장된 상호작용 과정의 이름”이다.
물론 그는 이러한 과정을 정규적인 대표제,혹은 대의제의 작동과 구분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과정”이라고 본다.왜냐하면 예외적인 “헌법적 계기들 동안 가 장 평번한 미국인들은 시민성의 기획에 엄청난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 며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Ackerman 1998,187).애커먼은 여전히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엄격한 노동 분업이 유지되는 정상정치와 이러한 노동 분업이 유예되는 예외적 인 헌법적 계기를 구분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시하는 인민의 정 의는 본 연구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민주적 대표 개념에 가장 근접해 있다.
그렇다면 대표의 허구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순환성은 어떻게 악순환이나 무한 퇴행으로 빠지지 않고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과정으 로 전개될 수 있는가?이는 대표의 허구의 세 번째 차원과 관련된다.대표의 허 구의 마지막 차원은 선거에 의해 대표자와 피대표자로 분화된 양측 사이의 다 중적인 역할의 배분 및 교체와 관련된다.선거는 근대 사회의 합리적 조직화 원 리인 노동 분업을 정치로 확장하여 구현한다.선거를 매개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은 피선거권자와 선거권자로 분화를 이룬다.피선거권자는 공동체 전체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내리며,선거권자는 이들을 선출하는 역할을 담당한 다.하지만 이와 같은 양자관계만으로는 순환관계가 정치적 노력과 시간을 필요 로 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민주주의를 일종의 ‘지속’으로 전환 하기 위해서는 대표제 민주주의가 주기적인 자유 경쟁 선거 이상의 어떤 것으 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다시 말해서 단순히 대표자와 피대표자,통치자와 피치 자 사이의 두 가지 항만으로는 민주주의의 수레바퀴를 굴릴 수 있는 충분한 힘 이 확보되지 않는다.
선거의 절차와 달리 대표의 허구성은 대표자와 피대표자에게 다수의 바꿔 쓸 수 있는 가면 혹은 역할을 수행하도록 촉진한다.예를 들어 대표자는 선출직 공 직자라는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세 가지의 가면을 바꿔
써야한다.하나는 자기 자신의 가면이며,다른 하나는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들 의 가면이고,마지막으로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제3자의 가면을 써야한다.반면 에 피대표자는 대표자에게 결정권을 위임하면서 대표자가 내리는 결정에 책임 을 지는 법적 당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대표자의 역할 수행에 대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판단자의 역할 또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말하자면 시 민에게는 정치 참여자와 청중이라는 최소한 두 가지의 역할이 허용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다중적 역할과 역할 사이의 교체가 가능할 때,비로소 애커먼이 말했 던 것과 같은 정치엘리트와 평범한 시민 사이의 확장된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과정으로서의 ‘인민’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인민의 이름으로 제기되는 ‘대표하 고 있다는 주장(representative claim)’은 언제나 청중으로서의 시민의 판단에 종속되며,그 결과로 이미 제시된 주장,혹은 현시에 대한 도전이 뒤따를 수 있 다.8)이런 점에서 대표제 민주주의는 선거 민주주의와 입헌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의 상이한 시간성의 양극단 사이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선거 민주주의가 그때그때의 다수결의 파편화된 연쇄로만 이루어져 있다면,반대로 입헌 민주주 의는 최초에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행사된 민주적이고 주권적인 의지를 반영하 면서 오직 최소한의 변화만을 허용하는 가장 장기적인 지속의 시간적 층위를 이룬다.대표제 민주주의란 바로 이러한 두 가지의 극단적인 시간성 사이의 중 간영역에 놓인다고 하겠다.다시 말해서 대표제 민주주의는 선거 민주주의와 달 리 선거와 선거 사이에 이루어지는 정부와 시민,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상 호작용과 의사소통의 영역을 포괄한다.동시에 대표제 민주주의는 입헌 민주주 의와 달리 이렇게 ‘확장된’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이 반드시 새로운 질서를 창출 해야 하는 예외적인 결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일상적인 운용을 위해 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낸다.이러한 방식으로 재정의 될 때에만 대표제 민주주의는 민중주의(populism)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제시될 8)대표활동의 핵심이 피대표자로부터 위임받은 결정의 수행이 아니라 피대표자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Saward 2010).이와 같은 대표자로서의 주장의 핵심은 대표자가 결코 완전하게 피대표자를 대표할 수 없 다는 전제에 있다.“따라서 대표제 정부란 대표자들이 결코 완전한 확신과 확실성을 갖고 “우리 인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체계다.인민의 자치와 절대적 대표는 모두 통 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간극을 폐지하는 결과를 낳는데,전자는 피치자를 통치자로 전 환시키기 때문이며,후자는 대표자가 피대표자를 대체하기 때문이다.반면에 대표제 정부는 이 간극을 보존한다”(Manin1997,174-175;강조는 인용자).
수 있다. 그리고 대표제를 이렇게 정의해야만 인민 주권의 자기-재현 (self-representation)은 신인동형론과 유일주의의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대표의 허구의 이와 같은 측면은 인민 주권을 대표제 민주주의에 보다 적합 한 방식으로 개념화할 수 있게 해준다.'내가 곧 국가다(L'Etatc'estmoi)'가 ' 우리가 곧 국가다(L'Etatc'estnous)'로 대체됨으로써 민주적 주권관이 완성되 는 것은 아니다.두 가지 원칙은 '내'가 '우리'로 대체되었다는 점에서만 구별되 는 것이 아니다.절대군주제의 대표 원리에서 '나'는 '국가'를 대표(현시)하는 유 일한 행위자이며 따라서 대표되는 객체와 필연적으로 일치를 이룬다.ᅠ따라서 ' 나'는 '국가'의 육화(embodiment)이거나,혹은 대표자인 '나'의 배후에 있는 국 가를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만드는 장막(screen)이다.연극적 허구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내가 곧 국가다'의 경우에는 '나'는 무대 위의 연기자이자 대본의 '저 자'이며 '내'가 연기하는 극중 인물과 '나'는 동일 인물이기까지 하다.여기서 상 이한 역할들 사이의 간극은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진다.반면에 '우리가 곧 국가 다'라고 했을 때에는 결코 이와 같은 동일시는 불가능해진다.민주주의에서의 대표 원리,혹은 인민의 자기-재현은 결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 다.다수의 대표자들은 여전히 무대 위의 연기자들이지만,그들 각각은 결코 자 신들이 대표하고 재현하는 국가와의 일치를 이루거나 국가에 대한 육화로서 자 신을 제시하지 못하며,오히려 '탈육화(disembodiment)'가 규범이 된다.그들은 각각 국가의 '가면'을 쓴다.가면은 배후에 있는 대상을 가리는 동시에 보여준 다.9)즉 재-현한다.민주주의에서의 대표자들의 말과 행동은 결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다.법적으로는 자신들을 선출한 유권자에게 그 말과 행동의 책임이 귀속된다.하지만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그 말과 행동의 저자란 그들이 연 기하는 극중인물(국가 혹은 인민)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이고 상상적인 행위자일 수밖에 없다.이러한 상상적인 행위자에 구체성과 실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 은 대표자의 의인,혹은 연기 활동과 (유권자에서 청중으로 역할을 바꾼)시민 들의 판단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뿐이다.'내가 곧 국가다'로부터 '우리가 곧 국가다'의 원리를 구별시켜주는 것은 단지 주어를 단수에서 복수로 바꾸는데 있 지 않다.ᅠ오히려 관건은 다수의 교체가능한 정치적 역할들 사이의 간극을 제거 9)대표자의 연극적 역할에 있어서 장막과 가면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Runciman1999,251-161).
하지 않으면서도 이와 같은 역할들 사이의 통일성,혹은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있을 것이다.
홉스와 켈젠,그리고 슈미트의 대표 이론에 대한 검토를 통해 본 연구는 다음 의 두 가지 점을 보이고자 한다.첫째,단일하다기보다는 다원적인 모델로 수렴 되는 정치적 대표 현상을 관통하는 일관된 논쟁은 ‘위임(mandate)’과 ‘신탁 (trusteeship)’이 아니라 ‘대리’와 ‘현시’의 차이에서 기인한다.위임/신탁이 대표 자의 자율성 유무에 따라서 대표의 모델을 구분한다면,대리와 현시는 대표되는 대상의 ‘인격성(personality)’,혹은 ‘행위자성(agency)’의 유무(혹은 성격)를 기 준으로 구분된다.대표자의 자율성의 유무를 기준으로 구분되는 위임/신탁의 차 이는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정치적 대표 현상 전체를 포괄하는 구분이라기보 다는 행위자성을 갖는 피대표자(예를 들어 유권자나 정당,다수와 소수)를 대표 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대리’에만 해당하는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이와 달리 행위자성이 없는 피대표자(예를 들어 인민,국민,국가)는 그 자체로는 대리될 수 없으며,행위자성 혹은 인격성을 갖는다고 간주되도록 대표자에 의해서 현시 되어야만 비로소 그 후에 대리될 수 있다.둘째,대리와 현시 사이의 관계가 비 대칭성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이론화되어야 한다.이는 홉스가 이론화를 시도만 하였으며,켈젠과 슈미트는 아예 부정했던 가능성이다.이러한 가능성을 되살리 기 위해서는 우선 대리와 현시를 특정한 대표제적 형태(예를 들어 의회제와 대 통령제,정당 민주주의와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로부터 분리해야 한다.의회의 의원은 대리인에 불과하며,군주나 대통령만이 현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식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오히려 모든 대표자는 두 가지의 역할을 어느 정도는 동시에 수행한다고 봐야한다.대표자는 결코 하나의 단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이다.대표자의 역할의 이중성을 전제로 할 때,‘대표의 허구’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재정의되어 야 한다.기존의 ‘대표의 허구’는 선거에 의한 정치적 노동 분업에도 불구하고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역할의 ‘동일성’,혹은 ‘대체(substitution)’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식으로 부정확하게 설명함으로써 이 분업을 정당화한다.반면 재정 의된 ‘대표의 허구’는 노동 분업 혹은 역할의 분화를 전제로 하면서 유권자로서 의 시민이 자신이 선출한 대표자의 결정에 대한 공적 판단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이는 절차적 ‘권위(authority)’와 허구적 ‘저자성 (authorship)’을 구분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10)
1. 2위임/ 신탁 논쟁의 한계
정치적 대표에 관한 기존의 논의의 초점은 대표자의 자율성에 맞춰져 있다.
정치적 대표자란 한편으로는 그저 부분 이익의 대리인,혹은 대변자에 불과해서 는 안 된다.그렇게 되면 의회는 부분 이익들 간의 경쟁과 갈등의 장이 될 것이 기 때문이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표자가 부분을 초월하는 전체 이익의 대표자이기만 해서도 안 된다.만일 그렇다면 더욱 다원화되고 복잡화되는 사회 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요구에 대한 ‘대표성’을 확보하기 힘들어진다.이러한 대 표 이론의 내적 갈등은 주로 대표자의 자율성에 관한 상이한 두 가지 모델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첫 번째 모델은 주로 ‘자유 위임(freemandate)’,혹은
‘신탁(trusteeship)’등으로 불린다.이 모델에 따르면 대표자는 ‘전체를 대표’하 10)권위와 저자성[저자권]은 언어적으로 동일한 기원으로부터 유래한다.라틴어 auctor
는 (법적 대리인에 대하여)법적 당사자라는 의미와 저자라는 의미 모두를 갖고 있 다.그래서 권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authority의 어원은 라틴어 auctoritas에 있다.
그리고 auctor는 ‘성장시키다,증가시키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동사 augeo의 행위자 명사다.프랑스 언어학자 에밀 벤베니스트(Émile Benveniste)에 따르면 ‘성장시키다’
는 의미로부터 auctor는 사전적으로 “자라게 하는 자”,혹은 “저자”를 의미한다.하지 만 이는 표면적인 의미에 불과하며,그 완전한 의미에서 auctor는 “모든 영역에서
<증진시키는> 자,선취권을 지닌 자,어떤 행위를 최초로 유발시키는 자,기초를 닦 는 자,보증하는 자,마지막으로 <장본인,저자>를”의미한다.“이로써 auctoritats라 는 추상명사의 완전한 의미와 가치가 파악된다.즉 그것은 산출의 행위 또는 최고 행 정관이 지닌 자질,또는 증거의 효력,선취권 등을”지칭한다.“<권위(autorié)>를 가 지고 표명된 모든 방화는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며,어떤 것을 창조한다.이러한 신비 한 특질은 augeo가 표현하는 것,즉 식물을 자라게 하는 힘,법이 생기도록 하는 힘 그것이다.(...)알 수 없는,강력한 의미 가치들이 이 auctoritas에 잠재하고 있다.이 재능은 어떤 것을 생기게 하는,따라서 문자 그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존재하게 만드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고유하게 주어지는 것이다”(벤베니스트 1999,180:
182-183).라틴어 auctoritas와 auctor에 대한 이론적 관심은 주로 권력(potestas)과 구분되는 권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주로 로마 공화정에서
“Auctoritas는 권고 이상이자 명령 이하이며,아무렇지도 않게 복종을 변할 수 없는 조언이다”는 몸젠(TheodorMommsen)의 진술에서 유래한다(Mommsen 1888,1034; cf.Friedrich 1958;Arendt1958).이와 달리 권위가 아닌 저자성의 정치적이고 민 주주의적인 의미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Habermas 1998;Pettit1997;1999). 홉스의 대표 이론에서 권위와 구분되는 의미에서 ‘저자성의 허구’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BritoVieira2009,154-155).
기 때문에 자신을 선출한 부분으로서의 유권자로부터 ‘자율성’을 갖는 것이 정 당화된다.이와 달리 두 번째 모델은 주로 ‘기속 위임(imperativemandate)’,혹 은 단순히 ‘위임(mandate)’으로 불린다.이러한 모델에 따르면 대표자는 ‘부분 을 대표’하기 때문에 자율적일 수 없으며,피대표자의 지시나 요구에 종속된다.
이렇게 봤을 때,자유 위임과 기속 위임,신탁과 위임 사이의 구별은 대칭적인 기준을 따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오히려 두 가지 모델은 모두 ‘부분 을 대표하는 대표자는 자율적일 수 없고,전체를 대표하는 대표자만이 자율적일 수 있다’(혹은 ‘부분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11)따라서 자율성/타율성만큼이나 전체/부분이라는 기준은 별도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12)
11)아렌트(Hannah Arendt)는 대의원과 수탁자가 대립하는 별도의 대표자 모델이 아니 라 부분을 대표하는 방식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부 분에 의해서 “선출된 대표자”는 여전히 “선택권”이 있는데,피대표자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하는 “영광스러운 사환이거나 고용된 전문가로서 마치 변호사처럼 자신의 고객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문인”으로서 피대표자의 이익을 자신의 전문성을 통해 신장시킬 수 있는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Arendt1963,237).마찬 가지로 마넹(Bernard Manin)은 기존의 대표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대리인으로서의 대표자는 전달하는 메시지의 내용에 대한 통제권이 없는 “집배원”이거나 투자에 대한 전문적 판단을 대신하여 내려주는 “은행원”이라는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수행하게 된다고 지적한다(Manin 1997,5-6).결국,이러한 두 가지 모델은 사실은 표면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피대표자로부터 대표자로 향한 영향관계의 방향이 고정되 어 있다는 점에서 시간적으로 ‘선형적’이며 미래를 향해서 ‘전망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기 때문에 ‘약속형 대표(promissory representation)’라고 할 수 있다(Mansbridge 2003).
12)여기서 말하는 ‘부분’과 ‘전체’사이의 구분의 기준은 보다 정교하게 설명될 필요가 있다.왜냐하면 부분은 ‘다수’,혹은 ‘소수’를 지칭하고 전체는 ‘만장일치’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본 연구의 관점에서는 다수/소수와 마찬가지로 만장일치 또한 전체가 아닌 부분에 속한다.왜냐하면 만장일치란 전체 구성원 중에서 도 참여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투표자들 사이에서의 만장일치이기 때문이다.따라 서 부분이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양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합계,혹은 ‘집적 (aggregate)’을 의미한다면,전체란 그러한 부분들의 집단성,통일성,혹은 일관성과 같은 추상적인 관념을 지칭한다(BritoVieira & Runciman 2008,44).이와 관련하여 레펠드(Andrew Rehfeld)의 연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Rehfeld 2009).그는 부분/
전체를 대표하는 차이는 대표자의 자율성/기속성의 차이와는 상이한 기준이라는 점을 지적한다.그러면서 부분에 대한 대표를 (기속)위임에 대응시키고,전체에 대한 대표 를 신탁에 대응시키는 대신에,전자를 ‘다원주의’에,그리고 후자를 ‘공화주의’에 대응
본 연구의 관점에서 ‘수탁자(trustee)’모델은 비현실적인 기속 위임을 대체할 수 있는 명쾌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해소되어야 하는 문제와 모순을 안 고 있는 관념에 가깝다.13)기속 위임은 주로 소환제와 같이 대표자를 피대표자 가 구속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절차가 거의 대부분의 대표제 민주주의 에서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근대 대표제 정부에서 대표자의 자율성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경험적 현실이다.본 연구는 수탁자 모델을 두 가지 점에서 문제삼고자 한다.첫째,수탁자 모델은
‘부분에 대한 대표’와 ‘전체에 대한 대표’의 방식을 구별하기보다는 양자를 암묵 적으로 ‘동일시’하고 있다.(혹은 양자의 차이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하지만 양자는 상이한 방식으로만 대표될 수 있다.이 두 가지 방식은 주로 ‘대리’와 ‘현시’로 불린다.각각의 대표 방식은 대표 관계에 참여하는 행위 자들에게 상이한 역할을 배분하며,각자 서로 다른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난점과 한계를 포함하고 있다.‘대리’의 차원에서는 대표자의 자율성 유무가 문제가 된 다면,‘현시’의 차원에서는 대표자에 의해 제시된 표상과 재현의 대상(전체 혹은 국가)그리고 그에 대한 판단자(피대표자)사이의 복합적이고 불확실한 관계가
시킨다.본 연구는 부분/전체와 자율성/기속성을 구분하는 레펠드의 입장을 받아들이 지만,부분에 대한 대표를 ‘다원주의’에,그리고 전체에 대한 대표를 ‘공화주의’에 대 응시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혹은 달리 표현하면,레펠드가 주장하는 ‘공화주 의’와 ‘다원주의’의 차이는 바로 상이한 대표의 방식인 ‘현시’와 ‘대리’에 상응한다고 본다.
13) ‘자유 위임’, 혹은 ‘신탁’(수탁자)의 대표 모델은 주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Burke 1999,155-157).이 모델에 대 한 논의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Pitkin 1967, 127-131; Elster 1998; Mansbridge 2003: 2011; Rehfeld 2009: 2011; Brito Vieira & Runciman 2008, 74-83:96-103;정호원 2011;유승익 2015).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수탁자가 ‘전 체를 대표한다’고 할 때,심의의 주체로서의 의사소통 능력이나,해석의 능력,그리고
‘전체의 공통된 속성을 나타내는’능력의 차원에서 정당화한다는 점이다(Pettit2009;
서병훈 2011).그런데 이는 법적 대리의 모델로서의 신탁의 언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며,이러한 대표의 능력은 ‘현시’의 차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연구의 주장이다.또한 수탁자 모델은 점점 더 민주주의에서의 정치적 대표자의 모델보다는 전지구적 정치에서의 NGO가 수행하는 역할이나 미래 세대에 대한 대표처럼 선거에 의한 위임으로 설명될 수 없는 대표의 주요한 모델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예 를 들어 미래 세대에 대한 대표를 수탁 모델로 설명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 조하라(Thompson2005:2010).
문제가 된다.둘째,그런데 이러한 ‘동일시’는 민주적 선거 절차의 엄격한 합리 주의적이고 형식적 언어의 범위를 벗어난다.왜냐하면 선거는 선출된 자와 선출 하는 자 사이의 동일시,혹은 동일성을 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 사 이의 역할의 분화와 노동 분업을 구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러한 동일시의 조건은 선거 절차 밖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이를 역사적으로 가능하 게 했던 것은 근대 ‘대표제 정부(representative government)’의 원형으로서의 의회제에 특유한 정당성 이데올로기인 ‘대표의 허구’다.이 허구의 역사적 형식 은 ‘의회가 인민을 대표한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그리고 이 허구는 논 리적으로는 ‘B가 A를 대표한다’고 했을 때,‘B와 A는 동일하다’,혹은 ‘B가 A를 대체한다’는 의미가 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14)따라서 ‘의회가 인민을 대 표한다’는 것은 곧 ‘의회의 결정이 ‘마치’인민 자신의 결정인 것과 같다‘는 의미 가 된다.
물론 현대의 수탁자 이론은 근대 초기에 등장한 이와 같은 의회제적인 ‘대표 의 허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지는 않다.즉 ‘대표자는 피대표자 전체를 대표한 다’는 적극적인 표현보다는 반대로 ‘대표자는 유권자나 정당의 통제로부터 자율 적이다’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이 선호되는 것이 사실이다.예를 들어 슘 페터(Joseph A.Schumpeter)는 대표자를 ‘전체의 이익의 전문가’로 보는 적극 적인 관점을 허구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대표자가 유권자에 의해 선출될 뿐이며, 유권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관점을 채택한다(Schumpeter 1975 ).15)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헌법 제46조 제2항은 국회의원이 “국가이익을 우선 하여 양심에 따라서”결정한다고 적고 있다고 하면서 ‘국가 전체를 대표한다’는 14)‘대표하다’를 ‘대체하다’로 정의하면서 ‘대체의 이론’을 ‘유사성의 이론’과 구별하는 관점의 대표적인 예로는 앵커스밋(F. R. Ankersmit)의 연구가 있다(Ankersmit 1996,45-50; 2002a,107-118; 2002b).피트킨은 ‘대표 = 대체’의 관점은 대표자 의 행동의 책임이 피대표자로 귀속될 수 있는 관계를 성립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Pitkin 1967,131-133).이러한 비판은 ‘대표 = 대체’의 관점이 엘리트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함의를 갖는다.본 연구는 이와 달리 ‘대체의 대표 이론’이 ‘유사성 의 대표 이론’과 구별되기는 하지만 동일한 대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