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 14. | CO 22-10
조 한 범(통일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탈냉전 이후 나토(NATO)는 매우 빠른 속도로 동진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혼돈 속에서도 나토 가입을 지향해왔다. 이는 러시아의 안보불안을 야기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민의 상실감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전략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 우려 속에 제2차 세계대전 및 탈냉전 질서의 재편, 러시아의 고립, 각국의 군비증강, 글로벌 보수·우경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립구도 형성, 미·중전략경쟁 심화, NPT체제의 동요 등 국제질서의 변화와 아울러 한반도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소련·동유럽 체제의 해체 이후 나토의 급속한 동진은 러시아의 안보불안을 자극 했으며,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는 친서방·친러 세력이 혼재된 상황에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단행된 러시아의 전격적인 침공은 예상과 달리 장기화 경향을 보이며,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있다.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는 다방면에서 국제질서는 물론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나토의 동진(東進)
1990년 전후 소련·동유럽 체제는 붕괴되었으며, 소비에트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15개 공
우크라이나 사태 평가와
국제질서 변화 전망
화국은 모두 독립국가로 전환했다. 소련·동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바르샤바조약기구 (Warsaw Treaty Organization: WTO)도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반면 유럽연합(EU)과 나토 는 동유럽 국가들을 받아들이면서 거침없이 확장되는 경향을 보였다.
동유럽의 체제전환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는 소련의 군사적 보호막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소련은 이를 우려했으며, 독일통일 당시 독일과 미국은 나토를 확장시키지 않겠다 고 약속했다. 2022년 2월 18일 독일 슈피겔(Der Spiegel)지는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서방이 나토를 동진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위반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서를 보도했다. 1991년 3월 6일 본에서 개최된 협상에서 독일과 미국은 각각 “엘베강 너머로 확장하지 않겠다”, “소련군의 동유럽 철수를 이용하지 않겠다”며 소련에게 나토를 동진시키 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내 정책을 바꾸었으며, 국내 정치적 기반 이 취약해진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나토가 동독으로 전진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소련의 해체로 러시아 국력은 급속히 쇠퇴했으며, 초대 러시아 대통령 옐친은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집권 초 친서방 정책을 펼침으로써 나토의 동진을 저지하기 힘들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집권 초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소련의 해체 이후 동유럽을 향한 나토의 동진은 거침이 없었다. 동독은 통독과 함께 자연스 럽게 나토에 편입되었으며, 1999년 체코, 폴란드, 헝가리, 2004년 소련의 일원이었던 에스 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비롯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나 토에 가입했다. 이후 2009년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2017년 몬테네그로, 2020년 북마케도 니아가 나토에 가입했다. 나토 가입을 희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제외할 경우 구소련권 국가들 중 유럽에서 나토 미가입 국가는 벨라루시와 몰도바 정도이다. 사실상 나토가 러시아 를 포위한 형국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는 유럽에서 안보적으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면이다.
우크라이나의 진통
우크라이나는 4,300여만 명의 인구 및 한반도 3배 면적에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는 비옥한 흑토지대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에 뿌리를 둔 산업시설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2021년 우크라이나의 경제력은 세계 55위이 며, 기업환경지수는 2015년이 되어서야 세계 96위로 100위권에 진입했다. 국제투명성기구 (TI)가 발표한 2020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117위이며, 유럽
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혼란은 지속되었으며, 친러시아와 친서방 노선으로 나뉜 국민의 통합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초대 크라우츠크 정권은 체제전환기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해 단명했으며, 후임 쿠치마 대통령은 연임을 통해 일부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폭압적인 통치로 민심을 잃었다.
쿠치마 대통령이 후계자로 지명한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는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부정선거에 반발한 오렌지 혁명으로 친서방 성향의 유셴코 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나 유셴코 정권은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쳤으며, 오렌지 혁명의 주역인 유셴코 대통령과 티모셴코 총리는 경제위기 앞에서 분열과 갈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2010년 야누코비치가 제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EU 가입 등 친서방 정책을 폐기하고 노골적인 친러시아 정책을 펼쳤다. 이에 반발한 시민저항운동 유로마이단으로 야누코비치는 탄핵되어 러시아로 망명했 다. 이를 빌미로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으며, 야누코비치의 정치적 고향인 돈바스 에서 친러계 주민들이 내전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확산된 반러 정서를 기반으로 친서방 기업가 출신인 포로셴코 대통령이 2014년 집권했지만 신흥재벌 올리가르히의 이익을 대변 하며 각종 부정부패 의혹에 휩싸였다. 포로셴코는 2019년 대선에서 젤렌스키 현 대통령에게 패배했으며, 재임 중 동부 분리주의자들의 자금조달을 도왔다는 반역 혐의를 받아 폴란드로 도피했다.
이 같은 정치적 혼란을 배경으로 기성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 배우 출신의 젤렌스키는 결선투표에서 73%를 넘는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집권 성적표는 성공적이지 못했 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배우 시절의 지인과 친구들인 작가, PD, 영화제작자 등을 대통령 비서실장, 정보수장을 포함해 요직에 임명해 인사 난맥상을 보였으며, 부정부패 척결과 내전 종식 등 공약의 이행에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 가입을 공언했으며, 전쟁가능성에 대해서도 안일하게 대응했다. 전쟁 직전 젤렌스키 대통령의 재선 지지율은 23%에 불과했다.
호전적인 푸틴 정권 및 러시아와의 적대관계와 우크라이나 내 친러 세력을 감안하고, 미국과 나토의 전략적 셈법을 면밀히 검토해 나토 가입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러시아의 심장부와 모스크바는 턱밑까지 나토의 안보적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러시아가 이를 방치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나토가 우크라이나 의 가입 요구를 즉각 들어주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요인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독립 직후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정세 판단이 안일했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복잡한 문제로 얽혀있었다. 크림반도는 소련 시기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편입
되었으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친러 성향이 강해 갈등을 내재하고 있었다. 이 같은 문제에 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과 러시아의 압력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국가 주권을 인정받고 경제지원을 받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문제가 점차 현실화되었으며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하 고 반군을 지원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사실상 실효지배했다.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를 전면 침공했지만 주권 보장을 약속한 미국은 물론 나토는 직접 개입을 꺼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아니라 불가침조약 체결 등 보다 확고한 안전보장 조치를 고민했다면 오늘날의 결과는 달라졌을 개연성이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앞에서 최고사령관으로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영웅적인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재발견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최선의 선택은 냉철한 정세분석과 전략적 판단을 통해 전쟁을 사전에 막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독립 이후 30여 년간 국가발전과 복잡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인 자국의 외교안보적 안정성 확보에 성공하지 못했 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러시아의 한계
러시아인들은 냉전기 미소 양강의 한 축이자 공산권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 다. 그러나 소련의 해체로 인구와 영토는 분산되었으며, 경제력은 2021년 현재 11위로 내려 앉았다. 러시아인들이 소련 시기에 가졌던 자부심은 무너졌으며, 체제전환으로 오랫동안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 러시아의 상실감이다. 푸틴 대통령이 위대한 러시아를 끊임없이 외치는 이유는 바로 러시아의 상실감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러시아 의 상실감은 장기간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이다.
크림반도 합병 당시 러시아인의 지지는 절대적이었으며, 크림반도 ‘애국여행’ 열풍이 일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배경도 러시아의 상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시계추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려 했다는 점에서 큰 정치적 오판을 한 셈이다. 우선 독립국가인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강제합병은 국제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러시아로서 나름 명분이 있는 크림반도 합병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용인한다면 국제질서는 무너지게 된다. 어느 경우 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러시아가 승리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기간 점령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러시아를 해방군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으며, 우크라 이나인들의 반러 정서는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친러 괴뢰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지만, 러시아 경제가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국지전인 크림반도 합병 및 돈바스 내전과 달리 러시아는 장기 전면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러시아 군사력은 세계 2위지만 경제력은 11위에 불과하다. 탈냉전 이후 러시아는 산업구조 재편과 국방력 현대화 양자 모두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러시아 수출의 지하자원 의존도는 절대적이며, 군사력은 대부분 구소련에서 물려받은 과거의 유산이다.
걸프전에서 미국은 이라크의 지휘·통신·방공망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평탄한 사막 지형에 기갑전력을 신속하게 전개시켜 전쟁을 단기간에 마무리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개전 직후 압도적 화력 투사에 실패했으며, 우크라이나의 지휘·통신·방공망은 아직도 건재하다. 국민들 의 스마트폰은 우크라이나군의 눈과 귀가 되어주고 있으며, 미국과 나토는 사실상 무제한의 정보와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걸프전과 같은 사막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제한된 도로와 시가전에서 현대화되지 못한 러시아의 기갑전력은 무기력한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응도 강력하다. 특히 이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유럽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명운을 걸고 대응하고 있다. 유엔은 러시아 규탄 결의안을 141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으며,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자격을 정지시켰다. 국제제재는 가히 ‘경제 핵폭탄’ 수준으로 러시아 경제를 직격하고 있으며, 완전 철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제재 완화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실상 푸틴 대통령과 전 세계가 싸우는 형국이며, 러시아는 명분없 는 전쟁, 준비 안 된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저항에 직면해있다.
포스트 우크라이나 사태의 국제질서 변화
우크라이나 사태는 다방면에서 국제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제2차 세계대전과 탈냉전에 기반을 둔 유럽질서의 변화이다. 그동안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인 소련을 계승해왔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범국가로 위상이 몰락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은 러시아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전 유럽의 적이 되어 다시 동토의 왕국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은 러시아의 어두운 미래다.
독일은 전범국의 그림자를 일거에 지우며 반러시아 전선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독일 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타국에 대한 공격용 무기 지원의 금기를 깼으며, 현 GDP 1.5% 수준의 국방비를 2024년까지 2%로 증액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국방비 증액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적기지 공격능력 확보 등 군비증강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되며,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지향할 개연성 도 있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로 각국의 자국중심주의가 강화될 수 있으며, 글로벌 보수·우경화 의 개연성도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경제의 둔화에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경제 침체가 가속화할 경우 각국 국내정치의 보수·우경화의 토양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우크라 이나 사태 이후 프랑스 대선에서는 우파가 약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네오나치와 백인우월주의 등 극단주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참전 하고 있는 국제의용군 중 일부도 네오나치와 백인우월주의 등 극우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네오나치 등 극우세력에게 구소련에 뿌리를 둔 러시아는 적대적인 대상에 해당한다. 우크라 이나 사태를 계기로 극단주의 세력이 결집할 경우 세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글로벌 대립구도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과의 연대를 강화하 고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등 민주주의 진영과의 협력을 확대해왔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이미 러시아는 ‘바이든 표 새로운 악의 축’으로 규정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 진영의 협력체제를 강화해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과의 대립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포스트 우크라이나 사태의 글로벌 대립 구도를 신냉전으로 규정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냉전기의 경우 공산권은 코메콘 (COMECON) 등 자체 내의 지역공급망(Regional Value Chain)을 형성해 자본주의 진영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았다. 반면 현재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글로벌공급망(GVC)에 의존하 고 있다. 각국 내 민주주의 및 인권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진영의 글로벌 연대 강화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국들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에 서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진영 간 대립구도의 형성은 중국과 러시아에게 도전요인이 될 것이다.
미·중전략경쟁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인도·태평양 지역 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외교안보적 태세는 큰 변화가 없다. 특히 나토의 급속한 군비증 강은 미국의 부담을 경감시켜 인도·태평양전략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나토의 단결력이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이 이를 이용해 대중 견제 강화를 도모할
개연성도 있다. 그동안 유럽국가들은 대중국 견제에 입장차를 보여왔지만, 중국이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할 경우 강경한 대응이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중전략경쟁에 직면한 중국에게 악재로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
NPT체제는 핵보유국이 비핵국가를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을 두 고 있다.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제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자발적으로 비핵화를 선택한 우크라이나를 핵무기로 위협했다는 점에서 NPT체제의 근간을 흔들었다. 나토의 경우 미국과 핵공유협정(Nuclear Sharing Agreement)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잠재적 핵 위협에 직면해있는 국가들은 새로운 대응책을 고심하게 될 것이다. NPT체제의 안정화는 포스트 우크라이나 국제정치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한반도 시사점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발적 비핵화를 선택한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집착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 및 서해 인공위성발사장 증·개축에 돌입했으며, 3월 24일에는 화성-17형 ICBM을 발사해 자발적 모라토리엄을 공개 적으로 파기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당분간 북한은 비핵화 협상보 다 핵능력 고도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의 러시아 규탄 성명에 반대한 5개국 중 하나인 북한은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다. 강력한 국제제재라는 동병상련을 기반으로 북·러 연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 다. 고립무원의 러시아로서 북한의 편들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으며, 판로가 제한된 에너지 자원을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북·중관계를 강화해온 북한이 향후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북·중·러 연대를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냉전기와 다르다는 점에 서 북·중·러 간 연대의 시너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윤석열 새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원칙적 대응과 아울러 한미동맹 강화 및 한·일 협력체제의 복원을 지향하고 있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의 가속화에 대해서는 한미연합훈 련 및 전략자산 전개 등 상응조치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새 정부 출범 초기 남북 및 북미관계 의 강대강 국면이 조성될 개연성이 있다. 푸틴 대통령의 핵사용 관련 발언의 파장에 이어 김여정 부부장은 4월 4일 담화를 통해 한국에 대해 핵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따라서 한국
형 3축체제의 강화와 아울러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것은 새 정부의 우선적 과제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이 민주주의 진영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공약인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 격상 등 한미관계 강화 노력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미·중전략 경쟁이 심화될 경우 쿼드 워킹그룹 참여 등을 계획하고 있는 새 정부와 중국 간 긴장관계가 형성될 개연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일본의 보수·우경화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한일관 계 개선은 새 정부의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도 미·중전략경쟁 심화 등 세계질서 재편의 유동성은 증가하고 있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등 신안보의 시대와 아울러 글로벌공급망과 첨단기 술 등 신경제의 시대가 도래했다. 복합적인 대전환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교훈을 찾고 대전환기의 도전을 기회로 삼아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국가전 략을 모색할 시점이다. ⓒKINU 2022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통일연구원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