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간 역사문제의 현황과 대응방안
1)
하 도 겸 (동아시아고대학회)
*Ⅰ. 머리말
Ⅱ. 동북공정의 현황
Ⅲ. 한중간 역사문제의 전개
Ⅳ. 한중간 역사문제에 대한 대 응방안
Ⅴ. 맺음말에 갈음하여
Ⅰ. 머리말
중국의 동북공정식 역사이해의 문제를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결국
‘현재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 역사를 규정하는데서 오는 역사 왜곡문제 가 된다. 이는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뒤흔든 심각한 사안으로서 2004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독도문제나 일본 역사교과서문제와 함께 동북 아시아에 있어서 주요한 역사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연유로 중국 에서 역사와 관련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곧 ‘동북공정’과 연결시킬 정도로 우리 국민의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중국에 대한 의 심과 경계심의 단편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중간 역사문제에 적절하게 잘 대처하기 위해 서는 반드시 사전에 중국의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분석해야하고, 표면 적으로는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인 대응이 되어 야 한다. 비록 당장은 아니더라도 만약 감정적인 대응을 해 버린다면, 이후 불어올 수 있는 중국측의 반응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
* 동아시아고대학회 국제이사.
문이다. 굳이 ‘마늘파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해야 우리의 정 체성을 지키면서도 국익을 손상시키지 않을 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야 한다.1)
최근의 한중간 역사문제는 이미 표면적으로는 종료된 동북공정뿐만 이 아니다.2) 이보다 더 파괴력이 큰 한중간의 역사문제가 서서히 아니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최근 한중관계에 있어서 중국 인터넷에 종종 나타나고 있는 역사문제를 포함한 반중 및 반한 정서문제가 그것 이다.3) 이에 대해서 우리는 중국 언론이나 인터넷망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중국정부의 역할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공 산주의 일당 독재의 폐쇄된 중국사회와 그에 대한 중국정부의 통제 가 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100% 통제된 사회라는 확신을 가지기에는 중국 시민사회의 의식도 이미 너무 성장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4) 따라서 중국측에서
1) “특히, 간도문제의 경우는 북핵문제나 남북통일 이전에 우리측이 먼저 제기하 는 것 자체가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김 정배, 중국의 고구려 역사 평가로 본 한․중관계 (한․중 우호협회 주최 월 례 조찬강연 요지, 2004.6.11).
2)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아래 편․저서들이 참고가 된다. 최광식, 중국의 고구려 사 왜곡 (살림출판사, 2004); 윤명철, 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 (고래실, 2004); 이인철 외, 대고구려역사 중국에는 없다 (예문당, 2004); 윤명철, 역 사전쟁 (안그라픽스, 2004); 고려대박물관,한국고대의 GLOBAL PRⅠDE 고 구려 (통천문화사, 2005); 신종원, 중국인들의 고구려 연구 -동북공정의 논리 - (동북아 역사 총서 7,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이찬희·임상선·윤휘탁, 동아시아의 역사분쟁 (도서출판 동재, 2006); 김정배, 한국고대사입문 2: 삼 국시대와 동아시아 (신서원, 2006); 김정배 외, 고조선 단군 부여 (동북아역 사재단, 2007); 우실하,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소나무, 2007); 이도학, 역사가 기억해 주는 이름 (서경문화사, 2007); (사)고구려연구회 편, 동북공 정과 한국학계의 대응논리 (여유당, 2008); 신형식, 한국고대사의 새로운 이 해 (주류성출판사, 2009).
3) “우리 국민․국회의원 의식조사에서 ‘친중 호감도’가 상당히 높으나, 한․중 양국의 역사관계에 비추어 ‘경계심 없는 호감과 친근감’은 위험하다.”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김정배, 앞의글, 2004.6.11).
4) 굳이 천안문사태나 법륜공(法輪功)문제, 작년 7.5의 신장(新疆)사건 등을 거론 하지 않더라도 성장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사회인식은 중국정부에게도 커다란
반한정서와 관련된 보도가 나왔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부차원 에서 뿐만 아니라 학계와 언론계 등 민간차원에서 중국정부 뿐만 아니 라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언론과 지도층 인사들 그리고 학계 인사들에 대한 접촉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함양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한 교류를 통해 해당 중국인들을 교육시 키고 나아가 한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고쳐, 그들로 하여금 중국 국 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창출해 내도록 충분히 꾸준히 설득시킬 수 있도 록 해야 한다.5)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의 부상 및 대국화 그리고 국제적 위상제 고에 따른 한중관계의 정치․경제적 중요성은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 안정 나아가 통일을 위해서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유지 그 자체가 그 어떤 문제의 해결보다도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바로 그러한 외교적인 한계점이 노정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중간의 역사문제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이와 같은 오늘날 한중관계의 현실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민족의 정 체성 문제 등과 관련해서 우리에게는 매우 큰 문제이지만, 중국에게는 그만큼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는, 소위 동북공정을 포함한 역사문제의 현황과 전망 그리고 우리의 대응방안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 특히 미 항공모함의 서해 안 진입을 둘러싸고 선동적인 기사를 써 내려가는 중국의 인터넷 신문과 중국 국민들의 반응을 보면, 향후 이렇게 민족주의적으로 성장한 중국인민의 의식을 중국정부나 언론이 어떻게 다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단순한 필자만의 과민반응은 아니리라 여겨진다.
5) 중국인 주요인사에게 한국을 안내를 담당하는 여행사 직원에 의하면, 대부분 의 여러 분야의 지도층 중국인사들이 우리나라의 건축, 문화, 역사, 문화재 등 을 접하면서 ‘한국과 중국이 이렇게 다른지 몰랐다’고 놀라워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고 한다. 필자도 이런 경험이 적지 않은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각계 각층의 중국인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매 우 중요함을 재확인할 수 있다.
Ⅱ. 동북공정의 현황
본장에서는 한중간 역사문제의 아이콘이 된 소위 ‘동북공정’의 개요 및 현황을 살펴보면서, 현재 진행중인 한중간 역사문제의 다른 부분들 에 대한 논의도 해 보고자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동북공정의 추진주체는 중국 사회과학원 산 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과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 등 동북 3 성의 사회과학원과 그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 등의 지방기관이다. 추 진기간은 2002년 2월 28일부터 2006년까지의 5년간으로 총 110개 연 구과제가 수행완료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먼저, 연도별 선정과제를 살펴보면 2002년 선정된 기초연구과제는 27건이다.6) 이외에도 응용연 구과제는 8건(비공개라 확인 불가능), 번역연구과제는 14건,7) 보관 공 문서 선집 및 집성은 4건8)이 있다. 2003년도에는 기초연구과제는 15 6) 선정된 과제로는 ‘흑룡강통사, 20세기 중국 동북변강 문화 연구, 광개토대왕비 1580年, 중국 동북과 러시아(소련) 경제관계사, 발해국사, 기자 및 기자조선 연 구, 러시아 동부 이민개발 문제 연구(1861~1917), 발해사론, 중국 동북 古民族 발전사, 한중 상관 성씨족 기원에 관한 고찰, 民國時期 동북지방정부 변경통치 연구, 근대 중국 東北地區 국제이민 문제 연구, 고구려 약사, 동북 민족구역 설 치 연구, 중국 역대왕조 동북변경통치 연구, 국제법과 中·北韓 국경문제 연구, 청대 변경 성진(城鎭) 연구, 三國史記 註釋 및 硏究, 백두산 지역 역사, 문화 및 그 귀속문제연구, 동북 한족 인구사 연구, 중국 역대 동북변경 통치사상 연 구, 발해 이민의 통치 및 귀속연구, 청대 압록강유역의 봉금(封禁) 및 개발 연 구, 압록강 이남 고구려유적 조사연구, 러시아 극동지역의 중국인, 동북변강 다 민족의 문화 교류 및 융합, 滿州國시기 동북의 국경 충돌 및 국경 교섭 연구’
가 있다.
7) 선정된 과제로는 ‘한국, 북한 사학계의 古朝鮮, 부여 연구 논저 선집, 한국, 북 한학계 고구려 연구문헌, 해외 발해사 연구자료 모음, 한글로 된 중요저작 및 자료 번역, 중북한 변경사-白山자료원 총서에서 선별 번역, 한반도 현황 연구, 한국과 북한 경제·사회 상황 비교, 21세기 러시아 동부발전전략과 계획, 아무 르 연안지역의 중국인, 90년대 상반기 중국과 러시아 극동지역 협력문제, 조약 조항 이미 확정, 러시아, 중국 및 소련-중국 경제무역관계사, 자본주의 시대 러시아 극동의 중국노동자, 大黑瞎子島상의 여진 고고유적’이 있다.
8) 선정된 과제로는 ‘동북변경 역사문서 선집·혼춘아문 문서집성, 동북변경 역사 문서 선집·요녕편, 길림편, 흑룡강편’이 있다.
건,9) 응용연구과제는 비공개라 확인 불가능하지만, 번역연구과제는 14 건이며, 보관 공문서 선집 및 집성 4건 등이 있다. 2004년에는 기초연 구과제는 6건10)이나, 응용연구과제와 번역연구과제 등은 파악되지 않 아 확인 불가능한 상태이다.
진행결과는 2008년 8월 11일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UBC국제학술 대회에 참가한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 주임 厲聲에 의해서 밝혀졌다. 그에 따르면, 동북공정의 연구결과가 90% 가량 수집되어 곧 출판될 것이며, 실제 110개 과제 중 2008년까지 총 22개 과제 결과물 이 출간된 것으로 파악되었다.11) 그러나, 기타 출간물의 경우는 개인 9) 선정된 과제로는 ‘근대 이후, 러시아·일본의 중국 동북역사지리에 대한 조사 연구, 고구려 민족과 국가의 연변, 청나라 말기 동북변강의 조선족 이민과 ‘간 도’ 문제 연구, 조선반도의 민족, 국가의 기원 및 발전, 말갈, 발해와 동북아시 아 각 나라, 각 민족 관계사 연구, 명나라 동북강역 연구, 명나라 시기 동북변 경 백성이 조선으로 이주한 데 관한 연구, 고구려의 족원 및 강역, 동북변강 강역문제 연구, 발해 유적지 현황 조사 연구, 러시아와 중국 동쪽 변경 연혁 및 국경업무 문제 연구, 변강의 이해 및 이해의 변강 서양 변강 이론에 대한 지식고고학 고찰, 러시아 亞太정책의 추세 및 중국·러시아 지역 협력, 연변지 역 국제결혼 문제 연구, 동북변경지역 사회안정 문제 연구‘가 있다.
10) 선정된 과제로는 ‘당대 발해국 5경 연구, 원조(元朝)와 고려의 관계 연구, 조 선 이조의 ‘북진’정책과 ‘간도’문제 연구, 청대 동북의 교통과 변경정책, 청대 동북 이민정책 연구, 러시아학계 발해사유적 연구 성과에 대한 학술사와 역사 문헌학 연구‘가 있다.
11) 黃定天, 20世紀中國東北邊疆文化硏究 (黑龍江人民出版社, 2003); 耿鐵華, 好太王碑一千五百八十年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張鳳鳴, 中國東北與俄 國經濟關系史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馬大正, 古代中國高句麗歷史續論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王曉菊, 俄國東部移民開發問題硏究 (中國社會科 學出版社, 2003); 李德山, 中國東北古民族發展史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李大龍, 漢唐藩屬體制硏究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6); 魏國忠, 渤海國史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6); 楊軍, 高句麗民族與國家的沿變 (中國社會科學出 版社, 2006); 中國第一歷史檔案館, 琿春副都統衙門檔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6); 張福有, 高句麗王陵通考 (香港亞洲出版社, 2007); 孫玉良, 簡明高句麗 史 (吉林人民出版社, 2008); 劉信君, 中國歷代治理東北邊疆思想硏究 (吉林人 民出版社, 2008); 孫乃民, 吉林通史 (吉林人民出版社, 2008); 黃松筠, 中國古 代藩屬制度硏究 (吉林人民出版社, 2008); 楊暘, 明代東北疆域硏究 (吉林人民 出版社, 2008); 楊雨舒, 唐代渤海國五京硏究 (香港亞洲出版社, 2008); 趙煥․
劉鳳樓․田汝正․延邊檔案館․厲聲, 東北邊疆檔案選輯 淸代民國 (廣西師範大
명의로 발간되어 파악이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발간된 연구성과를 검토해 보면, 그동안 우려했던 대로 중 국측 동북공정식 역사이해인 ‘현재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 역사를 규정 하는데서 오는 역사의 왜곡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동북공정은
“현재 중국의 영토에서 생활하고 있는 민족과 역사상 현재 영토 내에 서 살다가 이제는 이미 사라진 민족 모두가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일부 분이며, 그들이 역사상 활동하였던 지역과 그들이 세운 정권의 강역은 모두 중국의 역사 강역을 구성하는 부분”이라고 보는데서 출발한다.
즉 이러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하여 동북 3성지역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동북3성과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사 는 소수민족인 조선족(재중동포)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되며, 조선족 과 같은 동포인 우리 한민족의 북한과 대한민국의 역사 역시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논리인 셈이다.
결국 이러한 인식에 따르게 되면, 우리의 상고사인 고조선, 부여, 고 구려, 발해는 물론 잘못하면 고려 등의 한반도 전역의 역사까지 모두 중국사에 속하게 될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중국식 논리에 대한 거부감은 곧 북한 급변 시 북한으로의 중국군의 진주 및 북한지역에 대한 영유권주장을 위한 사전작업이 아 닐까라고 우려하는 견해로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사실 북한지역은 영 토적으로는 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남한의 지리적인 연고 권과 대비되는 곳이다. 따라서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북한의 지리적인 연고권은 특히 고대사에 있어서는 지리적으로는 중국 사에 귀속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인상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 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의 역사지리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12)
學出版社. 2007).
12) 만약 북한에 급변 상황이 발생할 경우, 북한에서의 친중정권의 성립 또는 중 국의 북한에 대한 간접 지배 등이 이뤄질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있다고 누구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되면 과거 6.25 한국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군이 개입하게 되고 북한 영토내에 중국군이 주둔하게 된다면, 그리고 친중정권의 성립이 가능하게 된다면 북한을 동북 제4성으로서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북공정 자체가 중국 동북3성 지역이 옛날부 터 중국의 영역이었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이다.
그 목적은 당연히 동북3성의 정치사회적 안정과 통치의 역사적 명분 축적 그리고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 통제를 통한 ‘중국 대가정(大家庭)’의 유지인 것이다.13) 따라서 앞서의 극단적으로 부정 적․의혹론적 접근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정세의 변화 등등의 논리적 인 증거들을 근거로14) 보다 커다란 설득력을 가지고 언론과 국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이 우리나라에서는 나 오기 어려운 감정적인 환경과 분위기도 상존하고 있다. 여하튼 동북공 정은 연구프로젝트라는 측면에서 표면상으로는 종결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후속 연구가 지 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중국측은 수면아래에 서 추가적인 역사 방법론 개발과 자료 발굴․수집 등을 은밀하게 추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물론 중국은 애초에 소수민족정책을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수정 하기 어려운 한계 즉 56개 소수민족의 대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원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수십년이 걸리더라도 동북3성에 대한 역사공정 등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국내적인 문제로 인하여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축적된 학술 연구 성과를 근거로 자신 들의 논리를 강화하고 이것을 고구려유적 특히 UNESCO 세계문화유 산 부근에서 세계에서 온 외국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국제학회 등에서도 발언권을 높이는 전략을 견지할 것으로
중국측이 권리를 주장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13) 정재남, 중국 소수민족 연구: 소수민족으로 분석하는 중국 (한국학술정보, 2007); 정재남, 중국의 소수민족 (살림, 2008).
14) 현재 북한-중국간의 국경지역 수비업무은 무경이 아닌 현역군인이 담당하고 있으며, 2010년 5월 필자가 현지 답사갈 무렵에는 도하훈련을 하는 중국군인들 의 모습이 보여지기도 하였다. 결국 대량 탈북자 유입을 막는 동시에 북한 급 변시의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준비태세를 갖춘 것이 아닌가 추측해도 과언은 아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예상된다.15)
이러한 일들이 예견되기에,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 국민과 정부의 입 장은 단호했다. 특히 고구려사는 우리 민족의 뿌리 즉 정체성과 관련 된 문제로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는 공통된 인식을 국민-언론-국회-정부가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한중양 국간 중대 현안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함을 중국도 인식하여 2004년 구두양해사항으로의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16). 지 금까지도 정부를 포함하여 고위층인사 등이 각종 계기에 다양한 경로 를 통해 중국측에 역사 왜곡시정을 지속 요청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 다.17)
15) 이렇듯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한중간의 역사문제는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는 다. 한국과 중국 모두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사항이기에 그러하다. 앞서 언급 한 바와 같이, 한국은 민족의 정체성과도 관련되며, 중국으로서도 핵심이익사 항인 하나의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한보도 물러설 수 없는 전쟁 즉 역사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쟁 속에서는 정부가 앞장설 것 이 아니라, 의병과 같은 존재로서 학계 및 시민운동계의 역할이 보다 더 중요 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현황은 한중간 역사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 저하 등으로 일부 학자나 시민운동가의 간헐적인 외침속에서 묻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16) ……구두양해 사항에는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가 양국간 중대현안으로 대두된 데 유념 ▲역사문제로 한중 우호협력 관계의 손상 방지에 노력하고 전 면적 협력 동 반자관계 발전에 노력 ▲고구려사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도모하 고 필요한 조치를 취 해 정치문제화 방지 등이 포함됐다.또 ▲중국측은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의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 대한 한국 측의 관심에 이해 를 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감으로써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 을 방지 ▲ 학술교류의 조속한 개최를 통한 해결 등이 들어 있다.……(연합뉴스 2004년 8 월 24일자 한중, 고구려사 왜곡 5개항 구두양해(종합2보) 기사 가운데 일부 발 췌)
17) ……중국 사회과학원이 동북공정 일환으로 추진해 온 연구 결과물이 일부 출 간되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과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 가 2004년 8월 한-중 간 구두양해 합의 이후 동북공정 대응에 손을 놓고 있었 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11월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비롯해 국무총리, 외교장관 회담 및 각급 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추가적인 왜곡 을 금지하고 기존 왜곡사항 시정을 꾸준히 촉구해 왔다. 실제로 구두양해 이후 이뤄진 ▲중국 외교부와 신화사(중국 국영통신사) 홈페이지 왜곡 내용 삭제
▲중학교 실험본 역사교과서 공식 채택 보류 ▲용담산성 왜곡 안내 간판 일부
그러나, 중국 중앙정부의 주장대로 표면적으로나마 동북공정이 개별 연구자들의 학술적인 연구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들이 학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면 그에 대한 즉각적인 정치 외교적인 대응 은 매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역사와 학술 그리고 정치와 현실의 분리 를 주장하는 그들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할 수 있는 학술적으로 결정적 인 증거가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러한 학술적 인 증거를 근거로 중국간의 학술적인 교류를 진행시키고 관련 논의를 보다 활성화시켜 동일한 공동의 역사인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도하 고 또 시도해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 대한 어려움은 이미 충분히 상정된다. 중국에서 학문연구가 정치적인 영향에서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에서는 개별적으로 그리고 학회나 학교 차원에서 그리고 연구소나 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끊임없이 교류를 진행시킬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교류가 쌓이고 쌓인 후에 그렇게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천천히 미래지향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이면서도 균형적인 양국간의 공통된 역사인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18)
철거 등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구두양해 합의는 양국이 왜곡 시정을 위해 성의 있는 노력을 한다는 정도의 포괄적 내용을 약속한 것일 뿐이다. 정 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면 국가기관 홈페이지 왜곡 내용 삭제 등은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이다.…… 동북공정 대응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원칙은 역사 왜곡과 영토주권 침해 문제는 여타 외교적 사안과 연계하지 않고 단호하게 강하게 대 처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동북아역사재단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 역사에 관한 학술적 성과를 축적하는 노력을 병행할 계획이다(국정브리핑 2006. 09. 08).
18) ……우리나라와 중국은 여러 면에서, 특히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교과서 문제 등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대응해 협력할 일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우 리와 중국은 밀접한 관계였고 앞으로 더 밀접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중국 내 외국 유학생이 10만 명 쯤 되고 그 가운데 5만 명이 한국 학생입니다. 옛 신라 방(新羅坊ㆍ신라인 거주 지역)의 재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중 국학생 9,600명 정도가 와 있다고 하네요. 양국의 서로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중국 내 한국학 보급에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한 국일본 2005년 8월 14일자 [광복60 특별인터뷰] 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 기 사 가운데 일부 발췌).
Ⅲ. 한중간 역사문제의 전개
앞서 잠시 설명한 바와 같이, 한중간 역사문제는 동북공정의 결과물 이 나오고 있는 현재 상태에서 끝난 것이 아니며, 동북공정의 한중간 역사문제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2004년 정부차원에 서 공식적으로 중국정부에 항의, 이 해 8월 한중 양국이 구두양해사항 에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고구려에 대해서 ‘동북지역 소수 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설명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동북공정을 학술 적인 문제에 한정하고, 더 이상 역사문제가 한중양국간의 현안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신문지상에 거론된 중국 외교 부 등의 정부 사이트 등의 고구려사 왜곡 사항들이 수정 또는 삭제되 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로서 한중간 양국의 역사문제는 끝난 것이 아 니었다.
첫째, 지방정부 차원의 또는 개인 사립 박물관 차원의 역사왜곡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최근에 동북3성에 소재한 한 사립박물관의 경 우 판넬에 적힌 왜곡된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판넬 하나가 아 닌 전체 층의 전시실 보수비용으로 수천만원을 대준다면 판넬을 수정 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이 뿐만아니라 최근 보도된 바와 같이,19) 동북3성에 분포한 고구려· 부여· 발해 유적 지의 표지판 등에는 여전히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문맥상으 로 고구려는 소수민족으로 동북지방의 정권이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 19) ……발해의 5개 수도(京) 가운데 하나였던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현 의 상경용천부 왕궁터에서 현판을 읽어 내려가던 의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해는 중국의 일개 변방지방이었다. 주(周)·은(殷) 문화의 영향을 받 았고 중원 문화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시선이 그림판으 로 옮겨진 뒤에는 “허, 참…”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대조영을 비롯한 역대 발해 왕들이 모두 중국식 복장을 하고 있었다. 헤이룽장성을 비롯,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등 동북 3성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들을 찾으며 의원들은 시종 무력감과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서울신문 7월 27일자
““中 이 정도일 줄…” 화들짝…동북공정 본격대응 나선다” 기사 일부 발췌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727001007).
있게 문장을 구성해 놓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이 간헐적으로 신문방송을 통해서 그리고 답사를 다녀온 우리 국민들의 기고문을 통 해서 소개되고 있다. 실제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매년 조사해서 학회 등에서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동북3성 전체 박물관, 정부홈페이지, 유적지 등에 대한 대대적이고 종합적인 실태파악이 더욱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중국이 단독으로 발해유적들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이라는 지적이 고구려발해학회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학술회 의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었고 근래 우리나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고된 바도 있다.20) 이런 가운데 2006년 6월에는 흑룡강성 정부의 상 경 용천부 발해 유적지 보호조례가 제정되었다. 그리고 2010년 오늘도 발해 유적지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는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발해유적지에 대해 중국이 단독으로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할 것은 기정사실로 봐도 틀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요구된다.21)
셋째, 최근 산해관 만리장성과 판박이인 21세기판 중국의 만리장성 이 옛날 고구려 성곽을 발판삼아 갑자기 압록강 어귀에 나타났다는 점 에도.22) 주목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 당국은 압록강 너머 북한의
20)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를 통해 ‘중국 내 우리나라 역 사유적지 관리’에 대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중국 당국이 헤이룽장성에 위치한 발해 유적 상경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발굴보고서를 발간하고 유적지를 정비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 혔다. 중국은 2006년에 발해를 당나라 시기의 일개 지방민족정권으로 규정한 바 있다.……(포커스신문 2009년 10월 23일자 “中 발해유적 유네스코문화유산 등재 추진” 外 기사 일부 발췌).
21) 주지하는 바와 같이, 발해사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중국이 자국사로서 기술 해 왔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60대를 넘은 세대인 어떤 교수님들은 학교시 절 발해사를 우리 역사로 배우지 못했다는 증언도 하고 있을 정도이다.
22) ……중국 당국은 굳이 이 성곽에다가 굳이 호산 ‘장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베이징과 가까운 허베이성(河北省) 산해관(山海關)이란 곳에서 발해만과 만나면서 끝나는 만리장성을 압록강 어귀까지 연장하려는 의 도가 숨어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산해관에서 끝나는 만리장성
의주 땅을 바라보는 랴오닝성 단둥(丹東)에 그것도 세발자국만 건너면 북한 땅인 호산에 ‘중국 명 만리장성 동단(東端) 기점’이라는 한글 표 지판을 내걸고 21세기판 새로운 만리장성을 만든 것은 역시 한국인들 을 겨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하튼 만리장성의 동단 연장 시도는 동북공정과 관련해서 신문지상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현재 이 러한 연장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중국측의 주장에 일면에는 한때 한국고대사학계의 통설이라고 소개된 바 있는 두계 선생의 의견 이 자리잡고 있기에 학술연구상 가능한 의견이라는 논리가 상존하고 있는 데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중국인들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논 리와 근거의 제시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넷째, 최근 한중간의 역사문제는 중국의 개방과 인터넷망의 발달에 따라 ‘이태백이 한국인?’ ‘단오절을 한국이 빼앗아 갔다.’ ‘주원장도 한 국인?’ 등등의 소위 혐한 또는 반한정서와 관련된 형태로 전개되고 있 다.23) 최근에는 한국인 사장에 의한 중국 노동자 폭행사건과 파업 등 은 적어도 직선거리 기준으로 400㎞ 이상 ‘연장’되는 셈이 되며, 실제 중국 동 쪽 국경이 끝나는 지점과 대략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진나라 때 시황제가 쌓았 다는 만리장성은 물론이고, 이를 토대로 명나라 때 재건축한 만리장성이 산해 관을 넘었다는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문헌기록도 없고, 고고학적 흔적도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만리장성을 한없이 늘리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중국 당 국은 바로 이 ‘호산성’을 주목했다. 동쪽으로는 압록강을 끼고, 서쪽으로는 압 록강에 합류하는 지류인 애하라는 작은 강이 감돌아 흐르는 해발 146m 호산 일대에 고대 성곽 흔적이 있었던 것이다. 행정구역으로는 단둥시 관전현(寬甸 縣) 호산진(虎山鎭) 호산촌(虎山村)이란 곳에 위치하는 ‘호산성’을 둘러싼 만리 장성 동단 만들기가 더욱 씁쓸한 이유는 이 고대 성곽이 바로 고구려시대에 고구려인들이 축조한 성곽이기 때문이다.……(연합뉴스 2010년 1월 26일자 “고 구려유적 답사 ① 날개 단 만리장성?” 기사 일부 발췌).
23) ……중국 신화통신 자매지인 환구시보(2010년 5월 14일자)는 “한국 서울대학 교 역사학과 김병덕 교수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한국인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서울대에 역사학과가 없으며 김병덕이라는 교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사실무근’이라고 보도자료를 돌렸 지만 소용없었다.……산둥성의 제로만보(齊魯晩報)는 지난달 15일 “호남성의 여성학자가 줄다리기는 초나라 노반이 창안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대서특필했 다. 기사 아래에는 한자, 명절, 발명, 의학 등 ‘한국이 강탈해간’ 중국 문화를 정리해놨다.……중국인은 강릉에서 매년 열리는 단오(端午) 축제를 한국에 ‘빼
과 관련된 형태로 반한정서는 단지 역사적인 면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 제방면에 걸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제력 상승과 소위 한류의 등장을 통한 한국의 중국에 대한 문화적 영향력 확산에 대한 중국인들의 위기의식 고조가 혐한류 정서로 표출되었고 이것이 중국당 국의 경계의식 및 언론 보도에 반응되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이런 사실에 대한 일부 언론의 부정적 보도 및 인터넷을 통한 확대 재생산 을 막기 위해서는 제방면에 걸친 우리의 노력과 함께 대응방안 마련이 시급히 요구된다.24)
다섯째, 최근 개정 추진중인 것으로 보이는 중국 중고등학교 역사교 과서 개정도 과거 동북공정의 문제 및 일본교과서 문제와 관련지어 볼 때 매우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어렵고도 복잡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중국교과서에 나타난 6.25 전쟁에 대한 서술에서 보았듯이,25) 앞으로 고구려사 관련한 역사왜곡사항이 중국측 역사교과서에 등장한
앗긴’ 사실에 대해 원통해하고 있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절은 나라 망하는 꼴 을 비통해하다가 투신자살한 춘추시대 충신인 굴원을 기리는 행사에서 비롯됐 다. 사람들은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먹지 못하게 제삿밥을 만들어 강에 던 지며 그를 기렸다. 이게 중국 단오절 유래다. 강릉에서 해마다 음력 4월 5일부 터 5월 8일까지 열리는 단오축제는 산신제, 성황제, 봉안제, 단오굿, 가면극 같 은 다양한 민간신앙이 융합된 축제다. 명칭만 같을 뿐 그 기원은 전혀 다른 별 개의 문화다.……(조선일보 2010년 6월 5일자 [Why] “이태백이 한국 사람이라 고?”… 중국에 또 ‘한국괴담’ 기사 일부 발췌).
24) 특히 본고에서 살펴볼 전통문화에 대한 양국간 역사적 연고권 논쟁 발생시에 는 중국 언론 등에 관련 소명자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양 국관계에 대한 부정적 영향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 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양국 국민의 상대국 문화에 대한 개방적·관용적 인식을 배양시키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그러한 목적하에 양국간의 다양한 문 화교류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서 상호 이해를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
25) ……중국 정부가 발행한 역사교과서가 한국전쟁에 대해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조차 왜곡해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8학년(우리의 중학교 2학년 에 해당)용 ‘중국역사’(사진) 하권은 북침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중국과 북한이 침략전쟁에 맞서 승리한 것으로 서술하는 등 작위적인 인식과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교육부가 의무교육과정 표준교과서로 인가한 것 이다.……(중앙일보 2010년 6월 21일자 중국 교과서 “미국이 북한 침략” 8학년 과정서 6·25 관련 사실 왜곡 … 중국인 한국 인식에 큰 영향 기사 일부 발췌).
다면 이는 거의 역사전쟁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양한 계기에 특히 학자들 중심으로 중국측에 사전예방을 위한 교류를 전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역사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학계간 채널은 매우 협소하며 그나마도 여러 가지 여건상 활용되 지 못하고 있는 듯해서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성과를 도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요하문명론을 포함한 고조선사 문제, 백두산을 포함한 간도문제 등의 청사공정 등 역시 한중간 역사문제의 잠재적 요소로서 남겨져 있다. 특히 요하문명론의 경우는 우리 고조선사의 비워진 역사 공간과 시간을 메꿔줄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 대되는 측면이 있다. 또한 간도문제는 우리의 역사영토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로서 작년에 무효인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행사와 문제제기가 있어 온 사항이다.26)
이와 같이, 소위 동북공정의 성과물이 채 나오기도 전에 아니 달리 이야기하자면 동북공정에 대한 충분한 준비도 채 안된 상태에서 한중 간의 역사문제는 매우 다양화되어 다시 새로운 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아직 미비되어 있다고 사료 된다.
Ⅳ. 한중간 역사문제에 대한 대응방안
앞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중간의 역사문제는 빙산의 일각과 같 이 거대한 몸체를 수면 아래로 숨기고 일부만 수면위에 모습을 나타내
26) 사실 동북공정의 출발점은 역사문제가 아닌 영토문제로서의 간도문제라고 여 겨진다. 간도문제가 결부되었기에 중국측의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일정정도의 양보로서 구두양해사항이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역사문제의 그림자는 모두 영토문제로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없을 때 우리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는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동북공정의 배경과 진행과 정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과의 역사문제를 통한 외교적인 마찰은 결국 학술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27) 실제로 미중 관계 등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인권문제를 둘러싼, ‘달라이라마 방한문 제’, ‘신장위구르문제’, ‘대만문제’, ‘법륜공 문제’를 비롯하여 새롭게 핵 심이익지역이 된 ‘남중국해’ 등 이른바 중국의 핵심이익사항에 해당하 는 문제들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문제는 놀랍게도 한중간의 가장 첨예한 정 치적인 현안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측으로서는 작은 문제를 이 슈화시켜서 큰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식의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 이고 있는 듯하다.28)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의 안정과 평 화 문제는 설사 중국이 핵심이익사항이 아니라고 해도 이는 핵심이익 사항에 버금가는 매우 중요한 현안이 아닐 수 없다고 여겨진다. 따라 서 중국이 마지못해 합의한 것은 우리측 입장이나 여론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경청하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역사문제를 이슈화시킴으로서 등장하게 될 ‘간도문제’를 비롯한 영토문 제와 관련된 동북3성의 분포한 소수민족인 조선족 관련 정책 문제 그 리고 발전적으로 유지관리해야하는 한중관계의 훼손이 더 큰 이유라고 27) ……김 전 총장은 중국 학계와 정부가 인정하는 중국 전문가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 때 빚어진 폭력 사태에 대한 생각부터 물어봤지만 “한 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도가 지나치면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이어 “티베트 문제는 수십 개의 소수 민족이 있는 중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티베트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김 전 총장은 “우리가 계속 문제 제기를 하니까 요즘은 쏙 들어갔다”면서 “동 북공정은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정치적 문제”라고 말했 다.……(동아일보 2008년 5월 3일자 “한중외교 중요한 시점…‘성화폭력 대처’
度 지나치면 곤란” ‘이 시대의 원로’ 김준엽 前고려대총장에게 듣는다 가운데 기사 일부 발췌).
28) 중국은 외교적으로 국제적인 갈등과 관련된 문제는 다자가 아닌 양자간에 조 용히 해결할려고 노력해 왔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1962년에 체결된 조중변계 조약이 아닌가 싶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중국위협론 등의 부상을 조기에 차단하고 자 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중간 역사문제의 해결 방안이 존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치적인 외교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외교력으 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이번 천안함 사건의 UN에서의 처리과정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외교력은 과거 서희장군과 같은 외교관의 역량도 중 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국력이고 상대국가측에게 인정받 는 우리나라의 전략적 가치를 이용한 다양한 카드라고 여겨진다. 과거 18년간의 수교관계에서 한중간은 어느덧 전략적 동반자적 관계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리고, 관심만 조금 있다면 TV․신문 매체 등을 통해서 쉽게 한국과 중국 양국 정상을 비롯한 최고위층의 활발한 교류를 확인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도 G2로 부상한 중국과 역사문제 만큼은 대등하게 맞설수 있을 만큼의 관계설정은 이미 이뤄 진 것 같다. 사실 우리 역사상 어느 시기에 오늘날처럼 중국과 대등하 게 속어적 표현으로 ‘맞짱 뜰’ 정도로 성장한 시기가 얼마나 많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이러한 시기에 역사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과 보폭을 맞추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한중간 역사문제를 바라보며, 문제가 되는 중국측 논리의 모순을 객관적이며 결정적인 근거를 가지고서 지속적으로 설득 시키는 한편으로 우리의 말에 경청하게끔 최대한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누차 강조하는 바이지만, 정치적인 논리 에 앞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학술적인 그리고 논리적인 근거와 이 론의 제시가 필요하다. 이러한 근거와 이론을 포함한 대응방안의 모색 을 위해서는 오히려 정부가 아닌 민간차원에서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양국 학계의 공동연구와 다양한 교류를 통하여 차근 차근 풀어가야 할 장기적인 문제가 바로 한중간의 역사문제인 것이다.
또 하나는 방법론의 문제이다. 많은 중국통들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은 일본과는 다른 나라다. 한중간의 역사문제는 일본에 했던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한중간의 역사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중국의 그 동안의 성과가 그 취지 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반드시 해줘야 할 것이며 완곡한 표현으로 대의명분과 논리를 앞세워 서 중국측에게도 좋지 않으니 그건 고치는 게 좋지 않느냐는 식의 요 구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한중간의 역사문제는 언론이나 포퓰리즘에 호소해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닌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그러한 해결은 문제를 보다 복잡화시키며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언론계는 장기적인 관점에 서 고구려, 발해 관련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우리 학계 의 현실을 깊이 고려해 봐 줘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섣부른 역사 왜곡 시정의 주장보다 중국이 우리나라 관련 유적을 보존하게 하고 우 리나라 학자들과 공동 연구토록 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인 과 제임에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발해 관련 유적은 한반도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러 시아와 중국 등에 분포되어 있다. 러시아와는 공동 발굴 조사를 통해 서 발해 유적과 유물에 대한 자료를 서서히 축적하고 있지만, 중국과 의 교류는 소위 동북공정 논란이 있은 후로 한번도 진행되지 않고 있 다. 특히 공동발굴 조사 등은 꿈에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봉쇄되었으며, 최근에는 소규모의 학술대회조차도 중국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중지 되는 곳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학계든 언론계든 간에 한중간 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그리 고 객관적으로 냉정함을 잃지 않고 신중하게 균형감각을 가지고 접근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단기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이 문 제에 접근했을 때, 한중 양국간 역사문제는 전혀 해결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과거 구두양해사항이 체결되었을 때 중국이 부득이하게 합의해 준 내용에 불만을 가진 중국측의 민족주의적인 세력도 여전히 칼을 갈면 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통해서 그 동안 잠잠했던 군부 특히 해군세력이 중국의 대외관계에까지 자기 목 소리를 가지게 된 것을 고려해 본다면, 제2차 동북공정과 같은 사건이
발발할 경우, 우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정말 예기치 못하게, 우리 들에게 적대적인 성향을 가진 중국측 인사들을 도와주는 모양이 될 수 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결국 한국 언론에 관련보도가 나오게 되면, 중국측에서도 선동적이 고 민족주의적이며 자극적인 내용을 보도화하는 몇몇 중국 언론 미디 어가 주목하여 그 내용을 확대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국적인 관점에서 민족주의화 되어 가는 중국 국민의 감정이나 정서 를 건드릴 것은 쉽게 예상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 국민 의 반한정서가 확산된다면 그 때는 중국 정부가 더 이상 통제 불가능 한 사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 경우 마늘파동과 는 비교도 안 될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역사전쟁에서 비록 우리가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한중교류 18년간 쌓은 신뢰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향후 수 십 년 동안은 반중정서와 혐한 정서가 양국의 국민들을 호도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과거 한일간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보아왔듯이 역사문제는 단시일내에 감정적으로 해결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금기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정치인이나 기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포퓰리즘에 휩싸여 국민들이 객관적이지 못한 집단적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일단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면 양국간의 네티즌의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별로 실익이 없어 보이는 소모적인 논쟁을 막기 위 해서는 우리 연구자들이 나서서 먼저 국민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향후 100년 후 통일된 우리민족의 밝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지금 가장 먼 저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것은 체계적인 역사연구와 함께 바른 역사 인식함양을 위하여 관련 유적과 유물을 잘 보존 관리하여 후대에 고스 란히 잘 전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위의 상황은 지금과 같이 중국 역시 역사문제를 이슈화시키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지하려고 할 때의 이야기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본교과서 문제와 같이 한중간의 역사문제는 중국의 아킬레스
건이 될 수 있는 문제라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이는 구두양해사항 합 의당시의 모습에서 보이듯이 중국도 이미 인식하고 있는 문제라고 여 겨진다. 해방이후에 세계인들은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 등 전후 사과문 제에 대해 비난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과거사 사죄에 인색한 일본인의 모습은 원죄라는 꼬리표로 언제나 일본인들에 대한 평판 가 운데 붙어 있다. 그리고 중국 역시 남경대학살을 비롯한 문제에서 일 본의 모습에 우리와 함께 치를 떨며 분노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측도 당연스럽게 우리가 한중간의 역사문제를 이슈 화하여 공론화하여 온 세상에 떠들고 다니게 되는 날의 무서움을 예측 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중국측이 도발적으로 다시 한 번 역사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때에는 우리는 단호하게 보다 명확히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역사가 곤란해 처해지 면 중국의 역사도 없어짐을 단호하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29)
실제로 중국관련 전공을 하고 있는 학자 및 중국통이라는 사람들이 국제학회 등에 나갔을 때 서방세계의 많은 중국 전문가들이 우리가 중 국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에 매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서방 세계의 정부 관계자들 예를 들면 서유럽이나 호주 등의 정부주요요인 및 주한 각국 대사들이 한중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문의를 해온다 고 한다. 이는 세계가 이미 우리나라가 중국의 이웃으로서 수 천 년 동안 특별한 관계였으며, 중국부상이후 18년간의 국교관계의 발전을 이뤄온 나라로서 그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중 국의 한족에 비하며 매우 작은 민족으로서 수 천 년간 독립을 유지해 29) ……“문화교류는 수돗물 틀면 물 쏟아지듯 일시에 수월하게 되는 것이 아니 다”는 김 이사장은 “일본이 그런 일을 많이 한 데 반해 우리 정부는 기회 있 을 때마다 이야기하는데도 문화ㆍ역사쪽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 했다.……물론 그는 중국의 학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하면 당신들의 역사도 없 어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만주니 봉천이니 땅 다 잃고, 해방 이후 반도 마저 둘로 갈라졌으니 한스럽기도 하고 참 정치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면서도 예의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
고 다시 강조했다.……(한국일보 2004년 12월 15일자 [한국인터뷰] 김준엽 사 회과학원 이사장 기사 가운데 일부 발췌).
오며 때로는 대등하게 중국의 침략을 물리치면서 꿋꿋히 대항해 오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우리의 의견을 경청하고자 일부러 한국으로 찾아오는 서방세계 의 정치인과 학자 그리고 외교관을 포함한 정부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고 한다. 이는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국력신장과 세계 신인도의 향상에 도 기인한 것이다.
이와 같이, 21세기의 한중관계는 서방세계로서는 자신들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시금석으로서 한중관계를 위치지우고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서 서방세계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크게 변화할 수 있다. 소위 중국위협론에 최전선에서 중 국과 다양한 교섭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신인도를 가지고서 한중간 역사문제에 접근한다면 어느 정도 여유로움을 가지면서도 장기 적인 안목에서 한중간 역사문제논쟁을 준비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 러기 위해서 우리 역사의 해외 홍보작업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작업이 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중간의 역사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동북3성의 조선족 문제, 간도문제 등과 관련하여 중국에게 있어서는 한치도 양보 할 수 없는 소위 핵심이익사항에 버금가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처음부터 외교적인 한계가 존재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해결은 민간 특히 학계에서는 보다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역사연구와 함께 관 련 유적과 유물을 잘 보존 관리할 대책을 마련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 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인 그리고 학자 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포퓰리즘에 휩싸이게 해 국민들이 객관 적이지 못한 집단적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1세기 한중간 역사문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차근 차근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적 증거들을 축적하고 체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민족사는 중국의 어떤 역사적인 도전에도 당 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Ⅴ. 맺음말에 갈음하여
이와 같이 현재의 정세와 비교해 가면서 동북공정의 현황과 한중간 역사문제의 새로운 전개양상을 고찰해 보면서 그 대응방안을 시론적으 로 검토해 보았다. 여기서는 머리말과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제안을 하는 것으로 맺음말에 갈음하고자 한다.
중국의 다민족 통일국가론은 56개 민족(한족 포함)으로 구성된 중국 을 이해하면 논리적 모순은 이미 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중국측으로서 도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생존을 위한 국가전략이다. 하나의 중국을 지 향하는 중국에 있어서 조선족을 포함하여, 티베트 장족, 신장지역의 위 구르 족 모두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소수민족이다. 그럴리는 전 혀 없어 보이지만, 만약에 중국이 어떤 소수민족을 포기하거나 통제 불능상태가 되었을 때, 구 소련이 붕괴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붕괴는 너무나 쉽게 예측가능한 것은 이미 중국측 당국자들도 수십년 전에 우려한 사항일 것이다. 따라서 동북공정을 비롯한 한중간 역사문 제는 중국으로서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구려 등에 대한 일사양용론 등은 21세기 역사인 식으로서 우리도 한번 고민해 봐야 할 측면이 없지 않다. 조선족의 역 사도 그들의 역사로 인정하는 것은 56개 소수민족을 포함하는 새로운 신중화민족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역사인식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구려와 발해 등을 중국과 한국의 공통된 역사적 존재로 인정 하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공동의 역사를 가 진다는 것을 피해자적인 입장에서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거 로마라는 공동의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프랑스, 독 일 등이 EU라는 새로운 정치체로서 성장해가는 것을 보면, 공동의 역 사를 가지고 평화공존의 공동경험을 가지는 것은 그리 나쁜 경험만은 아닐 수 있다. 또한 고구려 관련 유적의 북한․중국의 동시 공동 등재
역시 우리 민족 역사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도 없지 않다.
최근 역사스페셜을 통해서 널리 소개된 바와 같이, 금시조가 신라의 후손임을 표방했다는 사료가 현존하고 있다.30) 역사적 진실이야 어떻 든간에, 금시조가 신라의 후손임을 표방한 사료가 있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이는 곧 금과 그 금의 후계자를 자처한 후금인 청의 역사도 우리민족의 역사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 고, 금나라가 차지했던 적어도 양자강 이북의 중국 역시 우리민족의 역사영토가 될 수 있다. 아니 금이 자치했던 강북지방의 북송의 한족 을 고려하고 같은 한족이 통치하고 있는 남송 역시 우리의 역사적 무 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생각하기에 따라서 중국의 논리처럼 당시 그 영토안에 살았던 중국의 소수민족 대부분이 역시 우리 민족사의 틀안 에 포함될 수 있는 유쾌한 역사이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고 하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을 우리가 채용 하자는 것이 아니며 신중화주의식의 자기모순적인 역사인식을 갖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그러한 논리를 우리가 폈을 때, 중국측도 자
30) ……중원에서 처음 한족을 밀어내고 패권을 차지한 금나라 태조 아골타. 그 의 시조는 놀랍게도 신라인 함보였다. 이는 전설이나 야사가 아니라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와 금나라가 세워졌을 때 송나라에서 씌어진 ‘송막기문’에 기록된 역사다. 고려에서 온 신분으로 신라인인 금시조 아골타의 출생연도를 계산해 보면 그가 여진에 들어온 시기는 신라 말 고려 초다. 조선 유학자 김세 렴은 아골타를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외손이며 조선 최고 가문인 권행의 후예라고 했다. 권행의 본래 성은 김씨. 즉 김행의 아들이며 경순왕의 외손인 금의 시조. 당시 족내혼을 했던 신라 왕실의 관습을 고려하면 그의 성은 김씨 이며 신라의 후예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함보를 시조로 둔 금 황실은 발해인 을 왕비로 맞는다. 금나라 성군 세종의 어머니, 4대 황제 해릉왕의 어머니는 모두 발해 여인이었다. 아골타도 발해유민 장호를 새 수도 북경의 건설 책임자 로 등용한다. 금나라는 대제국을 경영한 발해의 경험을 통해 국가체제를 확립 한 것이다. 1606년 여진은 다시 중원을 장악한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 황제의 성(姓)인 아이신 줘러에서 아이신(愛新)은 금(金), 줘러(覺羅)는 겨레 (族)를 의미한다. 결국 금부족, 김씨라는 뜻이다. 청 황실 또한 김(金)씨임이 확 인되는 셈이다. KBS 1TV ‘역사스페셜-금나라를 세운 아골타, 신라의 후예였 다!’ 편은 5일 오후 8시 방송한다.……(문화일보 2009년 9월 4일자 “금·청나라 황실은 신라인 金씨의 후예” 기사 일부 발췌).
신들의 논리에 대한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측 방법론의 논리적 모순을 중국에 대한 비판으로만 쓰지 말고 우리역사를 체계화 하는데 직접 채용해 본다면 한중간 역사문제의 칼자루를 우리가 쥘 수 도 있다는 단상을 가져본다. 그러한 의미에서 간도문제라는 영토문제 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서 시작된 소위 동북공정 등의 역사문제에 대 한 해법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중간 역사문제의 해결과 관련 유적, 유물의 보존 및 학술적인 교류를 위해서 잠정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중국측 논 리의 한국적 변용을 신중히 모색해 봐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이제 다 시 새롭게 한중간 역사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 긴 호흡을 들이마 셔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Abstract)
The Counterplan and the Present of the Historical Problem between Korea and China
Ha, Do Gyeom
A tense over historical issues between South Korea and China is a problem that cannot be compromised as it is related to key interests including peace and stability in the Korean Peninsula, ethnic Koreans in the northeastern China and disputes over Gando (known as Jiandao in Chinese).
There is a limit to what extent the government can solve these problems through diplomacy. To handle such problems, private sectors, especially academic circles, should put efforts to conduct more systematic, in-depth historical research and prepare measures to effectively preserve historical remains.
It is also critical to prevent some politicians, journalists and scholars from spreading populist discourse for their own interests for any kind of reason.
A future-oriented strategy is needed to deal with the historical problems between Korea and China based on a long-term plan to accumulate critical historical documents and systemize the evidences.
By doing so, Korea will be able to more confidently counter historical callenges from China.
The time has come for Korea to seek ways to modify China's
theory in its own perspective, at least partly, to solve historical disputes between the two nations, promote academic exchanges and preserve historical remains.
From now on, South Korea will have to make a long-term strategy to get to the bottom of the historical disputes with China.
주제어: 동북공정, 소수민족, 조선족, 고구려, 발해, 역사문제, 간도 關鍵詞: 東北工程, 少數民族, 朝鮮族, 高句麗, 渤海, 歷史問題, 間島
Keywords: China's Northeast Project, a minority race, ethnic Koreans living in China, Goguryeo, Balhae, problems related to the history between Korea and China, Gando
(원고접수: 2011년 7월 15일, 심사완료 및 심사결과 통보: 8월 8일, 수정원고 접 수: 8월 23일, 게재 확정: 8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