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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1. 남한의 재외동포정책

Dalam dokumen PDF 남북한 재외동포정책과 - Kinu (Halaman 70-94)

가. 재외동포의 개념

남한은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 (재외동포법)」에서 재외동포는 재외국민과 외국국적 동포로 구성된다.

재외국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 또한 외국국적동 포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존비속으로서 외 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들을 포함하지 않게 됨으로써, 재중, 독립국가연합, 재일동포 등 전체 재외동 포의 절반 이상이 법적으로 배제되게 되었다. 결국 동 법안은 2001년 11월 20일 헌법 11조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일치 판정을 받았다.

재외동포법은 정부의 입법취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재외동포들의 모국에의 출입국 및 체류에 대한 제한과 부동산 취득, 금융, 외국환거래 등에 있어서 각종 제약을 완화함으로써 IMF관리 체제하에서 재외동포 들의 자금을 유치하려는 목적이 강하였다.64 이러한 목적하에 미국 등 선진국 거주 재외동포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되었다.

2004년 3월 5일 개정된 재외동포법에서는 “대한민국정부 수립이전 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는 규정이 추가되었으나, 시행령이 통과되지 않아서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재외동포법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조총련동포와 같이 대한민국 국적

64_ 이재정, 「남북한 재외동포정책에 관한 비교연구:탈냉전기 정책변화를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논문, 2004), p. 62.

도 거주국 국적도 취득하지 않은 채 외국에 체류 내지 영주하는 무국적 동포도 재외동포에 포함될 수 있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20만명에 달하는 해외입양아와 미군 혹은 군속과 결혼한 한국 여성 및 그 후손들 도 재외동포에 포함된다.65 이와 같이 재외동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서 적게는 560만명에서 700만명까지 차이가 난다.

나. 재외동포정책의 목표 및 정책방향

2004년 11월 8일 개최된 재외동포정책위원회에서 새로운 재외동포 정책의 기본목표 및 정책방향을 설정하였다. 재외동포정책의 기본목표 는 ① 재외동포의 거주국내 권익신장과 역량 강화, ②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 고양, ③ 동포간 화합 및 모국과 동포사회간 호혜적 발전으로 정하였다.

재외동포정책의 주요정책방향으로는 ① 재외동포의 거주국내 안정 적 정착을 위한 자조노력 지원,② 거주국내에서 법적·사회적 지위 향 상과 권익 보호 지원,③ 모국과의 유대증진을 위한 교육, 문화교류 등 각종 사업지원,④ 재외동포사회 발전을 위한 한민족 네트워크 구 축,⑤ 모국과 거주국간 우호증진과 발전에 기여할 인재 육성 등을 설 정하였다.

한편 국가별 교포사회의 차이점을 감안하여 각기 다른 중점 지원사항 을 정하였다. 예컨대, 미국은 현지 사회 안정적 정착 및 지역사회 기여 확대를 목표로 ① 미국 주류사회 진출을 위한 재미동포사회의 역량 강 화, ② 타인종, 타민족과의 교류협력을 통한 모범적이고 친화력있는 이

65_이광규, 󰡔동북아시대 한민족이 연다󰡕 (서울: 백산서당, 2002); 이진영, “북한개방과 발전에 있어 재외동포의 실 질적 역할 모색,” p. 220에서 재인용.

민집단의 구성, ③ 기회의 땅을 이기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기회 의 땅에 봉사함으로써 모국과 거주국간 호혜적 관계증진에 기여하는 역할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일본은 법적 지위 향상 및 민족교육 강화를 목표로 ① 남북관계 변화 에 따른 민단-총련과의 관계개선 도모 및 평화통일의 기반 조성, ② 차별 없는 민주사회 형성을 위한 지방참정권 획득 등 법적·제도적 지위 상승, ③ 한국어, 국사교육 강화를 통한 자부심 배양, ④ 귀화자의 포섭 을 통한 미래지향적, 열린 동포사회의 형성 지향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중국은 비정치분야 (경제, 교륙, 문화분야) 교류 증진을 목표로, ① 한·중 우호관계 증진을 위한 중간 협력자로서의 재중 동포사회 지원,

② 통일후 동북아 평화질서유지를 위한 재중동포의 건설적 기여 육성,

③ 한·중 통상진흥과 인적·문화교류 향상에 활용되는 역동적인 동포상 구축, ④ 원활한 출입국 및 고용 환경 조성을 통한 안정적 교류협력 활성화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러시아· CIS는 한국어, 전통문화 보급 및 민족교육을 통한 동질성

회복을 목표로 ① 거주국 지역사회에 대한 직접지원 병행을 통한 고려 인 보호·육성 도모, ② IT 분야등 기술연수사업을 통한 동포초청사업 확대 추진, ③ NGO와의 연계를 통한 민관합동 지원체제 구축, 추진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다. 재외동포정책 변화과정

1950년대 말까지 남한의 재외동포정책은 전무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까지 재외동포는 대부분 러시아, 중국 등 공산권에 살고 있었고, 일본의 재일동포 역시 조련계가 압도하고 있었다. 1955년 일본에서 총 련이 결성되자 한국정부는 재일동포의 방문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1961년 5.16 이후 비로소 재외동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정부는 외 무부 정무국에 교민과를 신설하고 1962년 「해외이주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당시 정책의 목적은 해외이민을 장려하여 국내의 과잉인구와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있었다.66 그러나 여전히 재외동포는 재일동포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재외동포정책 역시 이들 에 집중되어 있었다. 외무부 자료에 의하면, 1965년 재외동포의 수는 사회주의권동포들을 제외한 채 65만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 중 60만 명이 재일동포였다.

정부는 북한의 총련지원에 맞서 1960년대부터 재일교포들을 위한 민 족교육에 대한 자금지원을 시작하였다. 1963년 한국교육문화센터를 설 립하여 반공교육 및 친남한화 교육을 실시하였다. 특히, 1974년 문세광 사건을 계기로 재일동포사회의 친북성향을 차단하고 남한을 지원하도 록 지원하였다. 1977년부터 매년 10억엔을 민단중앙본부 및 지방본부 에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근대화 정책에 따라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재일동 포사회를 활용하는 것을 정책목표로 하였다. 예컨대, 재일동포모국방문 추진위원회,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 재일투자금융회사 등을 통해 본 국 투자를 장려하였다.

1980년을 기점으로 정부는 재외동포정책에 보다 적극성을 띠기 시작 하였다. 1980년 10월 개정헌법 제2 조에서 ‘재외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규정이 삽입되었다. 재외동포정책은 재일동포사회를 넘어서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재외동포정책에 변화를 가 져온 주요 요인으로는 재미동포사회의 수적인 확대와 경제적 성공을

66_ 윤인진, “남북한 재외동포정책의 비교,” 󰡔한국사회󰡕, 제6집 (2005), p. 49.

들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들어서 교민청 신설에 대한 요구가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1987년 외교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재외국민정책심의회」가 발족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재외동포정책의 주요 목표는 ‘북미지역 교포사회내 제2 조총련 세력형성 방지 대책’과 ‘재미한인 교회 및 교포 언론 선도대책’과 같이 친북화와 반남한화를 방지하는 것이었다.

1991년 냉전의 종식은 재외동포정책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986년 아시안 게임 개최, 1988년 올림픽개최를 계기로 사회주의권과 교류를 시작한 한국은 1990년 소련과의 수교, 1992년 중국과의 수교로 새로운 재외동포정책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1990년까지 중국과 소련의 교포는 재외동포에 집계조차 하지 않던 정부는 1991년 󰡔외교백서 1991

󰡕에서 중국 192만명, 독립국가연합 44만명을 공식적으로 재외동포에 포함시켰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재외동포들과의 유대가 강화되어, 분야별로 다양

한 네트워크가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1989년 올림픽 개최 1주년 기념행 사로 ‘제1회 세계한민족체육대회’가 개최되어 50개국 1,326명이 참가하 였다. 1990년에는 세계한민족체전위원회가 발족되어 제2회 대회부터 세계한민족체전으로 변경되어 격년제로 실시되었다. 1990년대 후반들 어 과학분야에서 세계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가 구축되기도 하였다.

2001년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가 결성되었다.

경제분야에서의 네트워크는 다른 분야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1970년대 뉴욕과 LA를 중심으로 급성장한 재미경제인들을 중심으로 모국과의 유대를 강화시키려는 노력이 진행되어, 1981년 세계해외한인 무역협회(OKTA)가 정부의 후원하에 결성되었다. OKTA는 1996년

‘KOREAN NETWORK 추진대회’를 개최하는 등 중화경제권과 같이

「한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

상에서 2002년에는 재외동포재단이 주관하여 ‘제1차 세계한상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이 실질적인 한민족 경제공동 체로 발전하기 위한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67

1990년대부터 민족교육의 대상에 사회주의권 동포가 포함되었으며, 재외국민 뿐만 아니라 외국국적 동포, 심지어 현지인까지도 대상에 포 함되었다. 교육기관은 3가지 형태가 있다. 우선 교육부 장관이 인가한

‘전일제 한국학교’는 국내학교와 동일한 형태로 운영되며,14개국에 24

개교가 있다. 한국교육원은 교육부 산하기관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되며, 무료이다. 14개국 35개원이 설치되어 있다.

한글학교는 교회 부설 혹은 사설교육기관 형태로 운영되며, 주로 방과 후나 주말에 한국어를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문화관광 부가 현지인 중 엘리트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 문화교육을 위한 세종학 당을 구상하고 있다.

1995년 외무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재외국민정책심의위원회」

가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재외동포정책심의위원회」로 확대 발전된 데 이어, 1997년 「재외동포재단」이 공식 발족하였다. 재외동포재단은 외교통상부 산하 기관이기는 하지만, 재외동포업무가 외무부 재외국민 영사국의 소관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68

1998년 재외동포재단은 중장기 사업목표로 ① 재외동포지원을 통해

민족정체성과 민족유대감을 높이고 민족정체성을 확립한다. ② 이를 바 탕으로 재외동포들이 거주국안에서 그 사회의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살 아갈 수 있도록 거주국 정착을 지원한다. ③ 국정과제의 하나인 재외동

67_ 이재정, 「남북한 재외동포 정책에 관한 비교연구」, p. 93.

68_ 위의 논문, p. 40.

Dalam dokumen PDF 남북한 재외동포정책과 - Kinu (Halaman 7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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