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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1. 일반적 특성

Dalam dokumen PDF 남북한 재외동포정책과 - Kinu (Halaman 54-70)

가. 한민족 공동체 형성을 위한 시대적 환경의 변화

한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한민족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것은 시대적 환경의 변화에 기인 한다.56 첫째, 세계화시대 경제·문화적 무한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 기 위해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이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둘째, 냉전 붕괴이후 각국에서 민족주의가 대두 됨에 따라, 한민족 역시 국내외에서 민족의식이 강화되었다. 특히, 중국, 러시아 등 공산권내의 한인들이 냉전적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민족의 이름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일본에서도 조총련과 민단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셋째, 정보기술 혁명으로 인해 세계 각지의 한인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상호 정보를 교환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 기 용이해졌다. 특히 인터넷의 확산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고국과 직접 접촉하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넷째,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 컵을 통해 한민족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높아졌다. 이는 한민족 공동체 형성에 대한 열기를 증진시켰다.

나. 다양한 정체성

한민족은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별로 별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CIS 등 국가별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거주국에 동화되어 가면서 독특한 정체성을

56_정영훈, “한민족 공동체 형성과제와 민족정체성 문제,” 󰡔재외한인연구󰡕, 제12권 2호 (2002), p. 12.

유지 발전시켜왔다. 심지어 중앙아시아와 같이 동일한 지역내에서 거주 하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도 국가별로 많은 차이를 보 이고 있다.

또한 국가별로도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주 국가 내에서도 한인들의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한다.57 예컨대, 이주 1세대와 이후 세대 간에는 정체성 보존과 현지동화의 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다.

거주국 정부의 동화정책과 다문화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는 존재하 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주시기에 따라서도 정체성 보존의 차이가 나타난 다. 즉 이주할 시기의 모국 문화를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해외로 이주한 중국, 일본, 러시아의 한인사회는 유사한 정 체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민족 정체성은 현재 한국의 민족 정체 성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6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70, 80년대 미국에 이주한 한인사회 역시 정체성에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거주국의 시민권을 갖은 사람과 영주권만을 가진 사람 간에도 이질감이 존재한다.

특히,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CIS와 일본 등에서는 기존의 한인들과 새로운 이주자간에 정체성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미 이민 3, 4세로 진입한 중앙아시아의 경우, 기존의 고려인 사회와 독립이후의 이주자 사이에는 별개의 정체성을 보이고 있다. 우선적으로 기존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반면, 새 이주자들은 러시아어에 서툴고 한국어를 한다. 이들의 경제생활, 음식문화, 문화생활이 완전히 차이가 난다. 우즈 베키스탄의 경우 고려인들은 󰡔고려신문󰡕을 읽는 반면, 한인사회는 󰡔교 민일보󰡕 등을 읽는다. 일본에서도 기존의 이민자들은 한국어를 구사할

57_ 이종훈, “한민족 공동체와 한국 정부의 역할,” 󰡔재외한인연구󰡕, 12권 2호 (2002),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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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으며, 이들은 소위 뉴커머들(New Comer)과 별개의 정체성을 갖 고 있다.

다. 한민족 정체성의 약화현상

이처럼 해외 한민족 사회의 형성 연원이 오래 되었고 이주 배경도 다양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의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 관습, 생활양식 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한민족 동포사회가 점차 일본, 중국, 러시아라는 국가체제에 동화되어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동포사회는 여전히 ‘한민족’으로서의 정체 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해외 한인들이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정체성이 약화됨을 알 수 있다. 언어나 문화에 있어서 현지화가 강화되고, 결혼 등에 있어서도 현지인과의 결 혼이 증가되는 것은 어느 나라든 공통적인 현상이다.

러시아 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동화정책으로 러시아 한인들의 한민 족으로서의 정체성은 비교적 약한 편이나, 일본과 중국의 한민족 역시 최근 정체성의 약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재일한인 1세들과 달리 2·3·4세 한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하였 고 또 일본사회에 정주하여 대체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념보다는 일상적 이해관계에 더 관심을 가지면서 일본사회에 적응하 여 살아가고 있다. 특히 민단계 3·4세 한인들은 조총련계 3·4세 한인들 보다 민족의식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므로, 일본사회에 대체로 문화적으 로 상당히 동화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민단계 청장년 세대의 거의 대부분은 일상적 생활에서 본명이 아닌 통명인 일본이름을 사용하 고 있으며, 적지 않은 숫자가 민족적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민단계 젊

은 세대들이 민단의 필요성에 대해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며 소극적 참 여 또는 외면하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민단은 조직의 공동화 현상과 더불어 조직기반의 침화에 따른 조직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민단계 민족학교는 재정난으로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 어 오고 있으며, 민족교육의 침체에 따른 ‘민족의식의 약화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주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한민족의 정체성이 가장 강한 중국의 한민족 사회도 최근 정체성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선족의 탈농촌화와 도시로의 이동 그리고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것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내 한민족 20-30대 여성의 20% 정도가 한국으로 시집을 떠나, 조선족 마을의 미혼 청년 남녀의 성비가 20 대 1에 달하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조선족의 도시 이동과 집거지 붕괴는 조선족 전통문화, 언어, 민족학교를 유지시키는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농촌지역의 학령 기 어린이들이 한국어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있으며, 한국어와 한국역사 및 문화보다는 중국어와 중국역사를 공부해야 대학 입시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한민족들이 자녀들을 한족학교에 취학시 키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 밖에 중국 내 한민족의 응집력을 강화시 킬 수 있는 고유의 종교와 민족 지도자가 없다는 점도 한민족 자치지역 의 위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한인들은 자신들을 한국인이나 조선인이 아닌 중 국인 혹은 러시아인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일본의 한인들(특히 민 단계 한인들) 역시 일본에 귀화하고 싶다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 이며, 실제로 매년 1만 7천명씩 귀화하고 있다. 한민족 문화 공동체에 대한 노력이 없다면 정체성 약화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한인들은 선진국에 산다는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나 여전히

이민 1세대가 많고 언어, 문화의 이질성으로 인해 미국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인타운과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한국 연속극, 영화, 뉴스를 꾸준히 보면서 높은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시민권 취득율이 절반에 그치고 있다.

라. 민족정체성 및 한인 사회 동질성의 국가별 차이

민족의식이 약화되어 간다는 세대별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국가별로 민족 정체성 및 한인사회의 동질성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한인 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약한 반면, 미국은 가장 강하게 유지되 고 있다. 미국은 이민 1세가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에 한민 족으로서의 정체성이 높으나, 이민 2세, 3세로 가면서 급격히 정체성이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이민 2세의 경우 한국어가 능 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고, 국제결혼도 많이 하고 있다. 이민 1세와 2세간에 단절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국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비교적 높은 편이나 동시에 자신들이 중국인이라는 생각 역시 매우 강하다. 한편, 일본은 탈냉전 이후 민족 정체성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일본의 한인 사회는 좌우로 나누어져 대립하여 왔다. 1955년 북한의 지원 아래 재일 한인사회의 좌파세력을 재결집하여 등장한 조총련은 조직을 정비하고, 민단과의 대결구도 속에 서 민족교육사업, 금융사업, 재일교포 북송사업 등을 전개하여 재정과 조직면에서 민단보다도 훨씬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나아가 조총련은 일본의 정계와의 관계도 공산당의 범주를 넘어 그 폭을 넓혀나갔다. 그 러나, 조총련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내부권력의 후유증, 재정적 기 반의 침화 등으로 인하여 조직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김일성 우상화에 대한 조총련계 지식인의 반발, 북한 지상낙원론의 붕괴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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