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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糞尿 시비의 확대

人糞이 언제부터 田地의 시비로 활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실 제 孟子 萬章下 의 ‘百畝之糞’, 荀子 富國 ‘多糞肥田’ 속의 ‘糞’

은 어떤 형태의 비료를 시비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보다 분명한 기록 은 氾勝之書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는 齊民要術의 “以溷中熟糞糞 之”로서 麻子재배할 때에 厠間의 熟糞을 사용했던 사실을 볼 수 있다.

한대 畵像石에는 厠間과 猪圈이 하나로 결합된 그림이 등장하는데, 이 때 溷中에서 생산된 熟糞은 猪糞과 人糞이 결합된 형태의 비료였을 것 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이 직접 비료로 田地에 사용되었다는 기록 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전술했듯이 四時纂要 2월조에는 人糞이란 단어와 함께 시 비로 사용된 기록이 보인다. 즉 “2월 초 山藥[署預]의 종자를 꺼내 파 종한다. 그러나 人糞(의 직접적인 시비)은 꺼린다. 만약 가물면 (인분 에) 물을 타서 뿌려주는데[忌人糞, 如旱, 放水澆], 또 너무 습하면 좋지 않다. 牛糞에 흙을 섞어 파종하면 좋다.”100)고 한다. 여기서 ‘放水澆’

에서 ‘澆’는 보통 거름물을 뿌릴 때 사용되는데, 단순히 ‘澆水’가 아니 라 ‘放水澆’라고 표현한 것은 앞의 인분의 존재로 미루어 ‘人糞에 물을 부어 뿌린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냥 물을 뿌릴 때는 보통 ‘灌’을 쓰 는데,101) 이런 사례는 補農書에 자주 등장한다.102) 비록 ‘忌人糞’하여 100) 四時纂要 二月․種署預 , “二月初, 取出便種. 忌人糞. 如旱, 放水澆. 又不

宜苦濕. 須是牛糞和土種, 即易成.”

101) 渡部武, 四時纂要譯注稿, p.53에는 ‘澆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102) 補農書 逐月事宜 正月 ‘澆菜麥’, 二月 ‘澆菜秧’, 三月 ‘澆桑秧’, 四月 ‘澆 桑秧’, ‘澆瓜茄’, 五月 ‘澆桑秧. 澆瓜.’ 등 거의 매월마다 이런 사례가 등장하는

곡물에 직접 인분을 施用하지는 아니했겠지만, (人)糞을 물이나 小便에 타서 모두 덧거름으로 시용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같은 2월의 ‘種茶’조에는 茶나무를 구덩이에 파종한 후 가물면 쌀뜨물[米泔]을 뿌려준다고 한다. 차나무는 햇볕을 싫어하기 때 문에 뽕나무나 대나무 그늘 아래 파종하는 것이 좋으며, 2년이 지나 김매기를 할 때에는 小便에 糞이나 蠶沙를 희석하여 뿌려주고 흙을 북 돋아준다고103) 한다. 種木綿法에도 소변에 재[溺灰104)]를 섞어 목면종 자를 파종하며, 파종 후에도 牛糞을 덮어주면 잘 자라고 열매도 많아 진다고 한다.105) 보다 구체적인 자료는 8월의 種蒜 조에 보인다. 蒜을 파종한 후 ‘똥오줌을 뿌려주고[上糞水澆之]’, 가물면 거름물을 주어야 하니 해마다 거름(물)을 만들었다. 다음번 파종 시에 (거름물이 없어) 줄 수 없으면 안 된다고106) 한다. ‘收牛膝子’조에도 봄에 파종하여 가 을에 거두면서 채소재배와 같이 ‘上糞澆水’한 것을 보면107) 항상 똥오 줌을 저류하여 준비해두었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현상은 곡물이나 나무재배에도 보이는데, 사시찬요의 區田 法에는 大豆를 재배하면서 四方에 깊이 6寸의 구덩이를 파서 牛糞과 물을 1:3의 비율로 섞어 기비한 후 3알의 콩을 파종하여 복토하고,108)

데, 모두 거름물을 뿌려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四時纂要에도 ‘水澆’, ‘井 水澆之’, ‘以水澆之’ 등은 물을 뿌려준 것이 분명하다.

103) 四時纂要 二月․種茶 , “旱即以米泔澆. 此物畏日, 桑下, 竹陰地種之皆可.

二年外, 方可耘治. 以小便, 稀

蚕沙澆擁之.”

104) 渡部武, 四時纂要譯注稿 (安田學園, 1882), p.84에서 ‘溺灰’는 尿와 灰를 혼 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105) 四時纂要 三月․種木棉法 “種木綿法: 節進則穀雨前一二日種之. ··· 以 綿種雜以溺灰, 兩足十分揉之.··· 又種之後, 覆以牛糞, 木易長而多實.”

106) 四時纂要 八月․種蒜 , “種蒜良軟地耕三遍, 以耬耩, 逐壠下之, 五寸一株.

二月半鋤之, 滿三遍止. 無草亦須鋤. 不鋤即不作窠. 作行, 上糞水澆之. 一年後看 稀稠更移, 苗鹿如大筯. 三月中, 即折頭上糞, 當年如雞子. 旱即澆, 年年須作糞. 次 種不可令絕矣.”

107) 四時纂要 八月․收牛膝子 “要術云, 秋間收子, 春間種之. 如生菜法, 宜下 濕地. 上糞澆水, 苗生剪食之.”

108) 四時纂要 二月․區種法 “坎方深各六寸, 相去二尺許. 坎內好牛糞一升, 攪

2월 오동나무[種桐]를 심을 때도 熟糞에 흙을 덮어 싹이 나면 자주 거 름물을 주어 모종을 윤택하게 했다고 한 것을 보면,109) 唐末에는 인분 뇨뿐 아니라 가축분도 거름물을 만들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하여 두었 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唐代 초․중기에는 인분을 비료로 이용한 다른 사례를 찾기 가 쉽지 않다. 다만 武后 때 장안에서 人糞을 청소하여 巨富가 되었다 거나 唐律疏議에서 함부로 人畜배설물을 투기하면 엄벌했던 것을 보 면 대도시의 인분처리가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110) 그러던 것이 唐末 에 이르러 인분을 山藥과 차나무에 비료로 사용하면서 家畜糞의 부족 을 일정부분 대신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남방지역의 농서인 陳旉農書 단계에 이르면, 人糞을 糞田 에 활용한 사례는 적지 않게 등장한다. 우선 糞田之宜篇 에는 청소하 면서 생긴 흙과 각종 쓰레기와 낙엽 등을 태워 糞汁을 뿌려 오랫동안 저장해두었다가 그 중 가늘고 부드러운 것을 취하여 種子와 잘 섞어 파종하면 수확이 배로 된다고 한다.111) 뿐만 아니라 전술한 바처럼 각 종 농업부산물과 재 등을 태운 것에 똥오줌[糞汁]을 뿌려 발효 저장하 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같은 방식 등은 최근까지 한국의 농촌에 일반적으로 존재했던 製糞法이다.

桑田에도 인분뇨의 시비가 많이 등장한다. 種桑之法篇 에 따르면, 뽕나무 밭에 苧麻를 심고, 그것들에 糞을 시비를 하면, 뽕나무도 비료 의 효과를 보게 된다. ··· 만약 부지런히 糞治 한다면, 1년에 3번 수확 할 수 있어서 납세는 물론 삼베옷과 비단옷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

和. 注水三升. 下豆三粒. 覆土, 勿令厚, 以掌輕抑之, 令土, 種相親.”

109) 四時纂要 二月․種桐 , “九月收子, 二月三月作畦種之. 治畦下水, 種如葵 法. 五寸一子. 熟糞和土覆. 生則數數澆令潤性.”

110) 최덕경, 東아시아 糞尿시비의 전통과 生態農業의 屈折 (역사민속학 35, 2011), p.265.

111) 農書 糞田之宜篇第七 , “凡掃除之土,燒燃之灰,簸揚之糠粃,斷稿落 葉,積而焚之,沃以糞汁,積之既久,不覺其多. 凡欲播種,篩去瓦石,取其細 者,和勻種子,疎把撮之. 待其苗長,又撒以壅之. 何患收成不倍厚也哉.”

다고112) 한다. 이것은 송대 뽕나무 재배가 가정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 중을 잘 말해주며, 그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바로 ‘糞治’였던 것이다.

여기서 ‘糞治’는 단순한 시비의 의미라기보다는 전술한 뽕나무밭의 시 비의 사례로 미루어 人糞이나 人尿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은 상황으로 볼 때 唐末에서 비롯된 인분뇨의 시비는 주 로 樹種, 약재 및 밭작물에서 비롯되었지만, 송대에는 중심 작물인 水 田과 桑田에 분뇨가 施用되면서 그 보급이 급작스럽게 확대되었을 것 이다. 실제 宋版 耕織圖 에는 벼의 성장을 돕기 위해 人糞에 물을 탄 淸水糞을 뿌리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113)

그런가 하면 善其根苗篇 에는 人糞을 직접 시비하는 경우도 보인 다. 인분은 腐熟과정에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작물이 직접 접촉하면 그 열에 의해 타 죽게 되며, 사람도 그 毒에 의해 손발의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만약 大糞을 사용할 경우에는 먼저 大糞[生糞]을 火糞과 섞 어 糞屋과 같은 구덩이에 넣어 오랫동안 腐熟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小便도 그대로 사용하면 작물이 손상이 입게 된다고114) 하여 大糞, 小 便의 비료 활용 시 주의 사항과 더불어 각각 별도로 활용했을 가능성 을 陳旉農書에서 제시하고 있다. 陳旉가 농서를 통해 강조한 것은 인분뇨는 반드시 숙성시킨 후에 사용하라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일찍 이 범승지서와 제민요술에서 熟糞을 사용할 것을 강조한 바와 유 사하다.115)

112) 모시로 짠 布는 가치가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시대는 약간 내려가 원나 라의 농상집요 권2, 저마 의 항목에는 “此麻, 一歲三割 ··· 目今陳·蔡間, 每斤價鈔三百文, 已過常麻數倍 ··· 其布, 柔靭潔白, 比之常布, 又價高一二倍”

라고 되어 있고, 보통의 마나 포와 비교해서 2배에서 몇 배의 가격이었다고 한 다.

113) 최덕경, 東아시아 糞尿시비의 전통과 生態農業의 屈折 , p.279.

114) 農書 善其根苗篇 , “候其發熱,生鼠毛,卽攤開中閒熱者置四傍,收斂 四傍冷者置中閒,又堆窖罨;如此三四次,直待不發熱,乃可用,不然卽燒殺物矣.

切勿用大糞, 以其瓮腐芽蘖,又損人腳手,成瘡痍難療. 唯火糞與燖豬毛及窖爛麤 穀殼最佳. …… 若不得已而用大糞,必先以火糞久窖罨乃可用. 多見人用小便生澆 灌,立見損壞.”

사람의 분뇨는 원래 남방의 농가에서는 일찍부터 광범위하게 비료 로 사용했는데,116) 그때에도 논머리에 潭이나117) 糞窖와 같은 똥이나 거름구덩이를 만들어 腐熟한 후에 논밭에 시비하였다. 北方에서는 이 를 모방하여 큰 이익을 거두었다고 한 王禎農書 糞壤 篇의 지적으 로 미루어118) 田地에서의 인분 활용은 南方 지역에서부터 비롯된 듯하 다. 인분뇨의 시비는 명청시대가 되면 水田과 桑田에서 그 비중이 더 욱 증가되는데. 이것은 補農書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보 면 인간의 배설물까지 資源으로 還元시켜 糞田에 활용한 것은 唐宋代 에 비로소 현실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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