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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론

Dalam dokumen 김정일 현지지도의 특성 (Halaman 78-108)

우리나라에서 북한에 관한 학문적 성격의 연구활동이 시작된 지 40 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연구성과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현재 북한연구는 현상에 대한 ‘설명’과 ‘예측’을 ‘과학적 연구’의 척도라 고 할 때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그만큼 아 직도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 야기다.

북한연구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로 발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자료의 부족이다. 지금까지 북한연구에 주로 활용되어 온 자료는 그 절대량과 다양성이 부족한 북한의 출판물, 언론매체의 보도 등이다. 이것마저 선전성이 강해 내용에 신뢰성을 확신할 수 없 는 경우가 많지만 연구자가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경험적 조사를 할 수 없는 실정에서 다른 대안은 없다.

본 연구는 「조선중앙년감」에 수록되어 있는 김정일의 현지지도 내 역을 여러 변수로 분류하여 현지지도 횟수의 변화를 추적하고 그 변 화의 원인을 설명함으로써 김정일 현지지도의 전체적인 특징을 추출 하고자 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의지에 의해 획일적으로 움직이는 사회라는 점을 고려할 때 김정일의 행동궤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지지도에 대한 분석은 북한연구에 일정한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 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론에서 발견된 몇가지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평균으로 보면 김정일의 현지지도는 김일성 사망 이전보다 김일성 사망 이후 현지지도한 단위수와 일수에서 감소했으나 현지지 도를 위해 다닌 거리는 김일성 생존 때보다 2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 는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위해 활발히 이동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둘째, 분야면으로 볼 때 현지지도가 1994년 이전에는 주로 사회․ 문화분야에 치중되어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군사부문이 62.6%를 차 지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의 현지지도 거리가 크게 늘어 난 것은 군사부문, 특히 평양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군부대 시 찰이 크게 증가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셋째, 김일성이 사망하기 이전 김정일의 현지지도 횟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1981년부터 1993년까지 13년동안 모두 70회로 1994

년부터 2002년까지 9년간 총 302회의 1/4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김정일이 제2인자이기는 하지만 1993년까지 김일성의 왕성한 현지지 도를 주로 수행한 때문이다.

넷째, 김정일의 현지지도는 1995년부터 차츰 늘어나 1998년 이후 는 한 해 40회를 넘고 있다. 특히 1995년부터 1997년까지의 점증 현상은 당시 김정일이 총비서직에 취임하지 않고 있어도 그의 권력장 악이 순조롭고 안정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권력장악이 안정되어 있 지 않았었다면 평양을 떠나 현지지도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8년에 현지지도 횟수가 다른 해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은 1997년 10월 그가 총비서직에 취임하면서 명실공히 김정일시대

가 시작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월별로 보았을 때 현지지도는 6, 10, 11월에 많이 이루어 졌고 분기별로 보면 현지지도 횟수가 많은 때는 2/4분기와 4/4분기 이다. 이 시기는 각각 상․하반기를 마감하는 때이므로 한 해의 사업 성과를 높이도록 독려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다. 김정일은 한 해의 사 업추진 현황을 보고받으면서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문의 현장을 찾는 것으로 추측된다.

여섯째, 안보상의 이유로 소재지를 밝히지 않는 군사부문에 대한 현지지도 장소를 제외하고 지역별로 보면 평양이 거의 절반으로 타지

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고 여타 행정구역에 대한 현지지도 횟수는 황해북도와 두 개의 직할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슷하다.

일곱째, ‘선군정치’하에 시행되고 있는 김정일의 군부대방문은 2000

년에만 다소 비율이 떨어졌을 뿐, 김정일은 현지지도의 거의 반 이상 을, 그리고 현지지도의 절대수가 적었던 1995년을 제외하고 6년동안 한 해 평균 20회를 군부대를 찾는 데 할애함으로써 ‘군사우선’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덟째, 경제부문에 대한 김정일의 본격적인 현지지도는 1997년

10월 김정일이 당총비서에 취임한 후인 1998년 1월 자강도에 대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1998년 9월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되어 명실상 부한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인 1999년부터 더욱 강화되고 있다. 따라 서 경제부문에 대한 현지지도 횟수는 1998년부터 급격히 증가하여 2000년에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고 2001년에 약간 주춤한 이후 2002년부터 다시 증가추세를 보인다.

아홉째, 경제부문과 관련해 현지지도를 가장 많이 한 단위는 공장 과 기업소이며, 현지지도 단위가 1999년부터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토지정리사업이 시작되면서 농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크게 증가했고 각종 목장과 양어장으로 현지지도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범주별 현지지도 횟수의 변화를 관찰해 얻어진 이러한 결과 들은 북한이 현지지도 전체의 실체를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 가운데 공식적으로 보도한 것만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이러한 결과들은 김정일 현지지도 특징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그 전체가 아니다. 이 점에서 많은 시간이 필 요하겠지만 본 연구에서 제시된 몇가지 특징들은 북한의 출판물에 산 재되어 있는 김정일 현지지도의 구체적 내용에 의해 검증되고 보완되 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본 연구의 분석에서 사용된 1981년부터의 김정일 현지지도 의 구체적 내역은 <부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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