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우리 정부도 6자회담의 원활한 진전을 위 해 매우 중요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문제에 대해 북∙미 양측에 유연성을 보이 도록 촉구해야 한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한∙러 양국의 입장이 유사하기 때문에
‘한국국제교류재단’과‘러시아 외교아카데미’가 매년 주최하는 한∙러포럼 등을 통해‘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단계별 전략을 학술적 차원에서 공동으로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균형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무기를 판매하지 않도록 강력히 요청해 야 한다. 우리의 요청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무기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러시아의 첨단 군사무기 구매를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러시아의 경제가 급속히 회복∙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와 기업들 은 러시아에 대한 교역과 투자를 대폭적으로 신장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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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안보관계의 변화와 북∙미관계의 전망
박영호(기획조정실장)
동북아연구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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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은 미국의 동맹정책의 성공적인 사례다. 탈냉전시대에 들어서 한∙미는 국제환경 변화에 따른 동맹관계의 조정을 모색해왔으며, 특히 2000년 대에 들어와 각각의 국내외 환경변화에 적응하면서 동맹관계의 재조정을 추진하 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 동안 한∙미관계는 깊은 변화를 겪고 있다. 한∙
미 안보관계의 변화에는 북한 변수가 작용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과거∙현재∙
미래의 한∙미 안보관계의 변화를 북한 변수에 초점을 두어 분석∙전망하는 것 이다. 먼저 이론적 배경으로 국가안보와 동맹이론을 검토하고, 그 구조적 환경조 건인 한반도 전략 환경을 분석한다. 이어 한∙미 안보관계의 변화를 강대국-약 소국간 동맹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분석한 후, 한∙미동맹의 미래 모습과 한∙
미 동맹관계의 맥락 속에서 북∙미관계의 미래를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북한 변 수를 고려하여 한∙미 동맹관계의 재조정 과정에서 투영되어야 할 정책적 시사 점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한∙미 안보동맹관계와 북∙미관계를 각각 분석한 기 북한 문제는 한∙미 동맹관계의 미래 규범 정립과정에서 핵심적인 변수다.
그러나 그 변수를 우리의 국가이익 실현을 위한 정책결정과정에 제대로 투 영시키기 위해서는 국제관계의 규범과 원칙, 그리고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Ⅰ. 필요성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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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연구들과는 달리 두 관계를 상호 맥락 속에서 분석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 도이다.
국가안보의 개념은 시대를 따라 변해왔으며, 한∙미 안보동맹의 근간을 이루 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국가안보는 국가이익과 관련되며, 국가이익의 변화에 따라서 국가안보의 층위도 변한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국익 을 최대화하기 위한 국가안보 목표를 세우고 정책을 추진하지만, 그 과정에서 갈 등과 충돌이 발생한다. 동맹국간에도 일방의 국익이 타방의 국익과 반드시 일치 하는 것은 아니며, 상충적인 갈등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안보동맹은 두 개 이상 의 국가가 연합한 힘으로 동맹 구성국의 안보능력을 신장시키려는 것이 목적이 다. 약소국은 독자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거나 안보를 확보할 수 없을 때, 외 부의 힘을 빌려야 하며, 동맹 형성은 그 하나의 방법이다. 한국이 미국과 맺은 동 맹이 이에 해당한다.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비대칭 동맹이 자유선택으로 이루어 졌을 때, 약소국의 입장에서 강대국의 확실한 안보 공약 확보가 1차적 문제이며, 강대국의 영향력 최소화는 2차적 문제다. 그러나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힘의 균형 이 변화할 때, 2차적 문제가 점차 그 중요성을 더하게 될 수 있다. 한∙미 동맹관 계는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비대칭동맹으로 시작하여 일방적 후원-피후원 관계 로부터 점차 동반자적 관계로의 변화를 보여 왔다. 이에 따라 한∙미 동맹관계에 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초래하는 요인들이 등장했으며, 북한에 대한 인식의 차 이는 핵심적 요인이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 한국이 남북관계의 발전을 중시 하면서 북한과의 교류협력정책이 강화되고, 그에 따른 북한에 대한 정책적 이해 관계의 변화가 동맹국 미국과 충돌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양국간 동맹관계의 출 발점이 되고 여전히 동맹관계의 존립 이유인 북한 요인이 동맹관계의‘새로운 변 화’를 추동하고 있다.
탈냉전시대의 국제질서는 일종의‘패러다임’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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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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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냉전시기에는 잠재되었던 각종의 잠재적 갈등 요인이 분출하였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9∙11테러 사태와 같은 비국가행위자들에 의 한 대규모 폭력과 같은 새로운 안보위협들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 제체제의 세계적 확산 추세 속에서 각국의 상대적 자율성이 증대되고 있으며, 유 럽연합 확대, 중국의 급격한 부상, 중국을 포함한 BRICs의 경제력 부상 등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주도력에 대한 도전이 증대하고 있다. 동∙서 이념대립의 소멸 대신에 문화∙종교적 이념 갈등, 자민족중심주의, 인종 갈등, 경제, 정보침투, 문 화침투, 대량살상무기, 테러 등의 다양한 요인들로 국가간 관계는 보다 복합적이 고 다차원적이며 유동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군사∙안보의 중요성이 상대적 으로 약화되고는 있으나, 무역자유화, 시장개방, 에너지, 질병 퇴치, 복지 향상, 환경 문제 등이 국제정치의 중요한 이슈로 중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질서 속 힘의 분포가 변하고 다양한 행위자 힘의 변화로 오히려 탈냉전시대에 들어서 각종의 저강도 분쟁과 갈등의 분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위정치의 부상이 세 계질서를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지역은 한∙중∙일 3국만으로 2004년 현재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1.49%로서 미국 21.27%, 유럽연합(EU) 20.99%에 앞섰다. 동북아 안보 정세는, 미국의 우월적인 영향력 지속,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 증대와 상호 경쟁, 러시아의 영향력 복원 노력 등을 특징으로 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중시하 는 현상유지 속의 새로운 안정적인 동북아 국제질서 구축을 선호하고 있다. 향후 동북아정세, 특히 한반도문제는 그 영향력의 측면에서 미∙중의 역할과 두 나라 의 상호관계가 중요하다. 미∙중 양국은 갈등과 견제 및 잠재적 도전 등의 요소 가 있으나, 당분간은 전략적 협력 필요성의 동기가 더 강하다.
북한은 경제난 극복과 대외관계 개선을 통한 체제안정화에 주력할 것이고, 중∙장기적으로는 급격한 변동사태 요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는 체제로 장 기지속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지도부의 세계관은 쉽게 변 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군사중심 노선과‘사회주의혁명 노선’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는 미시적인 측면에서는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 거시적 인 측면에서는 북한식‘사회주의’의 장기 유지의 필요에 의해서 접근과 후퇴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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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의 한∙미 안보관계는 일방적인‘후원-피후원’의 관계였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더 많은 안보 혜택과 그에 따른 경제∙사회적 발전을 이루 어 나가기 위한 기간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공산주의의 팽창을 억 제하기 위한 아시아의 최일선의 전진기지로서의 효용과 더불어 강대국으로서 미 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약소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제공하는 상황에 있었다. 한 국은 자신의 안보를 매우 높은 수준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강 대국과 약소국간의 동맹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 현재화될 수 있는 상황 은 아니었다. 특히 북한은 한∙미의‘공통의 적’이었기 때문에 한∙미동맹은 매 우 일치되고 견고한 기반 위에 있었다. 1970대의 한∙미 안보관계는 미국의 카터 행정부 당시 인권문제를 매개로 갈등 상황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기존의 안보동 맹구조를 변경시킬 만큼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1970년대에 미국의 전략계획에 따라 두 차례의 주한미군 감축이 실행되었으나, 역시 한∙미 안보동맹구조의 근 간을 변경시키는 것은 아니었으며, 북한에 대한 공통의 대비태세는 1970년대 후 반 한∙미 연합사령부의 창설로 보다 체계화되었다. 1970년대에 미국은 남북대 화의 전개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북한과의 관계가 다소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북∙미관계의 변화 조짐이 한∙미 안보동맹관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 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주한미군은 한반도에서‘남북한간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1980년대의 한∙미 안보관계는 한국에서 군사쿠 데타로 등장한 후기 군사권위주의정권의 정통성 확보 차원의 한∙미관계 강화 정책과 미국 공화당 정권의 안보 중시정책에 따라 비교적 밀착된 관계를 보였다.
특히 레이건 대통령은 매우 이념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성장과 사회주의국가들의 변화라는 국제정세요인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국방 부담 증대 요구를 가져왔다. 또한 이 시기 초반 특히,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민주화 시위에 대한 한국 군부의 강경유혈진압과 이어 등장한 한 국의 정통성이 결여된 군사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미국의 승인이 한국 사회에서 반미감정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탈냉전시대 즉, 1990년대 이후의 한∙미 안보관계는 사회주의 진영 붕괴라는 국제환경의 대변화 요인이 동맹의 조정을 요구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여기에 미국의 국가전략 변화와 한국의 국가적 위상 증대 등이 동맹구조의 변화를 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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