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인간중심적인 생태・환경 문화 조성
한・중・일 모두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생태와 환경오염 문제를 겪
어 왔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발전에 수반되는 공해와 환경・생태계 파괴 문제는 그 규모와 파괴력 면에서 과거와 다르다. 이 문제는 중국의 미래에 있어서 큰 부담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생태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과 발해만의 생태계 파괴 및 오염 문제는 아주 심 각한 상태이며, 상하이 근해와 황해 일대의 환경오염도 더 이상 방 치되어서는 안될 정도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환경・생 태계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외부의 간섭과 충고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동북아 역내 주민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하는 가장 기초적이 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생태와 환경의 보존은 동북아의 공종과 공영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물질적인 여건이라고 할 수 있 다. 따라서 동북아에서 바람직한 생태・환경 문화를 조성하고 이를 위해 협력하는 것은 군사・안보 외적인 분야에서 동북아 평화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가 먼 저 중국 일본과 함께 동북아 생태・환경포럼을 제안하고, 민간부문 에서 동북아 생태・환경문제에 대한 공동 연구와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환경 분야의 협력은 동북아 평화문화의 영역 을 인간안보까지 넓히는 데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서 동북아 평화문화 공동체를 인간중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 로 다듬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추진
경제적 이해가 일치하는 국가들간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 은 시장 통합의 한 형태로 불가역적인 시대적 추세라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동북아 역내 국가 사이에는 경제 발전 수준의 차이와 산업 부문간 격차 등으로 인해서 기대만큼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 고 있다. EU의 경제통합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무역지대의 창설에 의한 동북아 경제통합은 군사・안보적 갈등과 긴장 요인을 상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 평화문화 조성에 긍 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동북아 역내 국가들은 상호보완적인 경제구조를 발전적으 로 활용하면서 그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또한 21세기의 국가 경쟁 력을 결정하게 될 IT, BT 등의 신기술분야에서 협력하도록 힘써야 한다. 아울러 한・일 양국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위기로 간주하기 보 다는 기회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 다. 한・중・일 3국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동북아 전체의 경제발전으
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경제개방, 기술협력 등 다양한 협력과 공동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결국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창설과 이에 수반 되는 경제통합은 동북아 평화문화의 형성의 촉진제이자 평화문화를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드는 버팀목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다. 미래지향적인 과거와의 화해 및 민족주의 순화
한・중・일 3국의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동북아 미래의 삶보다 과거
사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듯하다. 이는 독자적인 정치공동체를 유지 해오면서 각자 자립적인 삶과 자존적인 문화생활을 영위해 오던 중에 근대 사회로 진입하면서 지배-종속-식민의 관계가 형성된 데 큰 원 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중・일 가운데 어느 나라도 자국 중심의 역사 인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 히 한국과 중국에 대한 침탈의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는 일본의 오 만함과 명백한 과거사를 왜곡해서 자국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중국의 무모함은 동아시아 공동의 미래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더해준다.
동아시아의 평화문화를 창출하고 동아시아 미래 공동체를 열어가 기 위해서는 과거 중국의 대국주의적 횡포와 간섭 그리고 일본의 침탈과 식민지 수탈 등의 피해와 수난의 역사로 얼룩진 한국이 먼 저 과거와의 화해를 위한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의 역사해석에서부터 한민족 중심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여 동아시아 중심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한・중・일 3국의 강한 민족주의를 순화하려는 노력도 함께 이 뤄져야 할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 파동이나 침탈 역사의 미화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고 다시 역대응하면서 야기되는 모든 불신과 갈등의 배 경에는 언제나 민족주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 역 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한・중의 반일표출이 다시 일본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악순환 과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중국의 민족주의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위협적인 형태로 나
타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비록 시민사회의 인류 보편적 가 치와 평화에의 관심, 그리고 과거사 청산을 통한 동아시아 국가에 대한 배려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 과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는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시대의 대동아 공영권 부활을 시도할 것이라고 우려할 단계는 아니다. 또한 일본 내 우익은 소수이고 인기도 없어, 대부분의 일본인은 전쟁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분명 다르다. 국가체제 의 정당성을 일당독재의 사회주의에서 찾아온 중국 정부는 자본주의 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과정에서 실업, 빈부격차, 중앙-지방간 갈 등 등 정치사회적 문제가 불거질 때 대내적 모순을 대외적으로 전환 시키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중・일 세 나라가 미래지향적인 평화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두 자민족 중심주의적 민족주의를 순화시켜야 할 것이다. 21세기에는 퇴영적 민족주의보다는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성숙에 미래를 기대해야 한 다. 말하자면 이제 한・중・일 세 나라의 사람들은 각각 한국, 중국, 일본의 국민이라는 자기정체성 보다는 서울, 베이징, 도쿄의 동아 시아의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공동의 인식을 갖고 서로 만나야 하 는 것이다.
라. 뒤섞임을 통한 정체성과 연대성의 강화
동북아는 세계 최대의 경제규모와 엄청난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음 에도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지역이다. 한・중・일 세 나라는 모두 미국, EU, 범아시아, 중동, 러시아, 남미, 아프리 카 등 세계 각지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면서 자국 중심으로 세계화 시대에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 일본, 중국 사람들이 뉴욕의 맨하튼이나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서 만났을 경우 서로 동아시아 인으로서의 남다른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문제
가 제기된다. 한・중・일 3국이 구심력을 발휘해서 동아시아로 회귀 하는 것은 동북아 평화문화 형성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동아시 아로의 회귀를 달성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한・중・일 세 나라 사람들 이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도록 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적인 정체성은 한・중・일의 개별성이 존중되고 상호 문화 적 특수성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뒤섞임의 문화
와 ‘잡종’에 대한 포용을 통해서 추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즉
양국 국민과 시민사회간의 밀접한 교류와 접촉을 통한 뒤섞임의 반 복과 문화적 하이브리드 즉, ‘잡종’ 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동아 시아적인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 중국, 일본의 신화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미술, 영 화, 만화, 패션 등의 분야를 망라하여 세 나라 신화체계의 뒤섞임 을 추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서구의 문화는 딱히 영국적, 프랑스적, 독일적이라는 국적과 민족의 구별 없이 서구의 신화, 역 사, 예술, 음식문화 등으로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듯이,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도 뒤섞임 속에서 함께 가치와 규범을 공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 즉 한류(韓流)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류는 한・
중・일 세 나라 혹은 그 이상의 뒤섞임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추구
해 나가는 것이면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체의 형성을 향한 열린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통한 ‘잡종’과 뒤 섞임의 문화는 분명 창의적인 발상이며 동아시아 공동의 세계관과 인식 공동체 그리고 삶의 방식 자체에 침투하면서 그 영향력을 더 욱 넓고 깊게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동아시아 사람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분야에서 조화로운 연 대성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