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책과 진묘문에 나타난 한대인의 내세관은 이들 자료의 시대적·
지역적 차이만큼이나 다양성이 발견된다. 전자가 주로 호북과 호남을 중심으로 한 장강유역의 전한대 묘장에서 발굴되는 반면, 후자는 관중 과 낙양을 중심으로 한 후한대 묘장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고지책에 반영된 내세관은 ‘事死如事生’의 관념에 입각하여 來世 역시 現世의 연장성산에 설정되어 있고, 그 이면에는 문서행정을 매개로 한 중앙집권적 지배구조가 명계의 설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명계의 구조는 현세의 그것을 닮아 있다. 死者는 문서행정을 통해 현세로부터 가지고온 戶籍을 冥界의 縣官에 신고하여 生前과 동일하게 명계의 호 적에 등재되어 요역과 부세를 부담하는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현세의 신분과 경제적 조건을 내세에까지 연장하려는 열망을 고지책에 담고 있다.115)
진묘문에 반영된 지하세계 역시 현세의 지배구조와 유사하게 짜여 있어서, 사자는 명계의 死籍에 등록될 뿐 아니라, 父老와 伍長의 통제 를 받으며 蒿里에서 생활하는 한편, 賦稅를 납부해야 하는 존재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현세와 동일한 문서행정이 작동되고 있었다. 이는 진 묘문에 반영된 내세관이 전후한대에 걸쳐 별반 차이 없이 유지되었음 을 시사한다. 그러나 진묘문에 반영된 내세관은 고지책의 그것에 비해 훨씬 巫術的 혹은 道敎的 색채로 채워져 있다. 天帝를 정점으로 명계 의 地官과 墓域의 地神으로 구성된 지하세계는 고지책에 비해 훨씬 다 양하고 복잡한 층위의 神들로 조직화되어 있음은 물론 生死異路의 관 념에 기초하여 死者를 위한 解謫과 解注 및 후손의 福樂을 기원하는 형태는 후대 도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이상과 같은 내세관은 주로 후한대 關洛지 역의 묘장에서 발굴된 ‘전형적’인 진묘문에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다 양한 형태와 내용의 진묘문에 반영된 내세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들 지역 이외의 현 감숙·안휘·강소·산서·산동 등지에서 발굴된 진묘문 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아울러 진묘문의 주된 내용인 生死異路의 115) 尹在碩, 중국 고대 死者의 書와 漢代人의 來世觀 -告地策을 중심으로 ,
pp.82-83 참조.
관념과 解謫과 解注에 대한 인식의 來源을 후대 도교의 내세관에서 찾 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한 이전 시대로 소급하여 찾아볼 필요도 있 는 바, 이것이 본고의 주된 문제의식이다.
진묘문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生死異路의 관념은 기본적으로 사자에 대한 부정 혹은 터부(taboo)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睡虎地秦簡日書와 放馬灘秦簡日書는 물론 전한대의 孔家坡漢簡日書에 의하면, 전국시대 이래 고대 중국인들은 조상신을 비롯한 제반 귀신이 후손에게 질병 또는 죽음을 유발하는 해코지를 부리는 존재로 인식하 였는 바, 이것이 생자와 사자의 철저한 분리를 강조하는 生死異路의 관념을 낳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입각하여 사자의 해코지를 피하는 방법으로서 邪氣 혹은 邪鬼로부터 사자의 영혼을 鎭安하고 사자의 죄 과를 면해주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후한대에 유행한 진묘문의 작성과 묘장에 五石과 鉛人 및 金錢을 부장하는 방법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한편, 현 감숙·안휘·강소·산서·산동 등지에서 발굴된 진묘문은 그것 의 書寫構造와 내용 및 이것을 기록한 재료 등의 측면에서 關洛지역에 서 발굴된 전형적 진묘문과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감숙성 武威 에서 발굴된 □寧의 진묘문과 강소성의 盱眙와 高郵에서 발굴된 鎭墓 文木牘 및 출처 불명의 徐寧簡은 生死異路의 관념을 포함하면서도 關 洛지역의 그것과 매우 이질적인 서사구조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특 히 이들 진묘문에 등장하는 神格은 關洛지역의 그것과 달리 각 지역 고유의 鬼名으로 구성되어 있고, 진묘문의 재료 역시 陶甁 또는 陶罐 위주의 關洛지역과 달리 木牘과 石物·織物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외에 關洛지역의 전형적 진묘문과 이질적인 유형으로서 五方鎭墓 文을 들 수 있다. 이것은 五行相剋說에 기초하여 五神과 五石의 힘을 빌려 五方의 邪氣 또는 惡鬼를 진압하고자 한 것으로서, 西安과 三門 峽은 물론이고 안휘의 壽州와 산동의 莒縣 등에서도 발굴되었다. 이는 후한대 오행설이 전형적 진묘문과 또 다른 유형의 진묘문의 작성에 영 향을 미친 결과일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진묘문 중 가장 이른 것은 후한 明帝 永平3년(60)
의 것이고, 진묘문이 가장 유행한 시기는 후한 후기로서 초기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묘문과 동일하게 사자의 영혼을 鎭安하는 喪葬行爲는 이미 전한대부터 유행해온 것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武威의 전한 말기 묘장에서 발굴된 木劍人俑·木 人俑·木羊 등은 邪氣로부터 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喪葬器物로서, 이는 전한 말기에 이미 후한대 진묘문과 같은 취지의 喪葬行爲가 유행했음 을 보여준다. 더욱이 강소성 盱眙에서 발굴된 鎭墓文木牘은 전한 중후 기에서 新莽시기 사이의 묘장에 부장된 것인데, 이는 향후 묘장의 발 굴에서 진묘문을 부장하는 상장의식의 유행 시점이 전한대로 소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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