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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Dalam dokumen 秦漢時代의 女性의 地位 (Halaman 32-41)

이상에서 설명한대로 필자는 秦漢時代의 女性의 地位가 특히 唐代 와 비교하여 특별히 높았다고 보지 않았다.

한편, 秦漢時代 이외의 다른 시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규정으로는 沒收制度와 刑罰의 적용의 性差를 거론할 수 있다.115) 刑罰의 적용의 性差는 주로 肉刑適用에 있어서 그 차이가 분명히 나타는데,

二年律 令

具律 에 그 전반적인 원칙이 서술되어 있다.

죄를 범해서 黥에 해당될 때, 앞서 黥刑을 받은 자는 劓로 하고, 앞서 劓되었던 자는 斬左趾로 하고, 斬左趾로 되었던 자는 斬右趾로 하고, 斬 右趾로 되었던 자는 腐에 처한다. 여자로 磔 혹은 腰斬에 해당하는 자는 棄市에 처한다. 斬城旦에 해당하는 자는 黥舂으로하고, 贖斬에 해당하는 자는 贖黥으로 하고, 耐에 해당하는 자는 贖耐로 한다.116)

상기의 규정은 이미 肉刑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더욱 肉刑을 추가 하는 경우의 사례인데, 남자는 가중으로 처벌되는데 비해 여자는 경감 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117) 여성에 대한 肉刑의 감형 규정에 의하면, 115) 堀毅, 秦漢寬刑攷 (秦漢法制史論攷, 法律出版社, 1988); 翟麥玲․張榮芳, 論秦漢法律的性別特徵 (秦文化論叢, 三秦出版社, 2005); 藤井律之, 罪の 加減 と性差 (冨谷至 編, 江陵張家山二四七号墓出土漢律令の研究―論考篇―

, 朋友書店, 2006); 宮宅潔, 秦漢刑罰體系形成史への一試論―腐刑と戍邊刑―

(東洋史硏究60-3, 2007); 水間大輔, 秦律․漢律における女子の犯罪に對する 處罰 (福井重雅先生古稀․退職記念論集 古代東アジアの社會と文化, 汲古書 院, 2007); 池田雄一, 呂后二年律令に見える妻の地位 (中國古代の律令と社 , 汲古書院, 2008).

116) “有罪當黥, 故黥者劓之, 故劓者斬左止(趾), 斬左止(趾)者斬右止(趾), 斬右止 (趾)者府(腐)之. 女子當磔若要(腰)斬者, 棄市. 當斬爲城旦者黥爲舂, 當贖斬者贖 黥,(88) 當耐者贖耐”(二年律令88~89簡, p.21).

117) “斬城旦에 해당하는 자는 黥舂으로 하고”의 부분은 被刑者가 여성인 경우의

여성에게는 死刑․肉刑 모두 斬刑이 없었던 것이 된다.118)

肉刑適用의 性差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언뜻 秦~漢 初의 女性의 地位에 대한 이해와도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 다. 女性에 대한 형벌 적용이 남자보다 유리하게 적용된 것과 관련하 여 堀毅는 유가적 寬刑主義와 인구증식의 목적이 이 속에 내포되어 있 었다고 한다.119) 이에 대하여 水間大輔는 여성이 구류됨으로써 가족관 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과 적어도 秦․漢에 있어서 여자가 죄 를 범하는 것은 남자에 비하여 매우 적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 다.120) 女子에 대해 重한 刑罰을 설치해서 범죄의 일반예방을 강화하 는데 대한 실익이 남자에 비하여 적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宮宅 潔은 女性이 약자이고 따라서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신이 秦漢의 형벌제도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형벌의 일부가 남성만 을 성원으로 하는 집단 내에서 발전했다고 한다면, 특정한 형에 대해 서는 그것은 여성에게는 부과하지 않는다고 하는 정신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121) 여성에 대한 육형적용의 감면과 관련하여 이들 諸見解는

특별규정이므로 ‘斬城旦’이라는 표현보다는 ‘斬爲舂’으로 해야 하지만, ‘斬爲舂’

이라는 刑名이 없기 때문에 ‘斬城旦’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專修大學

二年律令硏究會, 張家山漢簡二年律令譯注(三) -具律- , p.137).

118) 다만, 肉刑 가운데, 宮刑은 여성에 대한 형벌의 경감의 의미가 없었던 것 같 다. 二年律令이 발표되기 전까지, 肉刑 가운데, 宮刑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周禮尙書등에 붙어 있는 漢代의 주석이 최초의 것이라 할 수 있는 데, 대체로 여성에게는 유폐한다는 의미로 되어 있다. “宮은, 男性은 그곳의 성 기를 자르고, 女性은 궁중에 가둔다. 오늘날의 환관이나 궁녀와 같다”(周禮 秋官․死刑, 鄭玄注). “宮이란 淫刑이다. 남자는 性器를 자르고 婦人은 幽閉한 다”(尙書呂刑). “남녀가 義로써 사귀지 아니한 경우 그 刑은 宮이다”(周禮 注所引伏生書傳). 二年律令에는, “强與人奸者, 府(腐)以爲宮隸臣”(二年律令, 193簡) 라 하여 ‘宮隸臣’이 나오는데, ‘宮隸妾’은 나오지 않는다. 이 규정에 의 하면, 宮刑은 강간죄에 적용되며, 이 강간죄는 여성이 아닌 남성만을 한정해서 설정된 것이 틀림없다. 宮刑의로의 처벌은 신체 특성상으로도 또한, 그 죄목이 강간죄에 적용된 것이었으므로 강간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여성에게는 적용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寬刑과는 거리가 있다.

119) 堀毅, 앞의 글, p.210.

120) 水間大輔, 앞의 글, p.116.

모두 타당한 일면을 지적하고 있지만,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관노비를 민간에 매각하는 관노비매각 제도와 관련이 있지 않았나 하는 관점에 서 이를 살펴보고 싶다.

里耶秦簡

에는 秦始皇33년 2월 초 하루날, 賣 却한 徒隸의 數를 보고하라는 내용이 나오는데.122) 李學勤은 秦에서는 每月 朔日 사들인 徒隸의 수량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 다.123) 그러면 국가에서 우선적으로 매각을 추진한 형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도였을까? 앞서 필자는 천하의 女子의 刑徒를 집으로 돌려보내 는 대신에 顧山錢을 납부하는 제도를 살펴보았고,

睡虎地秦簡

에는 장정으로 여성형도를 贖免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매각의 1순위는 남성형도가 아닌 여성형도였다 고 생각한다. 앞서 필자는 여성형도의 관리와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여 그 노동의 효율성은 낮았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노동력 의 질이 떨어지는 여자형도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신에 顧山錢을 납 부하게 하거나 혹은 장정으로 贖免하거나 백성에게 빌려주거나 민간에 노예로 매각하였다고 생각되는데, 당연히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은 肉 刑을 받은 여성형도는 상품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어디까지나 추정이긴 하지만, 여성에게 적용된 肉刑輕減의 원칙은 여성 존중과는 관계없이 매각해야할 대상인 여성형도의 상품성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 며, 노동의 효율이 낮은 여성형도의 매각은 국가재정에도 도움이 되었 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국가의 효율적인 노동력의 운영에 도움이 되 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漢文帝 元年에는 ‘收’제도가 폐지되고 漢文帝 13년에 肉刑이 폐지된다. 肉刑의 폐지는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었던 刑罰이 상당 부분 해소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肉刑의 차별적 적용이

121) 宮宅潔, 앞의 글, p.392.

122) “[8]154 正: 卅三年二月壬寅朔[朔]日, 遷陵守丞都敢言之: 令曰: 恒以朔日上所 買徒隸數. ●問之, 毋當令者. 敢言之.”(湖南省文物考古硏究所․湘西土家族苗族 自治州文物處, 湘西里耶秦代簡牘選釋 , 中國歷史文物2003-1, p.12).

123) 李學勤, 初讀里耶秦簡 (文物2003-1), p.78.

여성에 대한 보호의식이나 여성지위의 높음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듯이 肉刑 폐지의 목적도 남성에게는 엄격하고 여성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었 던 형벌의 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肉 刑의 폐지와 그에 따른 형벌적용의 성차의 해소는 여성지위의 변화와 관련하여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없지만, 沒收制度의 폐지는 일정 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죄를 지었는데, 妻가 먼저 고발하 면, 收하지 않는다. 妻가 시집올 때 데려온 노비, 衣器는 沒收하는가, 하지 않는가? 沒收하지 않는다.”124)라 하는 몰수제도의 규정에서는 妻 가 夫를 고발하는 것이 인정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妻가 夫를 고 발하는 것이 인정되는 것은 妻와 夫가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 있기 때 문이 아니고 ‘收’라는 제도에 의해 고발이 강제되었기 때문이다.125) 妻 가 夫의 범죄를 고발하지 않으면 夫의 범죄에 따라서는 자신이 官婢로 전락할 수 있으므로 미리 고발하여 자신의 ‘收’를 면제받도록 하고 더 욱 妻가 시집올 때 데려온 노비, 衣器도 제공하도록 하여 더욱 고발을 장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秦에서는 民을 什伍로 편성하 는 제도가 있었다. 伍人은 범행을 고발하는 것에 의해서 連坐의 적용 을 문자 그대로 피할 수 있었다.126) 妻가 夫의 범죄를 고발하는 것은 里伍 連坐制度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고, 모든 사람과 사람과 의 관계를 이해관계로만 파악하는 韓非의 人性觀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127) 沒收制度의 폐지는 妻가 夫의 범죄를 고발함으로써 ‘收’를

124) “‘夫有罪, 妻先告, 不收.’ 妻媵臣妾, 衣器當收不當? 不當收”(睡虎地秦墓竹簡, p.224).

125) 적어도 戰國時代 후기 이후의 秦 및 漢代에는 鄰保 組織으로서의 什은 존재 하지 않았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水間大輔, 秦律․漢律における女子の犯罪 に對する處罰 , 福井重雅先生古稀․退職記念論集 古代東アジアの社會と文化, 汲古書院, 2007, p.115).

126) 水間大輔, 戰國秦漢期の伍連坐制による民衆支配 (中國出土資料硏究, 中 國出土資料學會, 2001), p.23.

127) 이상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李銳․黃口斌, 對資本原始積累的解析 (理論月 2002년 제2기); 王健, 法家事功思想初探―以商君書韓非子爲中心 (史學月刊2001년 제6기); 坂本賴知, 韓非子における 知 の檢討 (東海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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