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자신을 제외한 約數의 총합이 자신과 같아지는 양의 자연수, 예를 들면 6=1+2+3.
66) 물론 이러한 결함이 數理精蘊의 편자들이 算法原本의 수학적 내용에 대 해 몰이해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사실상 滿漢文 算法原本은 어느 것도 내용적으로 소소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러한 오류들은 數理 精蘊의 편자들에 의해 거의 대부분 삭제되거나 訂正되었다.
청대 전기의 西學 수용은 명청시기 서학수용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지닌다. 우선 曆算學을 중심으로 한 서양과학서들이 라틴어에서 漢文 으로 지식인들에 의해 번역된 명말과는 달리, 프랑스어 등 제유럽어에 서 만주어로 번역된 후에 漢文으로 최종적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표준 적이었다.67) 이는 만주어가 청제국의 공식 언어였을 뿐만 아니라 현실 적으로도 청초의 旗人들이 한어에 능숙하지 못하였고, 또한 楊光先 曆 獄과 三藩의 亂을 거치면서 강희제가 한인들을 신뢰하지 않은 탓에 한 인에 대한 서학통제정책의 일환으로 만주어가 이용된 측면과 선교사의 입장에서도 漢語보다 만주어가 상대적으로 쉽게 습득할 수 있었고 보 다 정확한 번역이 가능했다는 언어적 측면이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결 국 명말과 달리 청대 전기의 경우 궁정을 배경으로 만주족 황제의 후 원 하에서 서학이 수용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최종적으로 서학서가 漢文으로 번역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중간 단계의 滿文 西學書의 존재 를 무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滿文 算法原本은 이런 의미에서 청 대 전기의 서학수용의 하나의 대표적 실례로서 滿文 幾何原本과 함 께 중요한 지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만문 算法原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다 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유클리드의 原論이 갖는 공리계적 연역체계의 특성이 萬曆 幾何原本에 비해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이 점은 康熙帝 시기에 수용된 서양수학이 갖는 과도기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공리계의 특성인 논리적 선후관 계가 잘 투영되어 있고 일부 번역상의 오류, 특히 개념의 내포와 외연 의 혼동이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였지만 정의와 명제, 알고리즘에 관한 형식적 특징을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다.
한편 算法原本이 번역된 배경으로 ‘幾何’라는 용어가 갖는 개념의 67) 과학서와는 달리 신학관련 서적은 유럽어에서 漢文으로, 漢文에서 다시 滿洲 語로 번역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차이는 西學과 西敎에 대한 淸朝의 관심의 편차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내포가 명말에서 청초에 이르는 과정에서 변화되었음을 살펴보았다.
‘幾何’는 원래 수학 전반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으나 청초에는 단지 기하 학을 의미하는 용어로 그 개념이 축소되었고, 이 점은 幾何原本이 재번역된 사정과 더불어 왜 算法原本의 번역이 필요하였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滿文 算法原本이 한문본을 거쳐 數理精蘊 所收의 算法 原本으로 변형되는 과정은 적어도 이러한 지식의 전달경로가 변화하였 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공리계적 연역체계의 논리성은 해체되었고 논리적 선후관계는 무시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 면 數理精蘊의 편자들은 선교사들의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유클리 드 原論이 갖는 공리계=연역논리의 특성에 대해 그다지 유의하지도 중시하지도 않았다. 이는 乾嘉시대에 나타난 서학에서 전통수학으로의 回歸가 이 시기에 그 단초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西學史 연구에서 滿文 사료를 읽어야 하는 필요성은 바로 이 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滿文 사료에 대한 분석 없이 청대 전기의 서학수용에서 보여준 이러한 지적 ‘變奏’에 대해 그 원인을 명확하게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 에 가깝기 때문이다.
(日文抄錄)
満文 算法原本 とユークリッド初等整数論の東伝
安 大 玉
中国の伝統的な数理観とは異質的なユークリッドの原論(Element a)の演繹的ないし公理系的な思惟体系が中国に初めて伝わったのは、周 知のごとく、明末に来華したイエズス会宣教師マテオ・リッチ(Matteo Ricci, 漢名利瑪竇)が徐光啓とともにクラビウスの原論注解の前6巻 を漢訳し刊行した幾何原本を通じてである。
だが、清初康熙帝の時代にもユークリッドの原論が再び翻訳され、
幾何原本と算法原本との名で刊行されたことはあまり知られていな い。ル イ 1 4 世 が 派 遣 し た、い わ ゆ る 王 の 数 学 者 ( l e s mathématiciens du Roi)であるフランス人イエズス会宣教師ブーヴェ
(Joachim Bouvet, 漢名白晋)とジェルビヨン(J.-François Gerbillon, 漢名張誠)によって翻訳されたと思われるそれらの数学書は、万暦幾何 原本がラテン語から漢訳されたのに対し、フランス語底本から、まず満 洲語に翻訳された後に最終的に漢訳された。
本稿では、日本東洋文庫所蔵本満文算法原本(Suwan fa yuwan ben bithe)を中心として、ユークリッド初等整数論が中国に初めて伝 わった歴史的な経緯を明らかにし、かかる満文算法原本と漢文算法原 本、そして数理精蘊の該当部分の内容分析を通じて、その受容におけ る知的 変奏 を浮き彫りにすることによって、清代西学受容史の観点か ら満文科学書の存在意義を探るとともに、東アジアの伝統的思惟体系と ヨーロッパの公理系ないし演繹的思惟体系との歴史的出会いの一側面を 検討した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