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지원 권주현(통일연구원 연구원)
Ⅱ. 기존 발전모델 검토
및 새로운 모델 구상
국
가의 발전패러다임은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후 지속적으로 진화해왔으며 모든 주권국가가 자국의 경제사회발전을 위하여 핵심 이데올
로기로 사용하여 왔다. 인류가 ‘발전(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국 가의 전략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역사적 배경은 인류가 사회적 공동체 를 구성하고 공동체의 성장을 도모할 때부터 발전과 유사한논의를
모색하거나 공동체에 적절하게 대안적 개념을 창안하는 시도에서 찾 을 수 있다. 역사적 시기마다 사회발전 및 경제성장에 관한 논의와 패 러다임이 국가 또는 국가와 유사한 집단공동체에서 형성되고, 다른 패 러다임 간의 경쟁 또는 융합을 통해 중핵적인 발전패러다임이 한 시대 의 주류 발전이론으로 인정받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지 속적으로 이루어졌다.
5)19세기부터 만연해 온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경영으로 글로벌 남반구 영역은 주변부(periphery)로 전락하였다. 중심부 (core)는 주변부 국가로부터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발전패러다 임을 자국의 산업화 과정과 접목하여 보편적 방식의 발전전략으로 확장시켰으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러한 식민지경영은 다양한 방 식으로 그
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미국과 서유럽을 위시한 자 유주의 진영은 이른바 근대화(modernization)라는 이름으로 자유 주의 시장경제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라는 정치발전을 쌍두마차로
국가발전을 규정지었고,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은 국가 중심의 집단소유인 사회주의 발전모델을 각 진영에 속해 있는 국가들에게
5)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Chicago,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국가발전의 해법으로 제시하였다.
근대화 발전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흥독립국과 제3
세계에 수출지향(export-oriented)과 수 입대체(import-substitution) 산업
화 전략을 국가발전 해법으로 제시하고, 넉시(Ragna Nurkse) 등의균
형성장론(Balanced Growth Theory)과 허쉬만(Albert Hirschman) 의 불균형성장론
(Unbalanced Growth Theory)이 각각 제3세계의 경제
발전 해법으로 제시되면서 국가의 발전전략으로 모든 국가에게 적용될 수 있는 공통의 궤적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정점에 달하게 된다.6)후발주자인 개발도상국이 서구 선진국의 발전경로를 답습하면 언
젠가 유사한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선형적(linear) 관
계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학습의 기회가 마치 개발도상국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인 것처럼 포장하여 식민지 시대에 서구 선진국이 착취 한 글로벌 남반구의 경제발전 기회에 대한 책임 논의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이론도 이러한근대화론과 궤를 같이 한다.
7)한
편, 미국 중심의 제1세계와 소련 중 심의 제2세계 발전모델에 대 항
하여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제시된 197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중심의
제3세계의 발전모델인종속이론(Dependency Theory) 및 신경제질
서(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이하 NIEO)가 2000년대 에 들어와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이라는 방식으로 재 현된다.8) 제국주의가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심부의 주변부 착취
6) Ragna Nurkse, Problems of Capital Formation in Underdeveloped Countries (Oxfor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1); Albert Hirschman, The Strategy of Economic Development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8);
Walt Rostow, The Stages of Economic Growth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0).
7) Alexander Gerschenkron, Economic Backwardness in Historical Perspective (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62).
8) Jean Comaroff and John L. Comaroff, Theory from the South: Or, How Euro-
관계는 자유주의
국제경제라는 새로운 세계체제(world-systems)로
대체되었고 반주변부(semi-periphery)라는 중간단계의 국가군이 가
미되면서 더욱 안정된 세계체제를 제도화했다. 그리고 각 영역에 속한 국가는 그 경제 위치에 맞는 발전패러다임을 국가발전 전략으로 활용
하여 세계체제를 안정화시키는 데 강요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9)1980년대에 들어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발전전략의 주 요 이데올로기로
부상하고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인하여
G77 중심으로 주창되었던 NIEO가 큰 타격을 입게 되어 대부분의 글 로벌 남반구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국제경제 체제에 합류하였다. 이로써
, 발전패러다임으로서 종속이론은 사망신고와 다름없
는 충격을 입게 되지만, 남반구 국가들끼리 상호 협력하는 남남협력이 대안적 협력방 식으로 또한 SDGs의 이행기제로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10)종속이론의 대두와 비슷한 시기인 1970년대부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동아시아의 개발도상국(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다른 지역의 개발도상국과달리 급격한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루어내고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일정 수준의 민주주의까지 도입하는데 성공하 게 되어 정부주도의 ‘발전국가론(developmental state)’이라는 특 유의 발전모델을 제시한다.11)America Is Evolving Toward Africa (New York, Abingdon: Routledge, 2012).
9) Immanuel Wallerstein, World-Systems Analysis: An Introduction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4).
10) 김태균‧이일청, “반둥 이후: 비동맹주의의 쇠퇴와 남남협력의 정치세력화,” 『국제정치논 총』, 제58권 3호 (2018), pp. 49~99.
11)Meredith Woo-Cumings, The Developmental State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99); Alice H. Amsden, Asia’s Next Giant: South Korea and Late Industrializa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Robert Wade, Governing the Market: Economic Theory and the Role of Government in East Asian Industrialization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발전국가론은 일본의 MITI 사례에서 시작 되었다. 정부주도, 관료제도의 투명성과 높은 수준의 역량, 평등한 교육제도 등의 특징을 갖춘 정부중심 중앙집권 유형의 거버넌스가 점차 한국과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까지 공유되면서 아시아의 기적 이라 불릴 정도의 경제성장을 단기간 내에 성취하게 된다.12) 대부 분의 발전국가론을 채택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동맹체제 또는 영향 하에서 자본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다른 개발도상국과의 외
부환경 조건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발전국가론적 경험을
개발도상국의 발전패러다임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특
히 한국의 발전국가론을 분석할 때 정부와 재벌 간의 ‘공생적 동맹
(symbiotic alliance)’, 기업과 시민사회 등 비정부
행위주체와 정부 간 의 협치 관계, 이를 선도하는 정부의 통치성(governability)을 함 축하는
‘배태된 자율성(embedded autonomy)’ 또는 ‘혼합적 거버넌스(mixed governance)’ 등의 개념이 이
론화되었다. 이는 한 국적 맥락에서 발전이
데올로기가 어떻게 특수한 관계성을 형성 했는가를 암
시한다.13)1970년대 종속이론을 주요 국제무대에서 사라지게 한 새로운 발전이 데
올로기는 영국
의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RonaldReagan) 대통령
이쌍두마차로 정부의 공공지출을 최소화하
12) Chalmers A. Johnson, MITI and the Japanese Miracle: The Growth of Industrial Policy, 1925-1975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82); 구종서, “동아시아 발전모델과 한국,” 『한국정치학회보』, 제30권 2호 (1996), pp. 209~224.
13)Eun Mee Kim, Big Business, Strong State: Collusion and Conflict in South Korean Developments, 1960-1990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7); Peter B. Evans, Embedded Autonomy,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Stein Ringen et al., The Korean State and Social Policy:
How South Korea Lifted Itself from Poverty and Dictatorship to Affluence and Democracy (Oxfor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Taekyoon Kim et al., “Poverty, Inequality and Democracy: ‘Mixed Governance’ and Welfare in South Korea,” Journal of Democracy, vol. 22, no. 3 (2011), pp. 120~134; 박기덕,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구성과 동아시아 지역경제위기의 원인,” 『한국정치학회보』, 제32권 4호 (1999), pp. 373~387.
고 시장주의의 극대화를 발전전략의 전면에 내세운 신자유주의식 발전 모
델에 근거한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
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축약되는 신자유주의형 발전모델은
무
역과 자본의 자유화, 감세와균
형적 재정운영 등의 10대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 과제가 적용되기 어려운 국가는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을 통해 신 자유주의적 처방을 감내해야 되기때문
에,14) 국가의 주권이 침해되고초국
적 자본에 의해 국내 자본이 잠식되는 등 정부와 국가의 역할이 치명
적으로 제한되는 이데올로기가 주류로 제도화된다.2010년대 트럼프(Donald Trump)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택되기
전까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가 다른 국가의 경제발전모델로 이식되었다. 그러나 ‘미국을 다시 위대 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미국 경제정책과 외교정책의 주요
원칙으로 중용되면서 신자유주의적 다자주의에서 자국중심의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더불어 영국 존슨의 브렉
시트(Brexit), 중국 시진핑의 일대일로 등 대국굴기, 일본 아베의 정상국가론 등 스트롱맨(strong man)에 의한 자국 국익의 극대화 를 위한 다자협력의 희생은 1980년대부터굳건히 발전이데올로기
로 자리잡아 온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심각한 수준으로 약화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최근 팬데믹으로창궐하고 있는 코로
나19 신종 감염병으로 인하여 각국가가 자국의 문을 닫고 봉쇄정책
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향후 세계화 흐름은 크게 쇠퇴하고국가 중심의 보호주의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15)14) John Williamson, The Political Economy of Policy Reform (Washington, D.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1994).
15) 김태균, “글로벌 거버넌스의 위기와 포스트-코로나 대응 전략,” 제1차 KIPA 글로벌 행정 포럼, 2020.5.6., <https://www.kipa.re.kr/cmm/fms/FileDown2.do?atchFileId=
이렇듯 국민국가 중심의 보호정책으로 후퇴하는 경향은 UN이 선 도해
온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이하 MDGs)와 SDGs 이행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
후부터 냉전 종료까지 국제 수준에서 정치적으로 어느 그룹에 속하는 가에 따라 특정 방식의 발전모델을 공유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에 반해, 냉전 이후 양극 체제가 붕괴하고 다극 체제가 도입된(또는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형성된) 이후에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발전이데올로기로 강조됨과 동시에, 특정 국가 그룹이 발전이데올로 기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성(representation)이 강한 UN이 중심이 되어 MDGs와 SDGs 같은 인류 공동의 발전목표를 설정하는 경향성이 강해지고 있다.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발전패러다임 발전모델 관련하여 몇 가지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첫째,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의
발전전략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발전전략은 원료, 노동력 등의 투입 을 증가시킴으로써 더 많은 산출을 기대하는 데만 집중하는 발전전 략을 실행했다는 점이다. 사회 내적으로 ‘혁신’을 추동하는 내포적 과정에 주목하지 못하였다. 즉, 사회적‧기술적 시스템이 어떻게 한 사회에 자리 잡고 혁신에 가는가에 대한 문제를 간과하였다. 20세 기 다양한 체제들은 발전과 성장을 목표로 다양한 전략을 실행하였 다. 하지만 발전, 성장, 기술, 혁신 등을 그 자체로서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진영 논리와 발전모델의 이식을 통해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성장주의, 공급중심의 접근, 모델 적용의 정태적접근을 넘어서는 지속가능성, 기술과 사회의 결합 등을 고려한 ‘전
환’의 구체성을 제시하지 못했다.16) 이러한 성찰적 비판에토대를
eeb600be-4f6e-4a24-bc3a-4c70ab682fc3.pdf&fileSn=%EC%A0%9C1%EC%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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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B%9F%BC_%EC%9E%90%EB%A3%8C%EC%A7%91.pdf> (검색일: 2020.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