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키워보겠다는 생각은 분명 생산적인 일이었다. 이를 테면, 나는 화초를 잔뜩 내려놓은 트럭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즐기곤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내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몇 차례 화분을 산 적이 있었지만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 말라 죽 게 하거나, 물을 너무 많이 주어 뿌리가 썩어 내다버려야 하는 일 을 자초해서였다.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았거나, 너무 많이 주었거 나, 둘 다 내 책임인 것만은분명했다. 아내가 출근하면서 화분에 물 좀 주라고 얘기할 때마다 나는 그러마고 약속해 놓= 깜빡 잊기 일쑤였다. 물을 너무 많이 준 것은 반대의 경우였다. 화초가 시들어가는 것을 보다 못한 아내가 물을 주었는데도 나는 그걸 모른 채 그 동안의 게으름을 반성하듯 화초에 물을 듬뿍 주고는 했던 것이다. 그게 다 아내와 나의 라이프 사이클이 다른 때문이 었다. 아내가 출근할 때 나는 자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아내가 자 고 있을 때 나는 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는 출퇴근이 일정 한 공무원이었지만 나는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은, 그러니까 몇 달째 일자리를 찾고 있는 실업자인 동시에 자유인이었다. 자유인 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일자리라는 것은 안달복달한다고 해서 쉽게 나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사실은 직장을 잃어 본 사
람이면 누구나 알 터였다. 실업자에게 있어서 직장이란, 접견하 기 어려운 신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날, 나는 면접을 하게 돼 있 었다. 회사의 사장은 꽤 바쁜 사람이거나 꽤 특이한 성격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는 홍두푭니다, 이렇게 소개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내게 마침 점심시간이 다 돼가니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하 자고 말했다. “아네, 저는괜찮습니다.”
괜찮고 말고 할 일이 뭐 있겠는가. 나는 직장을 구해야 하는 처지 였고. 면접을 당해야 하는 처지였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형식으 로 면접을 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직원을 채용하기 위 한 마지막 면접을 점심을 먹으면서 하겠다는 사장은 드문 법이었 다. 나는 희망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품었다. 점심을 함 께하자는 것은 편하게 얘기하자는 뜻이었고, 또한 밥을 함께 먹 는다는 것은 마음을 함께 나눈다는 것을 뜻했다. 어쩌면 나는, 아 내와 함께 출근할 수 있을 터였고, 그렇게 되면 화초에 물을 주는 문제로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도 있을 터였다.
“특별히 취미 생활을 하는 게 있소?’ 사장은 내게 무슨 음식을 좋 아하느냐는 말 대신 취미 생활을 물으면서 돌솥밥을 시켰다.
“뭘 키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뭐, 화초에 물주기 같은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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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취미군요. 화초를 가꾸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신도 잘 가 꾸지 않겠어요?’ 사장과 나는 면접을 하는 사이가 아니라 취미 생 활을 놓고 한담을 나누는 사이 같았다. 그런 점에서도 사장은 유 별난 사람인 게 분명했다. 그러므로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솔직해지자고 판단했다.
"뭘 키우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잘 키우는 편은 아닙니다. 집사람 과 물주는 사인이 맞지 않아서 툭하면 구박을 받습니다.”
"그래요? 부부 사이라는 게 다 그렇죠. 사인이 잘 맞으면 싸울 일 이 뭐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직원이 많지 않은 대신 섬세 한 사람을 원해요. 예를 들면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듣고서도 뭘 원하는지 알아 맞출 수 있는 정도로 센스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거 죠. 소비자 상담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대방 의 기분이 어떤지 알아야 한다 이겁니다. 화초가 물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식이죠. 자, 식사합시다.”
나는 사장의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자 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목소리가 참 좋다’ 는 얘기를 듣고 소비자 상담 직원을 뽑는다는 회사에 입사 원서를 넣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듣고 강아지가 뭘 원하는지 알아 맞춰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 어려운 주문이었 다. 나는 강아지를 키워본 적은 없었다.
“홍두표씨는 목소리가 참 좋군요. 대학 전공도 심리학과를 나왔 으니 우리 일에 적임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식 당에 왔을 때 무슨 메뉴를 시킬지 짐작이 되던가요? 이 집은 돌솥 밥과 영양 돌솥밥 두 가지가 주 메뉴란 말예요. 그러니까 확률은 오십 퍼센트인데, 한 번 알아 맞춰 봐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식당이 돌솥밥 전문인 줄 몰랐 습니다.” 나는 여전히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쪽에 주사위를 던지고 싶었고, 그렇게 대답했다. 어떤 대답을 하든 주 사위를 쥐고 있는 쪽은 사장이 었다.
“그랬나요? 하긴 면접을 하는 사람들은 늘 긴장하게 돼 있으니까.
어제 면접한 사람은 영양 돌솥밥을 시킬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대 답하더구만. 사장이라서 비싼 것을 시킬 거라고 짐작했다는 거 죠?’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어제 면접한 사람은 적어도 사장이 이끈 식당이 돌솥밥 전문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할 수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메뉴판을 주의 깊게 보았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면접에서 낙방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 다. 난감했다. 면접을 겸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장과 헤어져 돌 아서는 기분은 심란했다. 이번에도 취직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 는 화초에 물을 주는 문제를 놓고 아내와 갈등을 빚을 게 분명했 다.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런 고민을 해가며 지하철 계 단을 내려갈 때였다.
“오늘 일 잘됐나 알고 싶어서… 아, 아침에 화초에 물줬어요?’
나는 면접 시간에 맞춰 허둥대느라고 물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지만 시치미를 떼고 ‘잘 주고 나왔다’ 고 대답했다.
“그런데 오늘 면접한 회사 사장 얘기가 상담을 잘 하려면 강아지 가 짖는 이유를 알 정도로 상대방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한다더라 구.” 나는 전화를 끊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화분에 물을 주 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지하철 계단을 조금 더 내려 가자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곳을 향해 다 가갔고,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 사이에 강아지 장수가 앉아 있 는 것을 발견했다. 작은 상자에 갖가지 종류의 강아지들이 들어 있었다. 사장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러나 녀석들은 서로 물고 뒹굴 뿐 짖고 있는 강아지는 한 마리도 없었다. 묘한 느낌이었는 데, 그것은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직감으로 이어졌다.
“사장님, 저 조금 전 면접한 홍두푭니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 데 마침 강아지를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아지를 한 마리 살까 생각중입니다.” “강아지를 사신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강아지가 짖을 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연구해 보려고 말입니다. 상담실에 근무하려면 그런 심리까지 알 아야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좀 후련한 기분이 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 를 비집고 들어갔고, 강아지 장수를 향해 잘 짖는 강아지 한 마리 를달라고말했다.
“잘 짖는 강아지는 이웃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강아지 장수는 멀뚱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면서 상자 속의 강아 지들을 쥐어박듯이 건드려 보기 시작했다.m
글 임동헌(소설가 • 한양여대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세계일보 문화부,정치부기 자〈출판저널〉주간역임 저서 :「편지를 읽는 시간」「민통선 사람들」「행복한 이방안」「섬강에 그대가 있다」「숨쉬는 사랑」「가족식사」「풍경」
일러스트'박공우
2005 November 43
문화와 여행 세계의 창
이천년 잠에서 깨어난 고도 (古都)
폼 페서
로마에서 나폴리를 향하는 길은 가을볕이었지만 따가웠다. 나폴리 출신의 세기적 여우 쏘피아 로렌의「해바라기」를 연상케 하는 A1 고속도로는 ‘태양 의 길’이란 별칭답게 햇살을 듬뿍 받으며 북에서 남으로 반도를 따라 시원 스레 뻗어 있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고백하였던 괴테의 200여년 전 여행 기가 아니라도, 이탈리아 여행은 늘 역사와 고전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 럼 경이롭다. 1년 6개월이나 이탈리아에 머물며 사람과 예술 작품과 자연에 파고들던 괴테에 비하면 그야말로 달리는 말 위에서 산보기인 셈이지만, 차 창 밖을 내어다 보며, 귀에 익은「먼 산타루치아」와「돌아오라 솔렌트로」,
「카프리섬」을 듣노라니,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뜻 모르고 학창시절에 따라 부르던「후니쿨리 후니쿨라」도 화산을 뿜어내어 폼페이를 묻어버린 활화산 베수비오의 둥반열차를 만듈며 노동자들이 부르 던 노동가로 ‘영차 영차’와 같은 후렴어라고 한다.
“살아있는 고대 로마인들의 모습을 보려면, 폼페이로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약 2,000년 전인 서기 79년 8월 24일 오후 1시경, 갑자기 폼페이는 칠흑 같이 어두워졌다고 안소니 퀸같이 건장한 안내원이 유머를 섞어가며 설명 을 계속한다.
크레타문명의 몰락처럼 문명의 성쇠에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자연 재해 가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Im가 넘는 화산재에 도
시가 고스란히 묻혀 사라진 것은 역사에 드문 일이리라. 근방에 은둔해 있 던 네로황제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세네카도 인간이 의지해야 할 대지의 흔 들림에 큰 충격을 받고 많은 사람들의 공포를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목욕과 포도주와 비너스가 우리를 타락시키고 있다’고 경고하고 폼페이가 있는 캄파니아 지방으로 은둔하였던 세네카로서는 전체 로마인에 대한 경 고로서 환락의 도시 폼페이에 끔찍한 벌을 내린 것은 아닌지 두려웠을 것이 다. 나폴리만에 정박하던 로마함대에서 근무하던 한 병사도 편지를 보내어 10시간이나 계속된 화산의 폭발과 바다가 뒤집힌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알 리고 있다.
기억 속에 사라져 간 폐허의 도시가 다시 세인의 관심 속에 발굴되기 시작 한 것은 18세기가 되어서라고 한다. 1860년 역사학자 쥬세페 피오넬리가 발굴책임자로 임명된 이후에야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그는 매일 매 일의 일지를 기록해가며, 집집마다 고유번호를 매겨서 구획화하고, 죽은 사 람들의 화산재 공간에 석고를 넣어 본을 뜨는 방법을 고안하는 한편, 금석 학자, 고고학자들을 참여시켜 체계적으로 발굴과 복원작업을 실시하였다.
아직도 30%정도는 발굴 되지 않은 상태라지만,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덕 분에 2,000년 전의 삶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모두 그들의 노력 덕분이다. 이제 폼페이는 아름다운 나폴리의 산타루치아항과 카프리 섬, 시칠리아섬으로 이어지는 남이탈리아 여행에서 로마를 찾는 세계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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