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9년 평가
가. 2019년 북한정세 총괄평가
2019년 북한정세는 북미협상 불확실성 속에서 밖으론 대미 배수 진 및 대남 배제전략, 안으로 통치체제 강화와 자력갱생 모드의 강화 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이 취한 태도에서 크게 4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첫째, 대미 협상 프레임의 변화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2월 말 하노 이 북미정상회담이다. 2019년 3월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모색기를 거쳐 4월 당 정치국 확대회의, 제7기 제4차 당 전원회의,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대미 협상전략을 제시했다. 4월 주요 회의와 결정을 통해 북한은 ‘안전보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연말 시한’과 ‘셈 법’ 변화를 요구하는 배수진을 통해 압박모드로 일관했다.
둘째,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급격히 강화된 대남 비난공세 및 배제전략이다. 급격한 자세 전환을 취한 것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무산의 ‘충격’을 흡수하면서 보다 공세적 대응으로 대남 전략을 바꾼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북미협상 불확실성과 장기화에 대응한 대내 환경정비다. 그 일환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유일지도체제 및 우상화 강화, 엘리트 교 체, 대내 결속 위한 선전·교양학습 강화 등을 취했다.
넷째, 대북제재 상황에서 무역 적자구조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 체적인 경제동향 및 주민 생활에서 나타난 안정 추세의 유지다. 다 만, 경기 반등의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예년 수준의 방어적 경제운
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2019년 북한정세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분기점으로 일 정한 변동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노이 회담의 내상, 북미협상의 불확실성에 대응한 전략 차원에서 밖으로는 강경하지만 절박한 총력 전의 형태로, 안으로는 보수적인 결속담론 및 유일지도체제의 강화 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나. 2019년 북한정세 쟁점분야별 평가
<대외분야: 대미 안전보장 요구의 전면화와 북미 대치 장기화 모드로의 전환>
2019년 북한의 대미전략 특징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기점으 로 ‘안전보장’(대북적대시정책 철회)을 협상프레임으로 전면화한 것 이다. 북한의 협상프레임은 ‘종전선언’ → ‘대북재제 해제’ → ‘안전 보장’으로 변화돼 왔다.
<그림 Ⅳ-1> 북한의 대미 협상프레임 변화
출처: 필자 작성
세 차례에 걸친 북미협상 변곡점이 있었다. 첫 번째 변곡점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다. 큰 틀에서 ‘비핵화 대 안전보장 제공’의 교환구도 아래 종전선언의 조속한 이행 약속, 4개항의 합의다. 두 번째 변곡점은 2018년 9월 29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이다. 이 연설을 통해 북한은 2018년 7월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이후 요구해 왔던 종전선언에 대해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세 번째 변곡점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다. 이 회담 이후 북한은 대북제 재를 더 이상 구걸하지 않고 ‘안전보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취한다. 세 차례 변곡점을 통해 북미는 협상구도와 접근방법에서 큰 인식차를 보여주었고 북한은 이에 대응해 협상프레임을 변화시켜 왔다. 북한은 2019년 12월 31일 마무리된 제7기 제5차 당 중앙위 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대북적대시정책 철회’를 비핵화의 선행 조건 으로 내걸면서 한층 협상의 문턱을 높였다.
<그림 Ⅳ-2> 북미 협상 전개와 북미 행동 조치
출처: 필자 작성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일련의 대미·대남 비난과 요구, 행동과 조치를 통해 새로운 협상전략을 가시화해 왔다.
첫째, 향후 미국과의 대치가 장기화 될 것으로 보고 제재에 맞선 자력갱생·내부결속 모드를 강화했다. 자력갱생·자력부강, 백두산대 학 등 제재에 굴하지 않고 버티는 혁명전통의 강조가 하노이 이후 늘어났고 10월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 군마 등정 이후 강화됐다.
둘째, 안전보장 프레임 전면화에 따라 한미연합훈련 중단, 한반도 무기 반입·도입·구입 중단, 여타 대북적대시정책 청산 등 한미동맹 및 남한에 대한 공세적 비난을 강화했다.
셋째, 국방공업의 주체화·현대화 실현, 자위적 국방력 강화 등을 강조하며 5~12월에 걸쳐 신형 단거리미사일, 초대형방사포, 북극 성-3형(SLBM), 동창리 로켓 엔진실험 등 일련의 무기 실험을 진행 했다.
넷째,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연말 시한을 제시하고 미국의 ‘셈법’ 변화와 선행조치 이행을 요구하며,
‘새로운 길’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북한의 안전보장(대북적대시정책 철회) 요구 전면화 배경에는 대 북제재 해제에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미국에 대한 맞대응 카드 성격이 강하다. 대북제재를 더 이상 구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 상 실질적으로 북한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은 대북제재 해제이다.
그러나 그것을 요구할수록 약점으로 인식되는 것을 차단하고 대미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안전보장’을 전면에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안전보장’을 협상 프레임으로 전면화하기 위한 일련의 외 교적, 군사적, 담론적 조치를 취했다. 우선 북·러정상회담(4월), 북·
중정상회담(6월)을 통해 ‘안전보장’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물론 시 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만족할만한 북한 지지와 안전보장 메시지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또 한미연합훈련 및 한국의 무기구입 비난, 그리고 5월 이후 단거리미사일, 초대형방사 포, 북극성-3형 등의 발사실험 등을 통해 한반도에서 자신이 처한 군사적 위협 상황을 환기하는데 주력했다.
북한의 ‘비핵화 vs. 안전보장’ 등가적 교환 강조에 따라 북미협상 진전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2018년 이후 북한이 북미, 남북 정상 간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안전보장’을 비핵화의 상응하는 조치로 인정할 경우, 결국 ‘완전한 비핵화’는 한국에 제공되고 있는 미국의 핵 억제력(핵우산)과 북한의 비핵화를 동시에 이행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 안전보장’(핵우산 제거)이 교환되는 구도에서는 사실상 ‘핵군 축’ 성격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림 Ⅳ-3> 북한의 비핵화 범주와 논리
출처: 필자 작성
그러나 북한의 포괄적인 안전보장 요구는 대미 협상전략 차원에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이 북한의 포괄적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 수용하더라도 미국 내 정치적 프로세스에서 변수가 많다. 협상 전략상 북한은 미국의 대량살상무 기(WMD) 폐기 요구에 대응해 북한식 단계론, 비핵화 속도조절, 비 핵화 범주 등을 관철시키기 위한 카드로 ‘안전보장’을 활용하고 있다 고 볼 수 있다. 이런 접근은 동북아 군비경쟁 구도, 지정학적 환경을 활용하여 자위권 차원의 안전보장이 갖는 정당성을 내세운 협상전략 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남전략 분야: 북미 교착에 따른 북한의 공세적 대남 비난 및 배제전략>
2019년 북한의 대남전략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남한 배제전략 이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냉대와 배제가 시작된 것은 하노이 북미정 상회담 이후 2개월 정도가 지난 4월 말부터다. 4월 제7기 4차 당 전원회의와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 전까지 약 1개월여 시간 동안 북한 내부적으로 하노이의 충격과 내상을 추스르고 향후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대미전략 및 대남전략의 기조를 설정했을 가능성 이 있다. 이런 변화된 기조를 김정은 위원장은 이례적인 최고인민회 의 ‘시정연설’을 통해 발표했다고 할 수 있다.
대남 배제전략의 배경은 우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실패에 대한 남한 책임론이다.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 제5조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 약속과 영변 폐기까지 합의하며 남한의 대미 설득을 기대했 으나 결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데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4.27, 9.19 등 남북 정상 간 합의한 내용의 이행 에 대해 한미공조, 한미워킹그룹 등에 묶여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노이 이후 북한의 대남 공세는 비자주적인 남측, 굴욕적 인 한미동맹, 합의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서 대화만 요구하는 남 측의 이중성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편 남한 배제전략은 협상 프레임을 ‘안전보장’으로 전환하는 과 정에서 의도적으로 구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미연합훈련, 한 국의 무기 도입 및 국방계획 등을 소재로 자신의 자위적 국방력, 재 래식 무기개발, 그리고 안전보장 요구의 정당성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대미협상 카드로 안전보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한국 의 군사적 대미 종속성, 한국의 훈련 및 무기도입이 갖는 위협을 강 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안전보장’을 전면에 내세워 대미 배수진 을 친 상황에서 남북 협력이나 군사의제가 논의되는 것은 대미 협상 력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내부 통치 분야: 북미협상 불안정성에 대응한 대내 통치체제 정비>
2019년 북한은 내부 통치 차원에서 북미협상 교착과 결렬에 따른 대외적 불안정성을 내부적으로 추스르기 위해 대응체계 마련에 주력 했다. 대외적으로 대미 공세 모드로 전환을 하며 ‘셈법’ 변화와 ‘연말 시한’을 둔 대미 배수진, 대남 배제전략 강화 등을 취함에 따라 내부 결속을 다지는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강력한 지도력과 권위를 보 여주는 법적·상징적 작업, 엘리트 인적 교체 가속화, 대주민 교양·선 전 활동 강화 등이 두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