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2012년 4월 최고지도자로 공식 취임했다 . 후계자 내정
부터 최고지도자에 오르기까지 3년이 결렸다. 김정은식 권력체계 구축은 후계자 내정 직후부터 시작되었으나 2012년 최고지도자로
취임할
때까지도 완료되지 않았다. 김정은식 권력 체계가 완성된 시
기는
2016년 5월 7차 당대회로 볼 수 있다. 김정은식 권력 체계 수립
과정에서는 세가지 핵심문제가 제기됐다. 첫째, 국정 조직의 원칙
을
선군에서 선당으로 변경, 둘째, 국정 전반에 걸쳐 세대교체를 단
행
, 셋째, 핵 ‧
미사일 능력 증강이었다.김정은은
새로운 국정전략에 맞추어 국정체계를 꾸리고, 국정과
제
해결에 부합하게 기관 ‧
인물 체계를변화시켜야 했다. 이러한 권
력
개편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 과정은 이른바 공포정치를 수
반했고, 대외 긴장, 대북제재, 코로나19, 그리고 북한에 항시 존재했
던
권력기관들 간의 알력 등의 역경 속에서 진행됐다. 김정은 정권
은
집권 10년 동안 자기 특색의 권력 체계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 성
공적이었다.
이글은
김정은 정권의 국정전략과 연계시켜 , 김정은 집권 10년 동
안의
기관 ‧
인물재편을 검토한다 . 여기서는 개별 국가의 국정전략에
서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한다.
321)개별 국가의 국정전략은 첫째, 대내
외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둘째, 집권 세력의 권세와 이권
을
보장함으로써 집권의 영구화를 보장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개별 국
가의
국정체계는 당면한 정책과제의 해결에 최적화되어야 하는 측면
과
집권 세력의 집권을 영구화해야 하는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
321) Paul Pierson, “Power in Historical Institutionalism,” Orfeo Fioretos, Tulia G.
Falleti, and Adam Sheingate eds., The Oxford Handbook of Historical Institutional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pp. 162~183.
이
두 가지는 상충하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이
조화를 이룬다면, 그 나라와 집권 세력은 번창할 것이다. 그
러나
이 두 가지 측면이 상충한다면, 양자 간의 모순이 생길 것이다.
특히
집권 영속화를 우선시한다면, 그 나라는 중장기적으로 쇠퇴의 길
을
갈 것이다. 김정은 정권에게는 이 두 가지 문제가 모두 어려웠다 .
이글의
2절에서 김정은식 국정전략 확립 과정에서 드러난 엘리트
들의
갈등을 다룬다.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당시 북한 정권 내부
에는 두 개의 국정전략 대안과
그를 둘러싼 경쟁이 존재했다 . 하나
는핵 ‧
미사일 능력 증강 및수령독재 확립을 추구한 김정은식 노선
이었다
. 다른 하나는 친중 개방정책과 내각 중심 집단지도체제 수립
을
지향한 김정일-장성택 노선이었다. 3절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
로
진행된 권력구조 개편을 다룬다. 김정은 정권은 2012년 리영호
총참모장
숙청, 2013년 말 장성택 숙청을 토대로 2014년부터 본격
적으로
권력구조 개편에 나섰다 . 권력구조 개편은 세 가지 원칙으로
진행했다
. 첫째, 선당의 원칙하에 군부 개편, 둘째, 세대교체 단행,
셋째
, 핵 ‧
미사일능력 증강에 부합하게 기관 ‧
인물 체계 재구성이었다
. 4절은 2~3절에서 언급한 과정들과 동시에 진행된 김정은 시대
3대 공안 기관(조직지도부, 총정치국, 국가보위성) 간의 권세 및 이
권
다툼을 분석한다 . 이들 권력기관은 수령에 대한 충성을 구실로 자
신들 권력기관의
권세와 이권을 확장하면서 서로 갈등하고 충돌한
다
. 이러한 갈등은 수령에 의해 조정되기도 하고 이용당하기도 한다.
2. 김정은식 국정전략 확립과 엘리트 갈등 (2012-2013)
김정은은
2011년 12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
다
. 2012년 4월 11일 조선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는 김정은을 조
선노동당
제 1비서로 추대했고, 이틀 뒤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 회
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김정은은 명실상부하
게
최고지도자가 됐다. 아울러 2009~2011년 권력세습 기간은 김정
일
‧
김정은의 이중권력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한편에서 선군시대구세력이
존재하고, 다른 편에서 김정은 시대 신세력이 병존했다 .
김정은
정권은 권력세습 이후 이중권력 상태에서 벗어났다 . 국정 권
력의 균형추는 김정은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변화했다.
적어도
2012~2013년 사이에는 북한에 두 개의 상충하는 전략 노
선이 존재했고, 각자 추진되고 있었다
. 그 하나는 친중 개혁개방 및
대미‧
대남 타협 노선이다. 이 노선은 2009년부터 김정일이 사망하
기
직전까지 추진하던 노선이고,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에는
장성택을
중심으로 추진했다. 이 노선은 장성택이 주장했다고 알려
진
내각 중심 집단지도체제 수립 노선과도 연계된다. 2012~2013년
시기 북한이 보여준
개혁개방 동향은 이러한 노선에 따른 것이다 .
만약 김정일의 ‘유훈’이 있다면, 이노선이 그에 부합한다. 이 노선
은
2009년부터 김정일이 심히 아픈 몸을 이끌면서 인생을 정리하는
행보를 보였던 시기에 직접 관장한 노선이기 때문이다.
이
노선을 추진하려면, 핵심적으로 2 ‧ 29 합의가 성공적으로 관리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2012년 4월
13일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시
험
발사했다. 이는 북한이 사실상 2 ‧ 29 합의 파기를 결정했다는 것
을
보여준다 . 또한 기술적으로 4월 13일 장거리미사일 실험은 4월
13
일 훨씬 이전에 결정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결정을 하는경우 어떠한 연쇄적 악순환(북한 도발 → 국제사회의 대북 비난 및
제재
강화 → 북한의 반발과 이에 대응한 더 큰 도발)이 벌어질 것인
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4
월 13일장거리미사일 실험 결정은
늦어도
3월 중에 내려졌을 것이다. 이는 김정일-장성택 노선에 대
해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린 결정이다.
다른 하나의 노선은
핵․미사일 능력 증강을 주축으로 하는 노선이
다
. 김정은 정권 출범 10년이 지난 현재(2021년 10월)의 시점에서
볼
때, 이 노선이 김정은 시대 정책의 근간을 이뤘다. 이 노선을 채
택한 측은 핵
‧
미사일 능력 증강의 필요성과 성공 가능성을주장했
을것이다. 그들은 2009년 이후 지속된 남북 및 미북 간 고도의 정치
적‧
군사적 갈등에따라 높아진 안보 위협에 대처해야 하고, 조만간
‘국가 핵무력 완성’이 가능할
것이라 주장했을 것이다.322)또한
이 노선 채택을 주장한 측은 이 노선을 택할 경우 다음과 같은
사항이
초래될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즉 김정은 정권이
핵
‧
미사일증강 노선을 채택할 경우, 중국과의 대립 및 대미 ‧
대남대결이
악화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친중 바탕의 개혁
개방
노선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핵 ‧
미사일능력 증강 노선
은
첫째, 대외 대결 및 긴장 강화, 둘째, 경제 고립에 따른 자력갱생
강화
, 셋째, 대외 긴장과 내부 어려움을 통제할 목적의 ‘수령유일영
도
’ 강화, 넷째 , 국가의 개인과 경제에 대한 통제 강화를 정당화하는
322)정보사령부, 2014 북한연보(정보사령부, 2015), pp. 228~229 참조, 재인용: 이 호령‧천명국‧손효종, 김정은시대의 권력엘리트 변화와 특징, (국방연구원, 2020), p. 59. 유사한 분석으로 다음을 참조. 장진성, “장성택, 북 내각 중심제로 바꾸려 했다,” 자유아시아방송, 2014.9.2.,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 gram/c7a5c9c4c131c758-babbb2e4d55c-c774c57cae30/unfinishedstory-0902 2014085120.html> (검색일: 2021.10.4.); “장성택 처형 전말 공개,” 자유아시아 방송, 2014.8.5.,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c7a5c9c4c1 31c758-babbb2e4d55c-c774c57cae30/co-jj-08052014112629.html> (검색일:
2021.10.4.).
이데올로기적
표상으로서의 ‘사회주의 ’
강조로귀결할 수밖에 없다 .
이렇게
본다면, 김정은 체제에서 주류 집단은 2012년 4월 4차 당
대표자회가 열리기 전에 이미 북한이 앞으로 취할 국정전략
노선으
로핵 ‧
미사일 증강 노선을 결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당내
에
장성택이 중심이 되어 아직 김정일-장성택 노선을 지향하는 세
력이 존재했으며, 이 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집권 블록은 핵․미사일 증강 노선을 관철하
기
위한 대내외 정책 조치를 취했다. 김정은 집권 블록은 2 ‧ 29 합의
직후
3월 중 어느 시점에 2 ‧ 29 파기 결정을 내렸을 것이며 ,
323)동시
에
아마도 앞으로 해야 할 조치들에 대한 대강의 시간표를 작성했을
것이다
.
북한은
2012년 4월 11일 4차 당대표자회 이후 핵 ․미사일 능력 증
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취했다 . 즉 4월 13일 장거리미
사일 실험(과
실패), 7월의 핵정책 전면 재검토 결정, 12월 12일 ‘은
하3호’
장거리미사일 실험 성공,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2013년 3~4월 북한의 핵전쟁 위기 조성, 3월 31일 경제 ‧
핵병진노
선의 채택, 4월 1일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할 데
대하여
’라는 법 제정
등이다.
324)이러한
사태 진전은 지배연합의 구성과 국정노선의 성격과 관련
해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2012년 4월
김정은 정권 출범 당시는 지
배연합
구성과 국정노선이 김정은 노선을 견지하는 세력을 주축으
로
하고 김정일-장성택 노선을 추종하는 세력을 소수파 보조 세력
323)아니면 2‧29 합의에 대한 북한의 동의 자체가 처음부터 시간벌기를 위한 조치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324) 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 북한 지식사전,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법령),” <https://www.uniedu.go.kr/uniedu/home/brd/bbsatcl/
nknow/view.do?id=31969&mid=SM00000536&limit=10&eqViewYn=true> (검색일:
2021.10.6.).
으로 구성된 연합 정권이었다. 그렇지만 2012~2013년을 경과하면
서
김정일-장성택 노선 자체와 그 추종 세력의 입지는 구조적으로
좁아졌다
. 결국 2013년 12월 장성택 세력의 축출과 함께 김정일-장
성택
노선은 폐기됐다.
325)김정은은 김정일 -장성택 노선 지지 세력
을
축출한 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노선을 추진했고 , 그에 부합하게
정책과 진용을 꾸렸다.
325)김정일-장성택 노선의 핵심 중의 하나가 친중 개방․개혁노선이라고 한다면, 장성 택 숙청과 함께 친중 개방 노선은 폐기됐다. 그렇지만 내부 개혁 노선의 일부, 예를 들어 농업에서의 포전관리제, 그리고 2014년 5.30 담화에 입각한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 등은 수용됐다. 그렇지만 만약 김정일-장성택식 친중개방 노선과 내부 개혁 노선이 결합했다면, 내부 경제 개혁은 훨씬 심대해야 했을 것이다. 나아가 북 한의 핵/미사일 본격 공세가 시작된 2016년부터 경제정책의 풍향 또한 바뀌었다.
2016년 신년사와 5월 당대회는 자력갱생, 내각의 경제 장악 강화, 당의 동원적 역할 강화 등을 강조했다. 국가의 거시 경제 정책이 이러한 방향이라면, 그 이전 시기에 추진된 일련의 개혁성 조치는 상당 부분 사실상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 은 (이 글의 서술시점인) 2021년 말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2013 년 11월 지정된 지방급 경제개발구 13개를 포함, 김정은 집권 이후 지정된 경제특구 와 경제개발구는 (2016년 12월 31일 시점에서) 무려 21개에 달한다. 통일부 국립통 일교육원, 북한 지식사전, “경제개발구(경제특구),” <https://www.uniedu.go.kr /uniedu/home/brd/bbsatcl/nknow/view.do?id=31932&mid=SM00000536&lim it=10&sc=T&sv=%EA%B2%BD%EC%A0%9C%ED%8A%B9%EA%B5%AC&eqView Yn=true&odr=news&eqDiv=> (검색일: 2021.10.4.). 그렇지만 핵/미사일 증강 노 선이 포기되지 않는 한, 또는 친중/친남 개방 노선과 결합하지 않는 한, 이러한 개 발구 지정은 현실에서 사실상 무의미하다. 2015년 공식화되었던 ‘사회주의기업관 리책임제’도 2016년 자력갱생 및 내각 통제 강화의 정책 도입 이전과 이후에, 그 형식상 내용은 불변이지만, 실제 운영 면에서 상당히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