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북경 고고문화의 계보 및 특징이 북경지구의 특수한 당 대의 환경과도 밀접하게 관련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본 장에서 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북경의 생존 환경,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의 변화가 고고문화의 변천과 특징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 였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북경지구 신석기문화의 특징은 첫째, 계통 이 다른 고고문화의 전면적 교체이다. 원래 연요문화권에 포함되던 북 경지구 고고문화가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두 계통의 고고문화 즉 하 북 중부에 내원을 둔 진강영1기문화 및 동북지역에 연원을 둔 흥륭와 및 조보구문화 계통의 상택유적이 영정하를 경계로 대치하는 상황이 출현한다. 이러한 대치 국면은 하북 중부를 기반으로 형성된 후강1기 문화가 두 계통의 고고문화의 대치 상황을 대신하여 북경 전역을 뒤덮 었으며 이런 후강1기문화는 또다시 동북방에 주된 기원을 둔 소하연 문화 계통의 설산1기문화로 뒤바뀐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흐른 뒤 또 한 차례 교체 국면이 형성되는데 하북 중부 후강2기문화에 주된 기반
을 둔 설산2기문화가 설산1기문화를 대신하여 북경지구 전역을 뒤덮 게 된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북경지구의 고고문화는 본지의 문화로부 터 변화ㆍ발전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유입된 고고문화라는 점이 북경지구 고고문화의 두 번째 특징이 된다. 즉 신석기시대 북경지구의 고고문화는 외래의 문화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북경지구 신석기시대 고고문화는 몇 차례 문화의 공백 혹은 쇠락기를 거친다는 점이다.
한편 북경지구는 반습윤에서 반건조를 향하는 과도 지대에 걸쳐 있 어 기후 변화에 민감하다. 당시 북경지구의 기후 상황에 의하면 빙하 기가 끝나고 기온이 상승하는 충적세에 들어서면서 신석기시대로 진입 하였다. 전기 충적세인 B.C.10000년부터 6500년까지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한랭건조한 면이 남아 있었다. 충적세 중기인 B.C.6500년부터 1000년까지는 가장 온난한 시 기로 특히 B.C.4500년부터 시작하여 B.C.4000년 전후에 이르면 온난 정도가 최고치에 이르게 된다. 다만 이 시기에도 B.C.5000년 전후, B.C.3000년(B.C.3500년부터 개시) 전후, B.C.2000년 전후(B.C.2300 년부터 개시), B.C.1500년 전후로 4차례의 한랭기가 도래하고 이 중 3번째 한랭기는 소빙기라 할 정도로 강력한 강온사건이 전개된 시기 이다. 이외에 후기 충적세는 B.C.10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이른다 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기후에 민감한 지역적 특색을 가진 북경지구는 외래문화의 유입과 일정 시기마다의 전면적 교체 및 고고문화의 공백기 존재라는 독자적인 고고문화의 특징은 북경 고유의 지역적 특징과 환경에서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으며 특히 당시 기후변화상과 맞물려 나타나는 측면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고고문화의 성쇠와 흥망이 기후 변화와 일 정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 장에서는 북경 신석기 시대 고고문화의 변천과 특징 사이에 기후와 환경은 어떤 연관성이 있 는지 살펴보겠다.
우선 기온이 상승하는 충적세시기에 오면 B.C.9500년경부터 북경
초기 신석기 유적인 동호림과 전년 유적이 출현하였다. 출토된 통형관 은 동북방 계통의 대표적인 표지성 기물이기 때문에 북경지구는 이 지 역과 동일 계통의 문화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시기적으 로 훨씬 앞서 출현한 B.C.9500년-7500년경의 동호림과 전년유적이 B.C.6000년 전후의 흥륭와문화(B.C.6000-5000년)와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아직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 간에 일정한 상호 영향의 가능성은 있다. 일반적으로 기후가 온난해지기 시 작하면 남방의 문화가 북방으로 그 세력을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동호림과 전년유적에서 발견된 통형관이 동북방 흥륭와문화에서도 출 현하였다면 B.C.9500년 이후 기온 상승에 따라 동호림, 전년유적을 대표로 하는 일부 세력 집단의 북방으로의 이동 가능성도 일부 예상할 수 있다.95)
대략 B.C.6000년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상택 유적에서도 북경지구 고고문화가 동북방지역의 흥륭와-조보구문화의 통형관과 지자문의 전 통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는데 이처럼 동호림ㆍ전년 ⇒ 흥룽와ㆍ조보구
⇒ 상택 등의 연관성은 기후변화 및 북경의 지리적 특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96) 우선 기후변화의 측면에 서 보면, B.C.6500년 전후부터 시작된 온난습윤한 충적세 중기 기후 의 전개에 따라 각 지역의 신석기시대 고고문화가 형성되었다. 동북방 의 흥륭와문화 역시 이때부터 서서히 발전하지만 B.C.5000년경부터 시작된 한랭기가 도래하면서 흥륭와문화는 조보구문화 (B.C.5000-4500년)로 대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97)
95) 동호림과 전년유적에서는 아직까지 거주지에서 방실이 발견되지 않았고 임 시적으로 사용한 화덕만이 발견되었다는 점은 이들 집단의 정거 기간이 길지 않았음을 반영한다고 보인다(韓建業, 北京先秦考古, p.273 참조).
96) 한편 동호림, 전년 유적으로부터 상택유적이 발견되기까지의 B.C.7500 -6000년까지는 북경지구 고고문화의 공백이 나타난다.
97) 배진영, 앞의 글, p.134 표 참조. 환경의 악화를 계기로 기존의 고고문화는 모두 신흥의 고고문화로 대체되었다. 예를 들면 흥륭와문화는 조보구문화로 조보구문화는 홍산문화로, 홍산문화는 소하연문화로 대체되었다(索秀芬, 앞의 글, p.254).
이러한 동북 계통의 문화는 북경지구에도 그대로 체현되어 상택 유 적 중 상택 8층은 흥륭와문화, 7층은 조보구문화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후변화의 영향과 함께 고려해봐야 할 부분은 북경이 당시 내몽골고원 및 송요평원과 상통하여 이러한 문화의 유입은 육로를 통 해 이동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즉 이들 지역은 한 덩어리로 이어진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연요지역이나 하나의 문화권인 연요문화 권으로 포괄되며 이에 따라 기후변화로 인한 동북지역의 고고문화 교 체 역시 비록 일정 거리가 있을지라도 북경지구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B.C.5000년경에 발생한 1차 한랭기의 출현은 타 지역 고 고문화의 쇠락을 동반하기도 했지만98) 북경지구의 경우는 그렇지 않 았다. 오히려 이 시기에 북경은 영정하를 경계로 하여 이북에는 조보 구 계통의 상택유적과 이남에는 진강영유적의 진강영1기문화가 출현 하였다. 일단 상택유적 조보구문화의 출현은 앞서 B.C.5000년경에 흥 륭와문화에서 조보구문화로 대체됨에 따라 북경지구에도 동반 출현하 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한편으로 B.C.5000년경의 강온 사건은 위도가 높은 동북지역에서 그 체감도가 훨씬 강렬하였을 것이고 그에 따라 일부 조보구문화 세력이 북경지구로 남하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출현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영정하 이남의 진강영1기문화(B.C.5000-4500년)의 경우는 하 북 중부지역에 근거를 둔 고고문화99)로, B.C.5000년의 강온 사건 이 후 다시 신속하게 기온과 강수가 상승함에 따라 이 지역문화가 비교적 빠르게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점차 북쪽을 향해 세력을 확대하게 되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문화의 전형기물 중 하나
98) 중원지구 裴李崗文化, 磁山文化와 白家문화가 이에 쇠락하였다.
99) 하북성 易縣 北福地, 炭山, 七里莊 등지에서 동류 기물이 발견되었다(拒馬河 考古隊, 「河北易縣淶水古遺址試掘報告」, 考古學報, 1988-4, pp.421-454; 河 北省文物硏究所, 北福地 -易水流域史前遺址, 文物出版社, 2007; 段宏振, 「河 北易縣七里莊遺址」, 2006中國重要考古發現, 文物出版社, 2006, pp.41-44).
인 紅頂鉢 등은 상택 유적에서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데100) 이것 은 서북의 내몽골 중남부 지구와 난하 뿐 아니라 서요하 유역에서도 출현하게 되었다.101)
비록 중기 충적세 시기의 1차 한랭기가 출현하였지만 다시 신속하 게 기온과 강수가 회복되어 B.C.4500년경에 이르면 가장 온난다습한 기후조건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앙소문화를 비롯한 중원지역 문화 가 흥성하여 북경지구 역시 진강영1기문화로부터 내원한 하북 중부에 서 형성된 후강1기문화(B.C.4500-4000년)가 북쪽을 향해 전진하면서 상택유적 조보구문화와 진강영1기문화를 대신하여 북경 전역을 뒤덮 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기온의 상승은 중원 세력의 확대와 더불 어 북진을 야기하기도 하는데 하북성 중부에서 기원하는 후강1기문화 가 영정하를 넘어 연산 이북지역까지 휩쓸게 된 것은 기온 상승에 따 른 중원지역 고고문화의 북방으로의 확산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기온이 더욱 상승하는 B.C.4000-3300년이 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고고문화의 흥기로 이어졌지만 북경지구는 오히려 문화의 공백 혹은 쇠락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 상에 대해서는 세력집단 간의 격렬한 투쟁 등과 같은 여러 추측이 가 능하지만 당시 북경지구의 특수한 지리 및 기후의 변화에 따른 생존환 경의 변화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또한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각 유적의 거주환경을 살펴보면, 동호림과 전년 유적은 모두 서부 산구에 위치하여 이급 혹은 삼급의 단구에 위치하고 삼림과 황토 대지상의 초원 환경에 놓여 있었다. 평곡 분지의 상택과 북염두 유적 의 해발 위치는 동호림과 전년 유적에 비해 낮아 영정하 이남의 진강 영 취락을 포함하여 모두 이급의 황토 단구 위에 위치한다. 상택은
泃
河 앞에 위치하고, 북염두는泃河 지류인 錯河 앞에 있어 모두 저산구
100) 河北省文物硏究所 等, 「遷西西寨遺址1988年發掘報告」, pp.144-177.
101)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內蒙古工作隊, 「內蒙古敖漢旗小山遺址」, pp.481 -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