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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신체공간: 정치적 실천

2. 역사적 인식에서 정치적 실천으로

2.2. 이미지-신체공간: 정치적 실천

「초현실주의」(1929)는 앞 절에서 다룬 「프루스트의 이미지」와 같 은 해에 쓰였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벤야민의 정치 개념이 발견 된다. 벤야민에 따르면 초현실주의는 우리 일상에 편재한 “‘낡아버린 것’

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에너지”124)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실험하였다. 벤야민이 초현실주의에서 주목하는 작품은 브르통(Andre Breton)의 소설 『나자』인데, 그는 이러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이

“과거에 대한 역사적 시선을 정치적 시선과 맞바꾸어,” “언뜻 보는 모든 것을 혁명적 행동은 아닐지라도 혁명적 경험으로 전환”125)한다고 말한 다. 프루스트의 작업과 유사하게 브르통이 『나자』에서 묘사한 것은 실 제 자신이 체험했던 현실세계임과 동시에 무의식의 세계였다. 그런데 브 르통은 그 “깨어있음과 잠들어 있음 사이의 문지방”126)과 같은 영역의 경험을 정치적 원동력으로 전환하려 했다는 점에서 프루스트와는 구별된

122) GS Ⅵ/1, 80.

123) GS Ⅳ/1, 142 ; 『선집1』, 155쪽.

124) GS Ⅱ/1, 299 ; 『선집5』, 150쪽.

125) GS Ⅱ/1, 300 ; 『선집5』, 151쪽.

126) GS Ⅱ/1, 300 ; 『선집5』, 145쪽.

다. 실제로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은 예술의 영역 내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방향은 정치에 있었다.

벤야민에 따르면 초현실주의자들은 “범속한 계시(profane Erleuchtung)”127), 즉 일상적이고 오래된 사물들에서 인간과 사회의 이성 적이고 이상적인 것들을 전복할 수 있는 혁명적 에너지를 얻는 자들,

“사물들이 혁명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자들”128)이다. 주지하다시피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그 혁명적 에너지는 무 의식의 세계였다. 그들은 인간의 무의식에 관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적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일상에서 억압된 꿈과 같은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려 하였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의식의 치유수단으로 다 루었던 것에 반해, 초현실주의는 이성에 억눌린 무의식 자체의 해방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의 이성적 질서가 억압한 인간과 자연을 해방하려 했 다.129) 이러한 그들의 예술작업은 “자아보다 먼저” “이미지와 언어가 가 장 먼저 입장할 권리”130)를 갖게 하는 것으로서, 무의지적으로 돌출하는

127) 국역본은 Erleuchtung을 ‘각성’으로 번역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이를 앞서 논의한 각성(Erwachen) 개념과 구분하기 위하여 원 단어의 의미를 살려 ‘계 시’로 번역한다. 영역본 또한 계시의 의미를 지닌 illumination로 번역하고 있 다. 사전적으로 Erleuchtung과 illumination이 모두 ‘빛’과 관련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단어에는 ‘빛이 비추어져 깨달음을 얻다’는 계명(啓明)의 의미 가 있지만, 이는 주체가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기보다 어떤 외부적인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가 주체를 깨우치는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에 가깝다.

이 점에서 Erleuchtung은 ‘계시’와 좀 더 가까워 보인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범속한 계시가 일상의 사물들에서 이성중심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비이 성적인 무의식의 세계에 내재한 혁명적인 에너지를 발견함을 의미하기 때문 에 벤야민의 정치 개념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계시는 일상의 사 물에서 과거의 소망이미지를 발견하고 이를 현재를 변화시키는 혁명적 에너 지로 전환하는 역사성을 지닌 ‘각성’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 ‘계시’와 ‘각성’의 구별은 다음의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인 “아라공의 작업에 대한 이 [『파사주』] 작업 경향의 경계설정. 아라공이 꿈의 영역에 머무르기 를 고집하는 반면 여기서는 각성의 성좌가 발견되어야 한다.” 『파사주』, [K1,9]

128) GS Ⅱ/1, 299 ; 『선집5』, 150쪽.

129) 최문규, 「삶의 실천 속에의 예술의 지양?」, 『유럽사회문화』, 5권, 2010, 179-180쪽.

130) GS Ⅱ/1, 297 ; 『선집5』, 146쪽.

무의식의 세계를 예술이라는 통로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벤야민에 따르면 당시 초현실주의의 강한 비판 대상은 그 운동이 일어났 던 파리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이상주의적 도덕을 정치적 실천과 구제 불가능하게 연계”하였는데, 이는 “정치를 온 갖 도덕화하는 딜레탕티즘”131)에 다름 아니었다. 초현실주의가 이들에 저항하는 방법은 “전방위적인 염세주의”132), 즉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모 든 것을 불신하는 염세주의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벤야민은 초현실주의자에 관한 이러한 탐구를 바탕으로 이 “통 찰이 확장될 필요”133)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이

“혁명을 위한 도취의 힘들을 얻기”이고 “그것이 초현실주의의 모든 책과 시도가 추구하는 목표”이지만, “이 과제를 성취하려면 [···] 모든 혁명적 행위 속의 어떤 도취적 요소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134)하다고 주 장한다. 즉 초현실주의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볼 수 있는 꿈과 무의식적 인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혁명적 힘을 얻으려 하였지만, 이들은 “오로지 아나키적 과제에만 강조점을 두었기”135) 때문에 이들에게서 한 발자국 더 나아야 한다고 벤야민은 주장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초현실주의」의 마지막에서 ‘이미지공간’과 ‘신체공간’, 그 리고 이 둘을 통한 ‘집단적 신경감응(Innervation)’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 개념들은 벤야민이 초현실주의의 작업을 자신의 정치 개념으로 전유 하고 확장한 결과이다.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염세주의를 조직 한다는 것은 정치에서 도덕적 메타포를 추방하는 일, 정치적 행동의 공 간에서 백 퍼센트의 이미지공간(Bildraum)을 발견하는 일 이외의 다른 것을 뜻하지 않는다.”136) 일견 그의 이 주장은 초현실주의에 대한 이야 기로 보이지만, 이 문장의 바로 다음의 논의 전개를 보면 그가 초현실주 의자들을 비판하며 새로운 주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1) GS Ⅱ/1, 304 ; 『선집5』, 158쪽.

132) GS Ⅱ/1, 308 ; 『선집5』, 165쪽.

133) GS Ⅱ/1, 308 ; 『선집5』, 165쪽.

134) GS Ⅱ/1, 307 ; 『선집5』, 163쪽.

135) GS Ⅱ/1, 307 ; 『선집5』, 163쪽.

136) GS Ⅱ/1, 309 ; 『선집5』, 165쪽.

그러나 이 이미지공간은 관조적으로는(kontemplativ) 전혀 측정할 수 없다. 부르주아 계급의 지적 헤게모니를 무너뜨리고 프롤레타리아 대 중과의 접점을 획득하는 일이 혁명적 지식인들의 이중 과제라면, 그들 은 이 과제의 두 번째 부분에서 거의 완전히 좌절한 셈인데, 그 까닭 은 그 부분이 관조적으로는 해낼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 사람들은 그 과제가 마치 그런 것인 양 거듭해서 제시하고 프롤레 타리아 시인들, 사상가들, 예술가들을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 다.137)

여기서 벤야민은 자신과 같은 혁명적 지식인들의 과제는 부르주아 계급 의 지적 헤게모니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대중과의 접점 또한 획득하는 것 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상적이고 합 리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당대의 부르주아 계급에 맞서 “문학”과 “자유”

와 “유럽 인류의 운명”을, 그리고 “계급 간의, 민족 간의, 개인 간의 모 든 소통을 불신”함으로써 부르주아의 지적 헤게모니를 무너뜨리려 하였 지만, 그들은 “관조적”인 작업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대중 과의 접점을 획득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즉 초현실주의는 신비적이고 초현실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열정적으로 또는 광적으로 강조”하였는데, 벤야민이 보기에 이는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138)한다는 것이 다. 요컨대 그는 초현실주의가 대중을 형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 지 않고 기존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불신에만 머물렀다는 비판 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초현실주의의 전략이 끊임없는 불 신하기라는 언급 뒤에 “그러나 지금은, 그 다음엔?”이라는 질문을 던진 다.

벤야민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정치적 행동의 공간에서 백 퍼센트 의 이미지공간을 발견해야”139) 함을 제시한다. 이는 부르주아 출신의 예

137) GS Ⅱ/1, 309 ; 『선집5』, 165쪽.

138) GS Ⅱ/1, 307 ; 『선집5』, 163쪽.

139) GS Ⅱ/1, 309 ; 『선집5』, 165쪽.

술가가 예술이라는 경계를 벗어나고서라도 실제 정치행위가 이루어지는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지공간을 발견할 것에 대한 요구라 볼 수 있다. 그 는 이를 위한 전제로서 “변증법적인 얽힘(Verschränkung)”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변증법적 시각의 힘, 즉 일상적인 것을 간파할 수 있는 것으로, 그리고 간파할 수 없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그 힘으로, 우리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만 그 [초현실적인] 신비를 간파할 수 있다.”140) 「초현실주의」에서 구체적인 변증법적 이미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지는 않지만 여기서 그 사유의 단초가 제시되고 있 다. 이를 발전시켜 벤야민은 1930년대 초에 작성한 『파사주』의 한 메 모141)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현실주의자인 “아라공의 작업에 대한 이 작업 경향의 경계설정. 아라공이 꿈의 영역에 머무르기를 고집하는 반면 여기서는 각성의 성좌가 발견되어야 한다. [···] 여기서는 [아라공에 인상주의적인 요소로 남아 있던] ‘신화’를 역사의 공간 속으로 해체하려 고 한다.”142) 앞서 1.2절에서 논의한 역사적 인식에서의 변증법적 이미지 를 상기해 볼 때, 벤야민이 말하는 “변증법적인 얽힘”은 ‘정지 상태의 변 증법’, 즉 과거와 현재의 변증법적 이미지를 인식하는 사유의 구조, 다른 말로 각성의 구조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벤야민이 「초현실주의」의 결 론 부분에서 정치적 행동의 공간에서 이미지공간을 발견해야 한다는 주 장을 앞서 논한 역사적 인식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의 문장을 보자. “한 행동이 자신의 이미지를 자 신으로부터 드러내고 [그] 이미지가 되며, 그것을 자기에게 넣고 삼키는 곳 어디서나 [···] 이미지공간이 열린다.”143) 여기서 벤야민은 이미지공간 이 어떤 행동을 통해 드러나고 그 행동 자체가 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 는데, 실제로 벤야민은 이미지공간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 신체공간 (Leibraum)”144)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미지와 행동이 어떤 공간에서 동시

140) GS Ⅱ/1, 307 ; 『선집5』, 163쪽.

141) 벅 모스는 『파사주』 N묶음의 N1-N3a가 1935년 6월 이전에 쓰였다 말한 다. Susan Buck-Morss, Ibid, pp. 50-51.

142) 『파사주』, [N1,9]

143) GS Ⅱ/1, 309 ; 『선집5』, 166쪽.

144) GS Ⅱ/1, 309 ; 『선집5』,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