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1. 탈(脫)역사적인 시간
1960년은 알제리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로, 정계에 복귀한 드골과 알제리에 주둔하고 있었던 프랑스 군부, 독립전쟁을 이끄는 민족해방전선 (FLN) 등 다수의 세력이 알제리의 독립을 둘러싸고 알력 다툼을 벌이던 격동기였다.96) 그해 1월, 강경한 식민주의자인 마쉬Jacques Massu 장군이 독일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드골의 알제리 독립 정책을 비난하자, 드골은 즉시 그를 알제리 군 사령관 직책에서 해임하고 프랑스 본토의 메스 Metz로 배치한다.97) 마쉬 장군은 그의 상징과도 같은 공수부대를 이끌고 알제리에서 돌아와 메스에 주둔하게 된다. 수백 명의 성난 공수부대원들이 도시 곳곳에서 마그레브 출신 이민자들을 무차별 공격한 ‘메스의 피로 물든 밤(La nuit sanglante de Metz)’98)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공업 도시로서 아랍계 이민자들을 대거 수용하고 있던 메스는 프랑스의 중심지도 알제리의 영토도 아니었지만, 프랑스 극우주의와 알 제리 해방운동이라는 양 극단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공존했던 당시의 상황이 집약되어 있었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콜테스는 열두 살이었다. 메스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콜테스는 그 시기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1960년에 나는 메스에 있었다. 내 아버지는 장교였고, 그 무렵에 알제리 에서 돌아왔다. 게다가 성 클레망 중학교는 아랍 지구 한복판에 있었다.
96) 이주흠, 『드골의 리더쉽과 指導者論』, 大阪 : 뉴엠에이픽스社, 1999, pp. 49-58.
97) Ibid., p. 54.
98) Hervé Boggio, “La Nuit des paras à Metz : enquête sur une ratonnade”, Le Républicain Lorrain.last modified Feb, 13, 2012, accessed Jun, 22, 2020, https://www.republicain-lorrain.fr/actualite/2012/02/13/la-nuit-des-paras-a-metz -enquete-sur-une-ratonnade.
나는 마쉬 장군의 등장, 아랍 카페 폭파 사건, 이 모든 것들을 별다른 견해랄 것 없이 멀찍이서 겪었고, 내겐 인상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견 해라는 것은 나중에야 생겼다. […] 하지만 시골에서 이 모든 것들은 이 상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알제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았고 그럼에도 카페들은 폭파되었고 사람들은 아랍인들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아이들이 감지할 수는 있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는 못하는, 이런 식의 폭력이 있었 다.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에 받는 인상들은 결정적이다. 나는 바로 이때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J’étais à Metz en 1960. Mon père était officier, c’est à cette époque-là qu’il est rentré d’Algérie. En plus, le collège Saint-Clément était au cœur du quartier arabe. J’ai vécu l’arrivée du général Massu, les explosions des cafés arabes, tout cela de loin, sans opinion, et il ne m’en est resté que des impressions – les opinions, je les ai eues plus tard. […] En province, tout cela se passait quand même d’une manière étrange : l’Algérie semblait ne pas exister et pourtant les cafés explosaient et on jetait les Arabes dans les fleuves. Il y avait cette violence-là, à laquelle un enfant est sensible et à laquelle il ne comprend rien. Entre douze et seize ans, les impressions sont décisives; je crois que c’est là que tout se décide. Tout. (PMV, 115-116)
『사막으로의 회귀』는 바로 이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메스 라는 지명이 희곡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프랑스 동부, 어느 한 지방 도시”99)가 콜테스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 도시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세르쁘누아즈Serpenoise, 로제리욀Rozérieulles, 마암Maame, 쾰뢰Queuleu, 플랑티에르Plantières, 보르니Borny, 사블롱 Sablon 등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姓)은 모두 메스 내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도시에 막 도착한 공수부대가 거리를 점령하고, OAS에 의해
99) « Une ville de province, à l’est de la France, au début des années soixante. » (RD, 9)
아랍인 카페들이 폭파되는 곳. 모든 것이 1960년의 메스를 가리킨다.
흑인 공수부대원이 무대에 등장해 “나는 던케르크부터 브라자빌까지 프랑스를 사랑한다”100)고 말할 때, 우리는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드골 장군의 브라자빌Brazzaville 연설과 “던케르크부터 타만라세트까지 (Tous Français, de Dunkerque à Tamanrasset)”라는 슬로건을 보고 들었을 한 소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콜테스가 『사막으로의 회귀』를 집필했던 1980년대 당시 알제리전쟁은 프랑스가 방치 및 은폐하고 있었던 어두운 과거였다. 알제리에 파견된 프랑스군이 FLN 운동가들에게 체계적으로 고문과 가학 행위를 저질렀 다는 사실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묻혀 있다가 2000년 초에 이르러서야 언론에 보도되며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시정 권 시기에 대한 프랑스의 국민적 기억이 7-80년대에 들어서 막 균열이 나고 있는 참이었다. 프랑스인들은 비시의 친(親)나치 정권이 독일의 지시대로만 움직이기보다는 자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체제였으며, 프랑스 역시 유대인을 포로수용소로 보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101) 『사막으로의 회귀』는 알제리 전쟁 막 바지인 19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 2차 세계대전 직 후 숙청운동 당시에 일어난 사건이 핵심적인 전사(前事)로 배치되어 있 다. 그러므로 『사막으로의 회귀』는 동시대 관객으로 하여금 수면 아래 경계선에 위치해 있는 이 모든 편치 않은 과거사의 주제들을 직면케 하는 연극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역사라는 주제와 어떤 식으로든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테스가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는 방식은 결코 직설적이지 않다. 역사적 사건들은 작품의 배경으로서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낼 뿐, 이야기의 전면에 드러나지
100) « PARACHUTISTE. – […] j’aime la France de Dunkerque à Brazzaville, […] » (RD, 57)
101) 노서경, 「알제리전쟁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과거성찰 -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 로」, 『프랑스사 연구』 제 12권, 한국프랑스사학회, 2005, pp. 61-63.
않는다. 콜테스가 역사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무엇보다도 ‘역사가 어떠한 시간성을 통해 드러나게 하는가’에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시간을 직선적이고도 단선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역사를 ‘시간의 연대기적인 흐름에 따라 어떤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을 기술한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에는 ‘기술’한다는 행위가 필수적인 것으로 전제된다. 이는 어느 사건이 역사에 포함되고 어느 사건은 포함되지 않을지가 선별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역사란 필연적으로 권력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류 역사란 권력의 작용에 의해 선택된 사건들의 집합이며, 역사를 단선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건들이 직선상에 편입되거나, 삭제된다.
이렇게 시간의 실재를 직선적이고 단선적인 역사적 시간성으로 변환시키 는 과정에서 억압과 착취가 발생한다.
『사막으로의 회귀』는 역사를 바로 이러한 실재적인 시간들로서, 역사 적인 시간성 바깥으로 탈락된 날것의 시간들로서 드러낸다. 이에 따라 역사적 시간은 단선적인 시간성 안에 통합되지 못하고 파편적·단발적으로 출현(émerger)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서 ‘단 하나의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막으 로의 회귀』에는 프랑스 식민주의적 역사와 알제리 해방 진영이 쓰고자 하는 역사 그 어느 쪽에도 통합되지 못한 채 ‘틈새에 낀’ 시간을 사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마틸드와 아지즈가 대표적이다. 26살에 알제리로 도피해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곳에서 보낸 마틸드는 문화적으로 혼혈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알제리의 태양을 머리에 맞아서 아랍인이 되어 버린”102) 사람이지만, “알제리의 빌어먹을 태양 아래서도 매끄럽고 하얀 피부를 유지”103)한 프랑스인이기도 하다. 그러한 마틸드는 알제리와 프 랑스, 그 어느 쪽에서도 조국을 발견하지 못한다.
102) « ADRIEN. – […] Le soleil d’Algérie a tapé sur la tête de ma sœur et la voilà devenue arabe, […] » (RD, 35)
103) « ADRIEN. – Et moi qui croyais te retrouver avec la peau brunie et ridée comme une vieille Arabe. Comment fais-tu, avec ce foutu soleil d’Algérie, pour rester lisse et blanche? » (RD, 17)
마틸드 – 무슨 조국이 있어, 내가? 내 땅, 나의 땅은 어디 있는 거야?
내 한 몸 누일 수 있는 땅은 어디에 있지? 알제리에서 나는 외부인이었고 프랑스를 꿈꿨어. 프랑스에서 난 더더욱 외부인이고 알제리를 꿈꿔. 조 국은 내가 없는 데가 조국인 거야? 내 자리에 있지 못하는 거, 어디가 내 자리인지 알지 못하는 게 이제 지긋지긋해. 그니까 조국이라는 건 없어, 아무데도, 없다고.
MATHILDE. – Quelle patrie ai-je, moi? Ma terre, à moi, où est-elle?
Où est-elle la terre sur laquelle je pourrais me coucher? En Algérie, je suis une étrangère et je rêve de la France; en France, je suis encore plus étrangère et je rêve d’Alger. Est-ce que la patrie, c’est l’endroit où l’on n’est pas? J’en ai marre de ne pas être à ma place et de ne pas savoir où est ma place. Mais les patries n’existent pas, nulle part, non. (RD, 48)
알제리 태생으로 프랑스인에게 고용되어 프랑스인을 위해 일하면서 “프 랑스가 FLN과 전쟁할 수 있도록 프랑스에 세금을 내고, FLN이 프랑스 와 전쟁할 수 있도록 FLN에 세금을 내는”104) 아지즈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와 알제리, 양쪽의 호명 사이에서 분열된 아지즈는 스스로 어떠한 정체성도 거부하기에 이른다.
FNL은 나보고 아랍인이라 그러고, 내 주인은 내가 하인이라 그러고, 병역의 의무는 내가 프랑스인이라고 해. 그리고 나는, 난 나보고 등신이 라고 해. 왜냐면 난 아랍인이니 프랑스인이니 주인이니 하인이니 하는 것들은 관심 없거든. 난 알제리 따위는 관심 없어, 프랑스 따위도 관심 없고. 난 내가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지 아닌지 관심이 없어. 난 아무것도 지지하지 않고 반대도 안 해. 누가 나한테 지지하지 않는다고 반대라 그러면, 그럼 나는 전부 다 반대하는 거야. 난 진짜 등신이야.
104) « AZIZ. - […] Et avec l’argent que je gagne, je paie des impôts à la France pour qu’elle fasse la guerre au Front, je paie des impôts au Front pour qu’il fasse la guerre à la France. » (RD,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