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발적 모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의 배제
80) 上海市檔案館館藏號 U1-16-898,“Sinza Health Demonstration Centre Annual Report for 1942”, 中華醫學會衛生實驗區的工作職責及工作年報 (1938-1944), p.141.
81) 「健康藥會計劃恢復指導工作」 (申報 1946.1.28), p.5.
마거릿 생어는 신맬서스주의와 우생학을 이론적으로 계승하여, 과학 적 피임을 통해 인구의 생식력과 재생산을 사회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는 것에 공감하고 있었다. 생어는 맬서스주의에 입각하여 식량부족ㆍ 빈곤ㆍ실업ㆍ전쟁과 같은 사회문제의 원인이 인구과잉에 있다고 보고, 산아제한을 통해 경제적 빈곤을 해소하려 하였다. 또한 그녀는 1920 년대 우생운동과 연대를 강화하고, 하층 계급과 유전적 결함을 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생물학적으로 정당화했다. 심지어 그녀는 우생학에 입각하여 지식계급ㆍ유산계급의 출산율 하락과 열등계급ㆍ빈 곤계급의 출산율 증가는 문명 진보에 최대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며, 열등 인종의 격리와 단종을 요구하는 강제적 우생보호정책의 제정을 촉구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생어는 복지와 자선사업이 오 히려 ‘適者生存’의 자연법칙에서 벗어나 ‘열등종’을 보호하는 역선택의 문제를 초래하여, 국가의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비난하였다. 결 국 이와 같은 사상적 변화 속에서 생어는 1930년대 록펠러 재단 (Rockefeller Foundation)을 비롯한 자본가 그룹과 유착하고, 산아제 한 운동의 방향을 국가의 목적에 맞춰 가족의 수와 질을 제한하는 가 족계획운동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생어의 산아제한 담론은 여성의 ‘자발적 모성’을 부각시켰다 는 점에서 신맬서스주의 및 우생학과는 차별적인 페미니즘적 색채를 띠고 있다. 생어는 1920년에 집필한 저서
여성과 새로운 종(Woman
and the New Race)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자신의 몸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어떤 여성도 자신을 자유롭 다고 말할 수 없다. 여성들이 의식적으로 스스로 어머니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기 전까지는 어떤 여성도 자유롭지 못하다.82)
마거릿 생어는 여성들이 재생산 능력에 대한 자발적인 통제력을 가 질 때만이 진정한 성적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
82) Sanger, Woman and the New race (New York: Brentano’s, 1920), p.94.
므로 ‘자발적 모성’이란 여성들이 배우자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권리를 포함하여, 어머니가 될 것인지 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리, 자 녀를 낳을 시기와 자녀의 수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여성 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생어는 이전까지 경제적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어 오던 산아제한을 여성을 위한 문제로 전환시키면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이는 한편으로 1920년대까지의 여성해방 운동이 여성의 참정권 획득 과 경제적 독립이라는 문제에만 몰두하던 시점에서, 사랑ㆍ결혼ㆍ성ㆍ 생식과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종속이라는 문제를 공적 영역으 로 이끌어 내면서 여성의 생리적 해방과 성적 자율성이라는 새로운 페 미니즘의 지평을 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생식의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포함한 ‘자발적 모성’의 담론을 일본과 중국의 지식인들은 어떻게 수용하였을까? 우선 이 문제는 근대 일본의 모성 담론과 함께 결부지어 검토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는 부국강병을 위한 국민의
‘질’적 향상이 요구되는 가운데 교육하는 어머니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시되었다. 그리하며 1872년 학제를 제정하여 6세 이상의 여아에게 도 의무적으로 소학교육을 실시하고, 1899년에는 ‘高等女學校令’을 발 포하여 ‘良妻賢母’의 양성을 목표로 한 공교육체제를 확립하였다.83) 그러나 다이쇼 시대(1912-1926)에 이르면 서양 여성해방 사상의 유 입과 여성들의 의식 변화 속에서
靑鞜을 중심으로 가부장적 이에
(家)제도 하의 봉건 도덕과 良妻賢母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특 히 엘렌 케이(Ellen Key, 1849-1926)의 모성보호론이 소개되면서 1918-1919년에는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ㆍ히라츠카 라이테우ㆍ 야마카와 기쿠에(山川菊榮)를 중심으로 ‘母性保護論爭’이 벌어졌다.84)83) 장정우, 「근대 일본에서의 모성과 국가: 平塚らいてう의 ‘母性論’을 중심으로
」 (서강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9), pp.8-10.
84) 일본의 모성보호논쟁에 대해서는 香内信子, 「「性保護論爭」の歴史的意義: 「論 爭」から「運動」へのつながり」 (歷史評論 195, 1966), pp.28-41; 香内信子
엘렌 케이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 여성의 ‘天賦적 사명’이라고 규정 하고, 자녀의 양육기에 모친이 가정 이외의 노동에 종사하지 않도록 국가가 ‘모성연금(Mother’s Pension)’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히라츠카 라이테우는
靑鞜의 창간 초기에는 개인주의에 입각한 개인
의 자각과 자아의 확립을 여성해방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엘렌 케이의 사상을 접하고 자신도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모성주의’에 급속도로 심취하였다. 그녀는 어머니로서의 노동은 개인의 차원을 초 월한 국가적 사업이므로, 여성들이 따로 직업을 갖지 않고 보다 좋은 환경에서 육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직접 여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85) 이처럼 라이테우는 ‘출산과 육 아가 국가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사회적 행위’라는 신념 속에서, 여성 의 사회적 역할을 ‘모성’으로만 국한하고, 생식에 공적인 가치를 부여 하며 국가를 모성보호의 주체로 상정하였다. 이는 어떤 면에서 국가의 생식 관여를 정당화하고, ‘모성’이 국가적으로 이용될 빌미를 제공해주 기도 하였다.그러나 국가주의적 모성보호 담론은 생어의 ‘자발적 모성’과도 사상 적으로 연결되는 맥락이 있었다. 즉 마거릿 생어가 산아제한을 주장했 던 것은 출생을 금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이들의 삶의 질 을 좀 더 향상시켜 종족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그 전 제로서 출산의 주체인 여성에게 어떠한 조건 하에서 어머니가 될 것인 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인 ‘자발적 모성’을 부여하자는 것이 었다. 때문에 산아제한론이나 모성보호론이나 생식에 공적 가치를 부 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성보호의 연장선상에서 ‘자발적 모성’의 개념 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는 생어의 일본 방문을 주도하였던 이
編, 資料母性保護論争 (ドメス出版, 1988); 김선민, 「近代 日本의 여성해방 운동과 ‘母性’: ‘母性’의 발견과 파괴를 중심으로」 (일어일문학 63, 2014.8), pp.247-260; 이은경, 「모성ㆍ참정권ㆍ전쟁 그리고 국가: 근대 일본 여성운동 의 통시적 고찰」 (비교문화연구 43, 2016.6), pp.79-113 참조.
85) らいてう, 「母性保護問題に就いて再び与謝野晶子氏に寄す」 (資料 母性保護 論争, ドメス出版, 1988), pp.108-109.
시모토 시즈에의 논설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리들은 오늘날 부녀는 소위 모성에 대해서 모두 이러한 노예적 도덕 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무 관념도 없다. 이러 한 구습을 개혁하려면, 반드시 결혼한 부인이 건강상ㆍ정신상ㆍ경제상 진 정으로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하며, 자신이 원한 사랑하는 아이의 탄생을 환영해야 한다. 이때 모성은 비로소 깊은 의의가 있다. 이 러한 의의를 지닌 산아제한을 바로 자주적 모성이라 한다. 그래서 산아제 한의 수단을 사용하여 모성을 자주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비 로소 부인을 진정으로 각성시키고 진정으로 해방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산아제한에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자각하지 못 한 부녀들이 산아제한을 남용하면 그때는 풍속의 문란과 남녀도덕의 퇴 폐 혹은 안일하게 게으름으로 흐르는 것을 면하기 어렵다. 이는 매우 두 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확실히 산아제한의 수단을 사용하면 비교 적 많은 인류가 행복을 획득할 수 있는데, 왜 이 문제를 신중하게 연구하 지 않고 열심히 선전하지도 않는가?86)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이시모토 시즈에는 끊임없는 출산으로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이 ‘모성’을 더 잘 발휘하고, 자녀를 더 잘 양육하기 위해서 출산을 자주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음 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즈에가 산아제한 혹은 자발적 모성으로 인해 여성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게으름을 추구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에서의 자발적 모성 담론이 모성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性愛’를 향유하 고 출산과 육아에서 해방되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여성의 사회적 해방과는 무관한 권리를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남녀의 도덕적 퇴 폐를 경계한 측면은 가정이란 테두리를 벗어난 성관계를 통해 어머니 가 된 여성의 ‘모성’을 철저히 배격하면서, 오로지 가정이란 테두리 안 에 국한된 현모양처적 ‘모성’만을 인정하는 이원론적인 것이었다. 이는 특권계급의 모성만을 옹호하는 차별적ㆍ억압적 논리로 전락할 위험성 을 내포하고 있었다.
86) 加藤靜枝(石本靜枝) 著, 産兒制限と婦人: 付ㆍサンガー夫人小專 (東京: 讀 賣新聞社, 1946), pp.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