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본론: 아테네를 필두로 한 범그리스주의 원정
1. 테세우스를 이용한 헬레네와 아테네 찬사 (17-38)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테세우스 서술에서도 헬레네에 대한 언급이 적고 테세우스의 업적이 더 길게 나열되는 모습을 보면, 이 연설문이 테세우스 찬사인지 헬레네 찬사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먼저 테세우스의 위업들이 어떻게 헬레네를 칭송하는지 살펴보고 테세우스의 칭송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를 분석할 것이다. 결국 본고는 테세우스 서사가 헬레네 찬사와 무관하게 등장하지 않고 헬레네를 효과적으로 찬양하는 동시에 아테네를 칭송하고 격려한다고 해석할 것이다.
1-1. 테세우스는 헬레네를 어떻게 부각하는가?
이소크라테스는 헬레네가 두 가지 이유로 찬양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제우스 혈통 54에서 비롯된 “시선집중되는”(periblepton) 아름다움 덕이며 다른 하나는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perimacheton) 아름다움 덕이다. 제우스는 아들 헤라클레스에게 압도적인 무력을 주었지만, 특히 아끼던 55 헬레네에게는 "그 힘마저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내재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게다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신적인 경지로 끌어올리고 호메로스 서사시의 영웅들과 같은 불멸의 명성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16-17).
여기서 이소크라테스의 참신한 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원히 기억되는 것으로 만들었다. 대개 그리스 사회에서 남성적인 외모나 풍모(phuē)는 주변에게 영감을 주는 일종의 자산으로 여겨졌지만 판도라와 헬레네의 경우가 보여주듯, 여성의 아름다움은 성욕과 그로 인한 비이성적인 판단을 유발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cf. Bons 1997, 174). 예컨대 헤시오도스는 판도라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화(禍)"(kalon kakon)로 묘사한다거나 세모니데스는 "화려한 꽃들로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은 "여인의 남편에게는 큰 재앙"이라고 묘사한다(cf.
세모니데스 『단편』 7.67-70;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Theognia) 570-585). 반면 남성들이 가진 아름다움의 효과와 그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56
54 헬레네의 모계 혈통은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에서, 제우스의 딸이라는 점은 호메로스에서
부터 확인된다. cf. 호메로스 『일리아스』3.418; 『오뒷세이아』 4.184, 에우리피데스 『헬레네』
18-21.
55 제우스가 헬레네를 헤라클레스보다 특히 아꼈다는 증거는 현전하지 않는다.
56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6.54-9에서 묘사되는 아리스토게이톤과 하르모디우스의 일화도 역시, 아름다움이 참주를 몰아낼 정도로 용감한 행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식 아래에서 작 성되었다고 Blondell은 강조한다. cf. Blondell (2013),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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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남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음으로써 이들을 돈 문제에서 더욱 관대하게 만들고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고통을 더 잘 참고 명예를 더욱 사랑하게 하며 이들을 정말로 더욱 겸손하고 자기 절제력이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크세노폰 『향연』 (Symposium) 4.15)57
대개 여성의 아름다움이 화를 가져오거나 판단 착오를 가져온다는 인식과 달리, 남성들의 아름다움은 영감, 관대함, 인내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소크라테스는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성적 욕망을 유발하여 판단을 흐리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강력한 힘마저 지배하는 아름다움으로 묘사한다.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힘을 지배하는 아름다움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는 위험 속에서도 용기와 인내를 불어넣어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남성들의 아름다움의 효과를 이소크라테스가 부여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Blondell 은 이소크라테스가 그녀의 아름다움에서 성적 욕망을 유발하는 요소를 제거(de-erotizing)하고 신적인 것으로 격상함으로써 남성들이 가진 아름다움의 효과를 헬레네에게 주었고 이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전통적 관념을 갖고 있던 청중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끌어냈을 것이라 분석했다(Blondell 2013, 239). 뿐만 아니라 이소크라테스가 헬레네의 미덕을 서사시의 영웅들과 같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으로 처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새롭다. 결국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힘마저 지배하는 용기와 절제력 즉, 현명한 판단을 끌어내 주는 것이자, 트로이아 전쟁의 전사들이 가졌던 불멸의 명성으로 묘사한 것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 견해를 갖고 있던 청중의 이목을 끌어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했을 것이다. 58
그렇다면 헬레네의 아름다움에 압도되고 영감을 얻어 그녀를 추구한 현명한 인물들은 누구였을까? 곧바로 우리에겐 트로이아 전쟁 신화에서의 메넬라오스와 파리스가 떠오를 수 있고 그들이 현명한 인물인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소크라테스는 그녀를 추구한 또 다른 인물 테세우스를 언급한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헬레네가 어린 시절 그녀를
57 크세노폰 『향연』의 번역은 오유석(2005)의 번역본을 사용.
58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perimacheton) 이라는 형용사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 단어는 peri(주
변에서)와machetos(싸우는)라는 형용사가 합쳐진 복합어로,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3 권 1408 b11 에 따르면, 복합어 형용사는 감정적 연설가에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 표현을 통해 헬 레네의 아름다운 본성이 인상적임을 강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합 성어는 시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같은 책.『수사학』 1406b) 따라서 헬레네의 품성을 이러한 시 적 문체로 표현했다는 것은 다분히 서사시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할 수 있다. 게다가 마냥
"perimacheton"이라는 표현이 이소크라테스가 발명해낸 단어는 아니다. 그는 플라톤 『국가』에 서 언급되는 스테시코로스 서사시에서 이미 등장하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마치 헬레네의 환상이, 트로이아인들의 진실에 대한 무지 탓으로, 이들에 의해 싸움거리(perimacheton)로 되었다 고 스테시코로스가 말하고 있듯이 말일세" (플라톤 『국가』9 권 586c: 박종현 역) 즉, 스테시코로 스의 서사시에서 언급되는 바, perimachetos는 서사시적 용어이다. cf. Bons (1997), 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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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과연 납치가 현명한 판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비록 그 납치가 현명한 판단 중 하나라 할지라도, 어떻게 헬레네는 찬양 받을 수 있는가?
이소크라테스가 묘사하는 테세우스의 납치사건은 이와 같다. 포세이돈의 아들 59인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참주이자 영웅이었다. 신의 혈통과 권력을 갖고 있었던 테세우스도 어린 헬레네의 아름다움에 굴복했고 그녀가 없다면 자신의 삶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러, 결국 헬레네를 납치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이자 스파르타의 왕 튄다레오스와 오라비들인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가 있었음에도 아랑곳 않고 헬레네를 납치해갔다(19).
그런데 아무리 테세우스가 신의 혈통이고 뛰어난 통치자라 한들, 어떻게 이러한 납치 사건이 용인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이 이야기는 헬레네 찬양의 논거가 아니라 테세우스를 향한 비난이자 헬레네의 아름다움이 비이성적 판단을 가져오게 한 예시 아닐까? 『헬레네 찬사』의 청중이라면 이러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반박을 의식한 것인지 이소크라테스도 테세우스 서사를 잠시 끊고 부각 전략을 설명한다. 그는 만일 일반인이 이런 행동을 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나 테세우스는 "모든 종류의 탁월함(arete)을 움켜쥔 유일한 인물"임을 강조했다(21). 다시 말해 헬레네를 추구한 자가 탁월하고 권위를 인정받는 자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선택한 인물 또한 탁월한 여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괴와 탁월함이 양립할 수 있는가? 탁월한 영웅이 납치를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탁월한 인물일 수 있겠는가? 이에 이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은 필시 그 사건들에 관한 우리의 관점에 따라 판단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오래전 일을 이야기할 때, 저흰 당대 현명한 생각을 했던 사람의 생각에 명백히 동의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ὅσα μὲν γὰρ ἐφ᾽ ἡμῶν γέγονεν, εἰκότως ἂν ταῖς δόξαις ταῖς ἡμετέραις αὐτῶν διακρίνοιμεν, περὶ δὲ τῶν οὕτω παλαιῶν προσήκει τοῖς κατ᾽ ἐκεῖνον τὸν χρόνον εὖ φρονήσασιν ὁμονοοῦντας ἡμᾶς φαίνεσθαι.
(이소크라테스 『헬레네 찬사』 22)
이소크라테스는 이 구절을 통해 역사-신화적으로 위대한 인물을 당대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위대한 인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현자들에게 평가받아 검증되어 왔기 때문이다. 지금 관점으로 보기에 테세우스의 평판이 헬레네 유괴 사건으로 훼손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테세우스는 여전히 아테네의 성웅으로 인정받는다.
다시 말해 테세우스는 납치 사건에도 오랜 시간 동안 현자들의 판단으로 영웅이라는
59 cf. 에우리피데스 『히폴뤼토스』(Hippolytos), 887, 파우사니아스 『그리스 기행』 (Hellados
Periegesis),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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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과 평판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이소크라테스는 강조한다. 또한 그는 테세우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전통적 판단 기준에 따라 납치 사건이 마냥 부정적인 것인지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온당한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테세우스 혹은 그의 권위가 헬레네의 탁월함을 입증할 수 있는 논거라고 분석했다.
"[증명하는 논거(topos tōn epideiktikōn)중] 하나는 같거나 비슷한
또는 상반된 주제와 관련한 판단(krisē)에서 기인한다. 만일 모두 혹은 모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이나, 훌륭한 사람들, 판관들이나 판관들이 받아들이는 자들이나, 판단을 반박할 수 없는 권위자들이나 신들이나 아버지 선생님들처럼 반박하는 게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의 판단이라면, [증명하는 논거이다] ... [예컨대] 이소크라테스는 테세우스가 판단했으니 헬레네가 중요한 인물이며, 신들이 판단했으니 알렉산드로스는 중요한 인물이라 말한 것처럼 말이다."
ἄλλος ἐκ κρίσεως περὶ τοῦ αὐτοῦ ἢ ὁµοίου ἢ ἐναντίου, µάλιστα
μὲν εἰ πάντες καὶ ἀεί, εἰ δὲ µή, ἀλλ᾽ οἵ γε πλεῖστοι, ἢ σοφοὶ ἢ
πάντες ἢ οἱ πλεῖστοι, ἢ ἀγαθοί, ἢ εἰ αὐτοὶ οἱ κρίνοντες, ἢ οὓς ἀποδέχονται οἱ κρίνοντες, ἢ οἷς µὴ οἷόν τε ἐναντίον κρίνειν, οἷον τοῖς κυρίοις, ἢ οἷς µὴ καλὸν ἐναντίον κρίνειν, οἷον θεοῖς ἢ πατρὶ ἢ διδασκάλοις … καὶ περὶ τῆς Ἑλένης ὡς Ἰσοκράτης ἔγραψεν ὅτι σπουδαία, εἴπερ Θησεὺς ἔκρινεν, καὶ περὶ Ἀλεξάνδρου, ὅτι αἱ θεαὶ προέκριναν … ὅτι σπουδαῖος, ὥσπερ Ἰσοκράτης φησίν: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2권 1398b20-1399a4)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소크라테스가 헬레네를 추구한 자의 권위를 이용하여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입증하는 방식을 취했다 분석하며 그 예시 중 하나로 『헬레네 찬사』의 테세우스를 직접 언급한다. 권위적 판단에 근거한 증거 제시가 효과적인 설득 방식 중 하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은 이소크라테스가 테세우스를 비난하지 않고 테세우스의 권위를 활용하여 헬레네를 찬양하는 전략을 취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유괴 사건은 그의 판단력에 의구심을 제기하게끔 한다. 이를 이소크라테스는 테세우스의 현명한 판단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테세우스의 판단력에 대한 평판을 다시 세우려 한다(22). 이 때문에 『헬레네 찬사』에서 테세우스 서술이 유독 긴 이유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소크라테스는 오히려 테세우스의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단 나열을 통해 헬레네 납치 또한 한 번의 일탈이 아닌 현명한 판단들 아래로 포섭한다.
결국 연설 상황에서 청중은 초반부의 헬레네 납치에 집중하지 않고 테세우스의 현명한 판단에서 나온 위업들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위대하고 현명한 테세우스의 후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