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변
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평화체제’의 연계
1.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9‧19 공동성명’을 계기로 부쩍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비핵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지금까지
‘선 비핵화/후 평화체제’ 논리와, ‘선 체제보장/후 비핵화’ 논리로 평행
선을 그어왔다. 전자는 미국의 입장이라면, 후자는 북한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병행 추진 또는 양자의 선순환 구조의 측면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2005년의 ‘9‧19 공 동성명’과 2007년의 ‘2‧13 합의’ 에 의해 양자의 조응관계를 발견했다.
그에 따라 양측 모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한 발 다가서게 되 었다.
가. 한반도 평화체제의 세 측면
■「과정(Process)」으로서의 평화체제: 단순히 전쟁의 법적종결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 및 국제적 차원의 제반 긴장요인을 포괄적으 로 해결하면서 평화를 제도화하고 정착시켜 나가는 장기적 과정
⇒ 평화체제 구축은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포 괄적이고 장기적 과정
■ 「한반도 문제의 국제적 사안」으로서의 평화체제: 한반도 평화문제는 정치, 군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민족 내부적 요소와 북‧미/북‧
일 간 안보현안 등 국제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상호 작용
⇒ 관련 당사국들 간 국제적 협력을 통한 조화와 보완 요구
■「평화적‧점진적 통일의 제도적 기반」으로서의 평화체제: 국제사회의 보 편적 평화 프로세스와는 달리,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 평화공존 실현과 남북연합으로의 진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는 과도기적 체제
⇒ 한반도 문제의 과도한 국제화 지양, 남북 당사자 간 해결노력과 국 제적 협력의 조화가 중요
한반도 평화체제는 이처럼 한반도에서 평화가 완전히 정착된 상태를 뜻하는 결과적 상황이 아니라 평화의 제도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하며,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와 불가분적 관계라는 점에서 국 제적 사안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평화체제가 한반도의 분단의 영구적 제 도화로 나아가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그런즉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반드시 통일 추진 과정과 함께 접근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개념에 대한 남북한 간 공유된 인식은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적절 한 대책을 강구한다”는 합의 문구에서 처음 나타났다(<‘남북 사이의 화 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1장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1992년 9월 17일 발효, ‘제5장 정전상태의 평 화상태로의 전환’(제19조)). 요컨대 이 합의문에서 평화체제는 이른바 ‘공 고한 평화상태’로 파악되었다.
“남과 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 즉, 한반도 평화체제는 전쟁의 법
적 종결 및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정전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는 한편, 남북 및 국제적 차원에서 상호 적대적 긴장관계를 초래했던 제반 긴장요인들을 완화‧해결함으로써, 항 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제도적 발전의 실현 상태를 의미한다. 우선 평화체 제의 구성 요소인 전쟁의 법적 종결과 제도적 장치는 평화협정으로 마련 될 수 있다. 그와 함께 국제적 차원에서 북‧미/북‧일관계 정상화가 이루 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북 간에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군축 등의 문제가 평화체제 구축의 실질적 요소가 된다.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은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법적‧제도적 차원 에서의 환경조성 차원에서 추진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협정(Korean
Peace Agreement 가칭)은 ‘선 협정, 후 평화체제 구축’ 방식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구축을 ‘협정’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통해 접근하자는 제안이 다. 평화협정 방식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점진적‧단계적 접근 방식을 압 축하는 평화전략이라 할 수 있다. 즉,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정착의 토대
를 마련하고 ‘공고한 평화상태’로서의 평화체제 구축을 앞당길 수 있다는 논리다. 일반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은 장기간의 긴장상태의 완화 와 신뢰구축을 거쳐 군비통제 및 군축 등 평화정착의 실질적 과정의 최 종적 단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이러한 점진적 방식과는 다른 경로로, 관련국 간 협정을 통한 정치적 일괄타결 방식을 추구하는 방식 이다.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나, 평
화체제(Peace Regime)가 평화협정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평화체제 구
축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나, 당사자 간 합의만 되면 언제든지 추진할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평화체제 구축을 앞당길 수 있다. 이제 ‘9‧
19 공동성명’과 더불어 실천적으로 한 단계 진전된 ‘2‧13 합의’로 세계사 적 지체 현상인 동북아 냉전체제를 허무는 쐐기를 박으면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직접 관련당사국’ 간의 평화협정 문제가 가시화되었다.
나. 한반도 평화체제 접근구도의 변화: 한국 ‘평화 이니셔티브’의 한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평화협정 문제의 논의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정착의 연구에서 핵심적 사안이었다. 그러나 한반 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지금까지의 접근 방식에 비해 ‘9‧19 공동성명’
과 ‘2‧13 합의’ 이후의 접근방식의 전제는 달라졌다.
첫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과 평화협정에 대한 이해는 당연히 한국 주도이자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전제로 접근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호응을 기대해왔다. 즉, 한국의 ‘평화 이니셔티브’를 전제로 접근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이제 북‧미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까 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바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진전 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북‧미관계 정상화를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 사안 으로 주장해온 북한의 입장과, 그리고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적극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제 비로소 북한 핵폐
기를 목표로 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연계하기 시작했다.
평화체제 구축 과정이 비핵화의 단계 및 진전 상황과 연계될 수밖에 없 다면 이 과정의 핵심 당사국은 미국과 북한이 되며, 이 경우 북‧미 중심 의 주도적 역할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여기서 한국 중심의 주도적 역할 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구도는 상당히 우려되는 현실이나 한 국이 이러한 구도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으며, 이 점은 분명 과거와 달라 진 상황이다.27
둘째,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서 ‘9‧19 공동성명’ 이전 까지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비핵화와 연계시켜 접근하지는 않 았다. 말하자면 한반도의 비핵화 자체가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 사안으로 부각되지 않았다.28다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여건 조성 차원에서 북‧
미관계개선, 남북협력, 남북한 군축 및 군사적 신뢰구축, 냉전문화 극복 등의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에 초점을 맞추었다.29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서 비핵화가 핵심 사안으로 부각된다면 남북한 중심 논리인 군축 및 신뢰 구축 등은 부차적 사안으로 되면서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는 비핵화 단 계 과정과 맞물리면서 한국의 역할은 무척 협소해진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연계구도 위에서 한국 중심 의 접근 방식과 주도적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한국의 안보적 이익과 통일 문제에 비우호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 이전까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한국의 노력과 접근방
27_북‧미 중심의 논의 구도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의 발견은 한‧미동맹과 한‧미 간 굳건한 신뢰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종전선언을 비 롯하여 평화협정까지 제안했지만, 현 단계에 그에 대한 구체적‧체계적인 프로그램 이 확정된 상태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한‧미 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긴밀하고 체계적인 협력체계가 절실하다.
28_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연계시킨 연구로, 조성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로드맵(KINU 정책연구시리즈 2005-05) (서울: 통일연구원, 2005); 박종철, “한반 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동북아시대위원회 주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세미나 (2006년 3월 30일).
29_냉전체제 해체 과제도 북‧미/북‧일관계 개선 문제를 비롯하여 대개 한국 주도의 고유한 과제로 인식하면서 ‘한국의 평화이니셔티브’가 주창되었다.
식에 대한 북한의 외면과 미국의 평화체제 자체에 대한 적극적 관심의 결여 등으로 실질적인 진전을 볼 수 없었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한반도 비핵화를 고리로 미국과 북한이 평화체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역설적이지만 다행스런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서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 략 속에서 한‧미 간 공동의 미래 이익에 대한 가치의 공유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한국은 배제‧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이 결코 현실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변화된 구도 속에서 한국의 안보적 이해와 통일기반의 확보를 위해 한국 의 원칙적 입장과 추진방향 그리고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이 충분히 반영 되도록 해야 한다.
2.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 북한/미국
가. 북한
북한은 최근 2005년 7월 제4차 6자회담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대미(對
美) ‘평화체제 수립’을 주장하였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게 되
면 핵문제의 발생근원인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이 없어져 자 연히 비핵화 실현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 외무성담화에서 주목되는 점은 북‧미 평화협정이나 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의 판에 박힌 주장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평화체제 수립은 비핵화 목표 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노정”30이라고 밝혔다. 이는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비핵화가 실현된다는 논리로, 선 평화체제 후 비핵 화 또는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병행 추진을 말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지금 까지 주장해온 입장을 보다 구체화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4차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
30_조선외무성 대변인 담화, “미국이 정전유지정책을 평화체제수립에로 전환할 것,”
조선중앙통신, 2005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