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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형법은 기본적으로 ‘근대형법’이다. 일본에 의한 대륙형법의 타율적인 계수로부터 그 기초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적은 양이긴 하지만 한 국의 전통사회에서 효력이 있었던 사회윤리규범을 수용하고 있으며, 특히 산업화 가 이루어진 1970년대 이후 각종 사회체계의 기능유지와 효율성향상을 목표로 하 는 수많은 부수형법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196)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찰을 거쳐 오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를 위한 수단 으로서 확립된 형법의 근대성이 오늘날 현대사회의 복잡다단한 보호 요청을 포괄 하여 수렴하면서 점차 희석되어 왔던 것이다. 동시에 전통사회로부터 수용하였던 사회윤리규범 역시 잔존해있어 실로 형법이 규율하고 있는 사회통제의 범위는 폭 넓게 확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법익침해적 성격을 가진 형벌을 제재수 단으로 하고 있는 형법이 반드시 지녀야 할 자기구속의 법리를 현저히 벗어난 것 이라 생각된다.

현대사회에서 형법의 실재는 최우선수단(prima ratio)이자 유일한 수단(sola ratio)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법익침해가 발생하지 않은 곳에서 추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보편적 법익보호를 근거로 하여 처벌의 조기화를 이룬다. 또 한 다른 제재 수단을 고려하기보다 형벌의 강력한 제재 속성으로 인한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수많은 특별형법을 제정하여 왔다. 이처럼 형법만능주의에 빠지게 된 이유는 위험사회의 위기에 대처하는 형법에 일반시민들의 기대가 높아졌고 입 법자들과 정치인들도 이러한 안전요구를 섣불리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대형법의 법치국가적 성격이 새로운 범죄유형, 특히 미래의 안전과 관련된 범죄 유형에 대처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즉, 미래의 안전과 관련 된 보호영역에서는 명백하게 윤곽이 드러난 보호법익을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당한 범죄화의 소극적 기준으로서 그 자리를 굳힌 법익사상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대신 문화적으로 각인된 행위규범을 기준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창되고 있는 것이 ‘위험형법’이다. 위험형법에 의하면 ① 보충적 법익보호사상을 실효성 있게 완화하여 보편적 법익개념 및 피해자 없는 범죄의 영역을 확대하고, 196) 이상돈, 형법학 , 앞의 책, 1/1면.

② 형법의 투입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서는 즉각 보충성의 원칙을 밀어내고 형법을 투입해야 하며, ③ 추상적 위험범의 영역 및 기수 이전의 미수․

예비 처벌범위 확대, ④ 환경형법․여성보호형법 분야에서 국민계몽의 도구화로서 형벌을 활용하는 방안 등 형법을 최우선수단화하는 예방입법․상징입법의 경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197) 특히, 환경형법․마약형법․경제형법․원자력형법․의료 생명기술형법․컴퓨터형법 등 미래기술의 발전 및 위험성이 예측되는 분야에서 보 다 강력히 적용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범죄화 수준은 이미 포화상태가 되 어 과잉범죄화에 의한 역기능 현상이 불거져 나오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비범죄화 결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형법현실은 정책․이론․실무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범죄척결’

로 대표되는 일반인보호에 중점이 놓여 있다. 범죄자 내지 그 관련자에 대한 법치 국가적 보장은 상대적으로 매우 등한시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구축이 강조 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범죄자에 대한 법치국가적 인권보장이 강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보호를 가장한 침해로서 정당성을 잃게 된다.198)

독일의 법철학자이자 형법학자인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법치국가의 본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법치국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정치 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것은 질서에 대하여 자유를, 이 성에 대하여 생명을, 규칙에 관하여 우연을, 형식에 대하여 실질을 지키는 것, 요 컨대 목적과 가치 자체를 단지 목적과 가치를 위한 수단에 대항하여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199) 이러한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지난한 역사를 거쳐 쌓아올려진 자유 주의의 사상을 기초로 발전해온 형법의 자기구속원칙을 등한시하고 형법만능주의 에 빠진 현대 한국사회의 형사정책에 대한 반성적 검토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제4절 소결

우리나라의 수많은 법률 중에서도 특히 형법은 법공동체의 안정 및 질서유지를 197) 김일수/서보학, 새로쓴 형법총론 제12판, 박영사, 2014, 60-62면.

198) 배종대, 형법총론 제13판, 앞의 책, 8/39면.

199) 최종고, 앞의 책, 198면.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법공동체의 유지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법적 이익을 보호 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200) 여기에서 필요불가결한 법적 이익이란 개인의 주 관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형법이 국가적․사회적 법익을 보호 법익으로 하고 있는 것 또한 개인의 주관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이해된 다. 개인의 주관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의 존립과 유지가 필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형법의 규정이 도덕적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은 주지 의 사실이지만, 법적 도덕주의의 견해처럼 형법의 목적이 덕을 증진하고 악을 방 지하기 위함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형벌을 그 수단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국가가 형벌이란 제도로서 국민 개인에게 가하는 것은 도덕적일 수 있는가. 이처럼 기본권 침해적인 성격을 가진 형벌이 정 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최소한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형법은 평화로운 공동생활의 불가결한 조건들을 침해하는 사회유해적인 행위양 태만을 범죄로 지목하여 금지하고 처벌할 수 있다. 만약 도덕위반행위까지도 금지 하려고 든다면, 다양한 사회계층과 그룹들은 그들 각자의 도덕관을 동원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201) 그러나 이에 따르면 사회유해성이란 개념은 정향기준으로 사용 하기에는 매우 추상적이기 때문에 남용의 소지를 안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유해성 의 확인만으로는 독자적으로 불법을 인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법익침해로 파악될 때에만 비로소 불법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형법의 목 적은 법익보호이고, 이러한 법익의 개념이 입법자의 범죄화 내지 비범죄화 대상의 선정기준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형법 규정이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면 서까지 형벌로써 보호되어야 할 ‘법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선행되 어야 한다.202) 특히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는 피해자 없는 범죄의 경우에는 대 부분 사회적 법익을 그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예컨대, ‘선량한 성풍속’, ‘건전한 근로정신’, ‘군공동 체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등은 매우 추상적이라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

200) 황태정, “자기결정의 자유와 한계에 관한 형법적 관점”, 한국사회연구 제12권 제1호, 경 기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09, 192면.

201) 김창군, “비범죄화의 실현방안”, 형사정책 제8호, 한국형사정책학회, 1996, 14면.

202) 이얼, “자기결정권 법리의 체계화를 위한 형법학의 과제”, 앞의 논문, 270면.

러한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 또한 구체화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즉 추 상적인 관념을 보호법익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침해하는 행위를 선별하여, 그 선별 한 행위로 인해 추상적인 보호법익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었는지는 명확히 확인될 수 없는 것으로서, 이를 규명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피해자 없는 범죄에 대한 위헌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대체적으로 이 익 형량을 통한 택일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추상적 관념 에 불과한 사회적 법익과 개인의 기본권인 자기결정권의 명확한 비교형량이 가능 한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이 경우 이익 형량을 통한 택일적인 결정보다는 규범조화적 해석을 지향하는 판 단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공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한되는 자기결정 권 역시 헌법상 보호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을 그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제한의 대상으로서 인정한 바 있는데,203) 그렇다면 태아의 생명권도 비례의 원칙에 따라 비교형량이 가능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이 인정되기 이전이나 태아의 발달단계에 따라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규범조 화적인 해석 또한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도덕주의에서 탈피하여 자유주의적․인도주의적 정신을 계승한 형법의 근대성은 현대에 이르러 사생활의 영역에서 비범죄화 추세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 으로 우리나라의 형법적 관념은 도덕주의적․보수주의적 태도가 강하며, 여전히 엄벌주의 경향을 띠고 있다. 이는 대중의 보편적인 인식과 다양한 위험원으로부터 의 보호적 요청을 형법이 수행하면서 이중적 면모를 가지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대중의 보편적인 인식과 그러한 보호적 요청이 사회적 편견 내지 혐오에서 비롯된 배타적 사고인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만 한다. 특히 형법은 강력한 법률효 과인 형벌을 그 수단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법익침해가 확인되지 않음 에도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사회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직접적으

203)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나

…… 비례의 원칙에 따라서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 아니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헌법재판소 1996. 11. 28. 95헌바1 전원재판부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