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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의 자기제한적 속성

근대의 형법은 국가형벌권의 ‘최소한’을 그 이념으로 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를 구현하여 자의적인 형벌권의 실행을 배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형법은 다른 수단을 다 사용하고 나서도 방법이 없을 때 최후수단으로 투입되는 보충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법리로부터 형법은 스스로의 행위를 겸억해야 한다는 원칙에 구속되는 것 이다.160) 이를 형법이 지녀야하는 단편성, 관용성, 보충성 등을 포괄한 겸억주의의 정신이라 한다. 이하에서는 형법의 자기제한적 속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자세히

158) 허영, 앞의 책, 20-24면.

159) 배종대, 형법총론 제13판, 홍문사, 2017, 8/22면.

160) 이승호, “형사제재의 다양화와 형법의 기능”, 형사법연구 제24권 제3호, 한국형사법학회, 2012, 63면.

살펴보고자 한다.

가. 법치국가원리

법치주의는 법우선의 원칙에 따라 국가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규범을 마련하 고 국가작용을 이에 따르게 함으로써 인간생활의 기초가 되는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려는 국가의 구조적 원리를 뜻한다.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의 이념에 따라 통치권을 기본권에 기속시킴으로써 국민의 정치적인 합의에 바탕을 두고 창설된 국가권력이 악용 내지 남용되는 일이 없도록 법치주의원리를 헌법상의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그런데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법치주의원리는 법률의 형식만을 중요시하는 ‘형식적 법치주의’ 내지 ‘법률만능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는 ‘실질적인 법치주의’ 내지 ‘법의 국가’이다.161)

죄형법정주의를 이러한 법치국가원리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그 내용 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법치국가원리는 법적안정성을 요구하는 형식적 법 치국가원리와 더불어 실질적 법치국가원리에 따라 그 내용 또한 실질적 정의에 합 치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현대적 의미의 죄형법정주의’라 한다. 이 점에 서 현대적 의미의 죄형법정주의는 법관의 자의 및 입법권의 자의로부터 국민의 자 유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162)

국가형벌권이 자의적으로 확장되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침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한 죄형법정주의는 끊임없이 새롭게 성찰되어야 한다. 입 법․사법을 막론하고 형식적 합법성으로 위장하여 자행될 수 있는 위험성은 여전 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163) 따라서 법치국가원리에서 파생된 현대적 의미의 죄 형법정주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존중을 전제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국가권력 을 제한하는 기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법치국가원리는 모든 입법, 특히 형벌이라는 법익침해를 수단으로 하여 법익을 보호하는 형법의 자기제한적 속성을 요구하는 기본적 이념이라 볼 수 있다.

161) 허영, 앞의 책, 150-151면.

162) 이재상/장영민/강동범, 형법총론 제9판, 앞의 책, 2/11면.

163) 배종대, 형법총론 제13판, 앞의 책, 9/4면.

나. 형법의 단편성

사회통제는 사회규범과 법규범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회통제 전체 체계에서 사회 규범과 다른 법규범의 몫을 고려하여 보면 형법이 담당하는 질서유지의 몫은 극히 적은 일부분에 속한다. 이를 형법의 단편적 성격이라 한다. 이는 형법이 사회의 모 든 질서를 유지하여야할 임무를 갖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가벌성이 인정되는 제 한된 영역에서 법익보호임무를 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64)

만약 법규범이 사회의 모든 질서유지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공동체의 영역 또는 국가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기능하는 영역 자체가 침해당할 위험이 생긴다. 이로 인해 그러한 생활영역에 속하는 국민 개인의 자유까지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개입이 늘어날수록 개개의 생활영역에서 법적 규율의 밀도가 높아지게 되고, 나아가 법의 양적 증대로 인한 ‘법률의 과잉’이 초래되어 결과적으 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게 된다.165) 가장 강력한 사회통제 수단인 형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침해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위협의 정도는 다른 법규범에 비견할 수 없을 만큼 현저히 크다고 볼 수 있다.

형법의 단편성은 사회통제 전체 체계에서 형법이 갖추어야할 정당성의 조건으로 서 형법의 자유․법치국가적 성격을 나타낸다. 이 점에서 형법 이외의 다른 법규 범이 담당해야할 영역을 형사법률로서 규제하는 경우에 정당성이 결여된 입법이라 할 수 있으므로 비범죄화 되어야 할 대상에 속한다고 한다.166) 이러한 형법의 단편 적 속성은 형법이 지녀야 할 겸억성의 이유이자 형법만능주의적인 사회통제가 지 양되어야 하는 하나의 근거인 동시에 비범죄화의 강력한 근거로 작용한다.

다. 형법의 관용성

형법의 관용성 또는 관용주의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함으로서 개인의 이 익이 침해되거나 다른 통제수단으로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형법은 이를 빈틈없이 처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복잡한 현대 생활 에 있어서 많든 적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손상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기 164) 배종대, 형법총론 제13판, 앞의 책, 7/9면.

165) Kurt Seelmann/윤재왕 역, 앞의 책, 25-26면.

166) 배종대, 형법총론 제13판, 위의 책, 7/10면.

때문이다. 그래서 개개인마다 어느 정도까지는 타인의 침해를 감수하게 된다. 이러 한 모든 행위를 처벌하려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자율성과 권리를 침해할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형법의 관용성을 고려하여 사회적으로 유해하고 개 인 간의 공동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만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요청하게 된다.167) 이러한 견지에서 국가권력은 개인의 주관적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 자기목적이 있으며 오로지 그 목적의 실현을 통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형법은 개개인의 주관적 권리 보장, 즉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자유와 권리를 누리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만 하는 자유로운 행위의 한계를 객관 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행위의 규범적 한계를 개개인의 실 천이성 또는 자율적 도덕의 이성에 의하여 설정하도록 두지 않고, 그들의 대표인 의회가 법률로서 정하여 개인과 국가권력 모두가 그에 구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법은 자유로운 행위의 규범적 한계를 규제하는 역할 이외에는 어떠한 경 우에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168)

라. 형법의 보충성

형법은 사회생활에 불가결한 법익을 보호하는 것이 형법 이외의 다른 수단에 의 해서는 불가능한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적용될 것을 요구한다. 이를 형법의 보 충성의 원칙이라고 한다.169)

무엇보다도 형법에 수반되는 법익침해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형법 투입에 앞서 사회통제의 다른 수단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회적․법적 통제수단들 이 사회분쟁상황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하는 곳에서만 형법은 비로소 보충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이와 같은 보충성의 원칙에 구속되지 않고 형법이 사회통제의 중심적인 수단이 되면 사회통제 전체 체계 내의 영역 침범으로 그 정 당성이 상실된다고 볼 수 있다.170) 사회규범과 법규범은 각각의 몫을 가지고 있으 167) 이주일, “형법상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소고”, 비교법학연구 제5권, 한국비교법학회, 200

5, 177-178면.

168) 이상돈, 형법학 , 법문사, 1999, 6/8-15면.

169) 이재상/장영민/강동범, 형법총론 제9판, 앞의 책, 1/12면.

170) 배종대, 형법총론 제13판, 앞의 책, 7/13면.

므로 사회통제수단의 일부로서 형법의 임무 또한 사회적 행위규제의 일부분만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적 위험의 방지 및 갈등해소의 모든 영역에서 만 능적인 수단으로 투입되는 것은 허용될 수 없기 때문에 형법은 보충성의 원칙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171) 이는 형벌의 최후수단성으로부터 나오는 형법의 단편성이 동시에 형법의 보충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172)

한편 형법이 어떤 법익을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보충성의 원칙 이 작용한다. 이는 형법의 탈윤리화 요청과 연결된다. 형법은 다른 법률의 수단과 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법률효과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즉 형법의 기능이 헌법 질서가 보장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필요한 전제를 보호하는 데 제한되어야 하 고, 국가가 형벌을 수단으로 특정한 종교적․도덕적 가치관을 강제하는 것은 그것 이 사회생활의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기능이 되지 않는 한 허용될 수 없다는 것 이다.173) 또한 형법에 의한 특정한 윤리적 관점의 강요는 시민사회의 자율적 문제 해결능력을 약화시킬 위험성이 높다. 예컨대, 개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바가 없이 단지 사회윤리적 의무를 위반하는 데 그치는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에 대한 관용이나 설득 및 교육을 통한 시민사회의 자율적 문제해결능 력을 점차 약화시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율 성을 박탈하고 동시에 국가형벌권으로써 법익침해를 부과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 를 현저히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충성의 원칙은 어떤 특정한 윤리적 관점에 의해 모종의 이익이 형법의 보호법익으로 되는 것을 금지하여 형법의 한계 영역을 설정하고 이를 구속하는 법리가 된다.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