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미적 판단의 규범성에 관한 레빈슨의 이론과 설명적 유용성
1.3 현상적 인상의 본성: 발현적 속성
레빈슨에 따르면 속성이란 대상이 존재하는 방식(ways things are,ways ofbeing)이다.그리고 외양(appearance)은 대상이 드러나는 방식(waysofappearing)으로,이는 대상의 존재 방식 중 하나이다.126)그 126)철학에서 일반적으로 대상의 실재와 외양을 대립 관계로 보는 데 반해,레 빈슨은 외양을 대상이 드러나는 방식,따라서 대상이 존재하는 방식의 하위 집합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전통적으로 실재는 참,필연,불변 등 과 같은 의미를 지닌 반면,외양은 이와 반대로 거짓,우연,가변 등을 의미 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그러나 레빈슨의 경우 실재와 외양의 차이를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다.즉,레빈슨은 주관의 경험에 전적으로 독립적 인 어떤 것으로서의 실재 속성을 상정하기 보다는,우리가 지각하는 외양을 곧 실재로 보고 있다.지마흐(Eddy Zemach)역시 레빈슨과 같은 의미로 외 양과 실재를 동치의 개념으로 간주한다.레빈슨의 독특한 외양 개념에 관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김진아(2012),「레빈슨의 절충적 실재론에 대
리고 대상이 드러나는 방식인 외양은, 달리 표현하자면, 발현 속성 (manifestproperty)이다.발현 속성(manifestproperty)이란,외양 안에서 그리고 외양을 통해서 그 본질을 드러내는 속성을 말한다.레빈슨에게 미적 용어의 본질이 평가적 함축이라기보다는 외양(appearance)인 것이 다.그렇다면 모든 외양,즉 모든 드러나는 방식은 (또는 모든 발현 속성 은)곧 미적 속성인가?그건 아니다.
레빈슨은 미적 속성은 발현 방식 중에서도 고차원의 발현 방식 (higher-order ways of appearing, higher-order manifest way of appearing)이라고 말한다.풀어서 말하자면 미적 속성이란 섬세하다,우 아하다,멜랑꼴리하다,통일적이다,균형 잡혔다 등과 같이 고차원적으로 그 외양을 드러내는 발현 속성이다.그렇다면 고차원적 발현 속성이 개 념적으로 전제하는 저차원적 발현 속성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작품의 색,크기,높이,너비,음색,형태,질감,리듬,박자 등 일반적으로 작품의 구조적 속성 또는 지각 가능한 비미적 속성들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이 여 기 포함된다.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드는 물음은 도대체 어떤 것들을 미 적 속성이라 여기고 어떤 것들을 비미적 속성으로 여기는가의 문제이다.
미적 속성과 비미적 속성의 분류 기준은 미학 논의에서 미적인 것의 개 념에 관한 고찰과 함께 빈번하게 다뤄져온 전통적 주제이며,미학자마다 그 분류 기준이나 각각의 범주에 귀속시키는 속성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 다.본 논의에서는 레빈슨의 설명에 따라,미적 속성 역시 시각적 또는 청각적으로 지각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색이나 음과 유사하지만,이들보 다 미묘하고 포착하기 까다롭다는 정도로 이해하겠다.(물론 이것이 정 의적 규정은 아니다.)
미적 속성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레 빈슨의 주장에 따르면 미적 속성은 고차원적 발현 속성이지만,그렇다고 모든 고차원적 발현 속성이 미적 속성은 아니라는 점이다.즉 고차원적 발현 속성 중에서도 미적 속성이 되려면 추가적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 비판적 고찰-미적 판단의 일치와 불일치를 중심으로」,『미학』,제69집, pp.94-5.
하는데,그 조건으로 레빈슨은 가치 관련성(value-related)을 꼽는다.
비록 모든 미적 속성들이 가치-경향적(value-tending)인 것 은 아니지만, 어쨌든 모든 미적 속성들은 가치-관련적 (value-related)속성이라는 점은 참인 것 같다.즉,초견적 으로(prima-facie)그 속성들을 소유한 대상의 미적 평가의 지지 근거로 이해될 수 있는 속성들이다.따라서 어떤 발현 방식이 미적 속성이 되려면,고차원적 지각 속성이거나 또 는 다른 저차원적 지각 속성에 비대칭적으로 의존적이며, 가치-관련적이어야 한다.127)
요컨대 미적 속성이란,저차원적 지각적 속성들로 인해 발생 한 고차원적 지각 속성들 중 그 작품의 미적 가치와 관련되는 속성들 을 말한다.레빈슨이 미적 속성을 발현 속성으로 본다는 것은,외양,지 각적 성질을 미적 속성의 본성으로 간주함을 의미한다.그리고 미적 속 성이 발현 속성(manifestproperty)이라는 것은 이미 그 스스로 현상적 인상을 드러내고 있음을 의미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빈슨의 미적 속 성론은 종종 성향적 속성론으로 잘못 이해되기도 한다.128)이러한 이해에 따르면,미적 속성은 정상 지각자라는 조건과 적절한 상황 조건이 만족 되었을 때 비로소 발현되는 성향의 형태로 그 대상에 실재한다.성향적 속성의 대표적인 예로 유리의 깨질 수 있음(fragility)이 종종 제시된다.
유리컵은 단단함의 정도가 어느 수준 이상인 바닥에 특정 수준 이상의 힘을 주어 던져졌을 때 비로소 깨진다.즉,깨질 수 있음이라는 성향이 발현된 것이다.그러나 같은 유리컵을 5cm 높이에서 카펫이 깔린 바닥 에 떨어뜨린다면 아마도 깨지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유리컵 이 깨지지 않았다고 해서 깨질 수 있음의 성질(속성)이 유리컵으로부터 사라진 것이거나 유리컵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다만, 127)Levinson(2006b),p.342.
128)김진아 역시 레빈슨의 속성실재론을 성향적 속성으로 이해하고,“깨질수 있음(fragility)”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김진아,op.cit.,p.92,p.104.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에 그 속성이 발현되지 않았을 뿐,깨지지 않은 유리컵도 여전히 깨질 수 있음의 성질(속성)을 성향(disposition)의 형태 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성향적 속성 이론은 대상이 가진 속성 자체의 성질과 그 속성의 발현 조건(지각자 조건과 상황 조건)간의 관계로 속성을 분석한다.따라 서 관계적 속성이 갖는 장점,즉 속성이 발현되지 않고 관찰되지 않더라 도 실재를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그러나 레빈슨은 미적 속성이 성향적 속성이 아니라고 명백히 밝힌다.129)
레빈슨은 성향적 속성과 발현적 속성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 명한다.전술한 바,미적 속성은 발현 속성으로 직접적으로 지각 가능하 다.비록 고차원적 지각 속성으로서 저차원적 지각 속성 –예컨대,색상, 형태 등 대부분의 물리적 속성-에 의존적이며 이들보다 미묘하고,따라 서 쉽게 한 눈에 포착하기 어려운 점은 있지만,분명 직접 지각 가능한 속성이다.130)반면,성향은 외양을 드러내는 성향일지라도 지각자의 조건 과 상황 조건에 관계적인 속성이다.성향은 어떤 힘에 의해 유도된 변화 또는 결과로서 사후적으로 추론 가능할 뿐,대상에서 직접 드러나는 외 양적 속성(appearanceproperties)또는 발현적 속성(manifestproperties) 은 아니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지각 가능성이 강조되는 속성이라고 해서 그 개념에 지각자를 어떤 구성 요소로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발현 속성은 분명 지각 가능한 것이지만,발현 속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129) 레빈슨은 “Aesthetic Properties,Evaluative Force,and Differences of Sensibility”(2001)320쪽 각주16을 통해 성향적 속성이 아니라는 점을 간단히 언급한 바 있으며,이후 “WhatAreAestheticProperties?”(2006b)의 343-4쪽 을 통해 성향적 속성과 발현적 속성의 차이를 대비시키고 미적 속성은 발현 적 속성임을 강조한다.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논문에서는 레빈슨 스스로 “성 향(disposition)“이라는 용어를 통해 속성을 설명해왔다.이 때문에 레빈슨의 이론이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성향적 미적 속성’으로 잘못 이해되기도 한 것 으로 보인다.
130)레빈슨이 미적 속성의 본성에 대해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어휘들-외양, 현상,고차원적 지각 방식 등-을 통해 알 수 있듯,레빈슨에게 지각 가능함 (perceivability)은 미적 속성의 주요한 특성이다.
지각자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성향적 속성과 대비되는 바로 이 점에 우 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엄격한 의미의 ‘성향’은 적절한 지각자 조건과 적합한 상황 조건을 개념적으로 포함한다.레빈슨이 제시한 예를 살펴보 자:
어떤 대상은 그 대상의 독특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관한 관 찰자에게 특정 방식으로 드러나는 성향을 갖지 않고도 바로 그렇게 드러나는 방식을 소유할 수 있다.예컨대,태양의 핵을 감싸고 있는 구역인 복사층(radiation zone)은 붉은 스펙트럼 빛을 방출한다고 여겨지며 따라서 그 색이 radiantred라고 간 주된다;그러나 그 어떤 정상시력의 관찰자도 그러한 관찰에 필요한 상황에 존재할 수 없기에,태양의 복사층은 유관한 관 찰자에게 그러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성향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물론 어떤 색을 가진 대상은 전형적으로(일반적으로)그 색으로 드러나는 성향을 가졌다,그러나 그 성향은 색의 결과 이지 색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131)
보여지는 방식인 발현 속성은,물론 상황 조건과 지각자의 범위가 한정 되며 이에 제한되기는 하지만,이 제한 조건(parameter)이 그 속성의 개 념 자체에 개입되는 것은 아니다.이 점에서 외양적 속성(보여지는 방식) 은 관계적 속성이 아니다.132)(반대로,성향은 관계적 속성이다.)
131)Levinson(2006b),“Whatare Aesthetic Properties?,”Contemplating Art, OxfordUniversityPress,p.343-4.
132)주지하는 바와 같이 레빈슨은 미적 속성이 관계적 속성이 아니라고 단언 하였다.그러나 미적 판단의 주관성과 객관성을 아우르는 설명을 찾고자 하 는 우리의 목적 상 관계성을 포기하기는 어렵다.이러한 요구를 레빈슨을 ‘미 적 경험’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해소하는 거으로 보인다.레빈슨에 따르면 미적 경험이란,대상이 어떤 미적 속성을 가질 것 + 속성의 발현 조건이 충족 될 것 + 적합한 지각자가 이를 인지하고 반응할 것,이렇게 세 가지 요소로 구 성된다.따라서 미적 판단을 미적 경험에 관한 진술이라고 볼 때,여기에 객 관적 미적 속성에 대한 보고와 지각자의 반응 표현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건 발생적(우연적)사건이다:
“보여지는 방식(속성)W에 적합한 주체들이 W를 소유한 대상을 W로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