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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요유逍遙遊

1.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

1-1.

북방의 어두운 곳에 큰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이 곤이었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 는지 알 길이 없다. (곤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이 새를 붕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 천 리 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붕이) 화가 나 날게 되면 그 날개가 구름 수천을 덮는다. 이 새는 또한 바다를 규칙적으로 도는데, 장차 아득한 남쪽인 천지로 가려 한다.

1-2.

『제해』는 괴이한 이야기들이 있는 책이다. 『제해』에는 붕이 남쪽 어두운 곳으로 가면 삼천 리나 되는 물을 차고 오르며, 구만 리나 되는 하늘 위를 난다고 한다. 여섯 달을 숨 한 번 쉬는 동안(쉬지 않고) 간다고 한다.

1-3.

아지랑이와 먼지는 생물이 서로 내뿜는 숨길이다.

1-4.

하늘이 푸른 것은 원래 색이 그러하다는 것인가. 무한히 멀리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무한히 머니 땅이 푸르게 보일 것이 아닌가?

또한 물이 쌓인 곳이 두텁지 않다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오목한 조그만 곳에 물을 채 우면 먼지는 뜨겠으나, 그 자리에 잔을 놓으면 어찌 전과 같이 뜨겠는가. 이는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바람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면 큰 날개에게 무용지물이 란 것이 당연하다. 구만 리 위에서는 그만큼의 바람이 아래에 있으므로 이 바람을 다스려 푸른 하늘을 거슬림 없이 날아 남방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1-5.

매미와 비둘기가 함께 ‘우리는 일어나 나무 사이를 날아다닐 뿐이다.’고 비웃었다. ‘어떤 때 는 이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구만 리 위에서 남방으로 어찌 날아가겠는 가?’ 풀숲을 걷는 사람은 세 끼 밥만 먹고 돌아와도 배는 여전히 부를 것이며, 백 리를 가 는 사람은 전날 밤부터 먹을 것을 준비한다. 천 리를 가는 사람은 석달 전부터 음식을 준비 해 가지고 간다. 이 두 마리 벌레들이 이 뜻을 어찌 알겠는가.

1-6.

(2)

작게 아는 사람은 결코 큰 것을 알지 못하며, 요절한 사람은 또한 장수한 사람에 미치지 못 한다. 어찌 이를 알 수 있는가. 아침의 버섯은 하루를 알지 못하고, 여치와 땅강아지는 1년 을 알지 못한다.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초나라 남방의 명령은 5백 년을 봄과 가을로 삼았 고, 상고 시대의 대춘은 8천 년을 봄과 가을로 삼았다. 그런데 지금 세상엔 (겨우) 팽조가 장수했다고 하니,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1-7.

탕왕이 극에게 이와 같이 물었었다. ‘초목이 다하는 북방 끝에는 어두운 바다가 있는데 이 것이 천지다. 그곳엔 물고기가 한 마리 있는데, 넓기가 수천 리에 이르고, 길이는 아는 사람 이 없다. 이 물고기는 곤이라 한다. 여기 붕이란 새도 있다. 등은 태산과 같았으며, 날개는 구름 수천 개를 덮을 만큼 컸다. 바람을 타고 9만 리를 올라서 구름조차 없는 곳에서 푸른 하늘을 등지고서야 남방으로 간다. 이는 남방의 바다로 가려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세 가 락 메추라기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날기를 불과 몇 길도 오르지 않고 다시 내려와 쑥 사 이를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다. 이것만 해도 좋을 것을, 붕은 어디까지 간단 말인가.’ 이것이 작고 큰 것의 차이다.

1-8.

그래서 아는 것은 벼슬아치 하나 정도며, 행동은 일개 시골에 어울릴 정도고, 덕은 군주 하 나에게 마음에 들 정도며, 한 나라의 부름을 받을 정도의 인물이 스스로를 보는 눈이 바로 이 메추라기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송영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 오히려 웃었다. (송영자 는) 세상이 그를 예우해도 기뻐하지 않았으며, 힐난하더라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송영자 는)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였으며, 영예와 치욕의 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속세 일에 안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열자는 바람을 다스려 타고 다녔으며, 시원한 바람을 즐기다가, 보름이나 지나서 돌 아왔다. 열자는 들어오는 복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니는 것은 면하였으나(발로 다니 는 수고), 오히려 바람에 의지해야 했다. 만약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고, 6기의 변화를 다 스리며, 무한한 세상에서 노니는 자가 있다면, 이는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그래서 말하기를, 지인은 그침이 없고, 신인은 뽐내지 않으며, 성인은 유명하지 않다 하는 것이다.

2. 쓰임새와 명성

2-1.

요가 허유에게 천하를 넘겨주려 하며 말했다. ‘해와 달이 떴는데도 횃불을 태우는 것은 근 심이 아니겠는가. 비가 오는데 물을 대는 것은 또한 근심이 아닌가. 그대와 같은 사람이 천 하를 다스려야 하거늘, 오히려 나와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 스스로 보기에도 모자란 점이 있다. 천하를 맡아달라.’ 그러자 허유가 말하기를, ‘그대가 천하를 다스리니 세상이 이 미 평안하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내가 오히려 그대를 대신한다면 내 이름만 장차 알려지

(3)

지 않겠는가? 명성은 실제에 대한 허울에 불과한 것인데, 내가 장차 그리 되고 말 것이다.

뱁새와 메추라기들이 숲에서 산다 한들 가지 하나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고, 두더지가 강물 을 마신다 한들 스스로 배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돌아가 임금 노릇이나 잘 하라.

천하는 (내겐) 쓸 데 없는 것이다. 숙수熟手가 일을 돌보지 않는다고는 하나 어찌 귀신이 제사상을 넘나들며 이를 도울 수 있겠는가.’

2-2.

견오가 연숙에게 말했다. ‘내가 접여에게 듣기를, 황당하기 그지없고, 나아갈 뿐 되돌지는 않으니, 내가 놀라 두려워 한수가 끝이 없는 듯하였다. 다른 사람과 대단히 다른데 통념과 어찌 가깝다 하겠는가?’ (연숙이 대답했다.) ‘막고야산에 신기한 사람이 하나 사는데, 피부는 눈이나 물과 같고, 몸매는 처자와 같다. 5곡을 먹지 않으며, 숨을 쉴 때는 이슬을 마신다.

구름을 타고 나는 용을 다스려 4해(세상) 밖으로까지 다닌다. 그 사람이 집중하면 병이 사 라지고 곡식이 익는다. 이런 미친, 난 이걸 믿을 수 없다.’ 연숙이 말했다. ‘소경은 좋은 문 장을 볼 수 없고, 귀머거리는 멋진 소리를 들을 리 만무하다. 하나 이는 귀와 눈에 달린 것 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도 해당된다. 오히려 이것이 이르는 것이 바로 그대인 것이다. 그 사람의 덕은 장차 널리 두루 만물에 미쳐 만물을 하나로 이룰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어지 럽다 한들 어찌 힘써 경영하여 천하를 위해 일하려 하겠는가? 그 사람은 거스를 것이 없는 사람이다. 물이 크게 넘쳐도 하늘의 뜻을 헤아려 잠기지 않으며, 물이 크게 말라 쇠와 돌이 흐르고 흙산이 타더라도 타죽지 아니하다. 먼지, 때, 겨나 쭉정이를 가지고 (능히) 요와 순 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천하를 위해 힘쓰려 하겠는가?’

2-3.

송나라 사람이 은나라 관을 지고 월나라로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 고 문신을 했으므로 소용이 없었다.

2-4.

요는 천하 사람들을 다스려 주변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막고야산의 네 신인 神人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분숫가에서 햇빛을 맞고 멍청히 보다가 세상사를 잊고야 말았다.

2-5.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내게 큰 박씨를 하나 주었다. 내가 박씨를 심어 키웠더니 박이 바위 다섯 개만큼이나 열렸다. (그런데) 물과 즙을 담았더니 딱딱하여 (도저히) 혼자 들 수가 없었다. 이를 표주박으로 쓰기 위해 떨어뜨려 갈랐더니 텅 비었고 크기만 커 쓸모 가 없었다. 나는 (결국 박이) 쓸모가 없어 없애고 말았다.’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큰 것을 쓰는 데 어리석다. (어떤) 송나라 사람이 손이 갈라지지 않게 하는 약을 잘 만들었다. (그 사람은) 집안 대대로 솜 빠는 일을 했다. (하루는) 손님이 이를 듣고 찾아와서 (약을 만드

(4)

는) 방법을 백금에 사려고 했다. (그러자 송나라 사람이) 가족들을 모아 논의하기를, ‘우리는 대대로 솜을 빨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약 만드는) 기술을 백금 에 팔라고 들었다.’ 객이 기술을 받아 오왕에게 이를 말했다. 월나라와 싸움이 붙자 오왕은 손님을 객장으로 삼아 겨울에 월나라를 수전에서 크게 격파했다. (오왕은 객장에게) 땅을 나누어 제후로 삼았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기술일 뿐인데, 어떤 자는 제후가 되었고, 어떤 자는 솜 빠는 데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다. 쓰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번에 자네가 바 위 다섯이 들어갈 정도로 큰 박으로 어찌 술통을 만들어 강호에 띄워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너무 커서 소용이 없다고 근심만 하는가. 이는 자네 마음이 따로 놀기 때문일 것이다.’

2-6.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나한테 큰 가죽나무가 있다. 본래 줄기에 옹이가 종기처럼 나있어 먹줄을 대지 못하고, 가지가 작고 굽어있어 자도 세울 수 없다. 그래서 칠하는 사람이 돌아 보지 않았다. 지금 자네의 말이 크긴 하나 쓸 데가 없으니 사람들이 이 나무와 같이 생각하 지 않겠나.’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몸을 낮게 숨기며 노는 너구리와 성성이를 본 적이 없 군. 천지 분간 못하다가 촘촘한 그물에 죽고 만다. 요즘 태 땅의 소는 크기가 드리운 수천 구름과 같다고 한다. 이는 큰 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쥐는 처리하지 못한다. 지금 자 네는 큰 나무가 있으나 이것이 쓸 데가 없다고 고민하고 있다. 어찌 아무도 없는 마을이나 허허벌판에 이를 심으려 하진 않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닐다가 그 아래 누우려하진 않 는가. 나무에 도끼질을 해 나무가 일찍 죽지 않은 것은 나무가 쓸모가 없기 때문이었다. 편 안함이 어찌 괴로움이 될 수 있겠는가.’

(5)

제물론齊物論

1. 세상 만물의 다양함, 오상아

1-1.

남곽의 영자기가 상에 앉아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몸도 마음도, 세상 모든 타인他人 을 잊은 채 탄식하는 것이었다. 자유가 시중을 들다가 물었다. ‘어찌 된 일인가? (그대가) 마른 나무처럼 굳은 것 같아 보이고, 마음은 타서 식은 재가 된 듯하다. 지금의 그대는 예 전의 그대가 아니다.’ 자기가 말했다. ‘자유! 참으로 좋은 물음이구나. 요즘 난 스스로를 잃 어버렸다. 그대는 이를 아는가. 그대가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면 땅의 소리를 듣지 못할 것 이고, 땅의 소리를 듣는다면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자유가 말하였다. ‘감히 그 도리를 묻고자 하오.’ 자기가 말했다. ‘대지大地의 하품을 바람이라 한다. 이는 오직 일어나 지 않으면 그 뿐이다. (하지만) 일어나면 곳곳이 노여운 소리를 낸다. 어찌 바람 소리를 들 은 적이 없다 하겠는가. 산등성이 대단히 높은 곳에 백 아름이나 되는 나무들의 구멍은 코, 입, 귀, 가로보의 구멍, 술잔, 절구, 깊고 얕은 웅덩이와 같다. 세찬 소리, 부르짖는 소리, 볏 짚 소리, 꾸짖는 소리, 빨아들이는 소리, 외치는 소리, 우는 소리, 바람이 굴을 지나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가 모두 그러한 것이다. 앞에서 가벼운 소리를 내면, 뒤에선 무거운 소리 로 따른다. 악기 소리엔 작게 답하며, 회오리 소리엔 크게 답하는 것이다. 괴로운 바람이 지 나면 많은 구멍들이 조용해진다. (그대도) 작고 크게 흔들리는 것을 어찌 못 보았겠는가.’

자유가 말했다. ‘땅의 소리는 많은 구멍일 따름이고, 사람의 소리는 대나무 등에서 나는 소 리다. (이번엔) 감히 하늘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자기가 말했다. ‘모두가 스스로의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같은 것이 하나 없는 것은 모든 구멍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스스로 숨을 내뱉는데, 이 기세를 내는 것은 누구인가?’

2. 말에 대하여

2-1.

많이 아는 자는 품위가 있고, 적게 아는 자는 사사롭기 이를 데 없다. 훌륭한 말은 절도 있 고, 비루한 말은 수다스럽기만 하다. 잠이 들어야 귀신과 만날 것이고, 깨어야 몸이 움직일 것이다. 더불어, 만나 얽히며 날마다 갈등을 빚는다. 절제 없는 사람도 있고, 속이 깊은 사 람도 있으며, 빽빽한 사람도 있다. 조금 두려우면 벌벌 떨 뿐이지만, 크게 두려우면 진정할 수조차 없다. 궁이나 노에 활을 걸어 쏜다는 것은 시비를 가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며, 맹약 하며 머무른다는 것은 지켜 이긴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2-2.

궁이나 노에 활을 걸어 쏜다는 것은 시비를 가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며, 맹약하며 머무른다 는 것은 지켜 이긴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6)

2-3.

가을과 겨울에 해가 짧아지는 것은 (사물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는 이처럼 빠져들어가 (결국)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막아 봉해놓는다면(마음을 봉해 놓는다면) 언젠간 넘치게 될 것이다. 죽기 직전의 마음은 다시 돌아갈 길이 없다.

3. 이치가 존재하고, 이를 보존해야 함

3-1.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근심, 탄식, 변덕, 두려움, 경솔함, 편안함, 선도 등은 빈 곳에서 나온다. 균이 증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낮밤은 서로 번갈아 나타나지만, 그 근원이 어디인가 에 대해선 알 길이 없다. 안타깝다. 날이 새고 저무는 동안 이를 겪는 것은 그 근원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저것이 아니면 내가 있을 수 없을 것이고, 내가 아니면 마찬가지 저것 이 취할 바가 없게 된다. 이 역시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원인인지 모른다. 무 언가 있다 하더라도, 특기할 증좌를 잡을 수가 없다. 작용은 있으나 형태는 볼 수 없으므로 감각적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3-2.

(사람에겐) 뼈 백 마디, 아홉 구멍, 여섯 장이 모두 갖춰져 있다. 어느 것과 친숙한가. 이 모 두를 좋게 생각하는가. 사사로이 그러한 것이 있는가. 이 모두는 종과 같은 것인가. 이 종들 은 (그럼) 서로 돌보기엔 부족하지(피동적인 존재이므로.) 아니한가. 서로 번갈아 주종이 바 뀌는가. (계속 바뀌더라도) 본질적인 주는 있을 것이다. 정情을 얻든 얻지 못하든 상관없이, 주主의 진면목은 평가절상이나 절하 되지 않을 것이다.

3-3.

일단 형체를 받았으면, 다할 때까지 변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사물이 더불어 서로 베고 쓰러뜨린다. 이렇게 폭주해 능히 그칠 수 없음이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몸이 다할 때 까지 골몰하면서도 성공하는 꼴을 한 번 못 보고, 나른하며 피곤한 모습으로 늘어져 있으면 서도 돌아갈 곳을 알지도 못한다면 슬픈 일이 아닌가. 사람이 죽지 않는 경지에 이른들 무 슨 소용이 있는가. 몸이 변함에 따라 마음도 변해간다면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삶 은 이렇듯 부질없는 것인가. 나 홀로 어리석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어리석은 것인 가.

4. 편견(시비, 성취, 쓰임새), 양행, 보광, 지인, 물화

(7)

4-1.

스스로 자기 편견을 주관으로 삼는다면, 누구나 주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찌 반드시 천 하의 변화를 알아 그 마음에 스스로 취하는 자가 그러한 주관을 가지겠는가. 어리석은 자도 마찬가지로 주관을 가질 것이다. 아직 마음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거늘(편견이 없는 상태인 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분쟁)이 있다는 것은 오늘 월나라에 갔는데 어제 이르렀다는 것 이다. 이는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신묘한 우가 있다 하더라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난들 어쩌겠는가.

4-2.

대저 말은 바람이 아니다. 말에는 견해가 들어있으나, 특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과연 말이 란 존재하는가. 경험한 적은 있는가. 말은 새 새끼가 우는 소리와 다르다고 하는데, 같은가, 다른가. 도는 어디 숨었다가 참과 거짓이 있으며, 말은 어디 숨었다가 옳고 그름이 있는 것 인가. 도는 어디에 가서 없는 것이며, 말은 어디에 존재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인가. 도는 작은 이룸에 숨어있고, 말은 영화 속에 숨은 것이다. 그러므로 유가와 묵가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그른 바를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하는 까닭이다.

4-3.

(즉)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하려면 저문 것을 밝은 것처럼 대해야 할 것 이다. 사물은 저가 아닌 것이 없고, 이가 아닌 것도 없다. 저는 저의 입장에서는 볼 수 없지 만, 이의 입장에서는 그를 아는 것이다.(저쪽에서 보면 안 보이지만, 이쪽에서 보면 보인다.) 그래서 이르기를, 저는 이에서 나오고, 이는 저에서 나온다 하는 것이다. (이는) 이와 저가 함께 생겨난다는 설이다. 하지만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삶이 있다. 옳음 이 있으면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으면 옳음이 있다.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 기에 옳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삶이 있다. 옳음 이 있으면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으면 옳음이 있다.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 기에 옳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하늘의 뜻에 옳음을 견줄 뿐, 속박되지 않는 것이 다.

4-4.

이가 또한 저며, 저가 또한 이다. 저는 또한 한 가지 옳고 그름이며, 이 또한 한 가지 옳고 그름이다. 과연 이와 저는 존재하는가. 과연 이와 저는 존재하지 않는가. 저와 이는 상대를 얻을 수 없으니, 이를 도의 근원이라 한다. 근원은 원의 중심을 얻는 것에서 시작되고 다함 이 없다. 옳음 또한 다함이 없으며, 그름 또한 다함이 없도다. 그래서 저무는 것이 밝은 것 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4-5.

(8)

손가락을 생각하자. 손가락을 손가락이 아닌 것에 비유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손가 락에 빗대는 것만 못하다. 말을 생각하자. 말을 말이 아닌 것에 빗대는 것은 말이 아닌 것 을 말에 빗대는 것만 못하다. 하늘과 땅은 손가락 하나며, 만물은 말 한 마리인 것이다.(모 든 사물을 같은 점에서 볼 수 있다.)

4-6.

길은 다니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고, 사물들은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원 인이 있어 옳을 수도 있고,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원인이 있기에 당연할 수도 있으며, 그렇 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 그리 되는가. 그러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찌 그리 되지 않는 가. 그렇지 않으므로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물은 원래 그러한 바가 있고, 원래 옳은 바가 있다. 그렇지 않은 사물은 없다.

4-7.

고로 기둥과 풀을, 공려와 서시를 비교한다는 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도를 통해 선 전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나눠지는 게 있으니 이뤄지는 게 있고, 이뤄지는 게 있으니 부숴지는 게 있다. 모든 사물은 이뤄짐과 부셔짐이 없다. 도를 통하여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오직 통달한 사람만이 통해 하나가 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로써, (통달한 사람 은) 편견을 갖지 않고 본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 함을 알지 못하는 것(본질을 바라보는 것)을 도라 이르는 것이다.

4-8.

우리 정신을 수고롭게 하여 하나가 되고자 하나 같음을 알지 못하니 이를 ‘아침에 세 개’라 고 한다. 무엇이 ‘아침에 세’ 개인가. 저공이 도토리를 주며 말하길, ‘아침에 셋, 저녁에 넷 을 주겠다.’라 하니 원숭이들이 화를 냈다. (그래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

라 하니 원숭이들이 기뻐하였다. 명분과 실제가 바뀌지 않았음에도 기쁨과 노여움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성인은 이를 통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멈추고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이를 양행이라 한다.

4-9.

옛 사람은 앎이 다다른 적도 있었다. 어디까지인가. 사물이 처음 시작되어 있는 것이 아니 라고 했다. 이는 뛰어난 것이라 그른 것도, 더할 것도 없다. 다음은 처음 사물은 있었으나 그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은 사물의 구분은 있었으나 옳고 그름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나타난 것은 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도의 흐름이 무너진 것은 사랑(편애)이 생겼기 때문이다.

4-10.

(9)

그럼 과연 이뤄지는 것과 이지러지는 것은 있는가. 이루는 것과 무너지는 게 있으니 소씨가 북과 가야금을 연주했던 것이며, 이루는 것과 무너지는 게 없으니 그렇지 않았다. 소문의 북과 가야금, 사광의 지팡이, 혜자의 오동나무, 이 셋은 당대 최고였기에 지금까지도 기록되 어 전해지는 것이다. 오직 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다른 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달랐기에 다른 사람에게 이를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밝히려 하지 않으려 한 것을 밝히려 했기 때문에 단단하고 하얀 것을 논하는 것으로, 아들이 거문고 줄을 잇는 것(가업 을 잇는 것)으로 끝나버렸으니 이룬 것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뭔가 이뤘다고 할 수 있는가.(아집) (그러면) 우리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뤘다고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것을 이룬 것이 없다고 한다면, 사물과 나 또한 누구도 이룬 것이 없다 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활히 빛나려 하는 것을 현명한 사람은 한낱 명성으로 보아 쓸 데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4-11.

여기 설說이 하나 있다. 이것이 이와 같은 부류인지, 그렇지 않은 부류인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서로 같은 부류에 들려 하는 것은 위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이 견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시작이 있었다면 그 전도 있었을 것이다. 시작되기 전이 있었다면 그 전도 있었을 것이다.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도 있고, 무라는 것이 시작되지 않은 것도 있다. 그 전도 있었을 것이다. 있음과 없음이 같이 있었는데, 어느 것이 있음이고 어느 것이 없음인 지 알지 못했다. 지금 나는 설說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과연 설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혹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모르겠다.

4-12.

세상에 가을에 나는 짐승들 털의 끝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그리고 큰 산을 작게 여길 수 도 있다. 일찍 죽은 아들을 보고 오래 살았다고, 팽조를 보고 요절했다고 할 수도 있다. 세 상이 나와 더불어 나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 이미 하나가 되어 견해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생각이 하나가 되었는데, 무슨 말을 더 찾겠는가. 하나가 말과 더 불어 둘이 되고, 둘이 하나와 같이 셋이 된다. 이를 계속 하면 계산에 기교를 부리더라도 답을 얻을 수 없는 즉,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러므로 없는 것에서 있는 것에 이르는데 3이 되었는데, 있는 것에서 있는 것에서 가는 것은 하물며 어떻겠는가. 가는 것 없이 본질을 따를 뿐이다.

4-13.

저 도라는 것은 처음엔 경계가 없었다. 견해란 것도 처음엔 고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옳다 고 정하게 되니 경계가 있게 되었다. 경계를 부르기를, 왼쪽, 오른쪽, 질서, 의로움, 나눔, 논변, 다툼이라 하는데, 이를 8덕이라 한다. 성인이 6합의 밖은 있기는 하나 논하진 않으며, 안에 대해서는 성인이 정의하긴 하지만 분석하진 않는다. [춘추]는 세상을 경영한 옛 왕의 기록인데, 여기 대해 성인은 분석하긴 하나 논하진 않는다. 그러므로 나누어진 것은 나누어 지지 않은 것이 있다. 논변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왜 그런가. 성인은 이를 품지만 사

(10)

람들은 이를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하는 사람은 오히려 편견에 더 쌓여있는 것이다. 그래서 큰 도는 말로 부르지 않고, 큰 논변은 말로 나타나지 않는다. 크게 어질면 편파적이지 않으며, 크게 깨끗하면 겸손하지 않다. 크게 용감하면 거스르는 이가 없다. 도는 분명한 즉 도가 아니며, 말은 나타나면 미치지 못한다. 항상 어질면 두루 미치지 못하고, 깨 끗한 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면 믿지 못한다. 용기는 (남을) 해치면 이뤄지지 못한다. 이 다섯 가지를 잊지 않으면 거의 도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는 것의 끝을 알아 알지 못 함을 아니 이르는 것이다. 누가 도라고 하는 말이 없는 논변을 도라 알겠는가. 만약 이런 이가 있다면 천부라 할 것이다. 붓는다고 어찌 차겠으며, 술을 따른다고 어찌 바닥이 보이 겠는가. 그 경지를 알 수 없으니 이를 보광이라 한다.

4-14.

옛날에 옛 사람인 요가 순에게 물었다. ‘내가 종, 회, 서오를 치려고 한다. 왕위에 오르고 마 음이 편안치 않으니 왜 이러하겠나.’ 순이 말했다. ‘세 나라는 (아직도) 미개하다. 그대 마음 이 불편함은 어찌 그러한가. 옛날엔 해 열 개가 같이 떠서 만물 모두에 비쳤는데, 하물며 덕이 해보다도 앞선 지금은 어떻겠는가.’

4-15.

설결이 왕예에게 물었다. ‘그대는 진리를 아는가.’ (왕예가 대답하기를,) ‘내가 어찌 알겠느 냐.’ ‘그대는 그대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가.’ (왕예가) 말했다. ‘모른다.’ ‘그러한 즉 사물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말인가.’ (왕예가) 말했다. ‘모른다.’ ‘하지만 거기 대해 장난삼아 말을 해보기로 하자. 내가 알지 못한다 이르는 것이 안다는 것이 아님이라 어찌 알겠는가. 그대 에게 시험 삼아 묻노라. 사람이 물이 많은 곳에서 자면 허리에 병이 들어 반이 죽고야 만 다. 미꾸라지도 그러한가. 나무에 (사람이) 있으면 무서워 떠는데 원숭이도 그러한가. 셋 중 누가 바른 살 곳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은 가축을 먹고, 사슴과 순록은 풀을 먹 고, 지네와 구더기는 작은 뱀을 달게 먹고, 올빼미와 갈가마귀는 쥐를 즐긴다. 네 짐승 중 스스로 먹을 것을 잘 안다고 할 것인가. 원숭이는 긴 팔 원숭이와 만나고, 사슴은 순록과 놀며, 미꾸라지는 고기와 논다. 모장과 서시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한다. 그러나 고기가 이를 보면 깊이 숨고, 새가 이를 보면 높이 날며, 사슴과 순록이 이를 보면 달리려 한다. (그러 면) 넷 중 누가 참된 아름다움의 기준을 가졌다 할 수 있는가. 이를 보건대, 인의의 기준과 시비의 기준이 많아 어지러우니 내가 어찌 이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4-16.

설결이 말했다. ‘그대는 득실을 모르는 즉, 이른 사람은 이를 원래 모르는 이치인가.’ 왕예가 말했다. ‘이른 사람은 신묘하다. 큰 못을 말릴 수 있더라도 이른 사람은 덥지 않으며, 한수 를 얼게 할 추위라도 이른 사람은 춥지 않다. 산을 깨부술 벼락이라도 이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순 없으며, 바다를 떨게 할 회오리라도 이른 사람을 놀라게 할 순 없다. 이러한 사람은 구름의 기운에 올라타고 해와 달을 타고 놀며 네 바다의 밖으로 나간다. 살고 죽음조차 이 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 하물며 (사소한) 이해관계야 어떻겠는가.’

(11)

4-17.

구작자가 장오자에게 물었다. ‘내가 공자에게 듣기를, 현명한 사람은 세속의 일을 하지도 않 으며, 이득을 쫓지도 않고, 해를 피하지도 않고, 집착을 즐기지도 않고, 도를 따르지도 않는 다 한다. 이르지도 않고 이르기도 하며, 이르곤 이르지 않기도 한다. 세상의 밖에서 노는 것 이다. 공자는 이를 맹랑하다 일렀지만, 나는 이것이 신묘히 도를 행하는 방법이라 여기오.

그대는 이를 어찌 생각하는가.’ 장오자가 말했다. ‘이는 황제가 들었다 하더라도 현혹될 말 이로다. 그러니 공구가 어찌 이를 알겠는가. 또한 그대는 너무 급하다. 알을 보곤 닭 울음을 기다리고, 활을 보곤 부엉이 구이를 구하는 격이다. 내가 그대를 위해 망령된 소리를 해보 겠으니, 한 번 들어보라. 해와 달에 기대고 우주를 끼며, 이 모든 것을 입술처럼 맞게 미끄 럽고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그냥 두곤 비천한 것을 서로 높인다. 사람들은 힘쓰나 현명한 사람은 멍청하고 둔하다. (그래서) 만세가 지나도 순수한 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만물이 모 두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서로 쌓여 있는 것이다.’ (구작자가 말했다.) ‘삶을 즐기는 것이 홀 린 것이 아니라 어찌 말하겠는가.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돌아가는 것을 잊은 자와 다르다 어찌 이르겠는가. 여나라의 여자는 애 땅의 관리의 딸이었다. 진나 라에서 처음 이를 데려왔을 때는 눈물로 옷고름이 젖을 정도였다. (하지만) 왕에게 불려가 편한 침상과 고기를 먹자 운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죽은 사람들도 삶을 그리워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어찌 알겠나. 꿈 속에서 술을 마시던 자가 아침이 되어 통곡하는 일도 있 고, 꿈 속에서 곡하던 자가 아침에 사냥을 나가는 경우도 있다. 꿈을 꾸는 중엔 꿈이란 것 을 모르는 것이다. 꿈 속에선 또한 꿈을 점치다가 깨면 꿈이란 것을 깨닫는 것이다. 대저 크게 깨고서야 큰 꿈임을 알게 되는 바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깨어있는 것처럼 안달을 하는 것이다. 임금이니, 목동이니 하는 짓은 (단지) 고루한 것인 즉, 공자와 그대는 꿈을 꾸 는 중이다. 나는 그대의 꿈을 이르기를 또한 꿈이라 하겠다. 이를 사기라 하는 것이다. 먼 훗날에 큰 성인을 어쩌다 만난다면, 대단히 자주 만난 것이라 한들 무리가 없는 것이다. 나 와 더불어 논쟁한다고 해보자. 그대가 이기고 내가 졌다고 한들, 그대가 옳고 내가 틀렸다 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이기고 그대가 졌다고 한들 내가 옳고 그대가 틀렸다는 것이겠는가.

하나는 옳고 하나는 (반드시) 그른 것인가. 함께 옳거나 그른 것인가. 우리 모두 이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 판단해달라 할 수 있겠는가.

(그대와) 의견이 같은 자에게 물어야 하나. 이미 의견이 같으니 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자에게 물어야 하나. 이미 의견이 나와 같은데 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까. 나와 의견이 다른 자에게 물으면 이미 나와 다르기 때문에 바르게 판단할 수 없을 것이고, 나와 의견이 같은 자에게 물으면 이미 의견이 나와 같기에 바르게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 한 즉, 나와 그대나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기대하겠는가. 서로 다른 주장은 서로 기다려 생긴다. 만약 서로 기다리지 않는다면 하늘로 모두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월을 보내는 방법이다. 어떤 변화를 일러 하늘이라 하는가. 이르기를 옳은 것이 있고 옳지 않은 것이 있다. 당연한 것이 있고 그렇지 않다 하는 것이 있다. 옳은 것이 과연 옳다면 옳지 않은 것과 다르다 논할 거리가 없다. 당연한 것이 과연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않은 것과 다르다 논할 필요 또한 없는 것이다. 세월도 잊고 의도 잊어 끝조차 없 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끝 없는 경지에 (마음을) 맡기는 것이다.’

(12)

4-18.

망량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전엔 걷다가 지금은 멈춰있고, 전엔 앉았다가 지금은 일 어나있다. 어찌 그리 급박한가.’ 그림자가 대답했다. ‘내가 의지하여 그렇겠는가. 나가 의지 하는 바 또한 의지하여 그렇겠는가. 내가 뱀 비늘이나 쓰르라미 날개에 의지하겠는가. 그러 한 까닭을 어찌 알고 모르겠나.’

4-19.

언젠가 장주가 꿈을 꾸었거늘 호랑나비가 되어 상수리나무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 런데) 스스로 장주인 줄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꿈에서 깨) 장주인 것을 깨달았는데 크게 놀 랐다. 장주는 꿈 속에서 스스로 장주인 것을 몰랐고, (감히) 나비가 꿈을 꾸어 장주가 되었 는지 알지 못하였다. 장주와 나비 사이엔 반드시 구분이 있을 것이다. 이를 물화라 이르는 것이다.

(13)

양생주養生主

1. 세상을 거스르지 않고 살기

1-1.

우리 삶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아는 것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쫓 는 것은 위태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는 것을 쫓는 것은 위태한 것이다. 선을 이행할 때 이 름을 쌓으려 하지 말고, 미움이 나타나더라도 드러내지 않는다. 자연을 따르는 것을 길로 삼는다면 몸을 보전하고, 본성을 온전히 하고, 몸을 부양하고,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1-2.

한 백정이 문혜왕을 위해 소를 잡았다. 손으로 찌르고, 어깨로 의지하고, 발로는 밟고, 한 무릎만 땅을 짚고, 뼈 바르는 소리가 울리고, 칼로는 연주하는 소리가 울리는데 화음이 되 어 뽕나무 숲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을 정도였다. 마치 경수의 화성和聲에도 맞았다. 문혜왕 이 말했다. ‘놀랍다. 재주가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 백정이 칼을 두고 대답했다. ‘신은 도 를 좋아한다, 이는 재주보다 앞선다. 처음 신이 소를 잡기 시작했을 땐 소밖에 보이지 않았 다. 3년이 지나자 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신은 마음으로 만나 눈으로 보지 않는다. 감각으로 아는 것은 멈추고, 마음만이 들썩일 뿐이다. 하늘의 이치를 따라 틈을 때리고 공극으로 (칼을) 이끌어 본래 타고난 것에 따른다. 재주를 부리므로 뼈에 붙은 살 때문에 힘을 주는 작은 거리낌이 없다. 하물며 큰 뼈는 어떻겠는가. 뛰어난 백정은 칼을 해마다 바꾸는데 쪼개지기 때문이며, 보통 백정들은 한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꺾이기 때문이다. 지금 신의 칼은 19년 동안 소 수천을 베었다. 하지만 칼날은 숫돌에서 새로 간 것과 같다. 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은 두껍지 아니하니, 이로써 넓은 틈으로 들어가 노 는 것이니 반드시 여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19년이니 칼날이 새로 간 듯한 것이다. 그러 나 엉켜있는 곳에 이를 때마다 나 역시 어렵다는 것을 느껴 삼가고 경계하여 집중하기 때문 에 굼뜬 것이다. 칼을 움직이기를 대단히 작고 재빠르게 하여 소를 풀되, 소가 죽는 줄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며, 땅에 떨어질 뿐이다. (그러면) 칼을 끌어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며(여유 를 가지곤), 스스로 만족하고, 칼을 닦고 챙기는 것이다.’ 문혜왕이 말했다. ‘좋구나, 백정의 말을 듣고 삶을 기르는 방법을 알았다.’

1-3.

공문헌이 우사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어찌 이 같은 사람이 있는가. 어찌 한 다리가 없는 가. 하늘이 그랬는가, 사람이 그랬는가.’ (우사가) 말했다. ‘하늘이지 사람은 아니다. 하늘에 서 날 때 한 다리였다. 사람들은 (하늘에게) 부여받았다. 이를 통해 하늘이 한 것이지 사람 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4.

(14)

물가의 꿩은 열 걸음을 가서 한 번 먹고, 백 걸음을 가서 한 번 마신다. 하지만 울타리 속 에서 가축으로 살고 싶진 않아 한다. 기운은 왕성하겠으나 즐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5.

노자가 죽자 진일이 문상을 갔는데 세 번 곡하고는 나와버렸다. 제자가 말했다. ‘선생의 친 구분이 아니신가.’ (진일이) 말했다. ‘친구다.’ ‘그러면 조문을 그렇게만 해도 괜찮은가.’ (진 일이) 말했다. ‘그렇다. 처음 나는 노자를 뛰어난 자로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 가 조문하러 들어갔을 때, 늙은 사람들은 아들이 죽은 것처럼, 젊은 사람들은 어미가 죽은 것처럼 곡을 했다. 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조문해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조문했고, 곡해달 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곡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하늘에서 도망쳐 진실을 등지고 이를 잊 은 것이다. 옛 사람은 이를 하늘에서 도망친 벌(진실에서 도망친 벌)이라 하였다. (노자가) 세상에 온 것은 때가 되었기 때문이고, 세상에서 떠난 것은 순리에 따랐기 때문이다. 때에 몸을 맡기고 순리를 따르면 슬프고 즐거운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은 이를 이르기 를 하늘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하였다.’

2. ???

2-1.

땔나무가 불에 타 손가락(기름)이 다하더라도 (불이) 다할 줄을 모른다.

(15)

인간세人間世

1. 처세에 대하여(본성을 따르기), 익다, 여고, 만물지화.

1-1.

안회가 공자에게 나타나 가기를 청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어디로 갈 생각인가.’ (안 회가) 말했다. ‘장차 위나라로 갈까 한다.’ ‘왜인가.’ ‘본인이 듣기로, 위나라의 주인이 젊어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나라를 가볍게 다스리는데, 스스로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백성이 죽는 것을 가볍게 여겨 죽은 사람이 (이미) 연못의 쓰레기처럼 널렸다 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른다 하였다. 본인이 언젠가 그대에게 듣기를, ‘다스려진 나라에선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는 강 한다고 했다. 이는 의사의 문하에 병자가 모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로써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나라도 거의 나 아지지 않겠는가.’ 공자가 말했다. ‘이런. 그대가 가면 성한 모습에 벌을 받을까 위태롭다.

무릇 도는 잡되지 않고자 하는데, 잡된다는 것은 많다는 것이고, 많다는 것은 어지럽다는 것이며, 어지럽다는 것은 근심이 있다는 것이다. 근심이 있으면 구할 수가 없다. 옛날 이른 사람은 먼저 스스로를 편하게 한 뒤 남들에게 그리 하였다. 네가 아직 편치 않거늘, 언제 난폭한 자의 행위를 그리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대는 덕이 무너지고 앎이 나온 이유를 아 는가. 덕은 명성으로 무너지며, 앎은 다투다가 나온다. 명성은 서로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 며, 앎은 싸우는 도구다. 이 둘은 흉기니 지나치게 운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덕이 두 텁고 믿음이 성실해도 사람의 마음에 미치지는 못하며, 명망을 두고 싸우지 않더라도 사람 의 마음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런데 억지로 인의로써 난폭한 사람에게 자랑하려는 사람을, 사람을 해치는 사람이라 부른다. 이런 사람은 남들에게 반드시 재앙을 되돌려 받는다. 그대 역시 이것이 위태롭다. 또한 진실로 현명함을 좋아하고 어리석음을 미워한다면, 어찌 (굳이) 그대에게 일을 맡기려 하겠는가. 오직 그대가 말할 것이 없게 된다면 왕은 반드시 장차 그 대를 업신여기고 싸워 짓밟으려 할 것이다. 그대의 눈은 어지러워질 것이고, 안색은 변할 것이며 입은 떨게 될 것이고, 얼굴은 비굴해질 것이며, 마음은 그를 따라갈 것이다. 이는 불 로써 불을 구하고, 물로써 물을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를 익다라 한다. 처음부터 쫓아다니지만 끝이 없으니, 믿음이 깊지 못해 위태할 것이다. (그러다) 반드시 난폭한 자 앞 에서 죽고야 말 것이다. 또한 옛날의 걸은 관룡봉을 죽였고, 주는 왕자 비간을 죽였다. 이들 은 모두 수양하였는데, 몸을 굽혀 왕의 백성을 사랑하였다. 또한 신하로서 군주를 거슬렀다.

그러므로 군주들은 이 때문에 이들을 죽인 것이다. 이들은 명성을 즐겼던 사람들이다. 예전 에 요는 총지와 서오를 공격했고, 우는 유호를 공격했다. 이 나라들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 들은 위태로워졌으며 군주들은 형에 따라 죽고야 말았다. (하지만 요와 우는) 군사를 멈추 지 않았는데 재물을 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명분과 재물을 구하려 한 사람들이다.

그대는 어찌 이를 들어보지 못하였겠는가. 명성과 재물은 현명한 자라도 이겨낼 수 없는 것 이다. 하물며 그대는 어떻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아마) 그대에겐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 이다. 자, 내게 말해보라.’ 안회가 말하였다.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비우며 근면히 하여 뜻을 한결같이 하면 통하는 바가 있지 않겠나.’ 공자가 말했다. ‘아, 그렇겠는가. 위왕은 이 로써 기세를 삼아 이름을 떨쳐 얼굴빛을 알 수가 없다. 보통 사람은 거스르지 못하고, 이를 통해 위왕은 느긋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명성은 하루하루 점차 덕을 키워나가더라도 이

(16)

루지 못한다. 하물며 큰 덕은 어떻겠는가. 그리하여 (위왕은) 처리하기를 혼자 하고, 겉으로 는 같이 하지만 속으로는 헐뜯으니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다.’ (안회가 말했다.) ‘그렇다면 안 으로는 곧게, 밖으로는 굽히며 생각을 옛 사람들과 같이 한다면 어떤가. 안으로 곧게 한다 는 것은 하늘과 더불어 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하늘과 더불어 같이 된다는 것은 천자와 내 가 모두 하늘의 자식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말로써 다른 사람들이 잘 한 다 칭찬을 하거나, 잘 못한다고 칭찬하지 않기를 바라겠는가. 이런 사람을 사람들은 동자라 한다. 이를 일러 하늘과 같은 무리라 하는 것이다. 밖으로 굽힌다는 것은 사람과 무리가 된 다는 것이다. 기를 들고 꿇어앉아 굽히고 펴는 것이 사람으로의 신하의 예의다. 다른 사람 들 모두가 그리 하는데 내가 그리 하지 못하겠는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하니 다른 사람 역시 흠 잡을 것이 없도다. 이를 일러 사람과 더불어 무리가 된다 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 을 옛 사람과 더불어 한다는 것은 옛날과 한 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꾸짖는 것이 열매인 즉, 이는 옛날에 있었던 것이지 내가 이끌어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비록 곧기 는 하나 병폐는 아니다. 이를 일러 옛과 함께 한다는 것(與古)이다. 이와 같으면 어떻겠는 가.’ 공자가 말했다. ‘안 된다. (그) 많은 바른 방법조차 그르다. 비록 고루하지만 또한 잘못 된 것은 아니다. 비록 그러하나, 그에 그치면 결코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네) 생 각이 모범이 될 것이다.’ 안회가 말했다. ‘나는 나아갈 길이 없다. 감히 방법을 묻고자 한 다.’ 공자가 말했다. ‘단정히 하고 장차 말하리라. 마음을 가지고 뭔가 하는 것은 쉬운 것인 가. 쉽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합당한 것이 아니다.’ 안회가 말했다. ‘나는 집이 가난 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냄새가 나는 것은 먹지 않은 지가 수달이다. 이와 같다면 단정한 것 인가.’ 공자가 말했다. ‘그것은 제사지낼 때나 하는 단정한 것이지 마음을 단정히한 것은 아 니다.’ 안회가 물었다. ‘감히 마음이 단정하다는 것을 묻고자 한다.’ 공자가 말했다. ‘그대는 뜻을 하나로 모아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 는 듣는 데서 머물고 마음은 들어맞는 데서 그친다. (그런데) 기라는 것은 비어있으면서 만 물을 대한다. 오직 도는 빈 데서 모인다. 텅 비어서야 마음이 단정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다.’ 안회가 말했다. ‘내가 (단정함에 대한) 가르침을 듣지 못했을 때는 참된 내가 있는 줄 알았는데, 들은 이후에는 비로소 내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텅 빈 것이라 할 수 있겠는 가.’ 공자가 말했다. ‘과연. 내 말이 그와 같다. 만약 그대가 울타리에 들어가 노닐 때(위왕 에게 갔을 때)는 명성에 흔들리는 바가 없어야 한다. (위왕이) 받아들이면 말하되, 그렇지 않으면 끝인 것이다.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단 (마음이) 자리 잡으면 부득이한 곳에 맡긴다. 이렇게 하면 거의 다 된 것이다. 자취를 긋는 것은 쉽다. (하지만)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은 어렵다. 사람이 부리는 것은 속이기 쉬우나 하늘이 부리는 것은 속이기 어렵다.

날개가 있어 난다는 것은 들어봤으나 날개 없이 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지혜로써 알 게 되었다는 바는 들었으나, 지혜가 없는데 알게 되었다는 바는 듣지 못했다. 저 텅 빈 것 을 보라. 텅 빈 방에 밝은 것이 드러난다. (그럼) 좋은 일이 마음에 머무르는 것이다. 대저 머무르지 않는 것을 일러 앉아 달려간다고 한다. 대저 귀와 눈은 안으로 통하고 마음이 아 는 것은 밖으로 나간다. 귀신도 집으로 가려 한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이를 만물이 바뀐다(萬物之化)고 한다. 우와 순도 여기 관심을 두었고 복희와 궤거도 일생을 통해 행한 것이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1-2.

(17)

섭공이었던 자고가 장차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공자에게 물었다. ‘왕이 나를 사신으 로 보내건대 임무가 무겁다. 제나라가 사자를 대하는 것은 대단히 공경스럽다. 하지만 급하 지가 않다. 필부도 오히려 움직이기 어렵거늘, 하물며 제후는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대단 히 두렵다. 그대가 내게 늘 말하기로, ‘모든 일은 작든, 크든 도가 아닌 것으로써 잘 이뤄지 는 것은 적다. 일이 만약 이뤄지지 않는다면 곧 필히 사람 사이의 근심이 생길 것이고, 일 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곧 필히 음양의 근심이 있게 된다.’ 혹 이뤄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근심이 없는 것은 오직 덕이 있어야 그러한 것이다. 나는 거칠고 작위적이지 않은 것을 먹 는다. 밥 짓는 데는 시원하기를 바라는 자가 없다. 이제 나는 아침에 명을 받고 저녁에 얼 음을 마시는데도 속이 탄다. 난 일의 실체에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근심이 있 다. 일이 만약 이뤄지지 않으면 반드시 벌이 있을 것이다. 이 양쪽 경우를 보라. 남의 신하 가 된 자는 일을 맡기 어려우니 역부족이다. (그러니) 조언을 부탁한다.’ 공자가 말했다. ‘천 하엔 큰 계율 둘이 있는데, 하나는 명(운명)이고 하나는 의다.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 은 명이므로 마음에서 버릴 수가 없다.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것은 의다. (그러므로) 어디에 간들 군주가 아니라 할 수 없어 천지의 사이에서 달아날 곳이 없는 것이다. 이를 일러 대계 라 한다. 이로써, 그 부모를 섬기는 것은 땅을 가리지 않고 편안히 하는 것이 효가 지극한 것이다. 마찬가지, 그 군주를 섬기는 데는 일을 가리지 않고 편안히 하는 것이 지극한 충이 다. 스스로 그 마음을 섬기는 자는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명을 따라 편안히 하는 것이 지극한 덕이다. 신하와 자식된 자는 진실로 포기할 수 없는 것 이 있는 것이다. 일을 받아들여 행해 몸을 잊어야 한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할 겨를 이라도 있겠는가. 그대는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공자)가 들은 바로써 다시 알려주려 한 다. 무릇 가까운 것과 사귈 때는 반드시 서로 믿음으로써 얽혀야 하고, 먼 것과 사귈 때에 는 반드시 말로써 진심을 다해야 한다. 말에는 반드시 전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 대저 전할 때, 양방이 기뻐하거나 노할 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대저 양방이 기뻐하는 것은 반드시 좋은 말로 대단히 부풀리게 된다. (또한) 양방이 노하는 말들은 반드시 나쁜 말로 대단히 부풀리게 된다. 무릇 부풀리는 것은 거짓된 것과 같은 부류다. 거짓으로 믿음 이 사라지게 되고, 이렇다면 사신에겐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래서 법에서 이르기를, ‘변치 않는 사실 그대로를 전하여 부풀리는 바가 없으면 온전함에 가깝다.’이라 한 것이다. 또한 재주로 남과 겨루는 자는 양에서 시작하여 항상 음으로 끝을 낸다. 이것이 지나치면 기교가 많아진다. 예로써 술을 마시는 자는 바른 정신에서 시작하여 항상 취해 마친다. 이것이 지 나치면 기이한 방종이 판을 친다. 모든 일이 또한 그러하다. 처음엔 믿음으로 시작되어 항 상 비루하게 마치는 것이다. 시작은 간단하나 장차 끝날 때는 반드시 커진다. 말은 풍파나 마찬가지, (이를) 행하면 얻고 잃는 게 있다. 풍파는 움직이기 쉽고, 득실은 위태롭기가 쉽 다. 그러므로 화를 내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고 오직 재주와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짐 승도 죽을 때는 소리를 가리지 않고(고상한 척 하지 않고), 숨도 차오른다. 이러한 데서 사 나운 마음이 생긴다. (사람 사이에) 압박이 지극하면, 필히 나쁜 마음이 있어 대응하게 된 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알진 못한다. 그러한 이유를 모르니 누가 마치는 바를 알겠는가. 그 래서 법언에서는 ‘명령을 왜곡해선 안 되고, 뭔가 이루려 해서도 안 된다. 과히 하면 넘친 다.’라고 했다. 명령을 바꿔 뭔가 이루려는 것은 일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좋은 성과는 오랜 시간에 달린 것이고, 나쁜 성과는 고칠 수조차 없다. 그러니 삼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사물을 타고 마음을 노니고, 자연의 이치에 맡겨 중을 기른다. 이것이 가장 나은 것이다. 어 찌 일부러 보고할 거리를 만들려 하는가. 명령을 제대로 이루게 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18)

이것이 어려울 따름이다.’

1-3.

안합이 장차 위나라 영공의 태자의 봐자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 거백옥에게 물었다. ‘여기 사람이 있는데 그 덕이 보잘 것 없는 것은 하늘이 그러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방법이 없게 되면 우리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고, 방법이 있게 된다면 내 몸이 위태로울 것이다. 그 지 혜는 다른 사람의 과오를 알기엔 충분하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는 알지 못한다. 이러하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거백옥이 말했다. ‘좋은 질문이다. 경계하고 삼가 너 자신을 바로잡 아라. 태도는 따르는 것 만한 것이 없고, 마음은 맞춰주는 것 만한 것이 없다. 그러하더라도 이 두 가지에도 문제가 있다. 따르더라도 들어가려 하지 말아야 하고 맞추는 것도 표가 나 선 안 된다. 표면적인 것에 너무 깊이 들어가게 되면 넘어지고 멸하게 되고 무너지고 넘어 지게 된다. 마음에 지나치게 맞추면 또한 소리와 이름이 있게 되고(소문이 돌게 되고), 재앙 이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간난아이 같다면, 더불어 또한 간난아이 할 것이며, 경계 없 이 군다면, 또한 그리 할 것이다. 누군가가 규칙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또한 그리 할 것이다.

그렇게 이끌어 이르게 한다면 흠이 없을 것이다. 그대는 사마귀를 모르는가. 팔을 뽐내며 수레바퀴에 덤빈다. 스스로가 이길 수 없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사마귀가 스스로가 훌륭하다 생각키 때문이다. 경계하고 삼가라. 쌓고 쌓아 그대의 훌륭한 점을 계속 자랑하여 들이대게 되면 위태롭게 된다. 그대는 호랑이를 기르는 자를 모르는가. (먹이를) 감히 살아 있는 것으로 주지 않는 것은 호랑이가 먹이를 죽일 때의 노여움 때문이다. 감히 온전한 것 으로 주지 않는 것은 호랑이가 먹이를 찢을 때의 노여움 때문이다. 그 주리고 배부른 것을 잘 헤아려 노여움을 다스려야 한다. 호랑이가 사람과는 류가 다르지만 자신을 기르는 자에 게 순하게 구는 것은 본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랑이가 기르는 자를 죽이는 것은 본성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는 자는 광주리에 말똥을 담고, 통으로 소변을 치운다.

때마침 모기나 등애가 말에 붙어있으면, 불시에 치게 된다. 그럼 말은 (놀라) 재갈을 물어뜯 고 머리와 가슴을 다친다. 뜻은 좋았으나 오히려 못한 바가 있게 된다. 삼가야 하는 것이 다.’

2. 쓰임새 없음의 쓰임새

2-1.

장석이 제나라를 지나다 곡원 땅에서 사수를 보았는데, 상수리 나무였다. 그 크기가 소 수 천을 덮을 것 같고, (크기는) 백 아름이나 되고, 그 높이가 산과 같았으며, 10인이나 위에 가지가 있었는데, 배 수십 척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보는 이가 저자만큼 많았는데 장백 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제자가 이를 실컷 보더니 관숙에게 물었다.

‘내가 도끼를 잡고 그대를 따른 후로 이와 같은 훌륭한 나무를 본 적이 없다. 선생은 보려 도 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가?’ 장백이 말했다. ‘거기 대해선 말라.

쓸 데가 없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을 것이고, 널을 만들면 빨리 썩을 것이고, 그릇을 만들면 곧 부서질 것이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를 것이다. 기둥을 만들면 좀이 쓸 것이다. 이는 재

(19)

목이 못 되는 것이다. 쓸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이렇게 오래 산 것이다.’ 장석이 돌아오자 꿈 에 상수리 나무가 나와 말했다. ‘그대는 장차 날 어디에 비기겠는가? 그대는 장차 문목(재 목)에 비기겠는가? 과실수들은 열매를 빼앗기는데, 이 때 큰 가지는 부러지고 작은 가지는 흩어진다. 이러한 것은 그 능력 때문에 삶이 고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수를 누리지 못 하고 요절하고 만다. 스스로 부른 화다. 사물은 이와 다른 것이 없다. 또한 나는 소용이 없 기를 바란 지가 오래다. 거의 죽을 뻔하다가 이제에야 (바라는 바를) 얻게 되었다, 내겐 큰 쓰임인 것이다. 가령 내가 쓸모 있었다면, 또한 이렇게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또한 그대와 내가 모두 사물이다. 어찌 서로 이러쿵저러쿵 하겠는가. 그대는 거의 죽은 바 없어 쓸모없는 사람인데, 또한 쓸모없는 나무를 알겠는가.’ 장석이 깨 꿈을 말하였다. 제자가 물 었다. ‘쓸모없음을 바랬거늘 사수가 된 것은 왜인가?’ (장석이) 말했다. ‘닥쳐라. 말을 말라.

상수리 나무는 다만 붙어있는 것이니, 자신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려고 여 긴 것이다. 사수가 되지 못했다면 또한 거의 잘렸을 것이 아닌가. 또한 상수리 나무가 스스 로를 지키는 바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 의미(사람들의 기준)로써 헤아리는 것은 또한 멀 지 않겠는가.’

2-2.

남백의 자기가 상나라의 구엘 가서 큰 나무를 보았는데 특이했다. 사천 승을 묶어도 장차 이를 덮어 가려 숨길 정도였다. 자기가 말했다. ‘이는 어떤 나무인가? 필히 특별한 재목으로 쓸 것이 있는가?’ 고개를 들어 가는 가지를 보니 가지가 구부러져 동량이 될 수가 없었다.

굽혀 큰 뿌리를 보니 갈라져 널로 쓸 수가 없었다. 잎을 햩으니 문드러져 상할 것 같았다.

냄새를 맡으니 지독해 사흘이 지나도 설레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자기가 말했다. ‘이 나무 는 과연 쓸 수가 없겠다. 그래서 이렇게 큰 것이다. 놀랍구나. 신인도 이러할 것이다. 송나 라에 형씨란 땅엔 계오동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알맞았다. 공파보다 좀 더 큰 나무들은 원 숭이 맬 말뚝이 필요한 자들이 벤다. 서너 아름 정도면 높고 큰 마룻대를 구하려 하는 자들 이 벤다. 7~8아름이면 귀한 사람, 부유한 상인 집에서 널로 구해간다. 그러니 천수를 누리 지 못하고 도끼로 베이는 것이다. 이것이 쓸모에서 비롯되는 근심이다. 그러므로 해제사 땐 흰 이마를 가진 소와, 치솟은 코를 가진 돼지와, 치질이 있는 사람은 제물로 적합하지가 않 다. 이러한 것은 모두 무축이 아는 것인데,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이것이 곧 신인이 크게 상서롭게 여기는 것이다.’

2-3.

지리소는 턱이 배꼽에 가리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고, 꽁지는 하늘을 향하고, 오장은 위에 있으며, 허벅지는 옆구리에 붙었다. 옷을 깁고 헌 옷을 빨아도 입에 풀칠하기 모자라지 않 았다. 키를 두드려 껍질을 까면 열 사람이 먹기에 모자라지 않았다. 왕이 동원령을 내리면 의기양양해서 그 사이를 돌아다녔다. 나라에 노역이 있어도 지병을 핑계로 일을 나가지 않 았다. 왕이 병자에게 곡식을 줄 때는 3종과 땔나무 열 묶음을 받아갔다. 형태가 온전치 못 한 자가 오히려 몸을 기르기에 충분하고 천수를 누린다. 그런데 하물며 덕이 그러한 것은 어떻겠는가.

(20)

2-4.

공자가 초나라엘 갔는데 미친 접여가 문 앞을 지나다 말했다. ‘봉황아, 봉황아. 어찌 힘이 없는가. 오는 세상은 대할 수가 없고, 지난 세상은 따를 수가 없다. 천하에 도가 있다면 성 인이 이를 이룰 것이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살아갈 뿐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겨우 형을 면할 정도다. 복은 깃보다 가벼운데 실을 줄은 모르고, 화는 땅보다도 무거운데 피할 줄을 모른다. 관둬라. 사람에게 덕이 임했다. 위태롭구나, 땅에 금을 긋고 뛰어다니니. 가시 나무여, 내 가는 길을 상하게 말라. 조심히 다녀 내 발을 상하게 하지 말라.’

2-5.

산의 나무는 스스로를 해치고, 등불은 스스로를 지진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에 베이고, 옻나무는 쓸모가 있어 쪼개진다. 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가 없는 것의 쓸모 있음은 알지 못한다.

(21)

덕충부德充符

1. 덕(도)이 있다는 것, 잘 산다는 것, 재전, 덕불형

1-1.

노나라에 왕태란 절름발이가 있었는데 이를 따라 배우는 자가 공자와 견줄 수 있었다. 상계 가 공자에게 물었다. ‘절름발이 왕태를 따르는 이가 그대와 더불어 노나라를 나누고 있다.

(왕태는) 서서 가르치지 않고, 앉아선 의논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빈 채로 갔다가 차서 돌 아온다. 진실로 말 없이 가르치고, 드러나는 것이 없는 데도 마음을 이룬 자인가? 왕태는 어떤 사람인가?’ 공자가 말했다. ‘왕태는 현명하다. 나야 다만 뒤에 있어서 아직 이르지 못 했다. 나는 왕태를 스승으로 모시려 하는데 하물며 나보다 못한 사람은 어떻겠는가. 어찌 노나라에서 그치겠는가, 나는 장차 천하를 이끌어 더불어 왕태를 따를 것이다.’ 상계가 말했 다. ‘왕태는 절름발이다. 그런데도 그대보다 대단하다. 왕태는 또한 보통 사람과는 훨씬 위 다. 그러한 사람은 마음을 쓰는 것이 마음을 쓰는 것이 어떠한가?’ 공자가 말했다. ‘죽고 사 는 것은 또한 큰 문제다. 그러나 (왕태는) 이와 더불어 변하진 않는다. 비록 천지가 뒤엎어 져 떨어져도 또한 장차 스스로를 잃지 않을 것이다. 어떤 곳에도 의지하지 않기에 세상과 더불어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의 변화에 명을 맡겨 그 근본을 지킨다.’ 상계가 물었다. ‘무슨 말인가?’ 공자가 말했다. ‘다르다는 데서 볼 것 같다면 간과 쓸개가 다른 것이 초나라와 월 나라만큼과 같을 것이다. 같다는 데서 볼 것이면 만물은 같을 것이다. 왕태 같은 자는 귀와 눈의 마땅한 바를 알지 못하고, 마음은 덕에서 논다. 사물을 볼 때는 하나됨을 보고 잃은 바는 보지 않는다. 발을 잃은 것을 흙을 잃은 것처럼 보는 것이다.’ 상계가 말했다. ‘왕태는 스스로를 닦는다. 이로써 알아차려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그 마음으로써 신념을 깨달았 다. (그런데) 어찌 사람들이 모이나?’ 공자가 말했다. ‘사람은 흐르는 물은 거울로 할 수 없 어 멈춘 물을 그리 쓴다. 오직 머물러야만 능히 사람들이 머무르고자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땅에서 난 것 중에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바르기에 겨울과 여름에 푸르 다. 하늘에서 난 것 중에 요와 순만이 다르니 만물의 으뜸인 것이다. 다행히 삶을 바로 할 수 있어 사람들의 삶을 바로잡는 것이다. 무릇 시작하려는 징조를 지켜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다. 용감한 자가 9군에 들이닥친다. 장차 이름이 알려지길 바라는 자는 또한 이와 같다.

그러니 하물며 천지를 보고, 만물을 덮으며, 단지 몸에 깃들고, 눈과 귀에 드러나며, 알아차 려 알 수 있는 것을 하나로 하고, 마음은 일찍이 죽지 않은 자는 어떻겠는가. 왕태는 또한 날을 가려 저 멀리서 온다. 그러니 사람들이 왕태를 따른다. ‘왕태가 어찌 기꺼이 사람들로 일을 삼겠는가.’

1-2.

신도가는 올자로,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에게 배웠다.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나가거든 자네가 머물러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음세.’ 이튿날 또 같은 방 에 자리를 함께 하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정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나가거 든 자네가 머물러 있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머물러 있기로 하세. 지금 내가 나가려고 하니 자네는 머물러 있겠는가? 없겠는가? 또한 자네는 집정(執政)하는 나를 보고도 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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