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9월 김정일 정권의 공식 출범 이후 북한이 전개하고 있는
외교․대남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일 정권은 1998년 8월 국력을 정치․경제․군사․문화 모든 분야에서 최강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강성대국론’을 내걸고 공식 출범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인민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정도 의 심각한 경제상황에 처해 있었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의 핵심 목표 와 대내외정책의 초점은 체제유지에 있을 수 밖에 없었으며, 외교․ 대남정책 역시 체제안정성 확보라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 하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북한 외교의 초 점은 외부로부터의 경제지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장 확보에 두어지고 있다.
둘째, 김정일 정권의 공식 출범과 함께 북한은 대미 외교에 초점을 두면서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적극 강 구․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김정일 정권은 중국 및 러시와의 관계 긴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EU 및
아시아․중동지역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러한 북한의 입장은 2001년 1월 조지 W. 부시 미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정일 정권의 대주변 4강외교는 ‘대미외교를 중 심으로 한 주변4강외교’에서 ‘균형적 대주변4강외교’로 전환되었다고 평가된다. 북한은 중․러와의 관계 긴밀화 정책을 통해 동북아지역에 서 미국과 중국 및 러시아의 역학관계를 활용하여 과거 중․소 분쟁 을 활용하였듯이 외교적 실익과 안보를 확보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 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북․중․러간 ‘3각
공조’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김정일 정권의 외교․대남정책 추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 인 요인은 유일․폐쇄체제라는 정치․사회체제의 성격인 바, 북한은 외부사조의 유입을 차단할 수 있는 외교․대남정책 추진을 강구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예를 들어 북한은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에서 파생하는 체제개방 효과보다는 EU 등 다른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 을 덜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이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고 있 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대남정책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 고 있으며, 2002년 9월 12일 지정한 ‘신의주특별행정구’ 역시 ‘통제 된 개방전략’이라는 구도 하에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남북정상회담과 그 이후 북한이 전개하고 있는 대남정책을 살펴보면 김정일 정권은 여전히 진정한 남북화해․협력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진정한 남북화해․협력의 지표는 화해․
불가침․교류협력이라는 남북관계 핵심 부문의 균형발전이라고 볼 때,
불가침 분야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은 여 전히 대미 평화협정, 주한 미군철수 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서는 결론에 대신하여 한국의 정책적 고려사항을 제시해 보 고자 한다.
첫째, 현 시점에서 한반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의 핵을 비롯 한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하루 속히 해결하여 남북관계가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문 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남북화해협력이 무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기본적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이 란 북한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이미 개발된 장비와 시설을 폐기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국제적 공조를 강화하여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설득하여야 한다. 이
와 함께 한국은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주력하면서 미국과 북한의 빅딜(big deal)을 적극 중재할 필요가 있 는 바,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의 방북을 통한 위기 해소 의 경우와 유사한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화해․불가침․교류 협력」이라는 3부문의 균형적인 개선이 이루어져 나가야 하는 바, ‘쉬 운 문제부터 해결하는 대화’를 하되, 남북관계 전반의 균형된 개선을 추구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경분리원칙’을 재고 할 필요가 있 다. 현재 대북정책의 기본 접근방법이 되고 있는 남북한간의 신뢰회 복을 위해 정치․군사이슈와 경제이슈를 분리하여야 한다는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한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은 한계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 야 한다. 물론 남북한 신뢰구축에 있어서 경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군사분야에서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경협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기능주의 적 접근방법은 학문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그 적용상의 한계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기능주의는 개방되고 다원화된 민주주의 정치체제 간에 응용되는 이론으로서 여타 체제와의 관계, 특히 남북한 관계에 의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겠다.
다시 말해서, 남북간 경협과 교류․협력이 확대된다고 해서 군사분 야의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북한이 군사․평화문제는 북․미간의 협의사항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상황에 서는 경협과 철도․도로의 연결문제에 국한되어 있는 군사회담이 군 사적 긴장완화와 군비통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비군사분야의 교류가 군사분야로 확산될 것이라 는 주장은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분야 문제(군사적 위기 조성과 군사 적 위협수단 활용)를 계속 상황적 협박수단(예: 남측 지원 필요시 혹
은 양보 획득 필요시)으로 악용하려는 충동을 허용 혹은 유발한다는 취약점을 간과하고 있다.133) 이러한 맥락에서 김근식 박사는 이제는 정경분리를 넘어 경협이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화해에 기여하고 역으 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경협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장기적으로는 수 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른바 ‘정경보완’의 새로운 원칙을 적극적으 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134)
셋째, 북한의 급격한 변화를 상정한 대북 인식을 재정립함으로써 현실에 부응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즉 북한체제의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 및 개혁․개방유도를 위한 한국 의 정책수단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인식 하에 실현 가능한 ‘현 실주의적 대북정책’을 입안․추진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것이다. 따 라서 거시적이고 비현실적인 남북관계 개선 구도의 달성에 집착하기 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사안의 성사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넷째, 지금까지의 단편적이고 축차적이며 일방적인 경제협력 방식 보다는 경제지원과 우리가 겨냥하는 목표를 연계시키는 종합된 전략 을 수립․추진하여야 한다. 대북 포용정책, 강경정책이라는 사실상 실 체가 모호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북한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사안은 제기하고,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 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한․미 공조체제가 유지되어야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미관계는 남 북관계와 북․미관계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실적 차 원에서 한․미간 정책 협력이 남북 및 북․미간 관계에 우선하기 때 133) 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북한의 정책변화 평가(서해교전-경제조치-장관
급회담)」, p. 7.
134) 김근식, “햇볕정책: 평가와 과제,”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세미나 발제문, 2002년 12월 12일, pp. 7~8.
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한국의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으 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미양국은 양국 간에 이견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호간 객관 적 기준에 의한 비판과 요구를 수용하여 이견을 해소해 나가는 노력 을 경주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정부는 한․미간 불평등 요인을 제 거해 나가는 동시에 남북화해협력시대에도 한․미동맹체제의 유지는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평화통일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 다는 점, 한․미동맹체제는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양국간의 협의와 합의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대국민 설득 활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요컨대 한․미공조체제가 유지되어야 민족공조를 내세우면서 한․미관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오려는 북한의 의도를 저지하는 한편, 대북 관계에서 한국정부가 영 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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