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검토에서 고대 職役의 범주에 들어가는 다종의 신분 내지 계 층과 吏職의 類, 그 복무형태, 삼국시기에 이르는 전승과 변화의 모습 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職官과 일반요역 복무자와는 신분제와 賦役체 계상 엄연히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례 地官 鄕大夫에 그 舍란 國中의 貴者․賢者․能者․服公事者․老者․疾者에게는 모두 舍 한다는 것이다. 에 대한 후한의 鄭司農의 注에 服公事者란, 지금 吏에 게 復除해주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고 하였다.106) 여기서 ‘舍’란 復 除와 같은 뜻이다. 그 대상 가운데 ‘國中의 貴者․賢者․能者’ 가운데 貴者는 공경귀족, 賢者와 能者는 命官과 辟召된 관리에 해당한다. 그리 고 그 아래의 服工事者는 다시 2분되는데 200석 이하의 吏職 내지 掾 史職(小吏)이 있고, 그 아래에 庶民在官者 내지 ‘非吏로서 官에 給事 하는 자’로서 給吏層이 있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賢者와 能者 까지를 職官이라 하면 그 이하인 服工事者 가 곧 職役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 석된다. 그리고 職官과 職役 복무자는 모두 일반요역에서 면제되는 자 106) 其舍, 國中貴者․賢者․能者․服公事者․老者․疾者, 皆舍. 注云, ‘服公事者’
謂若今吏有復除也. .
들이다. 이 중에서 職役 복무자는 일반요역에서 면제되는 대신에 각종 의 吏職과 給吏職에 복무하였다. 여기서 칭한 給吏職은 ‘(小)吏’에 대비 하여 칭한 給吏를 그 성격상 그렇게 칭할 수 있으며, 그 독립적 계층 내지 신분으로서의 실태가 <長沙走馬樓吳簡>의 발현에 의해 상당 부 분 밝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服工事者 즉 職役 담당 계층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서 그 職役의 양태가 모든 면에서 같은 것은 아니고 일부 분 다른 측면들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고대의 긴 기간에 걸쳐 거의 공통으로 庶民在官者 , ‘非吏이면서 관부에 給事하는 자’, ‘官과 民 사 이’, ‘半官半民’의 성격이 유지되고 있는 면을 볼 수 있다.
이렇게 職役 담당자의 연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곧 <주례>에 보이 는 관리 조직의 최하위에 위치한 府․史․胥․徒이다. 이 가운데 府史 가 대략 후대의 掾史職이나 <吳簡>의 諸吏에 속한다면 胥徒는 給吏層 에 상통하는 면이 많다. 단지 <吳簡>에 다수 보이는 吏役 下의 吏戶 는 그 과중한 부담과 厮役 및 빈천함의 성격상 오히려 胥徒에 상통하 는 면이 많다. 이러한 시대적 차이는 吏戶의 예속화 및 세습화의 진전 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한편 시대의 여건 차이로 여러 부분에서 胥徒 와 후대의 職役 담당 계층 사이에는 다른 면도 있다. 胥徒나 給吏層이 기본적으로 일반 서민 출신으로서의 服工事者 였던 것과는 달리 周에 서 三國에 이르는 동안 服工事者 라는 면에서 同類이지만 일반 서민 과는 구분되는 여러 相異한 계층에 속한 신분들이 속하여 있었다. 예 를 들면 工商食官 에 속하는 工商, 皁隸食職 에 포함되는 吏에 속 한 徒隸 층, 넓은 의미의 徒隸層이라 할 수 있는 皂․隸․牧․圄․
僕․輿人, 그리고 下吏層에 들어가는 樂․祝․醫․衛士 및 走卒․伍伯 之類 등이 그들로 그 출신은 일반 서민이거나 賤民 또는 刑徒였지만 관부에 寄生하며 給事한다는 면에서는 공통이다.
이들의 복무 형태는 항상적 근무, 일시적 근무, 組別 교대제 등 여러 가지로 징발 내지 차출되었고, ‘冗’과 ‘更’은 그러한 차이를 구분하는 용어로서 나온 것이다. 근무에 따른 보수를 받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 구분은 아직 분명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러하지만 최소한 생업을 관부에 의탁하는 자들에게는 지급되 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年俸制에 대비되는 稍食 즉 소액의 月俸 내 지는 근무일수 기준의 지급 형태로 지급되었다. 이는 그들의 근무가 주로 일 단위나 월 단위로 이루어지고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官’과 ‘吏’는 서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진 이래 본래 상하의 신 분으로 명확히 구분되었고, 漢代에 혼용 내지 통용되는 경향이 있었지 만 양자가 구분되는 면 또한 여전하였다. 吏는 官에 가까운 吏가 있고, 民으로서의 吏가 있어 전자를 ‘官吏’라고 하면 孫休傳의 詔에서 거론된 吏家는 보통 吏民으로 합칭될 경우의 吏라고 할 수 있다. <吳簡>의
<吏民簿>나 <戶口簿> 등에 보이는 吏와 給吏의 실태에서 후한 말에 서 삼국기의 전형적인 職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이제까지 그 존재에 대해 거의 간과되어 왔던 給吏에 대해 <吳簡>은 수십종의 給 吏 실태를 전해주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 吏의 사무 업무를 직접 勞 役으로 보조해주는 給吏는 관부의 행정 업무 처리에 있어서 항상 필요 한 노동력 제공자였다. 이러한 노동력은 어느 시기이든 공통으로 필요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원을 <주례>의 胥徒에서 찾아볼 수 있었 고, 여러 면에서 職役의 실례로서 공통하는 면들을 지적할 수 있었다.
후한 말 삼국시기의 吏와 給吏는 일반서민 신분으로서의 吏이며, 吏戶 로써 관부에 예속되어, 그 食口 성원이 거의 세습하여 吏役에 종사하 고 있다. 이들은 일반서민에 비해 일반요역이 면제된다는 점을 제외하 면 그밖에 각 吏職에 따른 吏役의 기본 직무 외에 限田의 佃作 의무와 그 地租로서 限米 布 錢을 납부해야 하며, 從軍해야 하는 등 중첩된 부역으로 일반서민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또한 그 戶品 이 下品 내지 下品之下에 속한 貧戶 출신이다. 따라서 같이 吏로 칭하지 만 豪族勢家 출신으로 掾史職을 거쳐 상급관으로 진급하고 命官에 오 르는 累代 高族의 世家 출신 掾史와 빈천한 서민 출신으로서 관부에 예속된 吏戶 출신으로서의 掾史와는 구분된다. 이 吏家 내지 吏戶는 吏의 칭호로 불리지만 일반민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기에 그들의 役은 후한과 삼국기에 賤役 賤職 내지 厮役으로 칭해지며 기피되고 있
다. 따라서 이 계층이 官吏로 합칭되는 경우의 吏와 구분되는 것은 당 연하며, 그 호칭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늦어도 孫休 시기의 문서와 간독자료에 등장하는 ‘吏家’나 ‘吏戶’는 이미 그러한 계층에 대 한 專稱으로 형성된 듯하다.
한편 諸吏役의 복무에는 常勤의 방식과 1년에 1개월 내지 수개월만 輪番 형식으로 복무하는 비상근의 ‘踐更 방식의 근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비상근 복무자도 있었을 것이다.107)그리고 그 복무에 대한 급여가 그 吏役을 생업으로 하는 常勤者에게는 당연히 小吏에 대 한 봉록이 지급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給吏의 役은 일반요역에 대신하 는 복역이라는 면에서 비상근 내지 윤번 형식의 차출이었을 가능성이 많지만 지금까지 <오간>에 소개된 자료로는 어느 쪽이라 단정하기가 어렵다. 胥徒의 役은 어디까지나 상급의 관원들과는 달리 일반민의 요 역 의무를 대신하여 관부에 給事하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오간>
에서의 給吏와 상통한다. 給吏에 대한 봉록 지급의 여부도 아직 不明 이다. 단지 限田의 지급이 祿田과 같은 성격의 것이었을 가능성도 고 려되지만 그 租額이 커서 혜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노동력의 징발로 서 해석되는 부분도 있다. 또한 給吏의 관부에의 給事가 일반 요역과 같이 組別 순환제였는지의 여부는 아직 분명치 않다. <奏讞書>의 樂 人의 예와 같이 一月一更制와 같은 순환근무제였을 가능성도 있는데 대체로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吳簡>에 의거한 의론들은 아직 자료 해석과 해명이 충분치 못하여 불분명한 상태에 있는 사항들이 많은 실정이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새 로 규명 되는대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오간>의 미해명 사항 에 대한 개별적인 탐구도 본 과제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그 리고 아직 소개되지 않은 대량의 <오간>이 연속하여 출간되면서 새로 운 자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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