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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득적 글쓰기에서 경험적 논거의 활용

2.2. 경험적 논거 활용의 준거

여기에서는 설득적 글쓰기에서 경험적 논거 활용의 준거를 마련하기 위해 설 득적 글쓰기에서 경험적 논거의 위상과 현실과의 조회를 다룬 서구 신수사학 이 론을 검토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중세를 거치면서 ‘표현술’로 축소된 수사 학이 다시 설득 의사소통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페럴만과 툴민으로 대표 되는 신수사학 덕분이다. 이들은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논증의 요소를 선별하고 현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한 설득의 기술을 정립함으로써 설득의 구조와 원리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논거의 상위에 위치하는 요소들에 주목하거나 설득의 기술 을 살펴봄으로써 경험적 논거 활용의 준거를 탐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서구 신수사학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경험적 논거 활용의 준거는 중세 전(傳) 양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전은 인물의 생애를 바탕으로 공동체가 추구 하는 가치나 이념을 전달하기 위한 동아시아의 설득적 전통을 보여주는 전통적 인 글쓰기 장르로서 그 교육적 가치와 대중성을 고려할 때 국어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장르로 볼 수 있다. 입전된 인물의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필자의 주제 의 식을 표출하여 대중을 설득하려 했다는 점에 있어 이 연구에서 다루는 설득적 글쓰기의 경험적 논거와 일맥상통한다.16) 본격적인 학습자 자료 분석에 앞서 문학사적 자료를 통해 그 통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은 서구 이론에의 일방적 인 함몰을 경계하고 우리 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설득적 글쓰기의 문화적 관습을 고려하여 문화적 관습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다.

16) 전은 어떤 현상의 시시비비를 논리적으로 분명히 따지기보다 인물의 직ㆍ간접 경 험에 대한 보여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득의 효과를 획득하고자 하였다. 이는 언어 행위를 인격 수양과 인간 관계를 비롯한 삶의 효용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온 우 리의 전통적인 언어 문화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오늘날에도 그러한 가치는 일상 의사 소통에서 여전히 중시된다(이창덕 외, 2000 : 68).

이 연구에서는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를 주장으로 선택하고 보편 독자가 현실의 본질에 대해 어떻게 가정하는가에 따라 현실 사례나 현실 구조를 논거 로 활용하는 연역적 글쓰기 모형을 상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경험적 논거 활용 의 준거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경험적 논거는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와 현실 맥락과의 조회를 통해 활용된다. 페럴만(Perelman & Olbrechts-Tyteca, 1958; Perelman, 1977)은 증 명(demonstration)으로부터 논증(argumentation)을 분리하여 일상에서 이루어지 는 설득의 성격과 목표를 규정하였다. 오늘날의 설득은 ‘논증’과 동일시되는 경우 가 많다. 페럴만에 따르면 논증은 엄격한 형식 체계와 명백한 법칙으로부터 도출 되는 증명과 달리 전제의 조합이 반드시 형식적, 논리적으로 조직되지 않으며 오 히려 자연 연어로부터 파생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설득의 목표는 단순히 주어 진 전제로부터 결론을 추론해 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를 청중으로부터 동의받는 데에 있다. 따라서 경험적 논거의 활용은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와 현실 맥락에 부합할 때에만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툴민(Toulmin, 1958/2003)은 삼단논법의 형식 논리학적 한계를 지적하고 일 상의 비형식적 설득 의사소통 상황에서 통용될 수 있는 담화 관습으로서 논증 구조 모형을 정립하였다. 주장(conclusion)은 자료(data)와 전제(warrant)에 의 해 정당한 것으로 한정(qualifier)되어 추론된다. 이때 주장은 명제(claim)로, 자 료는 근거(ground)로 대치될 수 있다. ‘명제’는 필자의 태도와 입장을 드러내는 항목을 가리키며 ‘근거’는 명제가 바탕에 두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명제와 근거의 관계는 설득적 글쓰기에 나타난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와 현실 사례 의 관계로 보아도 무방하다. 전제는 사례에 비해 원리나 규칙의 형태로 굳어진 보다 확실한 현실 구조로 볼 수 있다. 반박(rebuttal)은 전제의 일반적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상황을 의미한다. 논증 구조에서 전제와 반박은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와 현실 맥락으로부터 결정된다. 반박은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가 가시화된 결론(명제)의 한정에서 배제된 것이며, 전제는 암묵적 조건으 로서 현실 맥락을 가리키는 보증(backing)을 통해 지지된다.

툴민의 논증 구조 모형은 설득 의사소통 행위를 설명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 지만 실제 글쓰기 수행을 고려할 때 맞지 않는 경우도 발견된다. 윌리엄스와 콜 럼(Williams & Colomb, 2007)은 툴민의 논증 구조 모형을 일상에 부합하도록 수 정하였다. 첫째, 툴민의 논증 구조 모형에서 자료에서 결론으로 이어지는 화살표

를 없앴다. 이는 일상 설득 의사소통에서 대개 문제를 가장 먼저 진술하고 해법 을 주장한 다음 자료나 전제, 논박 등이 뒤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보증’을 없애고 ‘한정’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았다.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나 현실 맥락 은 논증에서 어느 한 요소로 국한되지 않으며 주장, 근거, 전제 등 어떠한 요소 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셋째, 자료를 ‘이유(reason)’와 ‘근거 (evidence)’로 나누었다. 이유는 설득의 논리적 구조를 제공하는 것인 데 비해 근거는 논증의 구조가 설 수 있는 현실적 토대로서 ‘경험적 논거’를 지칭하는 개 념이다. 넷째, 논박을 ‘반론 수용과 반박(acknowledgement and response)’으로 바꾸었다. 태도를 달리하는 상대측의 예상 반론에 대해 필자가 그 경험적 논거를 수용하여 충분히 고려한 다음 반박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중세 전 양식에서는 인물에 대한 평가와 태도를 전달하기 위한 ‘논찬(論贊)’에 현 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와 현실 맥락이 중요하게 반영되어 왔다. 논찬은 ‘열전(列傳) 의 기술 끝에 편사자가 서술하는 진술과 비평’ 또는 ‘역사의 기사(記事)에 첨가되는 의론(議論)’으로 정의된다(주재우, 2004 : 60~61). 전은 본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 고 전달하는 역사서의 일종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의론 을 분명히 구분하고자 하였다. 경전으로부터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나 신념을 포 착하여 인물을 포폄(褒貶)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은 논거 활용 준거로서 현실 맥락 이 현실에 대한 필자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경험적 논거는 보편 독자의 선결 동의 여부를 준거로 실현된다. 페럴만은

‘보편 청중(universal audience)’의 개념을 통해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설득의 대상을 규정하였다. 청중은 발신자의 담화를 단순히 물리적으로 청취하거나 혹은 발신자의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이들로 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청중은 발신자가 명백히 밝힌 이들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에 부합하는 설 득의 청중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발신자가 자신의 논증을 통해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이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페럴만은 그러한 청중의 집합을 ‘보편 청중’으로 설명하였다. 즉 보편 청중을 대상으로 설득 의사소통 행위가 이루어질 때 발신자 스스로에 대한 제약은 가장 엄격해진다. 보편 청중의 동의는 사실의 문제가 아닌 정당성(right)의 문제이다(Perelman & Olbrechts-Tyteca, 1958; Perelman, 1977 : 31).17)

17) 이 연구에서 ‘보편 독자’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설득적 글쓰기에서 수신자를 명시 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태도 변용의 효과에 주목하기 위함이다. 얼핏 생각하면 설득적 글쓰기에서 경험적 논거를 활용하는 것이 특정 독자의 정서적 태도 변용을 기획하는

페럴만은 청중의 선결 동의 문제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설득의 기 술을 설명하였다. 페럴만에게 있어 설득이란 ‘필자가 제시한 논거에 청중이 동의 하도록 이끄는 추론 행위’이다. 형식 논리학이나 자연과학과 달리 경험적 논거는 현실의 개입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논쟁에 항상 개방적이다. 일상 설득에서의 논거는 청중의 선결 동의 여부에 따라 연결 또는 분리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연결의 논증은 청중의 동의를 얻은 전제로부터 결론으로의 전이를 통해 이루 어진다. ‘준논리적 논증’은 비형식적 명제에 대한 청중의 입장과 동의를 가정한 다는 점에서 형식 논리적, 자연과학적 논증과 차별된다. ‘현실 구조에 근거한 논증’은 선결 동의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발신자가 자신의 논거를 발전시켜 청중의 태도 변용을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현실 구조를 만드는 관계’는 특 정 사례로부터 출발하여 청중의 동의를 얻어 선례나 규범, 보편적 규칙을 형성 하는 것이다.

분리의 논증은 이미 청중의 동의를 얻어 형성된 언어적, 인지적 전통으로부터 어떤 요소를 분리하여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결론을 구체적 현실로 전환시킨다 는 점에서 연결의 논증과 변별된다. 일상적 사고만으로는 풀 수 없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반성과 성찰이 동원된다는 점에서 근원적이고 철학적이다.

툴민(Toulmin, 1958/2003) 또한 형식 논리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일상에서 통용될 수 있는 논리(working logic)의 성격을 분석하였다. 그는 논증 상황에 대해 청중이 알고 있는 지식의 정도에 따라 기존의 실체적 논증(substantial argument)과 별도로 경험적 논거에 의해 통용될 수 있는 ‘분석적 논증(analytic argument)’을 구별해 내었다. 분석적 논증은 주장을 드러내는 어떤 요소가 경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앞서 경험적 논거 활용의 전제로 제시한 ‘감성 적 소구의 사용’(수단)은 수신자의 ‘정서적 태도 변용’(목표)과 동일한 층위에 해당하 지 않는다. 오히려 설득적 글쓰기에서 경험적 논거의 활용은 독자의 능력과 동기가 다소 부족한 상황에서도 보편 독자(공동체)의 관여도가 높은 개인의 경험이나 몰입을 돕는 현실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동기화를 촉진시켜 수신자가 인지적 태도 변용에 이 르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설득적 글쓰기는 대화나 편지와 같은 사적 의사소통 행 위와 달리 대부분 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제시된 경험적 논거의 설득력은 궁극적으로 인지ㆍ사회ㆍ언어 공동체를 주체로 하는 현실 맥락에 비추어 형식적, 논리적 정합성을 용인받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 글쓰기 상황에서 필자 는 보편 독자의 상을 구체화하여 목표 독자(target reader)로 상정한다. 설득적 글쓰 기에서 보편 독자에 관한 논의는 ‘다중적 예상독자(multi-audience)’의 개념을 제시 한 박영민(2004)을 비롯해 설득적 글쓰기의 사회적 제약을 다룬 민병곤(2008)과 정 희모(2012), ‘독서 공중(reading public)’ 개념을 통해 이성의 공적 사용(the public use of reason)을 강조한 이준웅(2012) 등을 참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