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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 재조정 협상과정의 특징

Dalam dokumen 미·일동맹 강화 (Halaman 62-67)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양국의 전략적 공동이익과 더불 어 개인적 친분을 기초하여 미·일동맹을 공고히 하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6월 30일 부시 대통령과 첫 번째 정상회담을 개최하 고 양국간 전략적 대화를 강화할 것에 합의하였다. 9·11 테러사태가 발생한 직후 고이즈미 총리는 다시 워싱턴을 방문하여 9월 25일 정 상회담에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하 였다. 고이즈미 총리를 신뢰하게 된 부시 대통령은 개인 소유인 크 로퍼드(Crawford, Texas) 목장 초대하여 2003년 5월 22일 정상회 담을 개최하였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개인적 유대를 과시 하며 이라크 재건 등 세계적인 문제에 미·일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 속하였다. 그 후 2004년 9월 21일 유엔 총회를 계기로 개최된 뉴욕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유엔 개혁 및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 견해를 같이하였다. 그리고 주일미군 재 편에 관한 기본 입장에 동의함으로써 당시 지연되고 있던 미·일동 맹 재조정 협상에 탄력을 부여하였다.73 이와 같이 고이즈미 총리는 2006년 9월 임기 말기까지 총 14회의 빈번한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부시 대통령과 개인적 유대를 쌓으며 미·일동맹을 강화시켜 나갔 다.74

미·일 정부 차원의 협력은 아미티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지일 파 인사들이 부시 행정부의 요직에 대거 임용됨으로써 강화되었다.

아미티지는 국무부 부장관, 패터슨(Torkel Patterson)은 백악관 국

73_ Embassy of Japan, Washington D.C., Japan-U.S. Relations, Overview (December 1, 2004) <http://www.us.emb-japan,go.jp>.

74_ 조선일보 , 2006년 7월 1일.

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그린(Michael J.

Green)은 NSC 보좌관, 켈리(James Kelly)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 보에 각각 임명되었다.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2001년 5월 MD 설득외교의 일환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미·일동맹을 미·영동맹 수준 으로 끌어올리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후 미·일 차관급 전 략대화의 미국측 대표로 줄곧 참가하여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여 적 극적으로 안보역할을 떠맡을 것을 강조하였다.75 그린 동아시아담 당 보좌관은 일본도 총리 직속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창설 하여 미·일 양국간 안보협력을 보다 긴밀히 할 것을 주장하였다.76 한편, 체니(Richard Cheney) 부통령, 럼시펠드(Donald Rumsfeld) 국방장관 그리고 신보수주의자로 평가 받고 있는 월포위츠(Paul

Wolfowitz) 국방부 차관은 중국에 대해 강경자세를 보이며 미·일동

맹 강화를 지지하였다. 특히 월포위츠는 대만해협 유사시 미국의 개입 여부를 모호하게 해 둠으로써 중국의 대만에 대한 공격 의지 를 억제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할 것을 강조하였다.77

미·일 양국간 안보정책을 협의하는 공식 채널은 <표 Ⅳ-1>에 나 타난 바와 같이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SCC, 2+2회의)가 있 다. SCC에는 미국측에서는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측에서는 외무장관 및 방위청 장관이 참석하고 있다.

75_ 아미티지 미국무부장관은 2004년 7월 21일 미국을 방문한 자민당의 나카가와 자민당 국대위원장 등과 화담하는 자리에서 미·일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을 부정하고 있는 일본 헌법 제9조를 개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일본의 자유법조단은 7월 30일 이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憲法9条を邪魔者扱 いするアーミテージ発言に抗議する, 2004年 7月 30日 <www.jlaf.jp/seimei/sei_20040805.

html>.

76_ 스노하라 쓰요시(春原 剛) 저, 이웅현·조진구 공역, 워싱턴의 사쿠라: 미국내 지일파에 관한 심층 분석 보고서 (서울: 리북, 2007), pp. 24~25.

77_ 위의 책, p. 82~88.

ⅠⅠ

<표 Ⅳ-1> 미·일간 안보협력 위한 포괄적 메카니즘

일본 총리 미국 대통령

방침제시, 작업진척 확인, 필요시 지시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 (SCC: Security Consultative Committee) 국무장관

국방장관

외무장관 방위장관

공동계획검토위원회 (BPC: Bilateral Planning Committee)

방위협력소위원회

(SDC: Subcommittee for Defense Cooperation)

<미측>

* 국무차관보, 국방 차관보

* 주일미대사관/ 주일통합 참모본부/ 태평양군의 대표

<일측>

* 외무성북미국장, 방위청 방위국장/운용국장

* 통합막료회의 사무국 대표

<미측>

* 주일미군사령관

* 미군관계자

<일측>

* 통합막료회의사무국장

* 자위대관계자

* 공동작전계획 및 상호협력계획 검토

* 공통의기준 및 실시요령 등 검토

국내관계성청과 관련된 사항검토 및 조정 (의장: 내각부 부장관)

관계성청 국장회의

* 필요시 외무성, 방위성이 조정

* BPC로서 계획 검토를 효과적으로 실시하는데 필요한 관계성청과 조정

연락조정의 장

조정 조정

공동작업을 위한 포괄적 메커니즘

자료: 防衛庁, 防衛白書 (東京: きょうせい, 平成 18年 8月), p. 212.

2002년 12월 16일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는 ① 국제테러,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등의 새로운 위협과 다양한 사태, ② 군사기 술의 비약적 향상과 각종 기술의 통합화 진전 등 국제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양국의 안보정책에 관한 긴밀한 협의를 강화할 것 에 합의하였다. 미국은 이 SCC 회의에서 미·일동맹을 단순히 주일 미군과 자위대의 연합전력을 강화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 세계적 으로 변화하고 있는 안보환경에 비추어 미국과 일본의 방위정책과 국가안보정책을 양국이 함께 재검토하고 변화를 추구해 나가는 동

맹의 변혁(Alliance transformation) 차원”에서 검토할 것을 제의하 였고, 2003년 봄 차관보급(심의관급) 회의를 설치하고 실무적인 논 의를 시작하였다.78 미국은 아미티지 보고서에 제시된 바와 같이 미·일동맹을 미·영동맹의 수준으로 심화시키겠다는 의도에서 동맹 의 변혁을 제안한 것으로 보이나, 미·일관계를 미·영관계 수준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역사적, 지정학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 은 상태에서 발표된 우호적인 정치적 발언으로 생각하고 있던 일본 은 미국측이 제시한 ‘동맹의 변혁’에 대해서도 단순히 아이디어 차 원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79 그러나 2003년 11월 SCC 회 의에서, 미국측이 육군 제1군단 사령부의 일본내 자마(座間)기지 이 전 및 괌 소재 미 공군 제13 사령부의 요코다 소재 공군사령부의 통합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자 이를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일본측은 기지재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일단 유보할 것을 제의 하였다. 특히 미 육군 제1군단 이전 문제에 대해 미·일간 입장 차이 를 보였다. 워싱턴주 포트루이스에 있는 미 육군 제1군단은 아·태 전역을 작전 영역으로 담당하고 있는 부대인 바, 이 부대의 작전범위 는 ‘일본 영토 및 극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일 안보조약」의 범위 를 벗어나게 된다. 일본측은 미 육군 제1군단이 일본내 기지로 이전 할 경우 주일 미군기지의 전략적 성격이 전환되고 이와 더불어 일본 의 군사적 활동영역이 중동 및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확 장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80

78_미·일동맹 변혁과 주일미군 재편을 위한 협상과정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송화섭,

“미·일동맹의 변혁과 보통동맹화,” 국방정책연구 , 제71호 봄호 (2006), pp. 4 3~67.

79_ 위의 글, pp. 43~67.

80_ 한국국방연구원, 2004-2005 동북아 군사력 (서울: 한국국방연구원, 2005), pp.

ⅠⅠ

미·일동맹 변혁과 주일미군 재편에 대한 협상이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지자, 미·일 양국은 2004년 10월 이후 공통의 전략목표에 대한 협의를 우선적으로 진행하였다. 그 결과

SCC는 2005년 2월 19일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및

아·태지역의 안보 불확실성에서 초래되는 위협을 핵심 내용으로 하 는 양국의 공통의 전략목표를 공표하였다.81 그 후 미국측은 육군 제1군단의 활동범위에 대해 명시하지 않기로 한다는 의사를 밝혔 고, 일본 측이 이를 받아들여 제1군단을 일본의 자마기지로 이전하 는데 합의하였다.82 그 결과 2005년 10월 29일 「미·일 안전보장협의 위원회」는 미군과 자위대의 역할·임무·능력을 검토하고 병력태세 의 재편 계획에 대한 합의사항을 담은 「미·일동맹의 미래를 위한 변혁과 재편」이라는 중간보고서를 발표하였다.83 그리고 2006년 5월 1일 2014년까지 주일미군과 자위대 재편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재편실시를 위한 미·일 로드맵」을 최종적으로 발표하였 다.84

54~55; 미·일간의 협상과정과 양측간 이견에 대해서는 上田哲, 戦後60年軍拡

史: 1945-2006 (東京: (株)データバンク, 2006年 8月 15日), pp. 792~801.

81_ “Joint Statement U.S.-Japan Security Consultative Committee” (Washington D.C.: February 19, 2005) <www.mofa.go.jp/region/n-america/us/security/scc/

joint0502.htm>.

82_ 박영준, “21세기 미·일동맹의 변환과 일본 방위체제 변화,” pp. 35~36.

83_ Security Consultative Committee Document, “U.S.-Japan Alliance: Transformation and Realignment for the Future” (October 29, 2005) <www.mofa.go.jp/region/n-america /us/security/scc/doc0510.htm>.

84_ United States-Japan Roadmap for Realignment Implementation (May 1, 2006) <www.mofa.go.jp/region/n-america/us/security/scc/doc0605.htm>.

Dalam dokumen 미·일동맹 강화 (Halaman 6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