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은 청년주거협동조합을 운영하며 공유 주택을 운영하는 기조를 만 드는 데에 있어 자연스럽게 “보통 상상하는 집”과 다른 구성원들의 역할 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집을, 보통 상상하는 집이면, 엄마 있고 아빠 있고, 아들 있고 딸 있고, 뭐 이런 식이잖아요. 근데 그런 집이 아닌 다른 집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럼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을 것이냐? 그랬 을 때 우리 집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면 너무 자연스럽게, 우 리가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 살아보면, 혼자 살더라도 같이 살더라도 엄마가 없으면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어요. 눈에 보이는 부분들? 그러면서 알게 되는 거예요, 아, 이게 원래는 엄 마가 하던 일이었는데, 당연한 건 또 아니겠다, 이런 생각을 하 게 되면서, 오늘 그러면 우리는 집에서 너무 당연하게 어떤 사 람을 엄마로 만들어 버리지 말자. 엄마라는 의미가 그렇게 쓰여 서 좀 그렇긴 하지만, 흔히 쓰이는 그런 엄마, 너무 당연하게 집 안일을 맡기는, 주 가사 노동자로 누군가를 만들어 버리지 말자 라는 고민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거 같고 <소현>
근대적 공사 구분에 따른 공적 영역에서의 생산 노동은 임금을 발생시 키고 쉽게 드러나는 반면 사적 영역에서의 노동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돌봄 노동(care work)는 이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집안일이나 가사노동 을 포함하며 “우리의 삶과 노동을 매일같이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관 계와 활동의 복합체(페데리치, 2013: 21, 재인용: 안숙영, 2018: 4)”이다.
이러한 노동은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비가시화되기 쉽고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 현상이 있어, 돌봄 노동의 가시화 와 사회화를 위한 연구와 노력이 있어왔다. 연구 참여자들은 이 노동을 묵묵히 수행하던 ‘엄마’라는 존재가 부재할 때에 이 노동이 비로소 당연 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고, 공동의 주거생활을 하는 구성원들간의 비 위계적인 역할의 배분을 고민하며 가려져 있던 노동을 가시화하고 협 상의 제 1 주제로 전면적으로 떠오르게 했다. 이런 식으로 협동조합의 구성원들은 ‘집’이 내재한 성역할과 위계, 권력 관계와 거리두기를 하며 동등한 개인들의 합으로서 ‘집’의 의미를 재구성해 나가고 있었다.
3. ‘따로 또 함께’ 살아가기를 모색하기
1 인가구를 위해 배당되는 적절한 공유 공간이 부재한 도시구조에서, 그리고 1 인가구가 단순히 결혼 전의 이행 단계로만 이해되는 상황에서,
‘함께살기’에 대한 상상력은 한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
나 거실과 화장실, 부엌을 공유하며 함께살기를 행하고 있던 연구 참여 자들은, 이런 방식만이 함께살기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일지 고민하며
‘따로 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도모하고자 하기도 했다.
저 혼자 사는, 혼자 사는 근데 원룸 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그 런 건물? 빌딩을 생각하기도 하고, 지금은 조금 더 다른 사람들 과 함께 살면서도 그런 피로도가 최대한 적게, 피로도가 최대한 적게 좀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공간 모델이 있지 않을까? 저도 찾고 있죠. (중략) 우리가 지금 이렇게 각자의 방을 하고, 거실을,
화장실을 공유하는 이런 식으로 해 봤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좀 피로도가 있구나, 그러면 어떤 게 최적일까, 싶기도 하고. 주 변에도 다, 거의 다 요즘은 대부분 비혼을 꿈꾸는 거 같은데, 다 들, 비혼자 타운에 대한 그런게 있잖아요. 너가 돈 많이 벌어서 비혼 타운을 실버타운 처럼 지어라 하는데, 뭐 이렇게, 하는데, 그러면 그런 거를 하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다들 모여서 살고 싶은? 그래도 혼자 그렇게 늙어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거 같아요. <지원>
지원은 앞으로 둘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 나가 다시 혼자 살아볼 계획 이지만, 자신 뿐만 아니라 비혼을 말하는 다른 사람들도 다들 ‘혼자 그 렇게 늙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 실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피로도가 있었고, ‘어떤 게 최 적’일지, 어떻게 피로도가 적은 함께살기의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찾고 있다고 한다. 소현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따로 또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부청주(LH 부천 청년 주택) 안에서도 관계에 대한 고 민들이 생겼어요. 우리가 1인 1도어락을 쓰면서 살고 있지만 그, 나한텐 안전한 이웃이 필요하고, 안전한 골목길을 만들고 싶고, 내가 이 지역에 눌러 앉기 위해서는 (중략) 더 고민하고 싶고, 뭐 이런 태도들이 생겨서 저희가 또 이들을 조합원으로서 수용 할 수 있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고, 지금은 또 이제 이것을 수 익 사업만으로 볼 수는 없다, 이렇게 됐고, 저희가 생각했던 공 동주거의 개념도 좀 많이 넓어지고 있는 중인 거 같아요. 그 전 에는 한 지붕 아래 세 명 네 명이 같이 살아야만 우리는 공동체 고, 공유 주거를 한다, 라고 말했었는데 지금은, 어 만약에 이 부청주에서 관계가 생기면 한 빌라 안에서, 오피스텔 안에서, (비 비처럼), 네, 그렇게 느슨한 관계를 만들면서 살아볼 수도 있겠 다. 이것도 공동 주거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고… <소현>
소현에게 함께살기는 원래는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것이었지만, 만 약에 청년주택에 거주하는 이들끼리 관계가 생기고 이어진다면 그것 또 한 ‘공동 주거라고 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1인 1도어락을 쓰
고 있어도 ‘안전한 이웃’과 ‘안전한 골목길’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지역
에 ‘눌러 앉기’위해서는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소현은, 원래는 조합의 수익 사업으로만 여기던 청년주택 사업도 다른 하나의 공동주거 의 개념으로 도약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방법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활동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고 있었 다. 전주의 비혼여성 ‘비비’가 같은 아파트에 살며 각자의 집을 갖고 생
활하는 것처럼 ‘느슨한’ 공동 주거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이다.
소현은 집의 점유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다.
집이, 한번 터 잡으면 눌러앉을, 앉아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자 기가 설계하는 대로 이동해도 되는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셰어하우스에 있다가, 혼자 살고 싶을 때 원룸에 있다가. 근데 그걸 다 ‘모두들’에서 운영을 할 수 있으면? 혹은 커플이 지내고 싶은 집, 이런 식으로 집을 형태별로, 좀 다양한 형태로 구성 해 놓으면 그 사람이, 꼭 그 집에 들어왔으면 그 집에서 살다가 그 집에 못 살면 나가는 게 아니라, 이 집에서 살다가 나 여기 살고 싶어요, 옮기고, 또 여기 살고 싶어요, 이 런 식으로? 그러려면 방이 늘 하나씩 비어 있어야 될 거 같은데, 뭐 그런 식으로도 상상을 해보고 있고. 여러가지 주거 방식이나 형태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다양한 사람 들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소현>
소현은 지금은 집이 일정 기간 이상의 정주를 전제로 하고 있는 곳이 지만, 빈 방들을 운용하면서 입주자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며 살 수 있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