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한국의 북한 핵무장에 대응한 비핵화(非核化)정책은 6자 회담(SPT)체제를 대변되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 및 국제주의
(International Cooperation),
경제지원 및 부분적 경제제재, 햇볕정책 등 대북화해 및 관여(Engagement)정책, 한미동맹의 확장억제에 대한 의존 등 비용전가형 동맹정책 및 대화와 타협에 과도한 비중을 두는 유화정책이 주류를 이뤄왔다. 외부위협에 대한 과소견제 및 균형
(Underbalancing)이 야기되었고,
핵위기를 방관 또는 악화시켜왔다.북한은 지속적으로 핵무장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기술적 진전을 이루 어 온 것으로 보이며, 최근의
3차 핵실험은 이를 입증하는 사태였
다.262 핵무장 억제실패 원인과 과정을 살펴본 후,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안으로 검토되는 방안들을 비교, 검토한다.가. 대북 핵정책의 실패원인
(1) 대내적 요인
현재까지 과소견제 및 균형을 배태하게 만든 대내적 요인들을 살펴 보자. 첫째, 북한의 핵무장 위기가 본격화된 1989년263 직전 10년간 진
262_현재까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추진 과정과 기술적 진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Marry Beth Nikitin,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Technical Issue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April 3, 2013.
263_북한의 핵무장 욕구의 기원은 공식적으로 1956년 조소(朝蘇)원자력협정 체결 당시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로 연결된 핵문제는 1989년 프랑스의 한 상업위성에 의해 촬영된 영변 핵시설물 위성사진이 공개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소위 1987년 6월 항쟁이 한국 민주화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만든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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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된 급격한 민주화과정의 후유증과 과도기적 체제이행이 불러온 정 부취약성의 증대를 들 수 있다. 민주체제의 이행은 장기적으로 체제안 정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중단기 이행과도기 중에는 정부의 동원력 및 응집력의 저하를 초래하곤 한다.264 민주화를 견인한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한 후속 문민정부들이 저하된 체제응집력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부담을 줄 수 있는 내부자원동원에 초점을 맞추는 자체 국방력 및 억지력 강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대북견제 및 억제정 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지지세력과 선거구민(Constituencies)의 이탈 이나 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주는 과제였다. 특 히 과도기적 혼란수습에 매진한 노태우 정부나 강력한
‘문민화 숙청작
업’을 진행한 김영삼 정부하에서, 군부의 정치영향력 복귀를 불러올 수 도 있는 국방안보정책이 추진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군부통치 기 간 중에는 북한의 군사력과 침략의도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양상이 보 였다면,
이후 문민통치기에는 오히려 북한을 과소평가하거나 한·미동맹의 억제력에 대한 낙관적 견해가 대세를 이루면서 방어우선주의 관념이 유포되었다. 급격한 민군관계 변화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군의 영향력 및 자율성 약화는 자구적 ‘무장’ 방식을 통한 견제와 균형정책 수립 및 추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둘째, 사회적 분열과 갈등은 과도기 민주국가로서 한국이 일관되고 강력한 대북 핵압박정책을 구사하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요인이 되었다.
264_제도화 수준이 빈약한 초창기 민주국가는 응집력이 현저히 저하된 불안정한 체제의 모습을 띌 수 있다. 체제내적 불안정성을 모면하기 위해 통치계층은 초민족주의적
(Hyper-Nationalism) 군중동원과 호전적 대외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면서 전쟁
위험성을 고조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Edward D. Mansfield and Jack Snyder,
“Democratization and the Danger of War,” International Security, Vol. 20, No. 1 (Summer 1995), pp. 5~38.
권위주의 통치기 중 수면 하에 침잠해 있던 갈등요인들이 분출되면서 사회응집력이 저하되었다. 시민권 및 사회적 기본권의 확대와 참정권의 실질적 확대로 본격적인 대중정치 시대가 개막되었다. 정당, 노조
,
학생 운동단체, 진보시민단체 및 이념집단의 사회참여와 정치활동이 활성화 되면서 계급·이념·지역 간 반목이 확대되었다. 민주정치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정치적 유동성은 급속히 증대되었고, 사회 적 응집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급격한 경제자유화 및 시장개방은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상(Social Polarization)을 증폭시 켰고, 이를 바탕으로 소위 진보이념집단은 근로자 및 지식인 계층으로부 터의 지지를 넓혀 가면서 대안적 정치, 사회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 다. 이들의 이념적,
민족주의적 성향은 전통적, 현실주의적 안보규범과 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정부 주요정책에 대한 사회적 거부권 행사집단(Veto Players)으로서 진보그룹의 세가 확장되면서 이들 세력과 직접
적 마찰을 기피하게 된 직업정치인 등 정치엘리트 집단으로서는 내부동 원을 통한 외부위협 견제정책을 터부시하게 되었다. 노골적인 북한동조 세력까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군비확충을 통한 견제 및 균형정책을 대북 대결정책 또는 냉전의 유산, 기피대상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군사 적으로는 한미동맹의 억제력에 의존하며, 북핵대응으로는 미·북협상이 나 6자회담 등 국제주의적 접근법에 기대며 국내정치적 부담 회피를 의 도로 하는 대응정책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이다.셋째, 대북문제에 관한 사회분열과 진영 간 대립은 고스란히 엘리트 그룹의 분열로 이어졌다. 소위 햇볕정책의 정책적 가정과 가설들을 검 증 없이 신념화한 협상타협파 및 유화론자들과 한·미동맹 및 확장억제 체제 복원, 그리고 상호성에 기초한 상호호혜적 남북관계 재건축을 주 장하는 대북원칙론자들 간의 대립은 그 백미였다. 양 진영은 한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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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거대 거부권 집단(Veto Player)들로서 여타 주요 국내정치 현안 에 관한 대립 및 갈등과 맞물려 상호발목잡기로 대북억제정책의 효용 성을 저하시켜왔다. 이러한 엘리트 분열은 누가 외부 위협세력인지, 누 구와 동맹을 맺어야 하는지, 어떤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지 등 가장 기 초적인 인식론적 문제에 관한 엘리트 컨센서스 형성마저 불가능하게 하였다. 소위 북한 주적 논쟁, 동북아균형자 논쟁, NLL 재설정 논쟁, 소위 낮은 단계 연방제의 이적성 및 위헌논쟁 등이 그것이다. 어느 진 영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에 관한 찬반대립은 다시 한국사회에 투사되 어, 사회 분열을 더욱 가중시켰다. 엘리트집단 간 정책의견 조율, 일관 된 정책의 수립, 그리고 효과적 정책집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북 핵억제 및 한반도비핵화 문제를 국제사회에 전가하는 주인의식 부재 현상이 나타났다. 내부분열양상이 전형적인 비용전가 행태로 국제사회 에 표출된 것이다.
이상의 내부정치상의 분열 사유로 재무장과 동맹강화를 통해 외부 위협에 대처하는 적정한 균형정책을 수립, 효과적으로 이행하는 데 실 패해 왔다. 6자회담
(Six Party Talks: SPT)으로 대변되는 국제사회
의 노력도 근본적 한계점을 노정하며 북한의 핵무장을 억제하는 데 성 공하지 못하였다.(2) 국제주의와 6자회담(SPT)체제의 한계
현재 중국정부가 희망하듯이 6자회담이 향후 비핵화 추진기제로 재 등장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위해
6자회담의 구조적 제약성에 관해 논
해본다. 6자회담이 그간 북한 비핵화 목표 달성에 실효적 도구로서 제 대로 기능하여 왔는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북한의 플루토늄 핵무기 개 발을 억제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북한과 같은 일탈행위자를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도 없었으며 우라늄농축프로그 램 추진을 사전에 차단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북한이 비핵화 대가로 주어진 경제지원을 향유하면서 핵무 기 및 운반매체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버는 것을 방조한 측면마저 있다.
결국,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6자회담은 파탄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낮은 실효성이 단지 전술상의 실책이나 방 법론상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이며 구조적인 한계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6자회담의 한계는 회담참가국들 간의 이해관계 상충 과 하나의 국제레짐(International Regime)265으로서
6자회담체제가
가지는 취약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6자회담의 실효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무엇보다도 회담참여자들의
평화적(즉 협상과 보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 달성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대한 동기의 강약과 공약정도가 상이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2666자회
담이 참가자들의 행위를 규범적·절차적으로 수렴하여, 비핵화라는 공공 선을 조직적으로 생산해내는 다자적(Multilateral) 국제체제로 순기능 하기보다는 각 행위자들이 개별국가이익을 도모하는 이전투구의 지리 멸렬한 게임의 장으로 둔갑할 개연성이 근본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다.6자회담의 주참가국인 미국과 중국이나 그 대상인 북한의 이해관계
득실이 상이하므로 최선의 경우라 할지라도6자회담체계는 한반도의
265_국제레짐은 국제관계상의 주어진 일정영역에 참여하는 행위자(예, 개별주권국가)들 의 (행위방식이나 정책결정의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수렴될 수 있는 암묵적 또는 명시적 원칙, 규범, 규칙, 정책결정절차를 의미한다. Stephen D. Krasner, “Structural Causes and Regime Consequences: Regimes as Intervening Variables,”
Stephen D. Krasner (ed.), International Regime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3).
266_John Park, “Inside Multilateralism: The Six-Party Talks,” Washington Quarterly, Vol. 28, No. 4 (Autumn 2005), pp. 75~91.